최근 수정 시각 : 2024-12-14 17:12:02

인민사원 집단 자살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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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민사원 집단 자살 사건
Mass Suicide at Jonestown
<colbgcolor=#ddd,#0f0f0f> 발생일 1978년 11월 18일
발생지 가이아나 요릭 타운
유형 집단자살
원인 사이비 종교
해당 종교 구주의 사도 인민사원
Peoples Temple of the Disciples of Christ
사망자 수 918명 #
생존자 수 40~50명 (추정) #[1]
위치
1. 개요2. 사건 정황
2.1. 사이비 종교의 등장2.2. 존스의 왕국2.3. 희대의 학살극
2.3.1. 살아남은 사람들
2.4. 자살인가, 타살인가?
3. 사건 이후4. 음모론5. 매체6. 기타7. 관련 문서8.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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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78년 11월 18일 남아메리카 가이아나 요릭 타운에서 벌어진 미국사이비 교주[2] 짐 존스가 창시한 기독교사이비 종교 '구주의 사도 인민사원'(Peoples Temple of the Disciples of Christ, 이하 인민사원)[3]의 집단 자살 사건으로, 미국을 넘어 아메리카 대륙 역사상 최대의 집단 자살 사건이다.

시신 이미지 보기. 수많은 시신 사진 주의. 유혈이 없고 원거리에서 찍힌 사진이라 잔인하다고 보기에는 어렵지만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시신들이 늘어져 있다.

2. 사건 정황

2.1. 사이비 종교의 등장

제임스 워런 존스는 1931년 미국 인디애나주에서 태어났다. 편모 슬하에서 자란 존스는 체계적인 신학 교육을 받지 않았지만 학생 시절부터 리치먼드시의 위험한 슬럼가에서 기독교 전도를 하는 등 교회 활동에 열심히 참여하였다. 이후 사회주의 사상을 접하고 심취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실 짐 존스는 본래는 평등주의, 사회주의와 초기 개신교의 박애주의 원칙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오늘날의 관점에서 오히려 열려 있고 박식한 사람이었는데 실제로 인디애나폴리스시의 감리교회에서 근무하면서 백인과 흑인의 구분이 없는 통합 예배를 주장하다가 쫓겨나기도 했다. 이후 이것이 발단이 되어 1955년에 자신의 교단을 설립하고 본격적으로 목회 활동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윌리엄 브랜험의 늦은비 운동[4] 등 오순절교회에서 파생된 이단의 영향도 받았으며 'Full Gospel'이란 명칭도 당시의 흔적이라고 할 수 있다.

존스는 개신교적 믿음을 강조하며 인종 통합과 인종 차별 반대, 사회 정의, 평등, 자유, 빈민 구제 등 바람직한 가치를 표방했다. 존스 자신의 카리스마도 굉장했으며 올곧은 모습에 곧 많은 사람들이 존스를 따랐다. 특히 공동체 통합을 표방하면서 교회를 통하여 사회를 통합하자고 주장한 것은 (남미에서 해방 신학이 인기를 끌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당시 경제적, 인종적 차별로 핍박받은 사람들에게 크게 지지를 받았다.[5] 이러한 영향력 때문에 개방적 개신교 교단인 '그리스도의 제자회'가 존스에게 목사 안수를 주고 자신들의 교파로 포함시켰다. 이렇게 초기에는 사회주의적 색채를 내보일지언정 종교적 틀을 벗어나지는 않았고 종교의 틀을 가지고 있을지언정 평등 등을 왜곡해서 알고 있지도 않았다.[6]

그런데 1960년대 들어 당시 미국 정치계가 급속한 변화에 휩싸이면서 종전의 사회적 질서가 붕괴하고[7] 문화적 충돌과 사상적 양극단화가 가속된 끝에 과격주의가 빠르게 번지기 시작하였으니 이러한 시대적 움직임에 민감한 영향을 받은 존스도 차츰차츰 변질되었다. 특히 인종 통합을 주장하다가 교회에서 내쫓겼던 기억은 1960년대의 사회적 히스테리와 맞물리면서 자신이 가꾸어온 교단을 무너뜨리기 위해 자신의 반대파들이 공작 중이라는 피해의식으로 발전하였다.

2.2. 존스의 왕국

1964년 정식으로 목사 안수를 받은 존스는 곧바로 교회를 캘리포니아로 이주시켰다. 당시 캘리포니아는 지금도 그렇지만 미국의 사회적 변혁에 있어 최전선이었고 다양한 이념과 급진적 운동이 활동하고 충돌하던 곳이었다.

존스는 여기에서 공산주의 사상과 초기 기독교 신도의 사상을 따라 신도의 소득, 부동산, 보험금 등의 자산을 사원에 바쳐 모든 사람이 공평하게 나눠 가지도록 했다. 집회에서는 인터내셔널가찬송가로 부르고https://youtu.be/BxK9jaHYCK8?si=us3eN3DFlQ1L-kwY 설교에서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다'라고 까기도 했을 정도로 반기독교적 색채를 강하게 드러냈으며 특히 마오쩌둥 사상에 심취하여 안티 파시즘 정당인 흑표당[8]의 지도자였던 휴이 뉴턴이나 안젤라 데이비스 등과 협력하여 공산주의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그러나 신도 사이에서 내분이 일어나고 사회에서도 이 요상한 종교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카메라를 들이대기 시작하자 존스의 피해망상이 자극받아 기어이 돌이킬 수 없는 결정을 내렸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Jonestown_Houses.jpg
인민사원의 모습

1974년 인민사원은 남아메리카 가이아나의 토지를 구입했고 아예 미국을 떠나 그곳에 마을을 꾸리고 정착했는데[9] 이 마을이 바로 '존스타운[10]'으로 자신만의 왕국에서 짐 존스는 왕이나 다름없는 존재였다. 존스는 미국 사회와 기독교를 공공연하게 '자본주의, 제국주의'라고 비난하고 신도를 선동하면서 스스로를 신격화했다.

배리 캐넌 전 미국 대사와 정부 인사가 한 증언에 따르면, 가이아나 정부에서 주권 침해 가능성이 높은 존스타운의 미국인 정착촌을 오랫동안 묵인해 줬던 이유가 있었다고 한다. 당시의 가이아나베네수엘라 정부와 영토 분쟁을 빚고 있었으며, 실제로 1966년도에 가이아나가 독립하자, 베네수엘라군은 베네수엘라와 가이아나 사이에 있는 섬인 안코코 섬을 점령했고, 베네수엘라의 점령은 현재까지도 지속되고 있는데[11], 베네수엘라 국경 근처의 미국인 정착촌이 만들어지게 되면 베네수엘라의 침공을 막기 위한 일종의 인계철선이 되는 완충 지대로 큰 도움을 줄 것이라고 예상했기 때문이었다.

사실, 이는 가이아나가 건국된 이후부터 현재까지 지속되는 영토 분쟁이다. # 현재 가이아나의 서부 영토인 '과야나 에세키바'는 베네수엘라가 역사적으로 자신들의 '개척 구역'이라고 주장하는데, 가이아나가 영국 식민지였던 시절에 영국이 베네수엘라로부터 뺏어 간 땅이기 때문에 반드시 되찾아야 한다면서 억울하게 영토를 빼앗겼다고 간주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고 차베스 집권기부터 베네수엘라 국기의 별이 7개에서 8개로 늘어난 것도, 빼앗긴 가이아나 서부의 영토를 반영한 것이다.[12]

결국 가이아나 정부의 묵인 아래 성공적으로 정착한 짐 존스는 신도들의 무단 탈출을 막기 위해서 마을 밖으로 나가면 독사와 원주민 때문에 살지 못할 것이라고 협박하면서 무장 경비병을 마을 근처에 세워놓고 엄중하게 감시를 시키기까지 했다. 생존자의 증언에 따르면, 농작물이나 다른 작업에 대한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거나 조금이라도 불만을 품으면 가차 없이 구타와 정신적 학대를 했다고 한다. 신도들, 심지어 가족들끼리도 서로 감시하면서 존스타운에 대한 적대적인 자세가 보이면[13] 지체 없이 짐 존스와 간부들에게 보고했다. 생존자인 레슬리 윌슨이 인터뷰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자신은 감시 체제로 인해 당시 미국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마음을 부모와 형제에게도 밝힐 수 없었다"라고 증언했다.

2.3. 희대의 학살극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1973_Congressional_Pictorial_Leo_Ryan.jpg
레오 라이언 하원 의원

결국 존스타운에 갇힌 신도의 안전을 염려한 미국 본토에 있었던 가족의 항의로 네브래스카 출신 레오 라이언 하원 의원[14]이 진상 조사를 위해 가이아나로 떠났다. 하지만 이 방문은 존스타운의 사람들을 해방시키기는커녕 끔찍한 결말을 부르고 말았다.

가이아나 시간으로 1978년 11월 17일 아침에 레오 라이언 의원과 조사단·기자단은 비행기를 타고 존스타운을 방문했다. 당시 짐 존스는 조사단을 속이기 위해 신도들이 행복하게 잘 사는 것처럼 꾸미고 거짓 증언을 하도록 강요했으며 처음에는 라이언 의원도 신도들이 행복해 보인다며 속아 넘어갔다.

