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잡곡(雜穀)은 쌀을 제외한 각종 곡식을 뜻한다. 일반적으로 보리, 콩, 기장, 조 등 쌀을 제외한 오곡 멤버들과 수수, 귀리 등이 꼽힌다.이것으로 지은 밥을 잡곡밥이라 하고, 이것으로 지은 빵을 잡곡빵이라 한다.
2. 영양
다양한 곡식이 섞여있다 보니, 단일 곡식으로 밥을 짓는 것에 비해 칼륨·칼슘·마그네슘 등의 무기질, 비타민, 단백질 등 영양소가 다양하고 풍부한 편이다. 또한, 백미에 부족한 식이섬유가 매우 많은 편이다. 그러다 보니 건강식으로 꼽히고, 아래에서 언급하는 잡곡을 선호하는 인물들이 대부분 장수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실제로도 건강식으로의 효능이 있다고 볼 수 있다.특히 당뇨병과 같은 대사질환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잡곡밥이 거의 필수식으로 권해지고 있다. 현미로만 밥을 했을때와 비교해서[1] 콩이나 보리같은 잡곡을 섞으면 당질은 더 적어지면서 혈당을 느리게 올리고, 식이섬유와 단백질도 백미밥에 비해 보다 많이 섭취할 수 있기 때문에, 당뇨병 환자들에게는 반드시 챙겨야 할 음식이 잡곡밥이다. #
하지만, 식이섬유가 지나치게 많다 보니 소화기관이 약한 사람들에게 부담을 줄 수 있어, 다양한 곡식 중에도 사람 체질에 따라 맞지 않는 곡물이 있을 수도 있어서 꼭 몸에 좋다는 얘기만 듣고 잡곡만 주야장천 먹는 것이 좋다고 보긴 힘들다. 음식은 골고루 먹어야 몸에 좋은 것이지 그 자체로 몸에 좋은 완전식품은 세상에 한가지도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신장질환자에게는 부정맥이나 가려움증과 같은 증상을 유발시키므로 신장질환자는 흰밥을 먹는것이 좋다.
사람에 따라 비중을 조절하거나 단일 곡식으로 지은 밥들도 종종 번갈아가며 섭취하는 것을 권장한다. 보통은 2~3개에서 많아야 4개를 안넘기는 선에서 백미와 섞어먹으면 좋다.
3. 잡곡 관련 인물들
- 엘리자베스 2세는 생전에 잡곡빵을 좋아했는데, 매일 아침마다 잡곡빵에 불가리아[2]에서 직접 공수해 온 요거트를 발라 먹을 정도로 잡곡빵을 굉장히 좋아했다고 한다. 일각에서는 이것을 100세 가까이 장수[3]할 수 있었던 비결이라고 보기도 한다.
- 조선 제21대 국왕 영조는 잡곡과 채식 위주로 식사를 하였다. 규칙적으로 하루 3번 간식과 식사를 채식 위주로 항상 꼭꼭 씹어먹으면서 검소하게 식사했고, 이러한 규칙적이고 건강한 식사는 장수의 원인 중 하나였다고 한다.
- 일본 에도 막부 시절에는 농민들한테 하얀 쌀은 세금으로 바쳐야 하니 가급적 먹지 말고, 대신에 보리와 콩 같은 잡곡들을 많이 먹으라고 강요하였다. 그래서 에도 막부 시절의 일본 상류층들은 하얀 쌀밥을 즐겨 먹었는데, 다른 곡물을 안 먹다보니 각기병에 걸려 고생을 했다.
- 윤보선은 금수저 집안 출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잡곡밥을 굉장히 좋아했다. 당시에는 잡곡밥은 가난한 사람들이 많이 먹었고, 반면에 쌀밥은 부유한 사람들이 많이 먹었는데, 윤보선은 이와 달리 자신이 부유한 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양반가일 수록 청빈해야 한다는 집안의 가르침과 늘상 건강 관리를 생각해 잡곡밥을 먹었으며, 술도 절대 입에 대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고기를 좋아해서 많이 먹었음에도 역대 대한민국 대통령들 중에서 가장 장수했다.
- 반대로 이명박은 잡곡밥을 아주 싫어했다. 가난한 흙수저 집안 출신이라서 차가운 잡곡밥을 많이 먹었는데[4], 따뜻한 쌀밥을 먹어보는 것이 소원이었을 정도로 쌀밥을 매우 좋아했고, 이후 이명박이 불어터지게 부유한 금수저 집안으로 업그레이드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명박은 늘상 과거에 품었던 소박한 꿈인 따뜻한 쌀밥을 선호하여 그런 것이라고 한다. 특히 따뜻한 쌀밥에 날계란을 넣어 간장을 부어서 먹는 달걀밥을 굉장히 좋아했다고 한다.[5]
[1] 현미는 백미에 비해 소화가 느리게 되고(GI 지수가 낮음) 그 결과로 혈당을 느리게 올린다는 것 뿐이지, 당질(탄수화물) 함량 자체는 백미와 거의 차이가 없다.[2] 혹은 그리스, 튀르키예 등.[3] 그것도 코로나19 감염 및 남편과의 갑작스런 사별로 인한 충격임을 감안해야 한다.[4] 더구나 이명박이 20~30대 시절에는 혼분식 장려 운동으로 반강제적으로 잡곡밥을 먹어야 했다. 물론 그 시절 이명박은 이미 사회에 나온 직장인인지라 특별히 불이익은 크지 않았지만 그 시절 학생들은 혼분식으로 도시락을 안 싸왔다는 이유로 온갖 체벌에 부모님까지 소환해야 했고 생활기록부에 큰 감점을 당하는 등 혼분식 "강요" 운동으로 인한 불이익을 많이 받았고, 이 때문에 퇴학/자퇴한 학생들도 많았다.[5] 이런 사람이 과거 농경사회부터 살아왔던 장년, 노년층에는 의외로 굉장히 많다. 잡곡밥이 가난하던 시절의 상징같이 기억에 남아 맛이라던지 영양이라던지 하는 것과는 별개로 혐오스럽게 보이는 것. 설령 가난했던 시절은 지나고 아무거나 선택해 먹을 수 있는 시대가 되었음에도 그 기억 때문에 잡곡밥만큼은 선택할 수 없게 되어버린 것이다. 비슷한 음식으로 수제비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