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3-11 23:10:39

브루클린 극장 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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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color=#fff> 브루클린 극장 화재
Brooklyn Theatre fire
파일:브루클린 극장 화재.jpg
<colbgcolor=#000> 발생일 1876년 12월 5일
발생 위치
미국 뉴욕시 브루클린
유형 화재, 다중밀집사고
원인 가스등
인명
피해
사망
278명 이상
부상
불명
1. 개요2. 브루클린 극장3. 화재4. 화재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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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Brooklyn Theater Fire

1876년 12월 5일 미국 뉴욕브루클린의 브루클린 극장에서 일어난 화재.

2. 브루클린 극장

파일:브루클린 극장.jpg

1874년 경영난에 시달리던 가브리엘 해리슨은 아담 스트리트에 있던 개장한 지 1년밖에 안 된 자신의 파크 극장(Park Theater)의 소유권을 프레드릭 B. 콘웨이(Frederick B. Conway)와 사라 크로커 콘웨이 부부에게 넘겼는데 이들은 파크 극장 경영을 활발히 하면서 막대한 수익을 거뒀고 이어 워싱턴 스트리트와 존슨 스트리트 사이 코너에 새 극장인 브루클린 극장을 열었다. 건물 디자인은 토마스 R. 잭슨(Thomas R. Jackson)이 맡았다.

1871년 10월 1일 개관식이 있었다. 그런데 1874년에 프레드릭 콘웨이, 1875년에 사라 콘웨이가 사망하면서 그들의 자식 미니 콘웨이, 릴리안 콘웨이, 그리고 프레드릭 콘웨이 주니어가 이어받았으나 경영을 잘 하지 못했다. 이후 뉴욕 유니온 스퀘어 극장을 운영하던 알버트 마쉬맨 파머(Albert Marchman Palmer)와 쉐리든 슈크(Sheridan Shook)가 극장을 사들였다.

브루클린 극장은 뒤집힌 L자 형태의 건물로, 로비와 극장으로 나뉘어 있었다. 극장은 관객석이 3층으로 나뉘어 있어 1층에는 600석, 2층과 발코니는 550석, 3층은 450석이 있었다. 1층석은 로비와 바로 연결되어 있었고 2층으로 가려면 로비에서 계단을 타고 올라가거나 1층 관객석과 2층 관객석을 연결해주는 계단으로 가야 했으며 3층석은 건물 밖에서 바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었는데 그 계단은 2층도 연결해 주었다. 창문이 몇 개 있었고 비상구는 없었다.

3. 화재

당시 극장에서는 "두 고아(The Two Orphans)"라는 연극을 하고 있었는데 주연은 해리 S. 머독(Harry S. Murdock), 그리고 케이트 클랙스톤(Kate Claxton)이었다. 극장 관객 석 900개가 꽉 찰 정도로 인기 있는 연극이었다.

그런데 밤 11시 15분 경 마지막 연극 중 무대 뒤에 있던 가스등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불길은 연극 배우와 관객들 모두가 모르는 사이 점점 커졌다. 설령 눈치 챈 사람이 있다고 해도 진화하기 힘들었는데 극장에는 소방호스는 물론, 양동이 마저 없었기 때문에 불을 급히 진화할 수 없었다. 불이 무대까지 번졌을 때 관객석에서 누군가가 불을 보고 "불이야!" 라고 외쳤다. 배우 해리 S. 머독은 흥분한 관객들을 진정시키려고 했으나 관객들은 겁에 질려 자리를 떴다. 문제는 건물에 비상구가 없었고 출구는 창문 같은 곳을 빼면 단 한 곳 뿐이었다는 점이다. 사람들이 급히 몰리면서 출구는 사람들로 끼어 버렸다. 급히 출구로 나가 계단으로 빠져나간 사람들도 있었으나 갑작스레 몰린 사람들의 무게를 못 이긴 계단마저 무너지면서 피해가 커졌다. 소방관이 도착했을 땐 상황은 이미 늦었다. 불은 이미 건물 전체를 집어삼킨 뒤였다. 불은 다음 날 아침까지도 불타올랐고 건물 일부가 무너질 정도로 탄 끝에야 진화됐다.

이 화재로 최소 278명이 사망했는데 기록에 따라 사망자 수는 350명 이상까지 오른다. 100구가 넘는 시신이 화재로 너무 훼손되어 신원을 파악할 수 없었다. 배우 해리 S. 머독도 화재 당시 대피하려다가 건물이 무너져 사망했다.

이 화재는 이로쿼이 극장 화재 사고코코넛 그로브 나이트클럽 화재에 이어 미국에서 3번째로 많은 목숨을 앗아간 건축물 화재로 기록됐다.

4. 화재 이후

화재 후 며칠간 지역 신문에는 실종자를 찾는 기사, 사망자 신원이 적힌 기사들이 실렸다.

신원이 파악되지 못한 시신들은 그린 우드 공동묘지에 다 같이 묻혔다.

화재에서 살아남은 케이트 클랙스톤은 계속해서 연기 활동을 이어나갔지만 세인트 루이스에서 연극을 하다가 또 화재가 일어났고 이후 관객들 사이에서 그녀의 연극을 보이콧하는 운동이 일기도 했는데 그녀는 화재로 인한 트라우마에 시달리다가 1904년 아들이 자살하는 일까지 겪었고 1924년 뇌출혈로 사망했다.

사고가 있었던 자리에는 현재 캐드맨 플라자라는 건물이 있다.

그린 우드 공동묘지엔 사고를 기리는 추모비가 세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