그런데 버논 고즈니(Vernon Gosney, 1953~2021, 당시 25세)라는 남자 신도가 존스타운의 실상을 적은 쪽지를 짐 존스와 그의 하수인들의 시선을 피해 조사단원인 NBC 기자 돈 해리스(Don Harris, 1936~1978, 당시 42세)에게 전달하면서 라이언 의원과 조사단도 실상을 알게 되었다. 18일 아침 조사단이 조사를 하러 온 가운데 신도 메리 스미스(Mery Smith, 1940~?, 당시 38세)라는 여자가 '존스타운에서 빠져나가게 해 달라'고 말했다. 이후 조사단원 NBC 기자 돈 해리스가 신도들을 인터뷰했는데 대부분의 신도들은 존스타운에 대해 행복하다, 살기 좋다는 말만 했지만 표정을 보면 존스의 보복이 있을까 봐 불안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이후 패트리샤 파크스(Patricia Parks, 1934~1978, 당시 44세)라는 신도가 라이언 의원의 법률 고문이었던 재키 스파이어(Jackie Speier, 1950~, 당시 28세)에게 가족과 미국으로 돌아가겠다는 말을 했고 크리스 오닐(Chris Oneal, 1958~2014, 당시 20세)이라는 남자와 에디스 보그(Edith Bogg, 1939~, 당시 39세)라는 여자도 가족과 여기서 나가겠다고 하면서 돌아가겠다는 입장을 밝힌 사람이 늘어났다. 이에 인민사원 내부는 발칵 뒤집혔고 교주인 존스와 간부들은 당혹스러워했다. 결국 귀국 의사를 밝힌 신도 15명과 면담하고 미국으로 보내 주기로 결정하여 15명이 조사단을 따라 존스타운을 빠져나갈 예정이었다.

사원 내부의 분위기가 갑자기 이상하다는 것을 감지했던 돈 해리스가 급히 짐 존스에게 실상이 적힌 쪽지를 보여주면서 묻자 심각한 표정이던 존스가 쪽지에 적힌 글은 거짓말이라며 제발 여기에서 당장 나가 달라는 말을 하였다. 라이언 의원이 존스에게 가서 신도들이 떠나려고 한다며 단도직입적으로 인민사원의 문제점을 말하려고 하던 그때 돈 슬라이(Don Sly, 1936~1978, 당시 42세)라는 신도가 뒤에서 라이언의 목을 잡고 칼로 찌르려고 했다. 다행히 라이언의 변호사 2명이 흉기를 빼앗아 저지하여 라이언 의원은 자상을 입기는 했지만 크게 다치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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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려던 도중 총격을 당한 장면

하지만 다음 날 11월 18일 존스는 조사를 마치고 돌아가려 하는 조사단과 신도들을 살해하려고 이륙장으로 무장한 사람들을 보냈다. 탈출하는 사람 속에 몰래 총을 든 첩자 한 명을 숨겼는데 이 첩자는 래리 레이턴(Larry Layton, 1946~, 당시 32세)이라는 신도였다. 레이턴은 이륙하는 중에 총을 꺼내 다른 신도들에게 총을 쏘아 살해하려 했고 레오 라이언 의원의 직원 재키 스파이어가 총상을 입으면서까지 막았으나 결국 비행기 밖에서 라이언 의원과 NBC 기자 돈 해리스, 신도 패트리샤 파크스, 카메라맨 밥 브라운(Bob Brown, ?~1978), 사진기사 그레그 로빈슨(Greg Robinson, 1951~1978, 당시 27세) 등 5명이 현장에서 즉사했고 중상을 입은 다른 사람들은 정글의 수로로 도망쳐서 살아남았다.[15] 래리 레이턴은 정글로 숨었다가 가이아나 경찰에 체포되어 수감된 후 2002년에 출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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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도들을 죽인 독극물

오후 5시 30분 비행장에서 습격 직후 짐 존스 자신을 포함하여 신도 총 909명[16] 청산가리를 탄 쿨에이드[17]를 마시고 집단 자살을 했는데 놀랍게도 많은 사람들이 마치 도살장에 끌려가는 짐승처럼 순순히 존스의 말에 따라 자신의 자식들에게 독을 먹인 다음 자기들도 마시고 사망했다.

한편 짐 존스는 자신의 일련의 과정을 녹음한 뒤 최종적으로는 머리에 총상을 입고 숨진 채 발견되었는데 존스가 자살했는지 아니면 함께 숨진 채 발견된 교단 간부에 의해 살해됐는지의 여부는 불분명하지만 부검을 통해 짐 존스 본인도 음독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조지타운[18] 인민사원 지부에서도 신도 4명이 사망한 채로 발견되었다.[19]

최종적으로 918명이 사망했으며 사건 직후 가이아나군이 출동하여 시신을 모두 수습하였다. 존스타운은 1980년 라오스에서 망명한 몽족 난민들을 위한 임시 수용소로 사용되었다.

그리고 1980년대 중반에 화재로 건물들이 소실되었고 긴 시간이 흐르는 동안 정글에 의해 매립되어 현재는 몇몇 잔해를 제외하면 그 흔적을 찾을 수 없게 되었다.

사건 이후 존스타운 부지에는 위령비가 하나 세워져 있을 뿐이다.

당시 이 사건은 미국 사회를 발칵 뒤집어 놓았고 오늘날까지도 미국인의 머릿속에 사이비 종교의 대표적인 예로 자리 잡고 있다. 사건의 원인에 대해 여러 가지 상충하는 견해를 담은 책과 기사가 지금까지도 발표되고 있으며 종교학, 심리학, 철학, 범죄학 등 각종 학문에서도 이 사건을 메인 테마로 다룬 적이 있다. 공산주의와 크게 연계되었기 때문에 종교, 정치적으로도 주요한 화제가 되었고 이 사건은 미국을 포함한 전 세계 언론에 의해 집중 보도 되었으며 한국에서도 각종 언론 매체를 통해 보도되기도 했다.
Return to Jonestown | Survivors revisit site 40 years after the tragedy | Sunday Night

호주 방송에서 취재를 통해 제작한 학살 40주기 추모 다큐멘터리. 여기서는 인민사원에서 탈출에 성공한 신도, 자살한 신도의 가족, 그리고 짐 존스의 아들이 증언을 해 주었다. 존스타운의 40년 후의 모습도 덤으로 보여주었다. 다만 현장 보존을 위해 들어가지는 않았다.

2.3.1. 살아남은 사람들

이 와중에도 다행히 생존한 사람이 몇 명 있었다. 사건 당일 이륙장을 통해 신도 15명이 귀국하려고 하기 전 신도 11명이 존스와 간부들이 라이언 의원과 조사단에게 신경을 쓴 틈을 타 몰래 정글로 도망친 후 탈출해서 살아남았다. 탈출을 주도한 레슬리 윌슨(Leslie Willson, 1957~, 당시 21세)이라는 여자는 사건 당일 충성파 신도였던 남편에게 피크닉을 할 것이라며 속이고 자신의 아들 재커리(Zachary Willson, 1976~, 당시 2세)와 함께 탈출하려고 했다. 이때 마음이 맞은 산드라 에반스(Sandra Evans, 1948~, 당시 30세), 리처드 클라크(Richard Clark, 1936~2001, 당시 41세), 다이앤 루이(Diane Rouie, 1952~, 당시 26세)와 함께 경비들을 피해 정글로 도망친 후 탈출하여 생존할 수 있었다. 함께 탈출한 사람들은 에반스의 남편 줄리어스(Julius Evans, 1948~2004, 당시 30세)와 딸 소니아(Sonya Evans, 1967~, 당시 11세), 샬라(Sharla Evans, 1971~, 당시 7세), 이웃 로버트 폴(Robert Paul, 1945~2010, 당시 33세)과 조니 프랭클린(Jonney Franklin, 1945~, 당시 33세) 등이었다. 하지만 집단 대학살로 인해 윌슨은 자신의 남편과 부모, 형제, 조카를 잃고 말았다.

여기에 존스타운에서 일하던 남성 변호사 마이클 사이먼(Michael Simon, 1945~, 당시 33세)과 여성 변호사 조이스 베이크스(Joyce Bakes, 1946~, 당시 32세)는 사건 직전 심각한 분위기를 감지하여 존스에게 허락을 받고 존스타운을 빠져나왔고 무장 경비가 뒤쫓았지만 이들은 정글에 숨었다가 조지타운으로 탈출하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존스는 사건 직전에 존스타운에서 보유하고 있었던 현금을 가방 2개에 나눠 담고 조지타운에 있었던 소련 대사관으로 가져다주라고 심부름을 시켰는데 이를 수행한 남자 3명은 살아남았다.

또 귀가 안 들려서 모이라는 소리를 못 들었다가 나중에 수로에 몸을 숨겨서 살아남은 남자 1명[20], 모이라는 소리를 듣고는 침대 밑에 숨은 여자[21], 모였다가 경비를 속이고 탈출한 남자 1명, 모였다가 청진기를 가져오겠다고 하고는 숨은 남자 1명 등 4명이 더 살아남았다.

