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2-11-08 15:26:06

정공(초한쟁패기)


(? ~ ?)

1. 개요2. 분석3. 창작물에서의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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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초한쟁패기에 활약한 초나라(楚)의 매국노 장수.

계포(季布)의 외삼촌. 언급되는 활약은 팽성대전에서의 싸움이 전부다. 항우(項羽)의 군대가 제후 연합군을 모조리 격파하면서 한(漢)나라군은 완전히 무너져 버렸는데, 이때 팽성 서쪽에서 정공은 유방(劉邦)을 완전히 궁지에 몰아넣었다.

유방은 칼을 들고 정공과 직접 일기토 교전을 치를 정도로 대단히 위급한 상황에 놓였다. 마음이 다급해진 유방은 "우리같은 사람들이 어찌 서로를 해칠 수 있습니까!" 하고 소리쳤고,자신이 천하를 통일하면 정공을 1순위 공로자로 인정하겠다고 하자 정공은 유방이 도망가게 군사를 거두어 버렸다.

이런 모습만 보면 훗날 유방에게 대접을 받았을 것 같지만, 초한대전이 끝난 후 정공이 유방을 찾아오자, 유방은 정공을 데리고 군중을 돌아다니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항왕의 신하로서 나를 풀어주어 항왕에게 불충함으로 해서 항왕으로 하여금 천하를 잃게 만든 자는 바로 정공이다."

그리고 정공을 처형한 다음, 결코 정공처럼 하는 사람이 있어서는 안된다고 선언했다.

2. 분석

한고조가 아랫사람들에게 무슨 말을 하고 싶었는지는 이해가 가지만 정공의 입장에서는 너무나 억울할 수 밖에 없다. 정공이 황권을 심각하게 위협하던 이성왕도 아닌데 숙청당한 드문 경우이며, 항복해 온 항씨 일족이나 계포 같은 사람들은 좋은 대접을 받았고 조카 계포의 경우 항우 사망후에도 항복하지 않았는데도 나중에는 벼슬까지 받아 유방에게 중용되었는데 정작 정공은 처형했으니 일관성이 없는 처사라 생각할만하다.

사마광이 여기에 대해 평가하길, 유방이 도망친 사람이나 배신자를 받아들인 경우가 많았음에도 굳이 정공을 처형한 이유는, 전란의 시기와 안정의 시기가 다르기 때문이라고 했다. 말하자면 영웅들이 천하를 두고 다툴 때에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무조건 등용하지만, 천하가 안정된 시기에는 신하의 덕목으로 가장 중요한 것이 인성이나 충절이기 때문에 주군의 명령을 거슬렀던 사람을 용납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따지면 홍문연에서 유방을 몰래 보내준 진평이나, 항우 밑에 있었으면서도 계속해서 엑스맨 행위를 했던 항백은 정공보다 더 먼저 처벌을 받아야 한다. 기준이 오락가락한다는 지적은 피할 수 없다. 게다가 대놓고 유방이 싫어했던 옹치는 큰 포상을 받기까지 하지 않았는가.[1] 거기다 상황이 다급해지자 본인이 먼저 천하를 통일하면 1순위 공로자로 대우해 준다고 설득하지 않았던 점에서 감탄고토라 할만하다.

항백은 유태공을 보호하기도 했고, 초한쟁패기 내내 초나라 내부의 적이었으며 유방에게 계속 이득을 가져다준 사람이기에 정공이랑 직접 비교하기 애매한 부분도 있다. 정공이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했다면 항백은 너무나도 명확하게 엑스맨 이미지라서(...). 대신 이것은 이미지일 뿐, 사기를 비롯해서 다른 역사 사료를 살펴보면 항백이 항우의 명을 따르지 않았던 불충의 사례는 찾기 힘들다. 거꾸로 생각하면 장량에게 받은 은혜를 잊지 않고, 서로 적대하는 입장임에도 불구하고 은혜를 갚기 위해 애썼던 의인(義人)이라고도 볼 수 있다. 항우가 몰락한 뒤에 투항한 것도 거꾸로 생각해서 마지막까지 항우를 따랐다고 해석할 수 있다.

