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1-10-12 21:11:37

장복규

<colcolor=#fff><colbgcolor=#0047a0> 자 / 호 성삼(聖三) / 사이재(四而齋)
본관 인동 장씨[1]
출생 1826년 9월 9일
경상도 영천군 호문면 화기동
(현 경상북도 영주시 장수면 화기리)[2]
사망 1896년 5월 12일
안동형무소
상훈 건국훈장 애국장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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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장복규는 1826년(순조 26) 9월 9일 경상도 영천군 호문면 화기동(현 경상북도 영주시 장수면 화기리)에서 아버지 장원진(張元鎭)과 어머니 전의 이씨 이지회(李之晦)의 딸 사이의 1남 1녀 중 외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세조이시애의 난을 평정하는 데에 공을 세워 적개공신(敵愾功臣) 2등에 녹훈되고 연복군(延福君)에 봉해진 안양공(安襄公) 장말손(張末孫)의 13대손으로, 1892년 종6품 의금부도사(義禁府都事)에 임명되었지만 시국을 개탄하여 사퇴했다고 한다.

을미사변 이후 1896년 1월 17일 서상렬 의병장의 부대에 들어가 활동하다가 패전 후 일시 귀가했다. 그러던 5월 9일 일본군 수십명이 급습해와 체포되었다. 일본군이 그를 고문하면서 서상렬의 행방을 물었지만, 그는 끝까지 발설하지 않았고, 1896년 5월 12일 안동형무소에서 총살형에 처해졌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장복규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1] 직제학 계(桂)계 안양공파 20세 복(復) 기(基) 항렬.[2] 인동 장씨 집성촌이다. 독립유공자 장윤덕도 이 마을 출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