그리고 산드라 에반스의 삼녀 시렐리 에반스(Shirelle Evans, 1973~, 당시 5세)가 가족들과 떨어져 홀로 숲속에 숨어 있었다가 가이아나 정부 관계자들에게 구조되었다. 이 아이는 나중에 본국인 미국으로 돌아간 후 한 가정에 입양되었고 지금까지 잘 살고 있다고 한다.

또 사건 직전에 조지타운에 위치한 인민사원 지부로 존스타운 거주자들 몇십 명[22]이 이동했고 비슷한 시기에 존스타운 근무자 일부[23]가 로스앤젤레스에 위치한 인민사원 지부로 이동하는 일이 있었다. 이 덕에 이 사람들은 참극을 피할 수 있었지만 사건 당일에 존스타운에 있었던 것이 아니기 때문에 생존자 집계에서 제외되는 일이 많다고 한다.

한편 짐 존스의 아들 짐 존스 주니어는 당시 가이아나 대표 팀과의 농구 경기 때문에 조지타운으로 출장을 가서 사건에 휘말리지 않았고[24] 다른 아들인 스티븐 존스[25]도 조지타운에 있어서 사건에 휘말리지 않았다. 이 아들 2명은 조사단이 존스타운에 들어올 때쯤에 존스로부터 돌아오라는 명령을 들었으나 뭔가 수상쩍어 거부했다고 한다. 그러나 존스의 다른 자식들과 존스의 아내는 이 사건으로 짐 존스와 존스타운에 남은 다른 신도들과 함께 사망한 채 발견되었다.

2.4. 자살인가, 타살인가?

이 사건은 자살 사건이라고 불리기에는 다소 논란이 있는데 인민사원 신도였던 스탠리 클레이턴(Stanley Clayton, 1953~, 당시 25세)[26], 오델 로즈(Odell Rose, 1942~2014, 당시 36세)[27] 두 사람의 증언에 의하면 존스는 신도들을 모아 놓고 강제로 자살할 것을 명령했다고 하며 이 사건과 관련해서 세간에 퍼져 있는 '신도들이 나란히 줄을 서서 독극물을 받아먹고 아무 저항 없이 죽어갔다'는 인식도 사실과 다르다고 증언했다. 당시 신도들 주위에는 무장 경비원들이 배치되어 있었기 때문에 섣불리 저항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을 것이다. 로즈는 어린이에게 강제로 독극물을 먹이는 모습도 실제로 가까이에서 목격했다고 밝혔다.

로즈를 포함한 생존자의 증언에 따르면 깜깜한 새벽에 사이렌을 울리며 존스가 백야(White night)라고 방송하며 신도를 모이게 하고 외부 세력이 인민사원의 신도와 존스 자신을 위협하려고 한다는 가정하에 자신을 따르는지를 확인하려고 자살 연습을 한 적이 수차례 있었다고 한다.

따라서 신도들이 강요로 인해 독극물을 마신 것이었는지, 아니면 자발적으로 자살한 것인지에 대해 논란의 여지가 있다. 특히 존스타운 주민 중 3분의 1이 16살 이하의 어린이였다. 어린이가 자발적으로 죽음을 선택하기는 불가능할 것이다. 존스는 제일 먼저 부모더러 자식에게 독극물을 먹이라고 명령했다. 뒷걸음질치는 어린이를 붙잡은 인민사원 임원이 물딱총으로 독극물을 먹였고 부모들은 자기 아이들이 고통에 울부짖는 와중에 집단 자살을 합리화하는 연설을 해 대면서 서로 박수를 쳤다. 이 과정이 하나도 남김없이 녹음 테이프로 남아 있으며 후일 FBI가 이를 발견하여 Q042라는 코드네임을 붙였다.[28]

다만 모두가 짐 존스의 이런 미친 결정에 찬성한 것은 아니었다. 크리스틴 밀러(Christine Millor, 1918~1978, 당시 60세)[29]라는 여자는 "러시아로 가자.", "아이들은 살려주자.", "생명권은 각자 자신에게 있으니 자살 또한 각자에 맡겨야 한다."는 상식적인 반론을 제기하였는데 짐 존스는 "이 파시스트 세상에 아이들을 남겨 고통받게 할 수는 없다.", "당신은 지금 죽기를 두려워하고 있다."는 비관론으로 밀러의 말문을 막아 버렸고 다른 충성파 신도들은 밀러를 겁쟁이라며 비판해서 묵살시켰다. 밀러의 시신에서는 주사 자국이 발견되었기에 살해당했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밀러의 자식들도 죽은 채로 발견되었다. 밀러의 마지막 주장은 서술한 Q042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한편 짐 존스는 자신이 살해를 의도하지 않았다고 주장했지만 그런 일이 벌어질 줄 알았다며 라이언 의원 살인 사건은 자신들을 음모의 희생양으로 모는 것이라고 우겼다. 생존자의 증언에 따르면 총을 든 경비병이 강요하는 분위기를 만든 것은 사실로 보이지만 또 많은 신도들이 순순히 독극물을 받아 마신 것도 허구라고 생각하기는 힘들다. 실제로 자살한 사람들이 남긴 유언이나 메모에서 이 사람들이 죽을 때까지 존스에 대한 믿음을 유지했음을 알 수 있다. #

사실 수백 명의 생각이 정확히 하나로 통일되기는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여러가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다면 모순 없이 설명된다. 일단 위에서 보다시피 존스를 위해 하원의원 암살까지 시도할 정도로 충성스러운 광신도들이 있었던 것은 분명한 사실인데, 애초에 존스에게 충성을 바치는 이들이 없다면 나머지 인원 통제는 불가능하다. 존스의 미친 소리를 믿고 자신들이 천국에 갈것이라 생각하며 자발적으로 따른 이들도 있었을 것이고, 저항했으나 강제적으로 독극물이 주입된 이들도, 탈출할 힘이 없는 상태에서 (총살보다는 낫다는 생각에) 울며겨자먹기로 억지로 마신 이들도 있었을 것이다.[30] 게다가 생존자 데브라 레이튼의 증언에 따르면 집단 자살을 시뮬레이션한 훈련인 '하얀 밤(White Nights)'가 여러번 행해진 적도 있다고 한다. 이들은 아이들을 포함해 전부 줄을 서서 '독'을 받았으며, 마신 후 45분 이내 죽을 것이란 설명을 들었다. 이후 사망하지 않으면 존스는 이들에게 독이 가짜며 이들의 충성심을 테스트해본 것이고, 멀지 않은 훗날에 스스로 죽을 날이 올 것이라고 설명했다고 한다. 독을 처음으로 마신 희생자들 중에서는 이번 역시 이런 테스트였을 것이라고 믿은 이들도 존재했을 수 있다.[31]

어쨌든 어린이들을 포함해 사망자들 중 (정확한 비중은 불명이라도) 상당수가 미친 교주에 의해 죽음을 강요받았다는 것만큼은 확실하다.

3. 사건 이후

시신은 모두 고국인 미국으로 이송되었으며[32] 인수할 유가족이 없는 이들은 캘리포니아 오클랜드 에버그린 공동묘지에 안장되었다. 2010년까지는 추모비만 달랑 있는 무덤이었으나 이후 희생자 전원의 이름이 적혔다.

다만 이 과정에서 우여곡절도 많았다. 2008년 지노나 노우드(Jynona Norwood)[33]가 주도한 모금 프로젝트로 '(존스를 제외한) 성인 희생자의 이름'을 새긴 기념석 2개가 제작되었는데 그 기념석의 크기가 6피트에 달할뿐더러 무겁기도 해서 희생자의 무덤에 세우면 필연적으로 유골이 훼손되기 때문에 매장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건립했다. 그런데 2010년 짐 존스의 양아들 등이 주도하여 '존스를 포함한 희생자 전원의 이름을 새긴 새로운 기념비'를 제작하여 희생자의 집단 묘 위에 세웠다.

신도들의 총격으로 사망한 레오 라이언 하원 의원은 1983년에 의회 명예 황금 훈장을 받았다.

노우드는 존스의 이름을 같이 새긴 것을 희생자를 모욕하는 짓으로 여겨 에버그린을 고소하고# 문제의 기념비를 철거하며 자신들의 기념비를 그 자리에 세우게 해 달라고 청구하였다. 그러나 앨러미다 지방 법원과 샌프란시스코 항소 법원은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다. 결국 이 사건으로 피해자들을 추모하는 단체는 둘로 쪼개져 버렸다. 노우드를 지지하는 쪽은 Jones-Town(사이트)를, 그렇지 않은 쪽은 Jones-Town-Memorial(사이트)를 운영한다. 참고로 존스는 에버그린에 묻히지 않고 화장되어 바다에 뿌려졌다.

한편 희생자 중 9구가 유가족이 아닌 이에게 넘어갔다가 2014년 델라웨어에서 뜬금없이 발견되는 일도 있었다.[34] 에버그린에 따르면 희생자의 가족이나 생존자 중에도 여기에 묻힌 사람이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 받을 것이라고 한다. 다만 더 이상 시신 안장을 할 자리는 없기 때문에 시신 안장을 원할 경우에는 화장해야 한다고 한다.