유방이 경계했던 것은 정공의 기회주의였는지도 모른다. 차라리 항우가 몰락하기 전에 유방에게 귀순했다면 천수를 누렸을 것을(권력을 가진 이성왕도 아니고, 귀순자를 포용하는 관대한 유방이었으니 그냥 평범한 귀순자에 불과한 정공을 특별히 죽일 이유가 없다.), 어느 쪽이 이길지 지켜보다가 너무 늦은 것이다. 혹은 항우가 그렇게 우세한 상황에서도 주군의 대적을 놓아주기까지 했던 정공의 기회주의적 행태에 유방은 정공을 매우 위험한 인물로 지목했을 가능성도 높다.

사실 이득을 가져다주었음에도 의롭지 못하다는 이유로 버림 받는 경우가 삼국지연의에서도 등장한다. 마등황규조조를 죽이기 위해서 모의하자, 황규의 애첩 이춘향과 황규의 처남 묘택이 암살 모의 계획을 조조에게 전해준다. 이에 마등과 황규는 처형당했고, 조조는 묘택 역시 매부의 을 노리고 배신한 의롭지 못한 자라며 처형한다. 삼국지연의같은 소설만이 아니라 현실에서도 꽤 있다. 칭기즈 칸에게 자무카를 넘겨준 그의 부하들은 오히려 칭기즈 칸에게 처형당했고 제왕건을 꼬셔서 제나라멸망시킨 후승 역시도 진시황에게 죽었으며 심지어 조나라 멸망에 큰 도움을 주고도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은 곽개조차 최후가 비참했던 까닭에 쓰일대로 다 쓰이고 버린 것 아니냐는 말도 있다.

3. 창작물에서의 표현

  • 삼국지 조조전 온라인에서는 유방전에서 적군으로 등장한다. 병과는 전차, 능력치는 무력 72, 지력 77, 통솔 45, 민첩 69, 행운 52. 성격은 경솔.
    수수대전으로 유방이 패해 도망가는 상황에서 추격하며, 여기서 선택지가 떠서 천하의 대세를 말한다를 고르면 유방을 놓아주지만, 항우와의 친분을 과시한다를 고르면 유방을 죽인다. 유방을 놓아주고 적으로 계속 등장하고 고릉 전투에서 종리말로부터 고릉성 동문을 공격하라는 지시를 받아 공격하지만, 한군에게 사로잡힌다.
    파일:The Legend of Cao Cao Bian Zhang.png
    초상화는 변장과 돌려쓰는 공용 초상화.
  • 문정후 영웅 초한지를 비롯한 창작물에서는 좀 다르게 전개 되는데 유방이 천하를 통일한후 어느날 장수들이 몰래 쑥덕 거리는걸 보자 불안해져서 장량을 찾아가자 장량이 유방에게 폐하께서 가장 싫어하는 장수와 좋아하는 장수가 누구냐고 묻자 유방은 미워하는 놈은 옹치고 아끼는 장수는 정공이라고 대답한다. 그러자 장량은 폐하께서 천하를 통일하신건 모든 장수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의기투합해서 폐하를 위해 싸웠기 때문인데 폐하께서 아끼는 장수만 감싸고돌고 미워하는 장수에게는 죽음을 내려서 그런것이니 정공을 참수하라고 간언하자 즉시 정공을 참수하는 한편 옹치를 십방후에 봉하자 장수들이 후회하고 유방의 공명정대함에 감탄했다는 식의 이야기가 나온다.

[1] 일단 옹치에게 상을 내린 것은 다른 장수들의 불만을 해소하기 위한 장량의 계책이었다. 의도적으로 이용된 케이스로 봐야 옳겠으나 비록 정치적으로 이용은 되었어도 유방이 죽을 때까지 나름 대접해준 것도 명백한 사실이며 정공과 다르게 천수를 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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