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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대항군연대 專門對抗軍聯隊 Professional Opposing Force Regiment | |
<colbgcolor=#88C124><colcolor=white> 적보다 강한 적, 적보다 지독한 적 | |
창설일 | 2002년 4월 1일(제11보병대대) 2015년 4월 1일(전문대항군연대) |
별칭 | 전갈부대 |
소속 | 대한민국 육군 |
상급부대 | 육군과학화전투훈련단 |
규모 | 연대 |
역할 | 연대 및 대대급 전투훈련 대항군부대 운용, 산악여단 임무 |
연대장 | 대령 오병탁(육사 58기) |
[clearfix]
1. 개요
육군과학화전투훈련단 소속 전문대항군연대.
2. 역사
2001년 훈련장 부지가 정해졌을 당시엔 전문대항군이 존재하지 않아 (구)제2보병사단 (구)제32보병연대 3대대[1]가 예하 중대들을 2개조로 나누어 중대급[2] 전문대항군 임무를 수행하였는데, 이 시기에 대해선 제32보병연대 항목 참고.이러던 중 육군과학화전투훈련단이 정식 창설되고, 임시 동원된 32연대 3대대와는 별개의 현지 전문대항군이 존재할 필요성이 있어지자 2003년 3대대가 원대복귀할 때 일부가 인수인계를 위해 남았고, 그렇게 대항군 부대의 모체가 되었다. 이후 대항군 부대는 과학화전투훈련단 예하 제11보병대대라는 정식 명칭으로 증편되었다.[3] 부대의 상징이 전갈이라, 전갈부대라는 별칭으로도 불렸다.
그리고 2015년 4월 1일, 육사 47기 이상훈 대령을 초대 연대장으로 하여 전문대항군연대로 증편되었다. 2021년 기점 육군의 연대급 제대가 여단급으로 개편되었으나, 전문대항군연대는 현재도 연대급 편제를 유지하고 있다.
규모가 작던 대대 시절에는 전쟁 발발 시 대항군 병력들이 보충대로 이동 후 상비사단으로 재배치되는 게 전시 계획이었으나, 연대급으로 확장된 이후 2021년 말 국방일보에서 공개한 기사에 따르면 전시 재배치 없이 제1산악여단처럼 산악 환경에 특화된 각종 임무를 수행한다고 한다. 게다가 제3기갑여단 불곰 대대에서 노후된 T-80U 전차와 BMP-3 보병전투차를 넘겨받아 전차중대도 창설되었다.
3. 편제
- 연대 본부
- 연대 직할대
- 제11보병대대
- 제12보병대대
- 제13보병대대
3.1. 지휘관
볼드체는 대장 진급이 된 대대장 및 연대장 |
역대 제11보병대대장 | |||
역대 | 이름 | 임관 | 계급 |
초대 | 유상수 | 육사 42기 | 예)대령 |
2대 | 이장근 | 육사 44기 | 예)대령 |
3대 | 김익현[4] | 육사 45기 | 예)대령 |
4대 | 장재규 | 육사 47기 | 예)대령 |
5대 | 박재열 | 육사 49기 | 중장 |
6대 | 조원희 | 육사 51기 | 소장 |
7대 | 김선문 | 육사 53기 | 준장 |
8대 | 김근영 | 육사 54기 | 대령 |
9대 | 오병탁 | 육사 58기 | 대령 |
10대 | 전승주 | 육사 60기 | 중령 |
11대 | 유찬욱 | 육사 62기 | 중령 |
역대 전문대항군연대장 | |||
<rowcolor=#fff> 역대 | 이름 | 임관 | 계급 |
초대 | 이상훈 | 육사 47기 | 예)대령 |
2대 | 박재열 | 육사 49기 | 중장 |
3대 | 조원희 | 육사 51기 | 소장 |
4대 | 정상협 | 육사 52기 | 준장 |
5대 | 김선문 | 육사 53기 | 준장 |
6대 | 임수흥 | 육사 55기 | 대령 |
7대 | 이상훈 | 육사 57기 | 대령 |
[ruby(8대, ruby=현직)] | 오병탁 | 육사 58기 | 대령 |
역대 지휘관이 전원 육사 출신인 점, 박재열 중장을 시작으로 그 이후 대대장/연대장이 줄줄이 장군으로 진급하는 점을 참고하면 이 부대 지휘관 보직은 확실히 요직으로 여겨지는 것으로 보이며, 대대 시절 대대장을 했던 장교들이 연대 승격 후 연대장으로 부임한 경우가 꽤 많으며 이로인해 11보병대대가 전갈부대로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는 평가가 있다.
