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3-13 23:12:30

우드브리지 열차 탈선 사고



주의. 사건·사고 관련 내용을 설명합니다.

이 문서는 실제로 일어난 사건·사고의 자세한 내용과 설명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파일:우드브리지 열차 탈선.jpg
1. 개요2. 상세3. 사고 이후

1. 개요

Woodbridge Train Derailment

1951년 2월 6일 미국 뉴저지주의 우드브리지에서 일어난 열차 탈선 사고.

2. 상세

당시 펜실베니아 철도회사의 733번 열차가 저지 시티를 출발했다. 열차엔 평소 월 스트리트 근무자들이 자주 탑승해 브로커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다. 당시 인근 철도 회사인 저지 센트럴 레일로드(Jersey Central Railroad)의 파업으로 승객들이 몰려 열차 내부엔 사람들이 가득했는데, 11량의 차량에 1,000여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탑승했었다. 기관차는 PRR K4 4-6-2 증기 기관차#였다. 열차는 저지 시티에서 출발한 뒤 노스 저지 코스트 라인을 경유해 베이 헤드로 향할 예정이었다. 당시 우드브리지를 통과하는 열차는 본선에서 있는 건설 공사 관계로 우회해야 했다. 우회하는 곳은 나무로 지어진 가건물 형태라 속도를 평균 속도인 시속 97km가 아닌 시속 40km로 가야 했다. 이런 공문이 열차 노동자들에게 내려졌고, 기관사 존 비숍(John Bishop. 당시 54세)도 이를 알고 있었다.

기관사는 저지 시티를 떠나기 전, 엔지니어 조셉 피츠시몬스(Joseph Fitzsimmons. 당시 58세)에게 속도 제한에 대해 알려줬다. 오후 5시 10분, 원래 예정됐던 시간보다 10분 늦게 열차가 저지 시티에서 출발했다. 하지만 막상 우회하는 장소에 갔을 때, 조셉은 해당 사항을 떠올리지 못했다. 당시 철도 관례상 속도 제한이 있는 곳에 경고등 또는 노란 깃발을 설치했는데, 해당 지역엔 설치하지 않았고, 이 때문에 속도를 낮춰야 하는 장소에 들어서고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승객들의 표를 검사하던 차장이 열차 속도가 너무 빠른 걸 알아차리고 조셉에게 비상 상황을 알리려 비상 줄을 당기려 했으나, 사람이 너무 많아 실패했다.

열차는 해당 구간을 시속 80km로 통과했고, 오후 5시 43분 경 커브 구간에서 탈선했다. 11대의 차량 중 8대가 선로에서 벗어났다. 탈선한 열차는 그대로 선로 옆 경사면을 구르다 7.9m 아래로 추락하고 서로 부딪히며 피해가 더 커졌다. 차량 유리가 깨지면서 승객들이 차량 밖으로 날아가기도 했다. 기관차 부터 시작해 4번 차량 까지는 선로에서 완전히 떨어져나갔다. 5번 차량과 6번 차량은 선로에서 떨어진 채 간신히 매달렸다. 뒷칸은 탈선하지 않았다. 사고가 일어난 구간은 인구 밀집 구간이라 금새 사람들이 달려와 구조를 시작했다. 인근 주민들은 객차를 부수고 안의 사람들을 구조한 뒤, 자신의 차를 이용해 부상자들을 가까운 병원으로 이송했다. 인근의 28번 보병사단#과 육군 캠프 클리머#에서도 사고 현장에 달려와 구호활동을 벌였다.​

사고로 85명이 사망, 500여명이 부상을 입었다. 사망자 대다수는 3번째와 4번째 차량에서 나왔다. 탈선했지만 완전히 추락하지 않은 차량에서 사람들이 탈출하려고 뛰어내렸다 사망한 사례도 있었다. 사고는 2차 세계 대전 이후 미국에서 일어난 열차 사고 중 가장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은 사고로 기록됐다.

3. 사고 이후

사고의 직접적인 원인은 조셉의 과속이었다. 하지만 더 앞서 보면, 사고 구간에 위험을 알리는 경고등이나 깃발을 설치하지 않은 PRR(Pennsylvania Railroad)측의 책임이 더 컸다. 검찰 측에선 PRR의 책임을 물었고, PRR에 고용된 84명이 과실치사혐의로 기소되었으나 재판에서 200만 달러 이상의 손실이 일어날 수 있단 사실이 밝혀지면서 모든 절차가 중단됐다. PRR은 사고 이후 사고 구간과 비슷하게 임시 우회하면서 속도를 줄여야 하는 구간에 경고 신호기를 설치했다. 또 유가족과 생존자들에게 7,500만 달러에 달하는 소송을 갖게 됐고, 그들에게 금액을 지불했다.

조셉 피츠시몬스는 처벌을 받지 않고 철도회사에서 계속 일했다. 하지만 열차를 운전하는 일은 없었다. 사고 1년 뒤, 조셉은 사고 당시 입은 허리, 심장 등의 부상을 이유로 회사에서 은퇴했다. 이후 57년 아내를 떠나보낸 뒤 재혼했다 76년에 83세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사고 당시 생존자들은 모임을 결성했고, 사고 1주년에 모여 추모식을 가졌다.

2002년, 뉴저지에서 사고가 일어났던 곳에 희생자를 기리는 추모비를 세웠다. 2013년에는 우드브리지 타운쉽에서도 새로 하나를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