라이언 의원의 법률 고문으로 조사단에 동참했던 재키 스파이어는 총상을 입었으나 겨우 살아남았으며 이후 정계에 입문하여 캘리포니아주 하원, 상원 의원을 거쳐 2008년에는 라이언의 옛 지역구에서 연방 하원 의원으로 당선되었는데 쭉 의원직을 수행하다가 2022년 재선에 나서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또 당시 생존했던 버넌 고즈니는 이후 하와이주 경찰로 근무하면서 방송에서 사건에 관련한 증언을 하였고 2010년 정년퇴임 후 여생을 보내다가 2021년 1월 31일 심근경색으로 향년 68세로 사망했다.

한편 인민사원은 사건 이후 1978년 12월 4일 교단 측 변호사인 찰스 게일리로부터 파산을 신청하였으며 이듬해 1월 샌프란시스코시 지방 법원의 판결에 따라 교단 내부 자산을 전량 매각함과 동시에 소수의 생존 신도 전원은 본국인 미국으로 귀국하였다. 그 후 샌프란시스코와 인디애나폴리스 소재 교단 본부는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에 넘겨졌으나 샌프란시스코 지부는 1989년 캘리포니아 북부 지진으로 붕괴 후 재건되어 현재는 미국 우정공사가 사용하고 있다.

4. 음모론

흔히 앞서 언급된 Q042가 존스타운의 마지막 기록이라고 생각하지만 Q875라고 불리는 학살 다음 날에 라이언 의원과 일행들이 총격을 당해 사망했다는 것이 가이아나 라디오 뉴스로 방송된 내용을 녹음한 테이프가 존재한다. 하지만 그 사이사이 문이 열리고 닫히거나 여자와 남자가 대화를 나누고 기침을 하는 소리가 들리는 기이한 테이프로 도대체 누가 어떤 목적으로 했는지 알 수 없을 따름이다. 생존자들은 광란의 학살을 피하기 위해 정글에 숨어 있느라 그럴 여유가 없었다. 따라서 가장 유력한 용의자는 가이아나군인데 이게 맞다면 가이아나군이 최초의 발견자이나 미국 수사관들이 도착하기 전에 사건 현장을 건드렸다는 문제가 생긴다.[35] 물론 존스가 19일 오전에도 살아 있었을지도 모르며 본인이 어떤 이유에서인지 사건 초기의 라디오 뉴스 보도를 녹음한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생존자의 증언에 따르면 녹음된 목소리가 존스 및 그 측근들의 것일 가능성이 높고 해당 테이프의 뒷면에 "죽었어(He's dead)"라는 말이 녹음되어 있는 것을 보아 존스의 자살 직후까지 녹음을 계속하고 있었으리라는 의견이다.

워낙 괴이한 사건이다 보니 당연히 음모론이 등장했다. 음모론에 따르면 존스는 미국 정부의 의뢰로 집단 최면 실험을 진행하는 중이었고 캘리포니아나 가이아나에 정착하는 데 든 비용 등이 전부 미국의 비밀 자금이었다고 한다. 미 하원 조사단이 방문하여 이런 사실이 드러날 위기에 처하자 존스와 미국 정부가 증거를 인멸하기 위해 조사단을 살해하고 피실험자(신도)들을 집단 자살 시켰는데 이러한 작업을 존스를 지원하고자 남미에 주둔 중이던 그린베레 대원들이 수행했다는 설이다. [36]

다만 음모론을 떠나서 이해하기 힘든 부분도 있는데 Q042에서 주가이아나 미국 대사관의 로버트 드와이어 부국장이 언급된다는 점이다. 존스가 "드와이어를 동쪽 집으로 데려가라. 여기서 일이 나기 전에 드와이어를 내보내라."라고 말한 내용이 녹음되어 있어서 이 녹음대로면 드와이어가 당시 존스타운에 있었고 존스가 그를 내보내도록 지시했단 말이 된다. 심지어 드와이어는 각종 음모론의 단골 주체로 나오는 CIA의 요원이었음이 밝혀졌다. 정부 요원을 항상 비난해 왔던 존슨이 핵심 정부 요원과 친하게 지내 왔던 것. 그러나 이에 대한 구체적인 진상은 밝혀진 게 없다.

5. 매체

  • 사상 최악의 참사
  • 당신이 혹하는 사이
  • 새크라멘트: 이 사건을 모티브로 한 영화.
  • 신비한 TV 서프라이즈: 2023년 1월 8일 자에서 이 사건을 다루었다.
  • 아웃라스트 2: 2017년 4월 25일에 출시된 게임으로 여기서 모티브를 얻었다고 제작자가 밝혔다.
  • 차트를 달리는 남자
  • The Church in the Darkness: 2019년에 출시된 게임. 이 사건을 모티브로 했다.
  • White Nights: Psychic TV의 노래. 가사를 모르고 들으면 매우 행복하게 들리지만 사실은 이 사건을 소재로 했다. 참고로 존스타운에서 자살 예행 연습이 수시로 있었는데 그 모의 행사 이름이 백야였다고 한다.
  • 시라이 도모유키의 <명탐정의 제물>이 이 사건을 모티브로 삼고 있으며 인민사원을 인민교회로, 짐 존스를 짐 조든으로 바꾸는 등 고유명사 몇 개를 바꾸었을 뿐 큰 틀은 원래 사건을 그대로 따라가고 있다.

6. 기타

  • 라이언 의원의 맏딸은 아이러니하게도 오쇼 라즈니쉬의 사상에 공감해 그 공동체에 아버지의 사망 보상금을 모조리 때려 넣었다고 한다.
  • 꽤나 유명한 학살 사건이기 때문인지 대부분의 서구권 창작물에서 가공의 사이비 종교의 모티브로 잘 쓰인다. 대표적으로 심슨 가족에 나오는 무브먼트교도 인민사원과 교리가 비슷하다. GTA 5알트루이즘 미션도 인민사원에서 상당부분 모티브를 가져왔다.
  • 이 사건으로 인해 북미권에서 '쿨에이드를 마시다. (Drink the Kool-Aid)'라는 표현은 "무언가를 심각할 정도로 믿는다." 라는 뜻의 은어가 되었다. 링크 더불어 사이비 종교의 집단 자살을 빗대 표현할 때도 쓰인다.
  • 이 사건은 9.11 테러 이전까지 20년 이상 가장 많은 시민의 생명을 빼앗아 간 단일 사건이었다. 무려 918명이 사망했다.

