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1-14 13:42:31

이기자 대한건아


1. 개요2. 가사3. 여담

1. 개요


1976년에 발표된 모기윤 작사[1], 김희조 작곡의 가곡이자 응원가이다. 1976 몬트리올 올림픽을 앞두고 창작된 가곡으로 1970년대와 1980년대에 응원가로 많이 활용되었다.

이 노래가 BGM으로 가장 많이 나왔던 때는 대한민국 국가대표 선수가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했던 순간인데 해당 선수의 프로필이나 가족사항을 일일이 읊어줄 때나 금메달 획득까지의 경기 하이라이트를 틀어줄 때, 그리고 선수단의 개선 귀국 후 벌어지는 카퍼레이드와 국민 환영대회에서는[2] 어김없이 이 노래가 BGM으로 웅장하게 깔렸다. 특히 1980년대와 1990년대 초에 두드러졌는데 1984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1986 서울 아시안 게임, 1988 서울 올림픽, 1990 베이징 아시안 게임,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까지 이 노래가 많이 활용됐으며 전국체육대회 개회식에서도 이 노래가 많이 나왔다.

노래가 만들어진 시대적 배경이 박정희10월 유신으로 한창 독재하던 시절인 점도 있고, 특히 작곡가 김희조가 육군 군악단장 출신이라 그런지, 가곡이라지만 사실 들어보면 오히려 딱딱한 군가 같은 느낌이 많이 든다.[3] 그래서 현재 들어보면 노래 가사부터 상당히 권위주의적인 느낌이 많이 든다.

대략 90년대 후반부터는 점점 외면 받았고, 2000년대 이후로는 대체적으로 세련되게 만들어진 오 필승 코리아등의 노래들에 묻혀 방송에 거의 나오지 않게 되었다.

이 노래가 응원가로 전파를 탄 것은 확인되는 사례로는 2006년 독일 월드컵 때가 마지막이었고[4], 그 이후로는 경기 전후나 막간 축하공연에서 가창되는 정도다.[5]

서울 아시안 게임, 서울 올림픽, 한일 월드컵 당시 방송된 전적이 있다.

2. 가사

(1절)
우리들은 대한건아 늠름하고 용감하다
기른 힘과 닦은 기술 최후까지 떨쳐보세
조국의 영광 안고 온세계에 내닫는다
이기자 이기자 이겨야 한다
빛내자 빛을 내자 배달의 형제들[6]

(2절)
몸과 맘을[7] 한데 뭉쳐 정정당당 싸워보세
돌진하는 우리 용사 당할 자가 그 누구냐
개선의 태극기가 하늘 높이 휘날린다
이기자 이기자 이겨야 한다
빛내자 빛을 내자 배달의 형제들

3. 여담

  • 1980년대 운동권 대학생들이 이 노래를 노가바[8]좌경학생가라는 이름의 민중가요로 바꿔 불렀다.
    당시 대학생들을 비롯한 시위자들은 시민들에게 친숙할만한 군가나 유행가를 개사해 민중가요로 배포했는데, 1976년에 작곡되어 70년대에서 80년대 내내 스포츠경기 내내 응원가로 연주되었던 이 곡은 시민들은 물론이고 60년대에 태어나 이 노래를 들으며 어린시절을 보냈을 당시 대학생들에게는 친숙했을 것이다.[9][10]
    노래의 내용은 운동권 대학생들에게 무작정 좌경 딱지를 붙였던 당시 정권을 비꼬는 내용으로, 가사는 다음과 같다.
우리들은 좌경학생 좌장면[11] 먹고 좌전거 타고,
남가좌동 북가좌동 좌석버스 타고 달려보세[12]
길을 갈 땐 왼쪽으로 화장실 노크도 왼손으로
나가좌(좌좌!!) 싸우좌(좌좌!!) 싸워야 한다
세우좌(좌좌!!) 건설하좌 민족자주 민주정부

우리들은 우경학생
우동만 먹고 우마차 타고
우이동에서 우면산까지 우등고속 타고 가우
길을 갈 때도 오른쪽으로 화장실 노크도 오른손으로
나가우 싸우 이겨야하우
힘내우 빛을 내우 우경학생 만만우

[1] 1912 ~ 1983. 모윤숙의 동생이다. 다만 친일반민족행위자인 누나와 다르게 본인은 독립운동가다.[2] 정부 주관으로 열리던 올림픽 선수단 개선 카퍼레이드는 선수단을 태운 특별기가 착륙하는 김포국제공항에서부터 서울시청 앞 광장을 거쳐 태릉선수촌까지 군용 K-111 지프차를 타고 진행했는데, 올림픽 메달리스트들을 이 차에 태웠고 이 장면을 전국에 생중계했다. 올림픽 선수단에 대한 카퍼레이드는 1990년대 초까지는 관례적으로 열리는 행사였지만, 김영삼 정부 출범 이후 구시대적 권위주의 문화를 청산하자는 시대적 분위기 속에 사라졌다. 그러다 2008 베이징 올림픽 직후 노래가 잠시 반짝 나오다가 다시 사라졌다.[3] 노래의 박자가 군가의 박자와 거의 똑같다. 주먹을 위아래로 흔들며 반동을 할 때 박자가 아주 찰지다. 어쨌든 응원가의 목적도 있기 때문에 수기형 태극기를 들고 위아래로 흔들며 부르는 일이 많았다.[4] 부르는 인물은 당시 신예 트로트 가수로 부상하던 박현빈이다.[5] 축하공연으로는 평창 동계올림픽 당시 가요무대, 열린음악회에서 방송된 적이 있다.[6] 버전에 따라선 배달의 '영예를'이라고도 한다.[7] 역시 버전에 따라선 '맘과 맘을'이라고도 한다.[8] 꾸기에서 앞글자를 딴 표현으로, 개사를 뜻한다.[9] 이런식의 풍자와 저항은 일제강점기 때부터 유행해서 조선인들이 애국행진곡, 군함행진곡 등 일본 군가를 일제를 까는 내용으로 가사를 바꿔불러 총독부가 골머리를 앓았다는 기록이 있다.[10] 정부에서도 이를 눈여겨보고 어린이들에게 유신 헌법 제정의 정당성을 선전하기 위해 동요 산토끼를 "10월의 유신은 김유신과 같아서, 삼국통일 되듯이 남북통일 이뤄요"라는 내용으로 뜯어고쳐 "유신의 노래"라는 제목으로 배포하기도 했다.[11] 당시 짜장면의 올바른 표기는 "자장면"이었다.[12] 연세대학교서강대학교등 서대문구 일원에 위치한 학교에서 창작했던 곡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