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2-16 14:37:29

두들버그 참사



주의. 사건·사고 관련 내용을 설명합니다.

이 문서는 실제로 일어난 사건·사고의 자세한 내용과 설명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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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두들버그3. 사고 내용4. 사고 이후

1. 개요

Doodlebug disaster

1940년 7월 31일. 오하이오주 카야호가(Cuyahoga) 카운티에서 일어난 열차 정면 충돌사고.

2. 두들버그

파일:1000207869.jpg
사고 차량과 같은 차량인 Pennsylvania Railroad Class GEW275

두들버그는 가솔린으로 움직이던 여객열차로, 딱정벌레를 닮았다는 이유로 두들버그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엔진실과 객실이 같이 연결되어 있는 자체동력 차량이라는 점이 특징이었는데, 트레일러를 연결해 끄는 경우도 종종 있었으나 보통은 1량만 움직였다. 열차 양쪽에 운전실이 있어 열차를 돌리지 않고도 양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다는 특징도 있었다. 두들버그는 동력차와 객차 여러대가 연결된 차량에 비하면 훨씬 저렴하다는 장점이 있어 작은 지방이나 짧은 구간에서 유용하게 쓰였다.

풀맨 컴퍼니(Pullman Company)라는 회사에서 생산한 기종이 제일 유명했다.

3. 사고 내용

당시 펜실베니아 철도회사에서 운용하던 3380 두들버그 열차(기종 Pennsylvania Railroad Class GEW275)가 허드슨에서 오하이오 주 아크론 까지 가고 있었다. 운전자는 30년 경력의 토마스 L 머타(Thomas L Murtaugh), 승무원으로 57세의 해리 B 섀이퍼(Harry B Shafer)가 탑승했다. 승객을 포함한 탑승자는 총 46명이었다. 해당 경로는 보통은 선로 2개가 있었지만 알링턴(Arlington)엔 그 2개가 만나 선로 1개만 있는 구간도 있었다. 때문에 사고를 막기 위해 운전자에게 반대 방향 열차의 시간표를 주거나, 반대 방향에서 열차가 오는걸 알리는 신호등이 설치된 곳도 있었다.

한편 오전 6시, 증기기관차 PRR extra FC-4(동력차 차량번호 4454, 4533)가 이끄는 화물 열차 한대가 콜롬버스에서 출발해 클리블랜드로 향했다. 열차는 무려 73량 짜리 화물 열차였다, 그 중 43량은 비어있었다.

3380 두들버그 열차가 원래 예정보다 약 4분가량 늦은 가운데, 아크론에서 와 허드슨 역에 도착했을 때 반대편에서 화물열차가 와 같은 노선으로 움직일 예정이니 실버 레이크 인근의 옆 선로에서 기다리라는 신호가 왔다. 오후 5시 49분, 두들버그는 허드슨 역을 출발했다. 같은 시간, 화물 열차도 아크론 역에서 출발했다. 두 열차는 선로가 만나는 구간에서 부딪힐 수 있기에, 그 전 구간에서 먼저 두들버그 3380이 대기 하고, 화물열차가 지나가면 그때서야 움직일 수 있었다. 혹여나 잊는 것을 막기 위해 시간표도 배부됐다.

그런데 화물 열차가 지나갈 것을 대비해 옆 선로로 빠져야 하는 구간에 다다르고, 선로를 바꾸라는 신호가 왔음에도 기관사는 바꾸지 않았다. 승무원은 표를 검사하던 도중 시간표를 봤더니, 화물 열차가 지나갈 것을 대비해 잠시 멈춰야 했을 때가 이미 지났단 걸 깨달았다. 승무원은 이 사실을 알리려 운전석으로 향했으나 이미 늦었다. 바로 앞에서 화물 열차가 달려왔다. 양 측의 운전자는 멈추라며 기적을 울렸다. 하지만 충돌이 불가피 하단걸 알게 된 차장과 승무원, 그리고 승객으로 탑승한 철도 회사 직원 1명은 열차에서 뛰어내렸다.

오후 5시 58분, 화물열차는 시속 40km로 두들버그 열차를 들이받았다. 들이받고 150m를 더 끌고 간 끝에야 멈췄다. 충격으로 두들버그에서 휘발유가 새더니 그대로 화재가 일어났다.

불이 꺼지기 까진 45분이나 걸렸다. 결국 안에 탑승했던 43명은 전부 사망했다. 불이 너무 강해 몇몇 시신은 신원을 파악하기 힘들 정도였다. 화물열차의 기관사도 폭발로 얼굴에 화상을 입었으나 살아남았다. 두들버그 열차에서 뛰어내린 기관사와 승무원들은 화상과 골절등을 입었으나 살아남았다.

사고 원인은 앞서 말한 신호를 지키지 않은 게 원인이었다. 운전자는 화물 열차가 지나갈거란 안내를 받아 알고는 있었으나, 정확한 시간까지는 기억하지 못했는데, 가솔린으로 움직이는 열차다보니 종종 일산화탄소가 들어왔고, 이 때문에 기억 상실을 앓았다. 기억 상실 외에도 운전자 토마스 L 머타는 운전하면서 몸무게가 줄어들 정도로 일산화탄소가 세어 들어오는 것이 심했다.

4. 사고 이후

사고 이후 두들버그는 휘발유 엔진에서 디젤 엔진으로 바꾸게 됐다.

펜실베니아 철도 회사는 희생자 유가족들에게 600,000달러 가량을 지급해야 했다.

1951년 7월 31일, 두들 버그의 해당 구간 운행이 끝났다.

2005년, 해당 사고를 알게 된 오하이오 주의 13세 중학생이 캠페인을 절인 끝에 사고현장 인근에 사망자 이름이 적힌 추모비가 세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