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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color=#000,#fff> Smithsonian Institution 스미스소니언 재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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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립 | 1846년 | |
국가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 |
소재 | 워싱턴 D.C., 버지니아주 Chantilly 뉴욕시, 메릴랜드주 Suitland | |
Chancellor | 존 로버츠 | |
Director | Lonnie Bunch | |
링크 | ||
위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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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의 교육재단.1.1. 특징
- 기부, 수익사업, 미국 정부 예산[1]으로 운영된다.
- 직원 6천여명 중 2/3이 연방정부 공무원이고, 연방대법원장이 이사회 의장을 당연직으로 맡고, 이사회에 상하원의원 각 3명이 있지만, 미국 정부로부터 독립된 신탁기관이다.[2]
- 박물관 하나하나가 웬만한 나라의 국립박물관 뺨칠 정도로 규모가 크고 비싸다. 예컨대 자연사박물관의 표본만 1억5천만개에 달한다. 그럼에도 각 박물관들의 입장료는 무료로 한다.
- 미국 정부 예산을 사용하다보니 셧다운이 일어나면 문을 닫아 워싱턴 D.C. 관광을 허탕치게 한다. 셧다운은 가을~겨울에 주로 벌어지므로 이 때를 피하면 안전할 듯하다.
- 내셔널 몰(National Mall)에 다수의 박물관이 있다. 내셔널 몰은 미국의 수도 워싱턴 D.C.의 링컨 기념관~백악관~미국 국회의사당을 잇는 광장으로 미국의 얼굴이다. 대한민국에 비유하자면 서울의 광화문광장, 세종의 국립박물관단지에 대응한다. 미국 관광 중 워싱턴 관광이 비용 대비 효과가 가장 뛰어난 이유 중 하나다. 링컨 기념관이나 한국전쟁 추모공원 등의 주요 관광지가 걸어가는게 가능할 정도의 이동이 용이하다.
- 스미스소니언 재단의 이름을 딴 워싱턴 메트로 스미스소니언역이 있다. 일부 박물관은 아카이브스역이나 렌펀트 플라자역, 페더럴 센터 사우스웨스트역이 더 가까운 경우가 있으므로 구글 지도를 참고해야 한다.
2. 탄생
2.1. 콜롬비아 연구소 (1816-1838)
1812~1815년, '제2의 미국 독립 전쟁'이라 불리는 미영전쟁이 발생한다. 이 과정에 미국은 역사상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수도 워싱턴 D.C.가 점령되고 쑥대밭이 되는" 경험을 했다. 백악관과 미국 국회의사당을 비롯해 모든 관청이 파괴되었고, 1세기간 쌓아올렸던 문화재와 기록물이 유실되는 아찔한 경험을 했다.[3]1816년 6월 28일, 워싱턴 시민들이 돈을 모아 '예술·과학 진흥을 위한 콜롬비아 연구소(Columbian Institute for the Promotion of Arts and Sciences)'를 설립했고, 이를 미국 박물관의 기원으로 본다. 설립계기에 맞춰 "예술과 과학의 진흥, 유용한 지식의 전승"을 목표했다. 미국 국회의사당을 건축한 벤자민 라트로브, '옥타곤 하우스'와 '튜더 플레이스'를 건축한 윌리엄 손튼이 건설을 맡았다. 1818년 미국 의회로부터 20년 간 운영하는 헌장을 받았다.
2.2. 과학진흥 연구소 (1840-1862)
콜롬비아 연구소의 헌장이 종료되자 그 설립취지를 잇자는 운동이 일어, 1840년 '과학 진흥을 위한 국립 연구소(National Institution for the Promotion of Science)'가 세워져 뜻을 계승하고자 했다. "과학과 유용한 예술을 진흥하고, 국립 자연사 박물관을 설립한다"는 설립취지를 두었다. 1841년에 콜롬비아연구소가 가입해 흡수통합되는 형태로 하였고, 1840년 미국역사학회도 가입했다.하지만 정부/의회가 주던 예산이 줄었고, 공간도 특허청 건물 내 작은 공간만 있어서 표본 보관조차 벅찼다. 1851 런던 엑스포(대박람회)를 계기로도 의회에 예산 증가를 요청하는 여론 역전이 어렵자, 1862년 후술하는 스미스소니언 재단에게 컬렉션을 모두 이전하며 문을 닫았다.
