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9-19 13:09:36

강병욱

응요에서 넘어옴
{{{#!wiki style="margin: -10px -10px;"<tablebordercolor=#c30452><tablebgcolor=#c30452> 파일:LG 트윈스 엠블럼.svgLG 트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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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ff> 초대 2대 3대 4대
정석진[1]
(1993~1998[2])
홍경선
(1999~2005)
남성훈
(2006~2008)
강병욱
(2009~2010)
<rowcolor=#fff> 5대 6대 7대 8대
오명섭
(2011~2014)
최동훈
(2015~2018)
김정석
(2019~2020)
이윤승
(2021~ )
[1]: LG 트윈스의 1990년대 전성기의 응원단장. 경기 분위기가 달아오를 때 그가 응원단상에서 나미의 '빙글빙글' 노래에 맞춰서 췄던 춤을 기억하고 있는 올드 팬이 많다. 대부분 구단에서 쓰고 있는 "박수 5번(짝짝 짜자작) OO~O 안타!" 응원 구호를 만든 인물로 알려져 있고 훗날 '열광체조'라는 이름으로 바뀐 '열광' 응원(무릎 두 번, 박수 두 번, 돌리고~ LG!)의 창시자로도 알려져 있다. 1990년대 KBO 리그 응원 문화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 인물이라고 해도 된다. 가끔 LG 트윈스가 올드팬들을 위한 행사를 하면 등장해서 1이닝 정도 응원을 이끈다.
[2]: 실제로는 MBC 청룡 시절인 1988년 개막전 3연전에서 응원을 시작했다. 전 경기에 출장하며 응원을 주도한 건 1993년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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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fff00> 초대 2대 3대 4대 5대
강병욱
(2005~2010)
김정석
(2011~2015)
서한국
(2015~2017)
최동훈
(2017~2019)
서한국
(2019~2020)
<rowcolor=#ffc660> 6대 7대 8대 파일:창원 LG 세이커스 엠블럼.svg
신대권
(2020~2023)
박민수
(2023~2024)
이범형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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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image/311/2011/01/17/1295224721841.jpg
강병욱
생년월일 1981년
출생지 부산광역시 동래구
소속 창원 LG 세이커스
LG 트윈스 (응원단장)
경력 창원 LG 세이커스 응원단장 (2005~2010)
LG 트윈스 응원단장 (2009~2010)

1. 소개2. 경력3. 응원가
3.1. 단점 및 논란
4. 여담5.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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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LG 트윈스의 전 응원단장. 그리고 LG 팬들이 승률 5할도 채 못하는 팀을 굳이 잠실까지 가서 응원하게 만든 응원요정이자 여전히 회자 되고있는 응원 레전드.

지금은 오명섭, 최동훈, 김정석을 거쳐 이윤승으로 넘어갔지만 선수는 바뀌어도 대부분의 응원가는 그대로 이어갈 정도로 영향력이 컸다. 위엄 쩌는 9번 이병규의 응원가나 예전부터 쓰던 팀 응원가 등[1][2]은 기존부터 있던 것이지만 2020년 기준 선수들의 응원가는 거의 다 이 분과 친구의 작품이라고 생각해도 무방하다.

2. 경력

부산 내성중학교-내성고등학교를 거쳐 경기대학교에 진학하였다. 학창시절 코가 커서 "코쟁이"로 불렸다.

2002년 경기대 응원단장을 시작으로 응원단장 생활을 시작했다. 경기대학교 시절 선배가 당시 SK 와이번스의 응원단장 박홍구였고, 창원 LG 세이커스의 응원단장직을 알아봐 준 사람은 과거 넥센 히어로즈의 응원단장이었던 심윤섭이었다고 한다. 이후 활동한 프로구단은 LG 외에는 없었다. 특히 LG 트윈스에는 2년을 근무했는데, 지금 LG의 응원에 끼친 영향력을 감안하면 사실 굉장히 짧게 활동한 편.