4. 특징
4.1. 근무환경
자세한 사항은 KCTC 문서 참조.실전같은 훈련을 반복하는 탓에 매우 강해서 지금까지 대항군에 맞서 이겨본 부대가 없을 정도다. 대항군은 정면으로 10 vs 50이 붙으면 3명 정도 죽고 50명을 싹슬이 할 수 있는 전투력을 소유한 것으로 추정된다(대항군 사병 전원은 훈련소에서 면접 후 소수정예 차출되며, 대항군 간부 전원은 자원 후 발탁되는 과정을 거친다. 즉, 대항군은 이미 검증된 인원이다). 기본적으로 한 전투에 30명 정도는 잡아야 전투영웅 취급을 받는다고 하며, 야간에 2명 정도가 야시경 들고 진영을 휩쓸고 다니기도 한다. 이는 대한민국 국군 전체의 야간전투 훈련이 매우 미비하기 때문이다.
대항군 자체 전투훈련은 ‘우리가 무너지면 대한민국 육군이 무너진다’ 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어 자체 훈련의 강도가 매우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항군은 전투력을 높이기 위해 중대 또는 대대 내에서 자체 쌍방훈련을 한다. 그러나 가장 잔인한 훈련 방식이 있는데 바로 대대마다 한 중대씩 선발하여 서로가 마일즈 쌍방 훈련을 하는 것이다. 실시간으로 연대장이 예하 중대의 전술적 행동(대항군 답게 북한 전술을 사용), 개인 전투원의 피해 유무 등을 확인하며 진행되기에 매우 피말린다고 한다. 이 훈련을 통해 대대의 자존심과 향후 연대장의 신임을 받는데에 있어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많은 준비를 한다.
대항군의 체력훈련은 자대 지형이 가파른 산을 깎아 만든 거라 매일 산악뜀걸음은 필수이며, 심할 때는 연병장부터 훈련장 입구까지 논스톱으로 뜀걸음을 뛰는 경우도 있다.
대항군은 말 그대로 총과 마일즈와 자연이 나와 일치하는 오버소울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대항군의 전투력이 강한 것은 전투의 기초 지식이 머리가 아닌 몸에 단단히 박혀있기 때문이다(부대 내 비석에 ‘몸이 기억할 때까지’ 라고 적혀 있다).
이렇게 “적 보다 강한 적, 적 보다 지독한 적”인 전문대항군이 된다.
덤으로 따로 유격 훈련과 혹한기 훈련을 하지 않는다. 이유는 1년 내내 하는 게 훈련이라서.[5][6]
5. KCTC 훈련
5.1. 훈련 사례
- 가장 흔하게 벌어지는 문제 상황이 바로 탄이 걸리거나 탄창이 불량인 경우이다. 훈련부대와 대항군을 막론하고 가장 흔하게 맞닥트리는 상황. 5.56mm 실탄에 맞게 설계된 탄창을 가지고 탄두 없는 더 짧은 5.56mm 공포탄을 사용하니 기동시 공포탄이 앞으로 쏠려서 사격시 탄이 걸리는 상황이 대부분 일어나는데, 대항군 인원들은 고무링 등 자신만의 방법으로 탄이 앞으로 쏠림을 막도록 따로 장치를 많이들 한다.
- 특작조(북한군 편제/전술인 대대습격조, 중대습격조 이하 대습, 중습)나 포병을 이용해서 수시로 부식차를 폭파시켜 전투식량을 며칠째 먹거나 꼼짝없이 굶은 부대가 적지 않았다고 한다. 사실 전시 상황이라도 비싼 전투식량[7]만으로 군대를 유지할 수 없기 때문에(또한 건강상 이유로[8]) 가급적이면 일반식량 배식을 하는 것이 원칙인데 이를 이용해 전투력과 사기를 떨어뜨리는 것.
- 야간에 경계를 서고 있던 병사 두 명이 중위 계급장과 일병 계급장을 단 육군 병력을 발견. 암구호를 대자 대답했으며 스스로를 연대 인사보좌관과 행정병이라 밝혔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대대 작전과장의 관등성명을 요구하니 제대로 대답했고, 통과시켰다. 그런데 통과하는 도중, 사수가 일병의 표정에서 이상한 미소를 보고 중위와 일병을 뒤에서 사살. 사망판정이 난 두 사람은 "에이. 아저씨들 안 속네."라며 웃었다고 한다. 대항군이었던 것이다.