2.3. 스미스소니언 재단 (1846-)
1829년 6월 27일, 영국의 화학자 제임스 스미스슨(James Smithson)이 사망했다. 스미스슨은 결혼으로 영국의 귀족 가문인 퍼시 가문을 이어받은 제1대 노섬벌랜드 공작 휴 퍼시(휴 스미스슨)가 엘리자베스 헝거포드 케이트 메이시에게서 얻은 사생아로, 아버지의 옛 성인 스미스슨을 물려받았다. 어머니 엘리자베스는 부유한 미망인이었던 데 더해 친정 헝거포드 가문의 유산까지 물려받았고, 스미스슨 또한 어머니의 죽음 이후 많은 유산을 받을 수 있었다.제임스 스미스슨은 결혼한 적이 없었고 자녀도 없었다. 그가 죽기 3년 전 1826년에 작성한 유언장은 그의 대부분의 유산을 조카에게 남기되, 그 조카도 후손을 남기지 않을 경우, 미국의 수도 워싱턴에 "사람들 사이에 지식을 증가하고 확산하는" 자신의 이름을 딴 교육재단을 만들라는 유언을 남겼다.[4]
1835년 6월 5일, 스미스슨의 조카 헨리 헝거포드(Henry Hungerford) 또한 사망했다. 영국에 있던 미국 외교관 애론 베일(Aaron Vail)이 유언장을 전달받고, 미국 국무장관 존 포사이스(John Forsyth)를 거쳐, 앤드루 잭슨 대통령에게까지 유언이 전달되었다. 1836년 미국 의회는 논의를 거쳐 재무장관 리처드 러시(Richard Rush)를 영국에 파견해 스미스슨의 유산을 가져오게끔 하였다. 1838년 러시 장관은 11개의 상자에 담긴 104,960개의 금화와 스미스슨의 유품들(논문, 필기자료 등)을 무사히 가져왔다.[5][6]
하지만 미국 의회는 스미스슨의 애매한 유언을 어떻게 구체적으로 이행할지에 대해 10년 동안 계속 논쟁했고, 스미스슨의 돈은 미국 재무부가 아칸소주 채권에 투자했다가 부도나서 날려 버렸다. 전직 대통령이자 하원의원 존 퀸시 애덤스는 미국의 과학과 지식 발전을 위해 스미스슨의 원금을 되돌리고 유언을 충족하는 재단을 설립할 것을 강력히 주장했다. 1846년, 제임스 포크 대통령이 관련 법률에 서명하며 스미스소니언 연구소/재단(Smithsonian Institution)가 창립되었다. 1849년부터 독립된 건물 건설을 추진했고, 1855년 내셔널 몰(National Mall)에 건물이 설립되었다. 본부 역할이라 '성(the Castle)'이란 별칭이 붙었다.
3. 목록
3.1. 박물관
- 내셔널 몰(National Mall)
- 1858년, 자연사 박물관(National Museum of Natural History) - 첫 박물관.
- 1881년, 예술 산업관(Arts and Industries Building)
- 1923년, 아시아 예술 박물관(National Museum of Asian Art) - 1923년의 프리어 미술관(Freer Gallery of Art)에 1987년의 아서 새클러 미술관(Arthur M. Sackler Gallery)을 합했다.[7]
- 1946년, 항공 우주 박물관(National Air and Space Museum) - 해당 문서 참고.
- 1964년, 흑인 예술 박물관(National Museum of African Art)
- 1964년, 미국 역사 박물관(National Museum of American History)
- 1968년, 초상화 미술관(National Portrait Gallery) - 도보반경인 워싱턴 D.C. Penn Quarter.
- 1968년, 미국 미술 박물관(American Art Museum) - 도보반경인 워싱턴 D.C. Penn Quarter.
- 1972년, 렌윅 미술관(Renwick Gallery) - 도보반경인 워싱턴 D.C. Lafayette Square. 조각미술 위주.