응원요정, 줄여서 '응요'라고 불릴 정도로 LG 팬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고 2010년을 마지막으로 응원단장을 관둘 때는 기사도 나오는 등 큰 주목을 받았다. 응원단장을 관두고 얼마 후, LG생활건강에 입사했다는 소식이 나오면서 인터뷰 기사가 나오기까지 했다. 같이 들어간 사원 중에 팬이 있어서 싸인까지 해줬다고 한다.

3. 응원가

응원가 제작 능력은 단연 탁월한 편. 과장해서 그의 업적은 99년부터 2005년까지 응원단장이었던 홍경선의 업적과 비견될 만하다.[3] 2009년 찬송가나 다름없었던 페타신의 응원가나 그냥 회사 로고송으로 괴물같이 묻힌 곡을 발굴해내서 만든 박용택의 응원가와 손인호의 응원가[4][5], 2016년에는 이천웅에게 넘어간 이택근, 윤요섭의 응원가였지만 이천웅이 불법 도박을 저지르는 바람에 사용하지 않는다. 전설적이었던 조인성의 응원가 등 최근 LG에서 이적한 선수들이 늘어나면서 타 팀 팬들이 응원가도 가져갈 수 없나 이야기할 정도로 기억도 하기 쉽고 굉장히 위엄 있는 응원가들을 만들어냈다.[6]

그리고 랄랄라송[7]을 비롯한 옛날 응원가를 부활시키는 등[8] 과거에 반응이 좋았던 응원 또한 적극 활용하여 자신의 응원을 더 업그레이드 시키고 피드백이 좋은 응원단장이었다. 그래서인지 LG 박수응원[9]이 사라졌음에도 별 다른 아쉬움없이 응원을 잘 이끌어나간듯하다.

3.1. 단점 및 논란

그래도 만든 것마다 성공한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2009년에 만든 박종호 응원가는 다른 작품들에 비해 저퀄이라는 소리도 들었고 2010년 시범경기 때 만들어온 황비홍 OST인 남아당자강(...)이었던 이병규의 등장곡은 귀신같이 사라지기도 했다. 또 박병호의 기존 응원가 Macho Man이 한화 응원단장의 디스질(...)로 인해 사라져[10] 응원가를 새로 만들었으나[11] 반응이 좋지 않아 다시 Macho Man을 틀게 되었다.

가끔 지적받는 문제는 은근히 응원가들이 부르기 빡세다는 것. LG 야구 보러왔는데 승은 못 건져도 노래 실력은 건져야지 실제로 이택근이나 이진영의 응원가는 고음 부분에서 패배하는 사람도 적지 않아 키를 낮추어 버렸다. 그리고 이택근의 응원가는 윤요섭을 거쳐 이천웅에게 갔고 이진영의 응원가는 이형종에게로 갔다.

또한 논란을 일으킨 적이 한 번 있었는데 이병규의 응원가를 이진영에게 2009년에 줬던 일이다. 아무리 일본에 갔어도 팀의 최고 프랜차이즈 스타 중 한 명의 응원가를 다른 사람도 아니고 FA 영입 선수에게 주는 것이 타당하냐는 문제. 본인은 이 응원가를 썩히기가 아까웠다고 이야기했다.[12] 물론 이 문제는 이병규가 2010년에 LG에 복귀하면서 자연스럽게 해결. 이진영에게는 현재 쓰이는 응원가가 새로 만들어졌다. 사실 다른 사람들에 비하면 논란급에 들어가지도 않는다.

4. 여담

파일:external/xportsnews.hankyung.com/1295224943954.jpg
LG생활건강 사원이 된 모습
  • LG 트윈스 응원단장 2년동안, 창원 LG 세이커스 응원단장을 6년동안 한 뒤로는 응원단장 생활을 하지 않고 LG 생활건강에서 근무했다. LG에서 응원단장으로 일했던 경력때문에 LG 자체에 정이 가서 LG사로 입사하려 했다고 한다.[출처]
  • 2011년부터 2014년까지 LG 응원단장으로 있었던 오명섭과는 어릴 적부터 친구 사이로, 강병욱이 응원단장에서 내려올 때 오명섭을 추천했다고.
  • 2013-2014 시즌 창원 LG 세이커스는 창단 첫 KBL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전후에 농구의 열광적인 팬으로 등번호 33번을 좋아한다. 이로 인해 LG 세이커스 팬들에 있어서는 조형섭 아나운서와 함께 많은 그리움을 가지고 있다.
  • 2020년 현재 LG 트윈스 팬들이 가장 그리워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5. 관련 문서