- 대항군 1명이 혼자서 계곡 양쪽에 배치되어 야간방어 중이던 2개 소대를 궤멸시켰다는 이야기도 있다. 계곡 한쪽 사면에 올라가서 맞은 편에 한발 쐈더니 반대편에서 대응사격을 시작했고 이쪽도 반격을 해서 아군끼리 자멸했다는 것.
- 대항군이 훈련부대 기동을 관측하여 사격하려고 했지만 '12시 전까지는 사격하지 말라.'는 중대장의 지시가 있어서 매 5분마다 훈련 군의 상황을 중대장에게 통보. 12시 정각에 중대장이 사격 허가를 내리자마자 10분만에 훈련군 중대 1개 반 이상이 격파당했다고.
- 월광도 야간투시경도 없는 아주 어두운 밤의 산에서 기동하던 대항군이 매복하던 훈련부대에게 일제 사격을 당했는데, 오히려 훈련부대원이 사망하였다. 대항군이 죽지 않았던 이유는 기동하면서 은엄폐를 철저히 지킨 덕이었고, 훈련부대원이 죽은 이유는 은엄폐물이 없는 한복판에서 서서 사격하느라 소염기의 불꽃이 보여 위치가 노출되었기에 사격을 당했기 때문이었다. 은엄폐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 대항군의 화력유도방식이 인명경시적이다. 일반적으로 착탄지에 피아가 너무 붙어 있으면 진내사격 요청이 없는 한 지양하는 편인데, 이들은 붙든 말든 닥치고 요청한다. 정확히는 일선 전투원이 지휘소에 화력 지원을 요청 후 승인되기 전까지 이들은 은엄페 상태로 상대를 계속 관측하며 일정 주기로 보고한다. 그러다 화력 지원이 승인되면 소속 대항군 중대장은 "아군 피해가 없도록 신속히 이탈"하라고 지시하고, 이에 가급적 슬금슬금 빠져나가거나 혹은 들키거나 말거나 상관없이 그 지역을 최대 속도로 이탈한다. 헌데 심할 경우 이탈하자마자 대략 10초 후 일대에 박격포 피해가 적용되기에 정말 운이 좋아야 한다.
- 미래과학화 전투실험으로 대항군에게 조준경(스코프)를 지급하고[9] 훈련부대에게는 방탄복을 착용한다는 전제하에 상의 마일즈는 검은 테이프로 대부분 막고 훈련을 시작했는데 결과가 아주 놀라웠다. 압도적으로 우수할 것 같은 훈련부대의 사망률이 50%가 넘은 것.
- 전문대항군의 직책 인수인계가 훈련부대에 비해 즉각적으로 빠르게 돌아가는 편이다. 훈련 중 소대장이 사망하면 바로 최고참이나 분대장에게 소대장 직책을 인수인계하고, 인수인계를 받은 병사도 사망하면 그 아래 후임이 받는다. (계급에 관계없이 후임이 받기에 일병이 소대장 직책을 받을 수도 있다.) 소대장 옆을 지키는 통신병인 전령 역시 동일. 전령이 사망하면 무전기 999K를 소대 내 다른 병사에게 인수인계한다. 이 때문에 소대나 중대내 각 직책에 대해 자율적으로 한번 씩은 교육한다. 또한, 소대 병력이 줄면 똑같이 수가 줄은 타 소대와 합병하는데, 이는 각 중대들도 비슷하다. 훈련부대도 사망으로 인한 직책 인수인계를 하겠지만, 전문대항군은 서로 논의할 것도 눈치 볼 것도 없이 물 흐르듯 바로바로 자연스럽게 인수인계함이 가장 큰 특징이다.
- 훈련부대 소속 소대장이 고지를 탈환한다며 소대를 투입했지만 그곳에 이미 자리 잡은 대항군에게 전멸. 충격이 컸는지 그 소대장은 통제관에게 '소대를 관리할 능력이 없으니 사망처리 해달라.'고 부탁해 사망 처리. 그리고 생존자들은 다른 소대에 편입되는 등 여러모로 안타까운 선택이다.
