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6-09 19:41:46

윤개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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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조선의 문신으로 한성부좌윤, 예조판서, 관찰사, 우의정, 좌의정 등을 역임했다..

2. 생애

1494년 파평 윤씨 집안에서 아버지 윤이손과 어머니 윤백연 사이에서 태어났다.

1516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해 홍문관 저작에 발탁되었으나, 대간들이 어리다는 이유로 반대하자 중종의 적극적인 비호하에 등용되었다. 이어서 여러 직을 거쳐, 1519년 이조좌랑에 임명되어 인사에 관여해 사림을 등용다.

1519년 기묘사화가 일어나면서 한직으로 좌천되었다. 중국어에 능통해 과의 외교관련한 한직들을 돌았는데, 이때 명나라에 내왕하면서 명나라의 내각 관원과 친교를 맺었다. 1534년에는 명나라로부터 역청, 백철, 이두석의 제조법을 배워왔고, 명나라의 조복을 얻어와 의복 제도를 개정했다.

1538년 기묘사화로 화를 입었던 이들이 복귀하면서, 충청도와 전라도에 관찰사직을 역임했다. 그 뒤 동지돈녕부사를 거쳐, 1543년 형조참판이 되어 대전후속록 편찬에 참여했다. 이듬해 한성부좌윤을 지내고, 인종이 즉위하자 예조판서에 올랐다. 명종의 즉위로 문정왕후가 수렴첨정하면서 윤원형 등이 을사사화를 일으켜 대윤 일파를 제거하자, 여기에 가담해 영평군에 봉해졌다.

예조판서로 오랫동안 근무하다가 1547년 윤원형과 함께 윤원로를 외방으로 귀양보냈다. 1550년 호조판서이조판서를 거쳐 이듬해 우의정이 되었다. 우의정으로 8년간 지내다가 좌의정에 올랐지만, 그가 천거한 간관 김계가 광폭한 언행으로 당시 국왕이던 명종에게 미움을 받자, 이를 옹호하다가 대간의 탄핵을 받고 면직되었다. 곧 이어 윤원형이 좌의정을 거쳐 영의정에 오르자, 1563년 기로소에 들어가 궤장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