[1] 서울의 모정 등은 남성훈 때 만들어졌다.[2] 쉽게 말해서 이종열, 이병규, 최동수의 응원가(기존 김동수가 99년까지 사용) 는 1990년대 후반에 등장했다.[3] LG의 초대 응원단장인 정석진의 업적도 상당하지만, 홍경선은 지금까지 내려오는 응원가 대부분을 만들었다. 대표적인 것이 이병규, 유지현, 이종열, 김재현 등 90년대 프랜차이즈 스타들의 개인 응원가가 있다. 이 맥이 잠시 끊어진 때는 남성훈 때였다.[4] 원 주인은 심성보(홍경선 시절 제작)[5] 응원가 때문에 박용택이 나올 때보다 손인호가 나올 때 현장의 팬들이 더 좋아했다는 소문이 있다. 현재는 손주인을 거쳐 강승호에게 넘어갔다가 강승호의 SK 이적임의탈퇴로 주인이 없는 상태였다가 손호영에게 넘어갔다가 트레이드로 롯데에 가면서 다시 주인이 없어졌다.[6] 특히 조인성SK로 이적할 때 LG 시절 응원가를 쓸 수 있냐고 했다가 LG팬들에게 욕을 먹었다. 그리고 SK에선 카페베네 응원가를... 그리고 지금은 한승택이 쓰고 있다. 이 후 조인성의 LG 시절 응원가는 조윤준에게 넘어갔지만 조윤준 또한 은퇴하여 현재 주인이 없는 상태이고 저작인격권 협상에서 ABBA가 단 한 작품도 협상을 안해줘서(다른 선수의 응원가도 마찬가지) 더 이상 들을 일이 없게 되었다.[7] 16초부터 들으면 나온다. '클론 - 랄랄라'라는 노래의 전주를 따서 만든 응원이다. 2004년에 시작하여 2010년까지 쓴 응원가이다. 초기에는 선수 안타 후에 나오는 응원가였으나 사용 빈도가 점점 적어지더니 2010년도에는 승리시 9회 아웃카운트송으로 사용되었다. 가끔 예전처럼 공격시에도 틀긴했으나 그 빈도는 극히 적었고 2010년 이후로는 들을 수 없다. 낯이 익은 멜로디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롯데 자이언츠에서 아웃송으로 자주 틀던 그 노래랑 같다. 다만, 롯데는 2010년부터 새롭게 아웃카운트송으로 사용했기때문에 원조는 LG 트윈스이다.[8] 전임이었던 남성훈이 서울 메들리를 부활시킨 이후 강병욱이 서울 관련 팀 응원가와 이대형 슈퍼소닉 응원가를 부활시킨게 대표적인 예.[9] 8분 41초부터 들으면 나온다. 응원단장이 호루라기 소리로만 유도하는 응원으로 짝짝짝 L! 짝짝짝 G! 짝짝짝짝 짝짝 LG! 하는 응원이다. 다른 팀에서 흔히하던 2-3-4 박수 응원이 아닌 LG만의 박수 응원이었는데 2009년에는 사용 빈도가 적어졌다가 2010년부터는 아예 안 쓰게 되었다.[10] 한화 선수였던 신경현의 응원가로 쓰였기 때문이다.[11] 무적LG 박병호~ 무적LG 박병호~ 무적LG 박병호~ L!G! 박!병!호! ×2[12] 그런데 작뱅이 이미 2008년에 이 응원가를 쓰고 있었다는 카더라가 있었다. 하지만 이것은 카더라일 뿐, 작뱅은 이 응원가를 사용한 적이 없었고 2009년에 이진영에게 이 응원가를 준 게 맞다.[출처] 유튜브 강병욱 인터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