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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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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장재진.jpg
이름 장재진
출생 1990년 3월 4일 ([age(1990-03-04)]세)
경상북도 구미시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혈액형 B형[1]
가족 부모, 여동생
학력 상주공업고등학교 (졸업)
대구대학교 (건축공학 / 출학)[2]
죄명 살인, 준강간, 절도, 상해, 폭행, 감금치상
처벌 사형(형집행 무기한 대기), 몰수
수감 대구광역시 달성군 하빈면 대구교도소

1. 개요2. 생애3. 기타4. 범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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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살인범으로, 대구 중년부부 살인 사건의 범인이다. 현재 최연소 민간인 사형수대구교도소 미결사동에서 복역 중이다.[3] 당시 최연소였던 이유는 양형위원회가 설치된 이후, 어지간히 잔혹한 살인 사건이라도 거의 사형 판결을 받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다. 더불어 1997년 이후론 사형 판결을 받아도 실제 집행되지는 않고 있다. 이 사건과 대단히 유사한 암사동 모녀 살인 사건의 경우도 강력한 변호에 힘입어 무기징역 판결에 그쳤고, 심지어 범인이 항소까지 했었다. 그래도 무기징역이 20년이면 가석방 될 수 있는 것에 비하면[4], 사형 판결을 하는 것이 더 강한 처벌이다.[5]

2. 생애

1990년 3월 4일, 경상북도 구미시에서 1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나 3살 때부터 경상북도 상주시에서 성장했다. 불행한 어린 시절을 보냈던 대부분의 흉악범들과는 달리, 부모의 보살핌 속에 어린 시절을 별 다른 비행 없이 평범하게 보냈다. 오히려 자신의 전 여친을 폭행한 일로 인해 피해자의 부모가 장재진의 부모한테 항의하자, 그의 부모는 자기 자식을 두둔하지 않고 오히려 자기 자식이 남의 집 딸을 폭행했다는 점에 대해 사과하며 그를 혼내어 휴학시켰을 정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긴 커녕, 대구 중년부부 살인 사건이라는 가정 파괴 범죄를 저질렀다.

주변 사람들의 증언에 의하면, 학창 시절에 만만하거나 힘 없는 사람들을 괴롭혔다고 하며, 한 번은 그의 동창 중 한 명이 참다 못해 그에게 크게 화를 내자, 그 이후로 그 동창은 건드리지 못했다고 한다. 또한 그는 해병대 군 복무 중 후임병에 대한 가혹 행위 등으로 군사법원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의 형벌을 받은 전력도 있다.

3. 기타

  • 사건 이후 장재진의 초등학교 동창이라고 밝힌 한 네티즌에 의하면 장재진은 학창 시절에 자기보다 힘이 없거나 만만한 사람들을 괴롭혔던 전형적인 양아치라고 하는데, 이 네티즌이 자기도 전학 온 후 괴롭힘을 당했지만 한번 크게 화내자 그 이후로 자길 건드리지 못했다고 한다.
  • 그와 같이 학창 시절을 보내거나 감옥에서 함께 생활한 사람들이 작성한 글들도 더 있다. 1, 2 그 글들도 하나같이 괴담 투성이이다.
  • 과거 성희롱을 저질렀다는 증언이 있다. #
  • 노원 세모녀 살인사건의 범인 김태현과 범행 수법이 아예 판박이 수준으로 닮았다. 차이점도 있는데, 김태현보다 적은 2명을 죽였지만, 김태현과 달리 강간을 저질렀다는 것이다. 또 다른 차이점은 최종 형량. 김태현은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복역 중인데, 그보다 어린 무기수에는 인제 등산객 살인사건의 범인 이모씨가 있다.
  • 페이스북 계정이 있었으나, 살인 및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의 성범죄자 이용 불가 규정으로 현재는 삭제된 상태다. 생년월일, 프로필 틀에 있는 사진들도 다 페이스북에 있었다. 어차피 사형 선고를 받아 석방이 안되어 컴퓨터, 스마트폰 등 온라인 상 활동이 엄격히 제한되는 교도소에서 평생 지내게 되어 모든 SNS 사용이 사실상 불가능해지면서 결국 그의 인생은 사실상 완전히 끝이 나버렸다.
  • 블랙: 악마를 보았다 8회에서 재현했다.

4. 범행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대구 중년부부 살인 사건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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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출처[2] 사건 이후 어떻게 되었는지는 불명이지만, 아마도 극악무도한 범죄를 저질렀으므로 출학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사건 이전에도 정학과 비슷한 징계를 당했다.[3] 현재 대한민국 최연소 사형수는 1992년생 김민찬 상병임도빈 병장이다.[4] 물론 참작 사유가 클 때 한정으로 20년 뒤에 가석방을 받을 기회라도 주어지지, 저정도 죄질이면 가석방 가능성은 0에 가깝다고 해야 되기에 암사동 사건 범죄자도 평생 감옥에 썩는 건 확정이다.더욱이 국민들의 대대적인 질타와 원망을 산 범인이라면 더욱 가능성이 낮아진다.[5] 대한민국이 실질적으로 사형을 집행하지도 않는데 사형이 무슨 의미냐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절대 그렇지 않다. 애당초 사형수인 경우는 가석방은 꿈도 꿀 수 없고, 언제든지 사형이 다시 이뤄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떨며 하루하루를 살아야 되기 때문이다. 실제 무기수보다는 사형수의 평균 수명이 눈에 띄게 낮다는것이 통계적으로 입증되었다, 괜히 사형이 가장 무거운 처벌이라고 하는 것이 아닌 셈. 실제로 장재진은 1심에서 사형 선고를 받자, 법정에서 무기징역을 받기 위해 태도를 180도 바꾸어 그전까지 단 한 장도 내지 않던 반성문을 134일간 67장의 반성문을 제출하는 등 발악을 했다. 더욱 웃긴 것은 항소가 기각되자, 그 이후로는 단 한 장의 반성문도 제출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