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아의 前 축구 선수 | ||
자노 아나니제 ჯანო ანანიძე | Jano Ananidze | ||
출생 | <colbgcolor=#fff,#191919>1992년 10월 10일 ([age(1992-10-10)]세) | |
코불레티 | ||
국적 | [[조지아| ]][[틀:국기| ]][[틀:국기| ]] | |
신체 | 키 172cm / 체중 64kg | |
포지션 | 공격형 미드필더, 윙어 | |
소속 | 유스 | FC 디나모 트빌리시 (2004~2005) FC 디나모 키이우 (2005~2007) FC 스파르타크 모스크바 (2007~2009) |
선수 | FC 스파르타크 모스크바 (2009~2019) → FC 로스토프 (2013~2014 / 임대) → 크릴리야 소베토프 사마라 (2019 / 임대) 아노르토시스 파마구스타 (2020) SC 로토르 볼고그라드 (2020) FC 디나모 트빌리시 (2021~2022) | |
국가대표 | 45경기 7골(조지아 / 2009~2019) |
[clearfix]
1. 개요
조지아 국적의 前 축구 선수. 뛰어난 실력과 곱상한 외모로 국내에도 어느정도 이름을 알렸으나 별다른 임팩트 있는 활약이 그 이후로는 사실상 없던 탓에 어느새부터 잊혀졌다. 당시엔 나이에 맞지않게 뛰어난 공수 조율 능력과 패스능력으로 각광을 받아 팀 내에선 밀어주는 유망주에 그쳤고, 한때 부활의 기미도 보였으나 부상 등의 이유로 성장이 정체되면서 만 29세의 젊은 나이에 현역 은퇴를 한 비운의 선수이다.2. 플레이 스타일
피지컬은 부족하지만 수준급의 패스 능력과 넓은 시야로 승부보는 전형적인 플레이메이커 타입의 공격형 미드필더로 활약하고 있다. EPL만큼이나 몸싸움이 잦은 러시아 프리미어 리그에서는 빛을 보기 힘드리라 예상되지만 탄탄한 기본기와 개인 기량을 바탕으로한 준수한 탈압박 능력으로 어느정도 그런 부분에서 짊어질 짐은 없는 편이다.2016-17 시즌부터는 마시모 카레라 체제하의 변형 3-5-2, 4-3-3에서 전방 플레이메이커 롤을 부여받는데, 페르난두, 글루샤코프와 함께 3각으로 연결되는 안정적인 전방 공격수를 향한 안정적인 볼배급의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클래스는 어디 가지 않는 번뜩이는 패스가 주된 장기. 상대 팀이 전방 압박 수행시 2선 밑까지 내려와서 볼 전개를 돕거나 하는 등 공격과 수비 이곳저곳을 넘나들기도 하며, 기동성이 뛰어나진 않더라도 종종 중앙 경로를 영리하게 침투하여 종종 골도 뽑아낸다. 또한, 자신이 원하는 위치에서 시도하는 슈팅은 대부분 유효타로 이어질 만큼의 날렵함도 가지게 되었다.
3. 클럽 경력
3.1. 스파르타크 모스크바 (임대 전)
2007년 조지아 16세 연령별 대표로 뛰던 와중 러시아와의 경기 도중 한창 유망한 미드필더를 찾던 스파르타크의 기술 이사진의 눈에 띄어 30만 달러의 액수의 계약을 체결해 영입되었다. 그러나 법적 절차의 문제로 2008년까지 공식 경기를 치를 수 없었고, 이후 2009년에 되어서야 유스 선수단에 등록되었고, 금년 여름에 있던 오스트리아로의 전지 훈련에서 뛰어난 모습을 보여주며 감독의 신임을 서서히 얻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7월 15일에 FC 크라스노다르와의 컵 경기에 선발 라인업에 포함되어 사상 첫 성인무대 데뷔를 치렀다. 경기 90분에는 득점까지 기록하며 데뷔골의 영예도 안는 성공적인 데뷔전을 치르고, 7월 22일부터는 1군 훈련 명단에도 포함되는 성과를 이룬다.