- 2013년 연초에 약 2달 동안 미래보병부대전투실험이 진행되었는데, 한국군에게 전투 조끼를 착용한 상황으로 상의 마일즈를 대부분 가렸으며 지금은 보급 중단된 K11도 전투실험에 사용이 되었다. 대항군 보병에게는 이례적으로 K2에 스코프를 장착하고 훈련이 진행되었는데, 문제는 대항군 훈련 조건이 훈련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전부 걸어서 간다는 것이었다. 훈련장까지 산악 코스 약 10km 정도 되며, 훈련장 길이 대각선으로 약 30km 정도 된다. 그리고 대부분의 대항군 보병은 훈련장의 절반까지 진출했다는것. 전투 프로 분대가 훈련장의 끝까지 간다면 하루에만 약 40km를 걷거나 뛰게된다. 그나마 다행으로, 훈련이 끝나면 버스로 모든 병력을 자대까지 수송하였다. 이것을 약 2달 동안 주말을 제외하고 연속으로 훈련이 진행되어, 제설 스트레스가 끝난 뒤에 훈련 스트레스로 대대 전체가, 아니 대대의 근무를 근무지원대가 대신 해주었기 때문에(배차 역시 동일) 간부 병사 누구 하나 빠짐없이 혹독하게 훈련하였다.
6. 여담
6.1. 전문대항군에 대한 사실
Q. 북한군 전투복을 입는가?A. 대항군 창설 초기부터 북한군 전투복으로 인식되던 황토색 전투복과 2023년에 지급 된 신형 대항군복(얼룩무늬)을 입는다. 신형 대항군복은 북한군 정예부대가 2010년대 이후 착용하고 있는 얼룩무늬 전투복을 모사한 얼룩무늬 전투복을 착용한다. 대항군복에는 그에 맞는 북한군 계급장을 부착한다.
Q. 북한말을 사용하는가?
A. 전입신병은 오자마자 북한군사술어를 암기한다. 훈련간 작전 명령은 북한군사술용어로 내려지기 때문이다. '협동동작조직'(이하 협작)이라고 하는 훈련 전 작전 회의 간에서는 말투까지 북한 말을 사용한다. 전갈대대장은 협작에서 “북한군 보다 더 북한군 답게 행동하고 말하라. 훈련부대가 제대로 훈련할 수 있도록 문화어를 사용하라.”며 문화어 사용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6.2. 전문대항군에 대한 오해
Q. 훈련장의 모든 지리를 꿰뚫고 있다?A. 훈련장의 크기는 119 ㎢으로 약 36,000,000평, 여의도의 41배로 매우 넓다. 이를 모두 꿰뚫수는 없다. 그러나 훈련이 많은 탓에 작전지역이 겹친다면 충분히 유리한 것은 맞다. 대항군은 거의 매달 훈련이 있기때문에 한 훈련당 2주 정도의 지형정찰 기간을 갖지만 훈련부대는 3~6개월의 지형정찰 기간을 갖는다.
7. 관련 문서
[1] 공교롭게도 독수리 유격대 사건과 관계된 대대다.[2] 정확히는 대대 주둔과 훈련장 파견을 돌아가면서 했고, 훈련장에서도 2교대로 대항군 임무를 수행했다.[3] 참고로 이 단대호의 기원은 미 육군의 과학화 훈련단인 미국 포트 어윈(Fort Irwin)의 국립훈련장(NTC; National Traning Center)의 대항군 역할을 담당하는 제11기갑기병연대(11th Armored Cavalry Regiment)에서 따왔다고 한다.[4] JSA 김훈 중위 사건 당시 중대장이었다.[5] 그래서 여름에 훈련하면 유격(정확히는 준 유격)이고 겨울에 하면 혹한기(정확히는 준 혹한기)라는 농담이 있다. 물론 육군에서 실제로 하는 유격과 혹한기와는 다른 훈련이다.[6] 대대급 훈련 때는 1년에 20개 사단의 훈련 상대를 해주어야 하기 때문에 유격, 혹한기 훈련을 실시할 시 최소 2개 사단의 훈련을 진행할 수 없다.[7] 전투식량은 생각보다 비싼 데다 장기간 먹기에는 장병들의 원성이 자자하기 때문에 부득이한 경우에 한해 단기간으로 취식한다.[8] 전투식량은 나라마다 차이가 좀 있지만 대부분 야전 상황에서의 열량 보급 및 보존을 위해 영양소 밸런스 따위는 고려하지 않고 만든 고열량, 고염분, 고당분 식품이라 장기간 쉬지 않고 취식할 경우 소화기관이나 배변기관에 무리를 줘서 병을 앓게 하는 원인이 된다. 우리가 흔히 아는 미군 전투식량 MRE에도 아예 2주 이상 연속해서 먹었다면 병원에서 검진을 받으라는 경고문이 붙었을 정도이다.[9] 대항군 K2에는 조준경이 달리지 않았다. 기껏해야 K3 조준경 한두 개 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