7. 관련 문서

8. 둘러보기

역대 미국의 대형 사고 및 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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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10월 23일
23 필립스 정유 회사 폭발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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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캘리포니아 워커 버스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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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6 애로우 항공 1285편 추락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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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스코샤 탄광 폭발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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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패스파인더 호텔 폭발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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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 서던 에어웨이즈 242편 추락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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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휴에바 미 공군 C-141 추락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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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오자 에어 809편 추락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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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 팬 아메리칸 항공 816편 추락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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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0년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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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 9월 9일
83 앨러게네이 항공 853편 공중충돌 사고
1969년 6월 3일
74 USS Frank E. Evans 충돌 사고
1969년 2월 18일
35 허손 네바다 항공 708편 추락 사고
1969년 1월 18일
38 유나이티드 항공 266편 추락 사고
1969년 1월 14일
28 USS 엔터프라이즈 화재 사고
1968년 12월 27일
28 노스 센트럴 항공 458편 추락 사고
1968년 12월 24일
20 앨러게네이 항공 736편 추락 사고
1968년 12월 12일
51 팬 아메리칸 항공 217편 추락 사고
1968년 12월 2일
39 Wien Consolidated 항공 55편 추락 사고
1968년 11월 20일
78 파밍턴 광산 참사
1968년 10월 25일
32 노스이스트 항공 946편 추락 사고
1968년 8월 14일
21 로스엔젤레스 항공 417편 추락 사고
1968년 5월 27일
99 USS 스콜피언 침몰 사고
1968년 5월 22일
23 로스엔젤레스 항공 841편 추락 사고
1968년 5월 3일
85 브래니프 항공 352편 추락 사고
1968년 4월 6일
41 리치몬드 가스 폭발사고
1967년 12월 15일
46 실버 브리지 붕괴사고
1967년 11월 20일
70 트랜스 월드 항공 128편 추락 사고
1967년 7월 29일
134 USS 포레스탈 화재 사건
1967년 7월 19일
82 피드몬트 항공 22편 공중충돌 사고
1967년 6월 23일
34 Mohawk 항공 40편 추락 사고
1967년 6월 8일
34 USS Liberty 피격 사건
1967년 3월 9일
26 트랜스 월드 항공 553편 공중충돌 사고
1967년 3월 5일
38 레이크 센트럴 항공 527편 추락 사고
1967년 2월 7일
25 데일즈 펜트하우스 레스토랑 화재 사고
1967년 1월 16일
37 플로리다 교도소 화재
1966년 10월 26일
44 USS 오리스카니 화재 사건
1966년 8월 6일
42 브래니프 항공 250편 추락 사고
1966년 6월 16일, 6월 28일
37 MV 알바 케이프호 충돌 및 화재 사고
1966년 4월 22일
83 American Flyers 항공 280/D 추락 사고
1965년 11월 11일
43 유나이티드 항공 227편 추락 사고
1965년 11월 8일
58 아메리칸 항공 383편 추락 사고
1965년 8월 24일
59 미 해병대 KC-130F 추락 사고
1965년 8월 16일
30 유나이티드 항공 389편 추락 사고
1965년 8월 9일
53 시어시 미사일 기지 화재 사고
1965년 2월 8일
84 이스턴 항공 663편 추락 사고
1965년 1월 16일
30 위치타 미 공군 KC-135기 추락 사고
1964년 12월 18일
20 맥그로우 요양원 화재
1964년 11월 23일
50 트랜스 월드 항공 800편 이륙 사고
1964년 11월 15일
29 본자나 항공 114편 추락 사고
1964년 7월 9일
39 유나이티드 항공 823편 추락 사고
1964년 5월 11일
79 마닐라 미 공군 C-135B기 추락 사고
1964년 5월 7일
44 퍼시픽 항공 773편 추락 사고
1964년 3월 1일
85 파라다이스 항공 901A편 추락 사고
1964년 2월 25일
58 이스턴 항공 304편 추락 사고
1963년 12월 29일
22 루즈벨트 호텔 화재 사고
1963년 12월 8일
81 팬 아메리칸 항공 214편 추락 사고
1963년 11월 23일
63 골든 에이지 양로원 화재
#!wiki style= "margin:0px -10px;"
1963년 11월 19일
26 아틀란틱 시티 요양원 화재
1963년 11월 18일
25 서프사이드 호텔 화재 사고
1963년 10월 31일
81 인디애나 주립 박람회 회관 가스 폭발 사고
1963년 9월 17일
32 추알라 버스 충돌사고
1963년 6월 3일
101 노스웨스트 오리엔트 항공 293편 추락 사고
1963년 5월 18일
27 사우스 캐롤라이나 버스 추락 사고
1963년 4월 10일
129 USS 스레셔 침몰 사고
1963년 2월 12일
43 노스웨스트 항공 705편 추락 사고
1962년 11월 30일
25 이스턴 항공 512편 추락 사고
1962년 10월 3일
23 뉴욕 텔레폰 컴퍼니 빌딩 폭발 사고
1962년 7월 22일
27 Canadian Pacific 항공 301편 추락 사고
1962년 6월 3일
130 121 에어 프랑스 007편 추락사고
1962년 5월 22일
45 컨티넨탈 항공 11편 폭파 사건
1962년 3월 16일
107 플라잉 타이거 라인 739편 실종 사건
1962년 3월 1일
95 아메리칸 항공 1편 추락 사고
1961년 12월 14일
20 콜로라도 에반스 스쿨버스 충돌 사고
1961년 11월 8일
77 임페리얼 항공 201/8편 추락 사고
1961년 9월 17일
37 노스웨스트 오리엔트 항공 706편 추락 사고
1961년 9월 1일
78 트랜스 월드 항공 529편 추락 사고
1961년 6월 15일
73 34 사베나 548편 사고
1961년 1월 15일
28 텍사스 레이더 기지 붕괴 사고
1961년 1월 6일
20 토마스 호텔 화재
1960년 12월 17일
52 뮌헨 미 공군 C-131 추락 사고
1960년 12월 16일
134 뉴욕 공중충돌 사고
1960년 10월 29일
22 캘리포니아 폴리테크닉 주립대학교 미식축구팀 비행기 추락 사고
1960년 10월 4일
62 이스턴 항공 375편 추락 사고
1960년 9월 19일
80 World Airways 830편 충돌 사고
1960년 3월 17일
63 노스웨스트 오리엔트 항공 710편 추락 사고
1960년 2월 25일
61 리우데자네이루 미 해군수송기 공중충돌 사고
1960년 1월 18일
50 캐피털 항공 20편 추락 사고
[ 1950년대 ]
||<tablewidth=100%><tablebgcolor=#ffffff,#1f2023><width=33%>발생일
<colcolor=#000>사망사건명
1959년 12월 1일
25 Allegheny 항공 371편 추락 사고
1959년 11월 16일
42 내셔널 항공 967편 실종 사고
1959년 10월 30일
26 피드몬트 항공 349편 추락 사고
1959년 9월 29일
34 브래니프 항공 542편 공중분해 사고
1959년 6월 28일
23 조지아 유조열차 탈선 사고
1959년 5월 12일
31 캐피털 항공 75편 추락 사고
1959년 3월 5일
21 아칸소 흑인학교 화재 사고
1959년 2월 3일
65 아메리칸 항공 320편 추락 사고
1958년 12월 1일
97 천사들의 모후 학교 화재
1958년 11월 18일
33 SS Carl D. Bradley 침몰 사고
1958년 9월 15일
48 뉴어크 만 열차 탈선 사고
1958년 8월 15일
25 노스이스트 항공 258편 추락 사고
1958년 4월 21일
49 유나이티드 항공 736편 공중충돌 사고
1958년 4월 6일
47 캐피털 항공 67편 추락 사고
1958년 3월 19일
24 뉴욕 속옷공장 화재 사고
1958년 3월 7일
26 오키나와 미 해병대 C-119C 추락 사고
1958년 2월 28일
27 켄터키 버스 추락 사고
1957년 11월 8일
44 팬 아메리칸 항공 7편 추락 사고
1957년 2월 17일
72 워렌턴 요양병원 화재 사고
1957년 3월 22일
67 미 공군 C-97기 실종 사건
1957년 2월 1일
20 노스이스트 항공 823편 추락 사고
1956년 10월 10일
59 미 해군 R6D-1기 실종 사고
1956년 9월 5일
20 로빈슨 열차 충돌 사고
1956년 6월 30일
127 그랜드 캐니언 공중충돌 사고
1956년 4월 1일
22 트랜스 월드 항공 400편 추락 사고
1956년 1월 22일
30 로스엔젤레스 열차 탈선 사고
1955년 11월 1일
44 유나이티드 항공 629편 폭파 사건
1955년 10월 6일
66 유나이티드 항공 409편 추락 사고
1955년 8월 11일
66 알텐슈타이그 미 공군기 공중충돌 사고
1955년 8월 4일
30 아메리칸 항공 476편 추락 사고
1955년 2월 12일
29 바턴 호텔 화재 사고
1955년 3월 22일
66 하와이 R6D-1기 추락 사고
1954년 5월 26일
103 USS Bennington 폭발 사고
1954년 2월 1일
35 홋카이도 미 해병대 C-46D 추락 사고
1953년 9월 16일
28 아메리칸 항공 723편 추락 사고
1953년 7월 17일
43 USMC R4Q NROTC 추락 사고
1953년 6월 18일
129 타치카와 미 공군 수송기 추락 사고
1953년 4월 17일
35 시카고 하버 공업 빌딩 화재
1953년 3월 27일
21 오하이오 열차 추돌 사고
1953년 3월 27일
33 라르고 요양원 화재
1953년 2월 14일
46 내셔널 항공 470편 추락 사고
1952년 12월 20일
87 워싱턴 C-124기 추락 사고
1952년 11월 22일
52 알래스카 C-124기 추락 사고
1952년 11월 16일
25 강릉 공항 미 공군 C-46D 추락 사고
1952년 10월 16일
44 양평 미 공군 C-119C 추락 사고
1952년 8월 4일
29 웨이코 버스 정면 충돌사고
1952년 4월 29일
50 팬 아메리칸 항공 202편 추락 사고
1952년 4월 26일
176 USS Hobson 침몰 사고
1952년 4월 11일
52 팬 아메리칸 항공 526A편 추락 사고
1952년 2월 11일
33 내셔널 항공 101편 추락 사고
1952년 1월 22일
23 아메리칸 항공 6780편 추락 사고
1951년 12월 29일
26 컨티넨탈 차터스 항공 44-2편 추락 사고
1951년 12월 21일
119 오리엔트 탄광 폭발 사고
1951년 12월 16일
58 마이애미 항공 C-46기 추락 사고
1951년 9월 1일
45 펠리컨호 침몰 사고
1951년 8월 24일
50 유나이티드 항공 615편 추락 사고
1951년 6월 30일
50 유나이티드 항공 610편 추락 사고
1951년 4월 25일
43 Cubana de Aviacion 항공 493편 공중충돌 사고
1951년 3월 23일
53 미 공군수송기 실종 사건
1951년 2월 6일
85 우드브리지 열차 탈선 사고
1950년 11월 22일
78 큐 가든스역 열차 충돌사고
1950년 9월 26일
23 아시야 미 해병대 C-54D 추락 사고
1950년 8월 31일
55 트랜스 월드 항공 903편 추락 사고
1950년 8월 25일
23 USS Benevlonce 침몰 사고
1950년 7월 26일
25 오시마 인근 미 공군 C-47D 추락 사고
1950년 6월 30일
23 부산 미 공군 C-54G 추락 사고
1950년 6월 23일
58 노스웨스트 오리엔트 항공 2501편 실종 사고
1950년 5월 25일
34 1950년 시카고 노면전차 충돌사고
1950년 4월 21일
35 카타가와현 미군 C-54기 추락 사고
1950년 2월 17일
32 뉴욕 열차 충돌 사고
1950년 1월 26일
32 미 공군 C-54D기 실종 사건
1950년 1월 7일
41 대번포트 요양원 화재
[ 1940년대 ]
||<tablewidth=100%><tablebgcolor=#ffffff,#1f2023><width=33%>발생일
<colcolor=#000>사망사건명
1949년 11월 29일
28 아메리칸 항공 157편 추락 사고
1949년 11월 1일
55 알렉산드리아 상공 공중 충돌 사고
1949년 7월 12일
35 스탠다드 에어 항공 897R편 추락 사고
1949년 6월 7일
53 스트라토 프레이트 커티스 C-46A 추락 사고
1949년 4월 4일
74 성 안토니오 병원 화재
1948년 12월 28일
32 에어본 운송 DC-3 실종 사고
1948년 10월 27일 ~ 10월 31일
26 도노라 스모그 사건
1948년 8월 29일
37 노스웨스트 항공 421편 추락 사고
1948년 6월 17일
43 유나이티드 항공 624편 추락 사고
1948년 3월 12일
30 노스웨스트 항공 4422편 추락 사고
1948년 1월 28일
32 로스 가토스 DC-3 추락 사고
1947년 11월 28일
20 알프스 미 공군 C-47B 추락 사고
1947년 10월 23일
52 유나이티드 항공 608편 추락 사고
1947년 7월 24일
27 올드 밴 8번 탄광 폭발 사고
1947년 6월 13일
50 펜실베니아 센트럴 항공 410편 추락 사고
1947년 5월 30일
53 이스턴 항공 605편 추락 사고
1947년 5월 29일
43 유나이티드 항공 521편 추락 사고
1947년 4월 16일
581 텍사스 시티 폭발 사고
1947년 3월 25일
111 센트레일리아 탄광 참사
1946년 12월 7일
119 와인코프 호텔 화재사고
1946년 7월 19일
25 마운트 톰 B-17 추락 사고
1946년 6월 5일
61 라 살레 호텔 화재
1946년 4월 25일
45 네퍼빌 철도 참사
1945년 12월 24일
21 나일가 요양병원 화재
1945년 11월 1일
26 가게나우 미 육군 C-47 추락 사고
1945년 8월 9일
34 노스 다코다 미시간 열차 충돌 사고
1945년 8월 9일
372 USS 마운트 후드 폭발 사고
1944년 12월 31일
50 배글리 열차 추돌 사고
1944년 10월 20일
131 클리블랜드 가스 폭발 사고
1944년 8월 23일
61 프레클톤 항공 참사
1944년 8월 4일
47 스톡턴 열차 충돌 사고
1944년 7월 17일
320 시카고 항구 참사
1944년 7월 6일
167 하트퍼드 서커스 화재
1944년 5월 21일
163 웨스트 로치 참사
1944년 2월 10일
24 아메리칸 항공 2편 추락 사고
1944년 1월 6일
115 USS 세인트 어거스틴 침몰 사고
1944년 1월 3일
138 USS 터너 침몰 사고
1943년 12월 18일
34 USS 로그데이 침몰 사고
1943년 12월 16일
74 레너트 열차 충돌 사고
1943년 9월 7일
55 걸프 호텔 화재
1943년 9월 6일
79 프랭크 포드 정션 열차 탈선 사고
1943년 8월 30일
29 라카와나 열차 추돌 사고
1943년 7월 28일
20 아메리칸 항공 63편 사고
1943년 6월 12일
42 USS R-12 침몰 사고
1943년 2월 27일
75 스미스 탄광 폭발 사고
1943년 1월 31일
32 레이크 포레스트 요양원 화재
1942년 11월 28일
492 코코넛 그로브 나이트클럽 화재
1942년 6월 5일
46 졸리엣 탄약 창고 폭발 사고
#!wikibstyle="margin: 0px -10px;"
1942년 2월 18일
203 USS 폴룩스, USS 스럭스톤 침몰 사고
1942년 1월 24일
48 USS S-26 침몰 사고
1941년 6월 19일
33 USS O-9 침몰 사고
1940년 9월 12일
52 허큘리스 화약 공장 폭발 사고
1940년 8월 31일
25 로베츠빌 DC-3 추락 사고
1940년 7월 31일
43 두들버그 참사
1940년 7월 15일
63 손만 탄광 폭발 사고
1940년 4월 23일
209 리듬 클럽 화재
1940년 4월 19일
31 리틀 폴스 열차 탈선 사고