- 1974년, 허쉬온 박물관과 조각정원(Hirshhorn Museum and Sculpture Garden)
- 2003년, 흑인 역사문화 박물관(National Museum of African American History and Culture)
- 2004년, 인디언 박물관(National Museum of the American Indian)
- 타 장소
- 1881년, 동물원(National Zoo) - 워싱턴 D.C. Rock Creek Park.
- 1897년, 디자인 박물관(Design Museum) - 뉴욕시 Museum Mile. 스미스소니언 외에 쿠퍼 휴잇(Cooper Hewitt)도 기린다.
- 1967년, 아나코스티아 박물관(Anacostia Community Museum) - 워싱턴 D.C. Anacostia.
- 1993년, 우정 박물관(National Postal Museum) - 워싱턴 D.C. NoMa.
- 1994년, 인디언 박물관 별관: 조지 구스타프 헤이어 센터(George Gustav Heye Center) - 뉴욕시 Bowlng Green.
- 2003년, 우주항공 박물관 별관: 스티븐 우드바 헤이지 센터(Steven F. Udvar-Hazy Center) - 워싱턴 덜레스 국제공항 옆.
3.2. 연구소
- 1890년, 천문 관측대(Astrophysical Observatory) - 케임브리지 대학교
- 1923년, 열대 연구소(Tropical Research Institute) - 파나마
- 1954년, 미국 예술 기록보관소(Archives of American Art) - 워싱턴 D.C., 뉴욕시
- 1965년, 박물관 보전 연구소(Museum Conservation Institute) - 메릴랜드 Suitland
- 1965년, 환경 연구 센터(Environmental Research Center) - 메릴랜드 Edgewater
- 1968년, 도서관 및 기록보관소(Libraries and Archives) - 워싱턴 D.C.
- 1974년, 생물 보존 연구소(Conservation Biology Institute) - 버지니아주 Front Royal. 동물원 연계.
- 1981년, 해양 연구소(Marine Station) - 플로리다 Fort Pierce, 자연사박물관 연계.
3.3. 문화센터
- 1967년, 민속생활 및 문화유산 센터(Center for Folklife and Cultural Heritage)
- 1997년, 아태평양 아메리칸 센터(Asian Pacific American Center)
- 1997년, 라티노 센터(Latino Center)
4. 스미스소니언과 대한민국
- 1968년, 초상화 미술관 개관과 함께 이승만 대통령의 TIME지 표지 초상화도 전시되었다. #
- 1993년, 아시아예술박물관에 한국 전시관이 개설되었다.
- 2003년, 이영희 한복디자이너가 13벌의 한복을 기증했다. #
- 2007년, 문체부와 한국국제교류재단(KF)이 주관하여 한국 전시관을 자연사박물관에(?!) 개설했다. 자연사박물관이 '아시아 홀'을 추진하면서 첫 국가관으로 세운 것이다.[8] 문체부 해설, KF 해설
- 2008년, 서경덕 교수가 자연사박물관 내 한국관의 영문홍보책자를 냈다. #
- 2009년, 한덕수 주미 한국대사가 방문했다. 자연사박물관 내 한국 전시관에선 한글 붓글씨 체험, 안동 천연염색, 한지공예 행사를 개최했다. 인디언박물관에선 안동 하회탈 깎기와 전통다도 행사를 개최했다. #
- 2011년, 자연사박물관의 '아시아 홀' 계획이 무산되며 한국전시관도 철거 위기에 놓이자, 재미동포들이 주축인 한미예술재단(USKAF)이 견학운동을 펼쳤다. #
- 2012년, 1905년 고종이 시어도어 루스벨트의 딸에게 주었던 사진 2점이 한국에 반환된다. #
- 2013년, 1893년 시카고 엑스포 당시 미국에 보내졌던 국악기 8점이 한국에 반환된다. #
- 2014년
- 4월, 제주항공우주박물관이 개관했다. 아시아 최대 규모고, 스미스소니언 컨텐츠 40여개 모형이 입점했다. #