그러나 리그 경기와는 인연이 없어 한동안 출전 소식이 잠잠하다 8월 1일에 러시아 프리미어 리그 16라운드에 경기를 치르는 쿠반 크라스노다르와의 경기에서 후보 명단에 올라 70분에 교체 투입되어 첫 리그 데뷔를 치렀고, 리그 첫 공격포인트를 10월 18일에 치른 로코모티브 모스크바와의 25라운드 리그 경기에서 기록하게 되었으며, 17세 8일 이라는 최연소 기록을 갈아치우게 되었고, 리그 첫 득점은 뒤늦은 2010년 7월 21일 시비르 노보시비르스크와의 경기에서 멀티 골을 만듬으로써 달성하게 된다.
이와 같은 활약은 아스널 FC, 세비야 FC, AC 밀란과 유벤투스 등의 당시 이름을 날렸던 팀들의 눈에 들어 실제 영입 제의를 시도했다는 공신력 있는 언론의 보도로 이어졌고, 소속 구단인 스파르타크 모스크바도 실제 제의로 이어져 있었음을 인정했다, 하지만 단장인 드미트리 포포프가 남은 계약 기간에는 어떠한 제의도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의사를 밝혔고 잇따라 모든 제의를 거절함에 따라 그에 대한 모든 영입시도들은 모두 허사로 돌아간다
2010-11 시즌부터는 우승까지는 아니더라도 나름 상승세를 타던 팀의 경기에서 로테이션과 주전을 오가며 리그와 컵 경기에 자주 모습을 보였고, 그 해 UEFA 챔피언스 리그 조별 단계에서 만난 첼시 FC와의 경기에서 교체 출전하며 챔피언스 리그 리그에 첫 출장을 했으며 모든 경기 포함 도합 25경기를 출전하며 자신의 지분을 높여갔고, 바로 그해 12월에는 2014년까지 계약을 연장시키는데에 성공했다.
그러나 이듬해 2011-12 시즌에 열린 2월 17일 UEFA 유로파 리그 예선 2라운드에서 맞붙은 FC 바젤과의 경기에서 첫 유로파 리그 득점을 올림과 동시에 그 날 경기 여파로 심각한 발목 부상을 당해 6월 경기까지 출장하지 못한다. 당시 구단주 레오니드 페둔이 리그 부진을 책임으로 잦은 감독 교체를 실행해왔던 와중이고 당시 감독들이 원하는 전술에 맞는 공격형 미드필더였기에 대대적인 물갈이 와중에도 리그 경기에 출장하는 등 팀 내의 입지를 지켜갔지만 그 해 여름 다시 타박상으로 인한 부상으로 전력 외 취급을 당했고, 바로 다음 시즌부턴 리그 경기를 제외한 단 4경기에만 모습을 드러냈다.
2012-13 시즌 새롭게 부임한 우나이 에메리 휘하에서는 시즌 초 3골 2도움이라는 준수한 활약을 보였으나 챔피언스 리그 탈락과 리그 성적 부진등의 이유로 인해 경질 당하고 이번엔 반월판 열상과 부상 여파로 많은 경기 출장하지 못한다. 팀은 2013-14 시즌을 앞두고 그를 FC 로스토프의 1년 임대 이적을 허용한다.
3.2. FC 로스토프 (임대)
같은 팀 동료이자, 본인과는 달리 여러팀에서 전전긍긍해오던 아르템 쥬바와 함께 당시 중하위권을 지켜왔던 로스토프로 이적한 그는 테렉 그로즈니와의 임대 첫 경기에서후반 15분에 교체 출전하여 쥬바의 멀티골을 어시스트하고 팀을 승리로 이끌며 이전의 잦은 부상에도 불구하고 여전한 클래스를 과시하며 첫 단추를 메꾸는데 성공한다.
그 뒤로도 또한 팀 동료 쥬바와 함께한 활약으로 평생 밑바닥만 보던 팀의 상승세를 돕더니, 쥬바는 같은 시즌 득점왕이었던 세이두 둠비아와 단 1골 차인 17 득점을 기록하는 엄청난 기량을 뽐냈고, 본인도 5골 9도움이라는 준수한 활약을 펼치고 팀을 7위에 안착시키는 동시에 로스토프의 사상 첫 리그 컵 우승을 견인해내는 등 최고의 시즌을 보낸다.
반대로 그를 임대보낸 스파르타크는 6위라는 부진한 순위로 마무리하며 더 이상의 임대계약 연장이나 완전이적 없이 시즌 뒤, 본 소속팀으로 복귀한다.