[ 1930년대 ]
||<tablewidth=100%><tablebgcolor=#ffffff,#1f2023><width=33%>발생일
<colcolor=#000>사망사건명
1939년 10월 12일
24 샌프란시스코 열차 탈선 사고
1939년 5월 12일
26 USS 세일피쉬 침몰 사고
1938년 6월 19일
23 조던 고등학교 버스 건널목 사고
1938년 6월 19일
47 커스터 강 열차 탈선 사고
1938년 6월 19일
45 레드 자켓 광산 폭발 사고
1938년 5월 16일
34 터미널 호텔 화재
1937년 5월 6일
36 힌덴부르크 참사
1937년 3월 18일
295+ 뉴 런던 학교 폭발 사고
1936년 1월 12일
34 SS 아이오와호 침몰 사고
1934년 12월 11일
34 켄 호텔 화재
1934년 9월 8일
137 모로 캐슬호 화재
1934년 7월 22일
21 뉴욕 오싱 버스 사고
1934년 3월 24일
22 린치버그 빌딩 화재
1933년 4월 3일
73 USS 아크론 추락사고
1933년 10월 3일 ~ 10월 4일
29 그리피스 공원 화재
1932년 9월 9일
72 옵저베이션호 폭발사고
1932년 12월 24일
54 모웨아쿠아 탄광 폭발사고
1931년 7월 25일
31 리틀 시스터즈 보육원 화재
1930년 11월 5일
82 밀필드 탄광 참사
1930년 4월 21일
322 오하이오 교도소 화재
[ 1920년대 ]
||<tablewidth=100%><tablebgcolor=#ffffff,#1f2023><width=33%>발생일
<colcolor=#000>사망사건명
1929년 10월 22일
52 SS 밀워키 침몰 사고
1929년 9월 9일
25 SS 안다스테 침몰 사고
1929년 8월 29일
77 SS 산 후안 침몰 사고
1929년 4월 21일
123 클리블랜드 클리닉 화재
1928년 11월 10일
111 SS 베스트리스 침몰 사고
1928년 11월 8일
20 프레블 박스 토 회사 폭발사고
1929년 8월 20일
22 스터디 클럽 화재
1928년 5월 19일
195 매터 광산 참사
1928년 4월 13일
38 웨스트 플레인스 댄스홀 폭발 사고
1928년 3월 12일
431+ 세인트 프란시스 댐 붕괴 사고
1927년 12월 17일
40 USS S-4 침몰 사고
1927년 11월 14일
28 피츠버그 가스 폭발사고
1927년 5월 18일
45 배스 학교 폭파 사건
1927년 11월 14일
26 SS 파푸스 침몰 사고
1926년 11월 4일
51 반스 헤커 철광 참사
1925년 7월 4일
33 USS S-51 침몰 사고
1925년 7월 4일
44 픽 윅 클럽 붕괴 사고
1925년 6월 16일
47 록포트 열차 탈선사고
1925년 5월 27일
53 글렌 광산 참사
1925년 5월 17일
77 클리블랜드 학교 화재
1924년 12월 24일
36 밥스 학교 화재
1924년 9월 21일
26 SS 클리프톤 침몰 사고
1924년 6월 12일
48 USS 미시시피 주포 폭발 사고
1924년 5월 31일
24 호프 학교 화재
1924년 4월 28일
119 벤우드 광산 참사
1924년 3월 8일
172 캐슬 게이트 광산 참사
1924년 3월 8일
20 닉슨 니트로 공장 폭발사고
1924년 2월 5일
41 밀포드 광산 폭발 사고
1923년 9월 27일
30 겐록 열차 탈선 사고
1923년 9월 8일
23 혼다 포인트 참사
1923년 2월 8일
123 도슨 광산 폭발 사고
1923년 1월 3일
35 앨렌 대교 붕괴 사고
1922년 8월 27일
47 아르고넛 광산 폭발사고
1922년 2월 21일
34 로마 비행선 추락사고
1922년 2월 21일
29 슈피리어 시티 침몰 사고
1922년 1월 28일
98 니커보커 극장 붕괴사고
1920년 9월 16일
40 월스트리트 폭탄 테러
[ 1910년대 ]
||<tablewidth=100%><tablebgcolor=#ffffff,#1f2023><width=33%>발생일
<colcolor=#000>사망사건명
1919년 12월 20일
23 오나와 열차 탈선 사고
1919년 12월 18일
35 J.A 챈슬러 침몰 사고
1919년 6월 5일
92 발티모어 탄광 폭발 사고
1919년 1월 15일
21 보스턴 당밀 홍수 사건
1919년 11월 11일
101 맬본 스트리트 탈선사고
1918년 10월 12일
453 클로켓 화재
1918년 10월 4일
100 T.A 길레스피 회사 공장 폭발사고
1918년 7월 9일
101 1918년 내슈빌 열차 충돌사고
1918년 7월 5일
87 콜럼비아호 침몰 사고
1918년 6월 22일
86 해먼드 서커스 열차 충돌사고
1918년 6월 2일
52 스플릿 락 폭발사고
1918년 2월 26일
30 USS 체로키 침몰 사고
1917년 12월 20일
49 셰퍼드빌 열차 탈선사고
1917년 6월 8일
168 스페큘레이터 광산 참사
1917년 4월 27일
121 해스팅 광산 폭발 사고
1917년 4월 10일
139 에디스톤 광산 폭발 사고
1916년 8월 3일
24 배런 댐 붕괴 사고
1916년 11월 7일
46 서머 스트리트 다리 참사
1916년 8월 29일
43 USS 테네시 침몰 사고
1916년 5월 8일
2p SS S.R. 커비 침몰사고
1915년 10월 28일
21 세인트 존스 학교 화재
1916년 10월 20일
25 제임스 B. 콜게이트 침몰 사고
1915년 9월 27일
50 아드모레 폭발 사고
1915년 7월 24일
848 이스트랜드호 참사
1915년 5월 7일
1198 128 루시타니아호 침몰 사건
1915년 3월 25일
112 레이랜드 광산 참사
1915년 3월 2일
21 USS F-4 침몰 사고
1914년 9월 18일
60 프랜시스 H. 레짓 침몰사고
1914년 4월 28일
180 에클스 광산 참사
1914년 1월 30일
41 SS 먼로 침몰 사고
1913년 12월 24일
73 이탈리안홀 참사
1913년 12월 4일
28 아르카디아 호텔 화재
1913년 11월 10일
25 SS 헨리 B. 스미스 침몰 사고
1913년 10월 22일
263 도슨 광산 폭발 사고
1913년 7월 22일
31 브링햄턴 공장 화재
1913년 5월 24일
39 롱비치 피어 오디토리움 붕괴 사고
1913년 3월 7일
33 알룸 샤인 폭발 사고
1913년 2월 28일
25 듀이 호텔 화재
1913년 1월 10일
26 제임스 T. 스테이플 침몰 사고
1912년 7월 4일
39 코닝 열차 탈선 사고
1912년 4월 14일 ~ 4월 15일
1514 238 타이타닉호 침몰 사고
1911년 12월 9일
84 크로스 마운틴 광산 참사
1911년 9월 30일
78 오스틴 댐 붕괴 사고
1911년 8월 26일
21 캐논스버그 오페라 하우스 압사 사고
1911년 4월 9일
128 배너 광산 참사
1911년 3월 25일
146 트라이앵글 의류공장 화재사고
1910년 12월 22일
24 시카고 가축 판매소 화재
1910년 10월 7일
42 보데트 화재
1910년 10월 1일
21 로스 앤젤레스 타임즈 폭탄 테러
1910년 9월 8일
29 페레 마켓 18 침몰 사고
1910년 10월 5일
84 팔로스 광산 폭발사고
1910년 3월 21일
52 그린 마운틴 열차 탈선사고
1910년 3월 1일
96 웰링턴 눈사태
1910년 2월 6일
31 USS 니나 침몰 사고