- 11월, 아시아예술박물관 줄리안 레이비 관장이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을 찾았다. #
- 2017년
- 1월, DDP에 '스미스소니언 사진전'이 열렸다. 이는 스미스소니언 재단의 첫 해외 기획전시다. #
- 7월, 자연사박물관 내의 한국관이 결국 철거되었다. 10년 의무 전시 계약 기간이 만료된데 따른 것이다. #
- 2018년
- 1월, 문체부가 아시아예술박물관 한국 전시관에 5년간 100만 달러를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
- 2월, 서도호 작가의 설치미술이 미국미술박물관에 전시되었다. #
- 11월, 윤석남 작가의 초상화가 초상화박물관에 전시되었다. #
- 2019년
- 8월, 1세대 한국 페미니스트 윤석남 작가가 초상화박물관에 '어머니' 전시전을 열었다. #
- 9월, 이우환 조각가가 허쉬혼미술관 조각공원을 통으로 빌린 전시회를 열었다. #
- 9월, 스미스소니언재단이 가진 고려 불화 8점의 정보를 한국에 제공했다. #
- 10월, 문화재청이 스미스소니언박물관의 큐레이터였던 고 조창수씨에게 옥관문화훈장을 수여했다. #
- 11월, 진주 남강 유등축제의 유등이 아시아예술박물관 한국전시관에 기증되었다. #
- 2021년, 코로나 사태를 맞아, 한국관의 비대면 웹 투어가 생겨났다. #
- 2022년, 재미동포 가족이 스미스소니언 박물관 영상 중 욱일기 사용을 항의하여 받아들여졌다. #
- 2023년
- 4월, 문체부가 스미스소니언 재단과 협력 MOU를 맺었다.[9] 문체부 보도, 연합뉴스 요약
- 4월, 아시아예술박물관이 처음으로 한국 전문 큐레이터를 선발한다. #
- 5월, 체이스 로빈슨 아시아예술박물관 관장은 이건희 콜렉션을 2025년 전시할 예정임을 밝혔다. #
- 5월, 폴 마이클 테일러 스미스소니언재단 아시아문화역사프로그램 운영국장은 대한민국에 연구센터를 지을 예정임을 밝혔다. #
- 5월, 미국 이민자 태권도 대부 이준구 기념사업회에 스미스소니언재단이 참여한다. #
- 10월, 국립중앙박물관이 아시아예술박물관 한국전시관을 지원했다. #
- 11월, 박찬욱 감독의 동생 박찬경이 미디어 개인전을 진행했다. #
- 2024년
[1] 2023년 예산이 10억불을 돌파했다. #[2] 유사한 사례로 대한민국의 한국연구재단, 정부출연연구기관 등도 교육부-과기부의 수족이지만 엄연히 따지면 공공기관이 아닌 정부 바깥의 '재단', '법인'들이다.[3] 이와 유사하게, 조선은 임진왜란 당시 전국이 불타고 여러 문화재와 기록물이 유실되었지만, 안의와 손홍록이 전주사고(全州史庫)의 문화재와 기록물 1300여권을 내장산으로 옮겨 지켜냈다. 이를 기려 대한민국은 6월 22일을 '문화재 지킴의 날'로 제정했다.[4] 그는 영국-프랑스에서 살아왔고 가끔 유럽을 돌아다녔을 뿐, 생전에 미국을 단 한 번도 방문한 바 없다. 그가 엄청난 거금의 유산을 미국에 쾌척한 이유는 미스테리다.[5] 이 금화들은 1830년대 50만불의 가치로, 2013년 기준으로 1200만달러, 한화 130억원 정도의 큰 돈이다.[6] 이후 1860년대, 스미스슨의 다른 조카 또한 스미스슨의 유언에 따라 상속받았던 재산 5만불 가량을 역시 미국 정부에 기부했다.[7]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두 기부자의 이름을 땄다. 철도 거물이었던 찰스 랭 프리어(Charles Lang Freer)가 미국의 첫 국립미술관 건설을 주도했는데, 당시 철도 건설에 아시안들이 많이 부역했기에, 자연히 아시안이 테마가 되었다. 제약 거물이었던 아서 새클러(Arthur M. Sackler)는 원료를 구매하며 자연히 아시아와 인연이 많았고, 그 개인도 중국 유물 수집이 취미였기에 이를 일시에 기부한 것이다.[8] 2003년 대통령 배우자인 권양숙 여사의 미국 방문을 설립계기로 들었다.[9] 대통령 배우자인 김건희 여사가 행사에 참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