3.3. 스파르타크 모스크바
또 다시 찾아온 부상을 극복하고 스파르탄의 날렵한 창이 되어 돌아오다
임대 복귀 후, 2014-15 시즌부터 로스토프에서 보여주었던 임팩트의 여파로 쥬바와 함께 보란듯이 선발로 나오며 팀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맡는 듯 싶었지만 어찌된 일인지 복귀한 이후부터는 리그경기 내내 공격 포인트나 경기력면에서 별다른 활약이 없음은 물론이고 같은 포지션의 호세 마누엘 후라도에게 밀려 점점 출전 시간이 줄어들더니 테렉 전 부터는 아예 명단 제외나 벤치행을 면치 못했다.
이듬해 시즌에도 새로운 선수의 영입과 감독들의 부임과 경질이 빚어낸 불필요한 선수단의 정리와 영입에 의해 리그 초부터 경기를 뛰지 못하다가 사실상 재계약조차 못하고 방출될 위기에 놓였으나, 다시 찾아온 부상의 마수에 의해 다행히 그를 원하는 팀이 없어 다른 팀으로 이적하는 불명예스런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2016-17 시즌 스파르타크의 첫 공식 경기였던 AEK 라르나카와의 유로파 리그 3차 예선 경기에서 이례적으로 전 시즌 선발이었던 이벨린 포포프를 밀어내고 선발로 출전했다. 자신의 존재 가치를 증명해내듯 이 경기에서 엄청난 슈팅을 뽑아내며 팀의 무승부를 도왔고, 바로 뒤에 치러진 아르세날 튤라와의 경기에서 멀티골을 기록하며 사실상 과거의 임팩트에 준하는 복귀의 신호탄을 알렸다. 거기다
2020년 1월 21일, 13년간의 스파르타크 모스크바 생활을 끝내고 상호합의 하에 계약을 해지하였다.
3.4. 스파르타크 모스크바를 떠난 이후
이후, 키프로스 리그의 아노르토시스 파마구스타로 이적하였다가, 2020년 8월 6일에 로토르와 계약을 하면서 다시 러시아 무대로 복귀하였다. 그런데 복귀 한달만에 로토르와 상호 해지를 하였다.중동무대 등 아시아 리그에서도 그를 노렸으나, 계속해서 무적으로 남았다가 2021년 4월 29일에 조지아 명문구단인 디나모 트빌리시와 계약했다.
그리고 2021-22 시즌을 끝으로 디나모 트빌리시를 떠났고, 곧이어 은퇴를 선언하면서 만 29세라는 한창의 나이에 축구화를 벗게 되었다.
4. 국가대표 경력
2007년부터 조지아 축구 국가대표팀 U-16, U-17, U-19, U-21을 거치며 과거 유망주 목록에 괜히 선정된 것이 아님을 반증하듯 연령별 국가대표에서 꾸준히 좋은 성적을 내며 개근했었고, 성인 국가대표 데뷔를 했던 2009년에도 자주 선발 출장하며 국가대표팀에선 윙어 포지션으로 출전해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다.그러다 클럽에서 얻어나간 부상의 여파로 한동안 국가대표로 출전했으나 별달리 인상적인 활약을 보이지 못하다가 2016년 9월 5일, 월드컵 그룹 스테이지에서 같은 조인 오스트리아와의 경기에서 쏜 중거리포로 득점을 성공시켰다. 팀은 2:1로 패배했지만 국가대표에서도 필요한 존재임을 어필하는데에는 성공했다는 분석이 중론이다.
2019년 9월 5일, 튀르키예에서 열린 대한민국과의 평가전에서 선제골을 터뜨렸다. 하지만 그의 득점에도 불구하고 조지아는 홀로 두 골을 넣은 황의조의 활약에 힘입은 대한민국에 2-2 무승부를 거두었다.
상술했듯 이후에는 미미한 행보로 인해 2019년 11월을 끝으로 대표팀에 소집되지 못했고, 2021-22 시즌을 끝으로 현역 은퇴를 선언하면서 대표팀 경력을 아쉽게 마무리했다. 더욱 아쉬운 건, 약 2년 후인 2024년 3월, 조지아 대표팀이 유로 2024 플레이오프 결승에서 그리스를 꺾고 사상 첫 유로 본선 및 국제 메이저 대회를 참가하게 되었고, 이후 본선에서 16강에 진출하는 큰 업적을 일궈냈는데, 만약 그가 잘만 성장했더라면 중고참으로서 생애 첫 유로 본선 무대를 함께 할 수도 있었기에 너무나도 아쉽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