[ 1900년대 ]
||<tablewidth=100%><tablebgcolor=#ffffff,#1f2023><width=33%>발생일
<colcolor=#000>사망사건명
1909년 12월 8일
30 ~ 38 마르케트 & 베세머 No.2호 침몰 사고
1909년 11월 13일
259 체리 광산 참사
1908년 12월 1일
24 D.M 클렘슨호 침몰 사고
1908년 3월 28일
59 1908년 한나 광산 폭발 사고
1908년 3월 4일
173 콜린우드 학교 화재
1908년 1월 13일
170 로드 오페라하우스 화재
1907년 12월 19일
239 다르 광산 참사
1907년 12월 9일
362 모농가 광산 참사
1907년 12월 1일
35 나오미 광산 참사
1907년 10월 11일
22 키프러스호 침몰 사고
1907년 9월 15일
26 카난 열차 탈선 사고
1907년 7월 21일
88 콜럼비아호 침몰 사고
1907년 2월 15일
20 우드론 열차 사고
1905년 12월 30일
602 이로쿼이 극장 화재 사고
1905년 7월 15일
66 USS 베닝턴 보일러 폭발 사고
1905년 6월 21일
21 20세기 리미티드 열차 탈선 사고
1905년 3월 20일
58 글로버 신발 공장 참사
1905년 3월 18일
24 1905년 레드 애쉬 광산 폭발 사고
1904년 9월 24일
56+ 뉴마켓 열차 사고
1904년 8월 7일
97 에덴 열차 탈선 사고
1904년 6월 15일
965+ 제너럴 슬로컴호 화재
1904년 4월 13일
36 USS 미주리호 주포 폭발 사고
1904년 1월 25일
181 해윅 광산 참사
1903년 12월 26일
21 이스트 파리스 열차 탈선 사고
1903년 12월 23일
64 코넬스빌 열차 탈선 사고
1903년 8월 6일
26 듀랑 서커스 열차 추돌사고
1903년 7월 29일
22 미국 탄약공장 폭발 사고
1903년 6월 30일
169 1903년 한나 광산 폭발 사고
1902년 9월 19일
115 샤일로 침례교회 압사 사고
1902년 9월 8 ~ 12일
65 야콜트 산불
1902년 7월 10일
112 롤링 광산 폭발 사고
1901년 9월 15일
24 허드슨호 침몰 사고
1901년 8월 15일
40 아일랜더호 침몰 사고
1901년 2월 22일
128 시티 오브 리오 데 자네이루호 침몰 사고
1900년 11월 29일
21 1900 빅 게임 참사
1900년 7월 4일
44 타코마 노면전차 참사
1900년 6월 30일
326+ 호보컨 부두 화재
1900년 6월 23일
35 ~ 37 캠프 크릭 열차 탈선 사고
1900년 5월 1일
200+ 스코필드 광산 참사
1900년 3월 6일
46 1900년 레드 애쉬 광산 폭발 사고
[ 1890년대 ]
||<tablewidth=100%><tablebgcolor=#ffffff,#1f2023><width=33%>발생일
<colcolor=#000>사망사건명
1894년 9월 1일
418 힝클리 대화재
1890년 2월 16일
100+ 월넛그로브댐 붕괴 사고
[ 1880년대 ]
||<tablewidth=100%><tablebgcolor=#ffffff,#1f2023><width=33%>발생일
<colcolor=#000>사망사건명
1889년 5월 31일
2208 존스타운 홍수

[ 1870년대 이전 ]
||<tablewidth=100%><tablebgcolor=#ffffff,#1f2023><width=33%>발생일
<colcolor=#000>사망사건명
1876년 12월 29일
92+ 애슈터뷸라 철도 참사
1876년 12월 5일
278 브루클린 극장 화재
1871년 7월 30일
125 1871년 스태튼섬 참사
1871년 10월 8일 ~ 10일
300+ 시카고 대화재
1871년 10월 8일
1700+ 페시티고 대화재
1865년 4월 27일
1700+ 술타나호 침몰 사고
1860년 9월 7일
300+ 레이디 엘진 호 침몰 사고
1860년 1월 10일
88 펨버튼 공장 붕괴사고
||



