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1-10-12 21:09:49

장금환

파일:장금환.jpg
성명 장금환(張琴煥)
생몰 1883년 5월 27일 ~ 1963년 1월 29일
출생지 평안남도 안주시
사망지 하와이 호놀룰루
매장지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추서 건국훈장 애족장

1. 개요2. 생애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9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장금환은 1883년 5월 27일 평안남도 안주시에서 태어났다. 그는 1904년 하와이로 이주했고, 1908년 장인환, 전명운이 친일파 미국인 더럼 스티븐스를 암살하자 두 사람을 돕기 위한 운동에 적극 참여해 변호비 마련에 노력했다. 1909년 5월 대한인국민회 하와이유라지방회의 부회장을 역임했으며, 1910년 4월 카우아이 하라학가지방회 평의원을 맡았고, 6월엔 총무, 11월에 구제원으로 선임되었다.

1910년 <신한국보>에 "금일 우리의 급선무"라는 제목의 논설을 기고해 미주 한인들의 민족의식을 고취시키고자 노력했고, 이후에도 독립금, 인구세, 혈성금, 대한인국민회 의무금, <신한민보> 후원금 등 8.15 해방 때까지 독립운동 자금 의연 활동을 지속했다. 1932년 5월 22일 대한민국 임시정부 와히아와 후원회를 조직했고, 1944년 한국독립당 하와이지부 당원으로 중국 충칭의 독립운동 단체와 연계하여 지원 활동을 전개했다.

1946년 3월 10일, 장금환은 자신의 집에서 카우마히나지방회를 개최하고 독립금과 국민총회의 공전을 수합했다. 그리고 1948년부터 1949년까지 국민총회 카우마히나지방회 재정 조사원을 역임했고, 1950년 카이무키지방회 대의원, 1951년 국민총회 법무원, 1953년 호놀룰루지방회 재무로 활동했다. 이후엔 하와이에서 말년을 보내다가 1963년 1월 29일에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9년 장금환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그의 유해는 2002년 국내로 봉환되어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