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22 02:32:21

펠리컨호 침몰 사고



주의. 사건·사고 관련 내용을 설명합니다.

이 문서는 실제로 일어난 사건·사고의 자세한 내용과 설명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파일:펠리컨 호 침몰.jpg

1. 개요2. 사고 내용3. 사고 이후

1. 개요

1951년 9월 1일 미국 뉴욕롱아일랜드 몬토크 인근에서 일어난 어선 침몰사고.

2. 사고 내용

몬토크는 2차 대전 때 어뢰, 잠수함 테스트 지역으로 쓰였다. 전쟁 후에는 당시 지어진 시설들을 개조 후 피싱그릴라(Fish + Shangri-La)라 지명을 바꾸어 관광객, 특히 낚시꾼들을 끌어들이는데 썼다. 군사시설을 해산물 레스토랑으로 재개발했고, 어선 여러대를 구비했다. 또 몬토크로 오는 낚시꾼들에겐 기차표를 싸게 팔거나 신문으로 쿠폰을 뿌렸다. 이 전략은 흥해 매년 여름철이면 엄청난 수의 낚시꾼들이 놀러왔다.

1951년 9월 1일, 몬토크에 낚시꾼이 700여명이나 모였다. 이들을 태울 배도 잔뜩 모였다. 이 중에는 펠리컨 호도 있었다. 펠리컨 호는 12.8m 길이의 어선으로, 선장은 에디 캐롤(Eddie Carroll)이었다. 1940년에 브루클린에서 건조된 배로, 무게는 약 15톤, 엔진들은 100마력의 힘을 냈다. 원래는 벨보이 3이었으나, 1951년에 펠리컨호로 이름을 바꿨다. 펠리컨호에 64명이 탑승 후 몬토크에서 떠나, 몬토크 등대에서 약 6마일 가량 떨어진 지점으로 향했다. 최대 20명 만 탈 수 있던 배에 3배가 넘는 사람이 탔으니 과적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날씨가 나빠졌다. 파고가 높아지고, 바람이 세졌다. 선장 에디 캐롤은 날씨가 너무 나빠 몬토크로 복귀하기로 했다. 하지만 안그래도 사람이 많이 탔는데, 물고기도 너무 잡아 배는 과적상태가 됐다. 엔진 여러대 중 1대만 간신히 힘을 냈다. 원래면 1시간이면 갈 거리를 4시간 만에 갈 정도였다. 에디는 요동치는 배를 진정시켜보려 애쓰면서도 라디오로 구조 요청을 하거나, 선내 사람들에게 구명조끼를 착용하아 알리지 않았다. 날씨는 점점 더 나빠져 4.5m 높이의 파도가 쳤다. 펠리컨 호는 파도와 수차례 부딪혀 오후 2시 10분 경, 결국 전복됐다.

배엔 83개의 구명조끼가 있었다. 하지만 당시 구명조끼를 멘 사람은 없었다. 빙고2와 베디엔, 크리켓2를 비롯한 어선들이 사람을 구조하러 나섰다. 빙고2는 낚시꾼 12명을 구조했다. 1시간 뒤에는 해상구조대도 도착했다. 20명은 살아남았으나, 선장을 포함한 45명은 사망했다. 나쁜 날씨에도 불구하고 유실된 시신은 없었다. 사고는 뉴욕에서 낚시도중 가장 많은 사람이 사망한 사고로 기록됐다.

3. 사고 이후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사고 재발을 막기 위해, 미국 전역의 어선을 조사하는 회의를 열었다. 회의 이후 어선의 최대 인원 수를 제한하는 법이 통과됐다.

현재 피싱그릴라가 있었던 곳엔 로우 라이더 콘도미니엄이 들어서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