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2-05-26 11:53:52

일요신문

정식명칭 일요신문사
설립일 1991년
업종명 신문발행업
상장유무 비상장기업
기업규모 중소기업
웹 사이트

1. 개요2. 특징3. 여담4. 관련 문서

1. 개요

한국의 타블로이드지.

1987년 6월에 일요뉴스로 창간되었다. 민주화 시대 이후로 타블로이드 주간지 시장이 형성되기 시작한 이래 타블로이드 주간지의 선도주자로 활약해온 신문이며 서울문화사가 발행한 타블로이드형 주간신문이다.[1] 신문발행허가가 난건 1987년이나 이때는 5공화국 시절인지라 신문을 새로 낸다는 말에 당국이 허가를 내주지 않아서 일요뉴스라는 명칭으로 창간하게 되었다.

1987년 11월에 언론기본법이 폐지되고 이듬해인 1988년 3월에 일요신문으로 명칭을 변경했다. 창간 초기에는 보기좋게 망할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예상이 있었지만 흥미성 기사와 당시까지만 해도 생소했던 정치 기사들을 쏟아내면서 창간 1년만에 흑자를 거둘정도로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1989년 말에 외압으로 돌연 휴간되었고 이후 전 경영진이 서울문화사에 일요신문을 넘겼다. 서울문화사1991년 (주)일요신문사라는 계열사를 만들어서 1992년에 일요신문이 복간되었고, 2011년 7월 1000호를 발행했다. 일간지와 달리 심층 취재 보도를 주로 하는 주단위 신문이다. 주간지와 다르다.[2]

젊은 세대에겐 인지도가 과거만 못하나, 온라인 인프라가 민간 보급되지 않던 1990년대에는 타블로이드지의 특별한 위치를 가지고 지하철, 편의점, 고속버스터미널과 기차역 신문가판대처럼 유동인구 높은 곳에 비치돼 유통됐기에 고도의 지명도를 보유하고 있었다. 신문 자체의 분량도 꽤 묵직하여 스마트폰이 보급되기 이전에는 대중교통 이용이나 명절 연휴철에 버스, 철도를 탈때 남아도는 시간을 때우기 좋은 유용한 볼거리이기도 하였다.

2. 특징

매체 불문하고 일요신문은 국내언론 중 고도의 신속성과 신뢰성을 보여주던 탐사보도 전문지다. 물론 이런 시장지위는 일요신문 한정이고 '일요시사', '사건과 내막' 같은 다른 타블로이드지들까지 포함하지는 않으며 일요신문도 지면에 유두만 ★표시 등으로 모자이크한 반나체 여성들이 즐비하던 시절이 있었지만 더 선이나 데일리 미러, 빌트 등 외국계 타블로이드지들이 자극,선정적인 황색언론으로 악명높은 데 반해 일요신문은 한국 시장에서는 완전히 상반되는 위치에 있다. 창간당시엔 군사독재 및 그 잔향으로 인해 왜곡됐던 한국언론환경의 특수성 덕택에 오히려 타블로이드가 가진 언론자유도에 기인한 바가 컸다면 21세기엔 언론사 인플레가 일으킨 기사표절 및 돌려쓰기[3](속칭 우라까이)와 공급과잉으로 인한 기자들의 질적하락에 힘입어 그 특수한 언론계內 입지가 계속 유지되고 있다.

취재에 투입하는 시간적 자원이 풍부한 주간신문이란 특성 탓이었던지 과거 창간 당시부터 특종을 생산해내던 역사가 있으며[4] 2010년대에도 정주영 현대 회장의 숨겨둔 딸을 찾아내고# 이명박 일가 및 SM다스의 거래를 최초로 밝혀낸다든가# 최순실이 먹은 곰탕집을 발로 뛰어 찾아서 김어준에게 능욕 당하든가..[5]하는 내력을 자랑하고 있다. 이러한 여타 언론사에선 포착,구사하지 못하는 탐사보도나 후속보도, 밀접&심층취재는 일요신문을 2020년대에도 여전히 중요언론으로 자리매김시키고 있다.

그런 이력들 중에서도 기념비적인 일획이 바로 전두환 비자금의 최초 보도이다# 이렇듯 취재능력 뿐 아니라 예측능력도 발군이라 정확도가 높았다. 일요신문의 가장 대표적인 적중예측이라면 전두환-노태우 사형선고 후 사면이란 시나리오를 1995년에 정확히 예견했던 것을 들수 있다.