[1] 일부는 최소 87명가량이 생존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사망자와 생존자 명단은 여기서 확인할 수 있다.[2] 인민사원의 교주 짐 존스는 사회주의개신교 둘 중 무엇 하나도 제대로 알고 있지 않았다.[3] 원명칭은 '인민사원 완전 복음 교회(Peoples Temple Full Gospel Church)'였다. 한국 순복음교회의 영어명인 'Full Gospel'과 동일해서 오해가 있을 수 있는데 저 명칭은 인민사원이 본디 오순절교회 교파(정확히는 윌리엄 브랜험의 늦은비 운동)에 기원한 이단 집단이란 흔적일 뿐이다. 적어도 오늘날의 순복음교회는 정식 교단이다.[4] 아이러니한 사실로 이 운동은 인민사원과 사상적으로 정반대편에 있는 칠레의 콜로니아 디그니다드에도 영향을 주었다.[5] 인디애나폴리스 인권 위원회 대표 시절에는 인종 통합 캠페인을 대대적으로 벌여 흑인 손님을 거절하는 식당 앞에서 시위를 벌이기도 하였고, 출혈성 궤양으로 입원한 상황에서도 해당 병원의 흑인 환자 입원 거절을 규탄하는 치료 거부 운동을 벌였다.[6] 심지어 당시 반대파에게 공산주의자라는 비난을 받자, 네이션 오브 이슬람쿠 클럭스 클랜에게 접근한 뒤 둘 모두한테 거절당했다는 사실을 대대적으로 홍보하여 본인들의 온건함을 과시할 정도였다.[7] 원인은 당연히 베트남 전쟁이었다. 이는 이때까지 미국이 강조하던 '자유 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정의로운 전쟁'이라는 명분마저 의심이 가게 만들었고 여기에 인종 차별에 반발하여 민권 운동(Civil Rights Movement)이 일어나면서 기성 세대의 사고관과 풍습에 반발하는 문화가 일어나기 시작하였으니 이것이 바로 히피 문화였다. 기존의 '그릇된 사고관'과 풍습을 과감히 철폐하자고 하던 이들의 주장은 기성 문화권의 위기감을 불러일으켰고 이로 인해 사회주의공산주의 같은 미국의 정신에 '반하는' 사상이 번질 것을 두려워하였는데 이로 인해 매카시즘과 같은 견제도 생겨났다.[8] 당시 흑표당은 지도부 중에 사회주의나 공산주의에 친화적인 사람들이 많았는데 특히 마오주의에 가까웠다. 마오쩌둥 어록에 나온 마오쩌둥의 혁명 조언에 영감을 받은 흑표당 지도자 휴이 뉴턴은 '생존주의 프로그램'을 만들었던 바가 있다.[9] 이때 존스를 따라간 신도의 대부분이 흑인이었다고 한다.[10] 정식 명칭은 인민사원 농업 프로젝트(Peoples Temple Agricultural Project).[11] 2019년도에 후안 과이도가 베네수엘라 임시 대통령임을 선포했을때 안코코섬을 방문하는 행보를 보여서 가이아나인들에게 어그로를 끌었다.[12] 여담이지만 이 때문에 2023-2024년 과야나 에세키바 위기가 일어났다.[13] 주된 사유는 존스타운 이탈을 모색하거나 자본주의 수용, 짐 존스에 대한 비방 등이었다.[14] 레오 라이언은 이 사건이 일어나기 약 3주 전 프레이저 보고서에 참여한 의원이기도 했다.[15] 에디스 보그와 그녀의 남편 짐(Jim Bogue, 1942~, 당시 36세), 딸 티나(Teena Bogue, 1966~, 당시 12세), 후아니타(Juanita Bogue, 1967~, 당시 11세) 아들 토미(Tommy Bogue, 1971~1998, 당시 7세), 패트리샤 파크스의 남편 제럴드(Gerald Parks, 1936~, 당시 42세)와 제럴드의 어머니 에디트(Edith Parks, 1914~1985, 당시 64세), 아들 데일(Dale Parks, ?~?), 딸 브렌다(Brenda Parks, 1960~2013, 당시 18세), 트레이시(Tracy Parks, 1966~, 당시 12세), 이 외 존스타운 거주자 해럴드 코델(Harold Cordell, 1936~, 당시 42세)과 버논 고즈니로부터 떠나라는 조언을 받고 일행에 합류한 모니카 배그비(Monica Bagby, 1960~2009, 당시 18세), 그리고 크리스 오닐.[16] 914명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초기에는 300여 명으로 알려졌다가 700여 명으로 늘어나는 등 집계가 정확히 되지 않았다.[17] 포도 향이 첨가된 쿨에이드였다.[18] 가이아나의 수도. 존스타운에서 220km 떨어져 있었다.[19] 샤론 에이머스(Sharon Amos, 당시 40대 여자)라는 신도는 조지타운 지부에 거주하고 있었는데 존스에게 자살하라는 지시를 받자 자식 3명을 살해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20] 그로버 데이비스(Grover Davis, 1899~1993, 당시 79세)[21] 히아신스 스래시(Hyacinth Thrash, 1902~1995, 당시 76세). 이후 여생을 보내다가 93세로 사망했다.[22] 여성으로는 매들린 브룩스(Madeleine Brooks, ?~2003), 메리앤 샤이드(MaryAnne Scheid, 1942~2022, 당시 36세), 메리언 캠벨(Marian Cembell, 1921~1985, 당시 67세), 클레어 자나로스(Clare Janaros, 1939~2020, 당시 39세), 루비 존슨(Rubie Johnson, ?~1995?), 오로라 로드리게즈(Aurora Rodriguez, 1935~1996, 당시 43세), 남성으로는 폴 매캔(Paul McCann, ?~?), 로버트 스트라우드(Robert Stroud, 1931~2005, 당시 47세) 등등. 이 중 클레어 자나로, 폴 매캔 등은 사건 전날과 당일 이동한 것으로 밝혀졌다.[23] 여성 근무자로는 패티 채스테인(Patti Chastain, 1937~1995, 당시 41세), 준 크림 애덤스(June Crym Adams, 1943~2013, 당시 35세), 헬렌 스위니(Helen Swinney, ?~1999) 남성 근무자로는 클리퍼드 기그(Clifford Gieg , ?~2017), 리처드 자나로스(Richard Janaros, 1920~2003, 당시 58세, 클레어 자나로스의 아버지), 마이크 클링먼(Mike Klingman, 1948~2018, 당시 30세)[24] 사건 당시 18세. 최초로 백인 가정에 입양된 흑인 아이였다고 하며 이후 오프라 윈프리 쇼에 출연하기도 했다. 짐 존스는 아일랜드웨일스 혈통이었다.[25] 짐 존스의 친아들.[26] 이 사람이 앞서 서술한 모였다가 학살이 진행되는 도중 무장 경비를 속이고 탈출하여 살아남은 신도다.[27] 이 사람이 앞서 서술한 모였다가 청진기를 가져오겠다며 빠져나온 후 숨어서 살아남은 남성 신도다. 이후 예술 교사로 재직하였으며 여생을 보내다가 2014년 향년 72세로 사망했다.[28] 해당 테이프의 마지막 부분에 음악이 뒤섞여 매우 음산한 분위기를 만들어내는데 이 음악의 정체에 대해 논란이 있다. 의견 1, 의견 2 요약하자면 다른 음악 테이프를 재활용하면서 생긴 단순한 오류이며 사건과는 관련이 없다. 학살극 당시에 피해자들을 진정시키기 위해 신도들이 오르간을 연주하고 합창했다는 소문이 돌기도 하는데 이것도 거짓이다.[29] 정설은 아니지만 연구진들도 들어 볼 만한 의견이라고 게시한 내용이니 영어가 되면 이 글을 보는 것도 좋다. 의견 1, 의견 2, 의견 3.[30] 사실 인터넷도 없던 저때 음독자살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모르는 이들도 많았다. 존스 본인이 음독했음에도 총으로 죽은 것을 생각하면, 그 역시도 음독자살하려다 상상을 초월하는 고통에 총으로 죽은 것일 가능성도 있다.[31] 이렇게 본다면 저항없이 순순히 독을 받아마신 것이 설명이 된다. 적극적으로 저들의 명령에 따라야 해꼬지를 당하지 않을테니까. 초반에 멋모르고 마신 희생자들의 죽음, 이후 죽음을 격하게 거부하는 이들에 대한 살인, 어쨌든 죽을거란 공포 속에 억지로 마신 이들, 그리고 마지막에 존스와 광신도들의 자발적인 자살이 모두 공존했다고 볼 수 있다.[32] 학살 발생 전 이미 죽어 매장된 8인(리네타 존스(Lynetta Jones, 여성, 1902/4/16~1977/9/12, 짐 존스의 모친), 리사 필립스 레이턴(Lisa Phillip Layton, 여성, 1915/7/14~1978/10/30, 래리 레이턴의 모친), 아이다 앤더슨(Ida Anderson, 여성, 1909/1/1~1978/9/9), 클로타일 버틀러(Chlotile Butlor, 여성, 1900/3/10~1978/6/10), 렐라 머피(Lela Murphy, 여성, 1891/7/17~1978/3/30), 알렉산더 그리피스(Alexander Griffith, 남성, 1911/4/13~1977/11/5), 플리커즈 노리스(Plickards Norris, 남성, 1905/10/31~1977/6/30), 마숀 코브(Marshawn Cobb, 남성 1978/5/7~1978/5/20)은 제외되었으며 이들은 여전히 존스타운에 남아 있다.[33] 사촌 이내의 친인척 27명을 잃었다.[34] 4구는 유가족에게 인계되었고 나머지는 다른 희생자들과 함께 매장되었다. #[35] 다만 학살극은 끝났으니 안심해도 좋다는 취지로 방송하다 이를 그냥 두고 온 실수가 미스터리로 변형됐다는 의견이 있다.[36] 마냥 황당하다고 치부할 수 없는 게 미국에서는 음모론이었다가 실제임이 밝혀진 사례가 여럿 있었다. 그리고 이 사례 중 집단 세뇌 실험이란 점에서 MK 울트라 사건, 사망자 대다수가 흑인이란 점에서 터스키기 매독 생체실험 사건이 떠오르는데 이 사건이 일어나기 불과 5년 전과 6년전 에 진실로 밝혀진 사건이었다. 물론 음모론으로만 남겨진 설들이 훨씬 더 많기 때문에 아직까지는 그냥 음모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