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10-28 11:38:17

이고르 마토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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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바키아 공화국 제9대 총리
이고르 마토비치
Igor Matovič
파일:Igor_Matovič_at_EPP_Summit_2020.jpg
<colbgcolor=#ee1c25><colcolor=#fff> 출생 1973년 5월 11일 ([age(1973-05-11)]세)
체코슬로바키아 사회주의 공화국 트르나바
재임기간 제9대 총리
2020년 3월 21일 ~ 2021년 4월 1일
국적
[[슬로바키아|]][[틀:국기|]][[틀:국기|]]
소속 정당
약력 국민의회 의원 (2010~2020, 2022~현직)
평범한 사람과 독립적인 인격 대표 (2011~현직)
제9대 총리 (2020~2021)
부총리 겸 재무장관 (2021~2022)

1. 개요2. 생애
2.1. 정계 입문2.2. 총리 취임 이후2.3. 총리직 사임 이후

[clearfix]

1. 개요

슬로바키아의 정치인이자 전직 총리. 평범한 사람과 독립적인 인격의 당대표이기도 하다.

2. 생애

트르나바 출신으로 코메니우스 대학교를 졸업했다. 1997년에 미디어 및 광고를 주사업으로 하는 MGR이란 사업체를 창립하고 CEO로 활동했는데 이후에는 여러 지역 언론사도 설립하면서 언론인으로도 활동했다. 정계 입문 전인 2007년 이 사업체를 배우자 파블리나 마토비코바(Pavlína Matovičová)에게 양도했다.

한편 정계 입문 전 이런 활동 때문에 이후 AFP에서 마토비치를 조명하면서 자수성가한 괴짜 백만장자로 묘사하기도 했다.

2.1. 정계 입문

2010년 반부패를 내세우며 시민단체 평범한 사람(Obyčajní ľudia)을 창립한 뒤 배우자에게 양도한 지역 언론사 및 미디어 매체들을 활용해 홍보에 나섰다. 이 활동을 바탕으로 2010년 국민의회 선거에서 함께 평범한 사람에서 활동한 3명과 함께 자유와 연대 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되면서 의원이 되었다.

하지만 이베타 라디초바 총리가 내세웠던 국적법 개정에 공개 반대하면서 연정을 와해시켰고, 이를 둘러싼 당내 노선 갈등 끝에 탈당한 뒤 시민단체였던 평범한 사람을 평범한 사람과 독립적인 인격(OĽaNO)이라는 정당으로 재창당시켰다.

2012년 조기 총선에서 8.55% 득표율로 16석을 획득하며 원내 2당 지위에 올랐지만 로베르트 피초 전 총리가 이끄는 사민당이 단독 과반(83석)을 차지하는 압승을 거두면서 야당에 머물렀다. 그래도 덕분에 반부패, 의회 면책특권 포기를 내세우고 각종 퍼포먼스를 벌이며[1] 인기를 올렸다.

2016년 총선에서 의석을 3석 더 확보한 뒤부터 본격적으로 사민당의 피초 총리와 충돌하기 시작했는데, 마토비치가 피초 내각의 부패혐의와 권위주의 행정에 대해 격렬하게 공격하자 피초 총리도 마토비치의 뇌물 수수 및 탈세 혐의를 공개해버리는 등 상황은 그야말로 막장으로 치달았다.

그러던 와중 2018년 탐사보도를 전문적으로 하던 프리랜서 기자 얀 쿠치악의 살해사건이 터지면서 상황이 반전되었다. 수도 브라티슬라바에서 시작된 추모 시위가, 피초 총리의 측근들과 살해 사건 사이의 연관성에 대한 보도가 나오면서 반정부 시위로 확대되었고, 마토비치가 이끄는 OĽaNO 역시 다른 야당들과 손을 잡고 이 흐름에 동참하였다.

결국 피초 총리가 반정부 여론에 못이겨 내려온 뒤 페테르 펠레그리니가 신임 총리로 취임했으나, 여론을 반전시키지 못하고 2020년 총선 국면을 맞이했다. 마토비치와 OĽaNO는 반부패, 반정부 여론에 힘입어 2020년 선거에서 무려 53석을 획득하는 압승을 거두고 정부 구성권을 획득했다. 단일 정당이 의석수에서 사민당을 누른건 2006년 이후 14년만에 처음이다.