이러한 탐사보도와 심층취재, 특별인터뷰와 기고는 시사주간지나 주요 월간지[6]도 행하는 바가 있지만 이념지향성과 정치성향이 뚜렷한걸 넘어서 정치지형에 따라 극도로 좌우편향적 한국 언론에선 그 한계성도 그런 정치색에 비례한다, 그런 사상적인 언론잡지는 취재한 내용이 지면보도로 이어지기까지에 제약이 산재해 있고 하더라도 고정구독층을 만족시키는 허위사실 기재나 취사선택적 악마의 편집을 일삼아 신뢰도가 바닥을 친다는 인식과 현실에서 자유롭지 않다. 이런 상황의 역설이 드러내는 한가지 사실은 일요신문은 심층취재의 신뢰,공정성을 담보할 만큼 이념지향성이 극도로 희미하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실제 일요신문에선 각 주요 일간지 및 신문사 계열의 시사잡지가 각자의 성향에 따라 선전선동용 발언창구로 애용하는 정치,사회평론 및 사설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3. 여담

  • ABC협회가 발표한 '2017 주간신문 445개지 인증 결과'에 따르면 일요신문은 발송매수 10만 1499부였으며 주간신문 가운데 전체 3위를 기록했다. 한국교육신문과 중앙SUNDAY 등이 1위와 2위를 다투는데 특수성있는 이들 매체를 제외하고 가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타블로이드형 주간신문 가운데에는 독보적 1위. 일요신문 다음으로 일요서울 (ilyoseoul 또는 극우성향TV) 2만 7667부, 일요시사 2만 4042부, 주간현대 1만 799부, 사건의내막 1만 13부 순이었다. 자매지로는 경제신문 비즈한국이 있다.
  • 윤준환의 시사만화 <세상만사> 의 연재처이기도 하다. 이전에도 <물대포>,<블랙박스>를 연재한 적이 있다.
  • 예전 주간 모닝에 연재(83년부터 92년)까지 연재한 작품이자 서울문화사에서 출간했던 성인용 만화잡지 <빅점프>에 수입연재해 온 일본 만화 시마 과장이 이 잡지 폐간 후 매체를 이동하여 완결을 맺었다. 이미 일본에서 연재가 끝난 '시마 과장'을 빼면 당시 <빅점프> 대부분 연재작들은 이 잡지 폐간 후 웹진 <남자야닷컴>으로 옮겨 완결을 맺었다.
  • 시사IN 주진우 기자가 본지 출신이다. 사실 시사in의 과거 모체 시사저널이나 일요신문이나 둘다 서울문화사 계열이기 때문에 인력이동이 이상할것도 없기는 했지만 말이다. 자매지가 아님에도 일요신문이 촬영한 사진자료를 시사저널이 사용할 정도였고 물론 2010년대 중반 이후 타 매체간 이용권 계약을 맺는건 흔하나 90,2000년대로선 희귀 사례였다.
  • 2011년부터 일요신문 만화공모전을 실시하고 있고, 처음으로 지면에 연재되는 영광을 누린 작품은 2019년 실사영화화가 된 롱 리브 더 킹.
  • 한국의 타블로이드 판형 언론으로서는 나무위키에서 유일하게 독립문서가 작성되었으나, 2020년 1월 9일 일요시사 문서가 생김으로써 유일등재의 기록이 깨졌다.
  • 한국의 서브컬쳐 평론가인 서찬휘가 <서찬휘의 만화살롱>이라는 칼럼을 연재하기도 하였다.

4. 관련 문서



[1] 다만 민주화 이후로 타블로이드 주간지의 선구자라고 할만한 언론은 여기보단 토요신문에 더 가깝다.[2] 주간지는 A4 용지 크기에 발행되는 잡지들로 구분된다. 주간조선 뉴스위크 한겨레21 시사저널 시사IN 등.[3] 돌려쓰기의 경우 보통은 연합뉴스같은 뉴스통신사의 기사를 1차로 해서 우려먹는 경우가 많다.[4] 한때 여성지가 매우 두꺼운 페이지수를 자랑하던 시절에는 여성지 편집장들이 시사 쪽 기사거리를 선별하기 위해 일요신문을 뒤진다는 카더라도 돌았다[5] 사실 검찰 쪽에서 시키는 곳이 정해져있어서 발로 뛰어서 못 찾은 거라 오보이고, 검찰도 굳이 이걸 오보라고 따지는 게 웃겨서 넘어갔다 카더라.[6] 주간지:주간조선,한겨례21,시사IN,주간경향,주간동아. 월간지:월간조선,신동아,월간중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