2.2. 총리 취임 이후

3월 4일, 주자나 차푸토바 대통령이 마토비치 대표에게 내각 구성을 요청했고 3월 13일, 마토비치는 이전에 자기가 소속됐던 자유와 연대와 함께 우익대중주의 성향의 우리는 가족, 보수자유주의 성향의 인민을 위하여을 묶어 내각을 구성하기로 합의했다.

의회의 인준 절차를 거쳐 3월 21일 공식적으로 총리로 취임했다. 취임 초반에는 SNS를 통한 국민과의 직접 소통, 사회민주당의 부패 혐의 등을 지적하면서 높은 인기를 구가했지만 2020년 7월 터진 석사 논문 표절 스캔들로 지지율을 크게 잃었다.

거기다 안그래도 사민당의 재집권을 막는다는 명분 속에서 서로 성향이 다른 네 정당이 연정을 구성한 상황이다보니 내부 갈등이 계속됐는데, 특히 총리인 마토비치와 리하르트 술릭 경제장관 사이에 갈등이 심각했다. 코로나19 대응 관련으로 마토비치 총리가 셧다운 정책을 실시하겠다고 발표하자 술릭 장관이 반발하고 나선게 대표적.

그와중에 마토비치 총리 최대의 실책이 터지는데 연정 정당들과의 협의도 없이 독단적으로 러시아의 스푸트니크 V 백신 200만 회분 도입을 결정한 것.

이에 반발하게 각료 1/3 이상이 사임을 결의하자[2] 결국 반발을 이기지 못하고 2021년 4월 1일에 연정을 유지하는 대가로 사퇴하여 부총리 겸 재무장관을 지내고 있던 에두아르드 헤게르에게 총리직을 넘겨주었다.#

2.3. 총리직 사임 이후

이후 헤게르 내각에서 재무장관을 지냈다. 그런데 당대표 직은 헤게르에게 넘겨주지 않아 과거 피초 전 총리처럼 허수아비 총리를 세운 뒤 실세 장관으로 행세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불만이 터져나왔다.

하지만 2022년 가속화된 인플레이션으로 물가가 15.5%나 폭등하면서 경제 심리가 얼어붙은 상황에서 12억 유로 규모의 인플레이션 대응 법안을 내놨다가 술릭 경제장관과 다시 한번 충돌했다. 술릭 장관이 소속된 자유와 연대에서 공개 반대 의사를 표명하자 마토비치 장관은 극우 성향 정당들을 설득해 예산안을 6월에 독단적으로 통과시켜버렸다.

하지만 주자나 차푸토바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마토비치 장관이 위기를 맞이했는데 자유와 연대 측에서 헤게르 총리에게 마토비치를 즉각 해임하지 않으면 연정을 해소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했고, 헤게르 총리의 중재안[3]을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8월 연정에서 탈퇴했다.

결국 소수내각이 되어버린 헤게르 내각은 2023년 예산안과 관련해 처리에 매우 어려움을 겪었고, 마토비치는 2023년 예산안을 통과시키면 자신이 사임하겠다는 마지막 제안을 자유와 연대에게 전했다.

하지만 자유와 연대에서는 아예 헤게르 내각에 대한 내각불신임결의를 의회에 상정했고, 2022년 12월 15일에 사민당을 비롯한 다른 야당들이 여기 대거 가담해 찬성 78표로 가결되면서 정부가 무너지고 말았다. 차푸토바 대통령은 일단 다음 총선까지 임시로 헤게르 총리가 과도내각을 계속 이끌 것을 지시했다.

마토비치 장관은 자유와 연대에 마지막 제안으로 2023년 예산안을 통과시켜주면 자신이 사임하겠다고 제안했고, 자유와 연대가 이를 받아들이면서 2022년 12월 23일 장관직에서도 최종 사임하게 된다.


[1] 대표적으로 자기는 뇌물을 받은 적이 없다며 거짓말 탐지기 공개 테스트를 받는 등의 기행을 펼쳤다.[2] 특히 반러 성향이 가장 강했던 인민을 위하여 측에서 연정 해산을 요구하며 가장 강하게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3] 인플레이션 대응 법안을 통과시켜주면 마토비치 사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