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6-04-03 19:05:12

항백

項伯

(?~기원전 192년)

1. 개요2. 생애3. 평가4. 초한지5. 삼국지평화

1. 개요

초나라 명장 항연의 아들이며, 항량과 형제, 서초패왕 항우의 숙부이다. '백(伯)'은 자고,[1] 이름(본명)은 '전(纏)'이다. 조카와 마찬가지로 본명보다 자가 더 유명하다. 항연의 아들 3명 중에서 유일하게 본명과 자가 다 알려졌다.

초나라 귀족이며 항우의 숙부인 만큼 당연히 반진전쟁 전부터 항우 측의 핵심인사였지만, 홍문연을 비롯해 항우와 범증으로부터 유방의 목숨을 구하고 한제국의 개국공신이 되었다. 비꼬는 의미가 아니고 항백 역시 초한전쟁에서 살아남아 유방과 장량과의 인연 덕에 한제국의 신하가 되어 천수를 누렸다.

2. 생애

아버지 항연이 최후의 전투에서 전사하고, 초나라가 멸망하여 곤경에 처하자, 고향을 떠나 돌아다니다가 살인을 저질렀는데 유협을 모으며 잘 대해주고 있던 장량에게 몸을 의탁하였다. 이 당시 쌓은 장량과의 인연은 평생 이어진다.

이후 형제 항량과 조카 항우가 거병하자 찾아가서 동참하였으며, 초회왕 정권의 좌윤(左尹) 벼슬을 하였다.

유방이 무관을 뚫어 진나라를 점령하고, 항우가 뒤늦게 관중에 도착하면서 유방군과 항우군은 대립을 하게 된다. 항백은 이때 유방에게 의탁하고 있던 장량을 걱정하여, 유방의 진영을 방문하여 장량에게 "몸을 피하라"고 권고하지만 장량은 "유방을 저버릴 수 없다"며 거절했다. 항백은 장량의 주선으로 유방과 회견을 하고, 유방과의 회담을 주선한다. 이것이 바로 홍문연이다.

홍문연에서 항백의 중재 아래 유방과 항우는 회견을 하였으며, 유방이 항우에게 사과하여 두 영웅은 화해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때 범증은 유방을 놓치면 안 된다고 생각하여 항우의 사촌동생 항장을 보내서 칼춤을 추는 척하면서 유방을 살해하라는 계략을 실행한다. 하지만 이때 항백은 장량에게 부탁을 받고 항장의 칼춤을 상대한다며 자신도 칼춤을 추며 유방을 보호한다. 숙부와 조카가 칼춤을 가장한 대결을 한참 벌이다가, 번쾌가 난입하여 겨우 유방은 목숨을 건진다. 후에 이 일을 배경으로 조선에서 만들어진 춤이 바로 공막무다.

이후 촉으로 떠난 유방은 장량을 통해 항백에게 선물을 주고, 항백은 항우에게 부탁해서 파촉과 관중을 연결하는 입구인 한중 지역까지 유방에게 넘겨주었는데 이것이 엄청난 파급효과를 불러와 유방이 함양에서 출발한지 겨우 4달만에 다시 관중으로 튀어나와 3진왕들을 제압하고 구 진나라 지역을 완전이 확보할 수 있게 만들었다
  • 여담으로 이때 한중 지역을 유방에게 넘긴 일은 본의 아니게 중국 역사에, 나아가 인류 역사에 엄청난 한 획을 그은 셈이었는데, 유방이 개창한 나라 이름이 '한'이 된 이유가 바로 한중의 '한'을 따서 지은 것이기 때문이다.[2] 만일 항백이 유방에게 한중을 주자고 하지 않았다면 유방의 나라 이름은 '파' 또는 '촉'이 되었을 것이고, 지금쯤 중국의 글자는 '한자'가 아니라 '촉자' 또는 '파자', 중국의 민족은 '한족'이 아니라 '촉족' 또는 '파족'이 되었을 것이다. 그야말로 역사를 뒤바꾼 나비효과... 다만 '촉'과 '파'는 진나라가 사천에 진출하기 이전 그 지역에 살고 있었던 종족/국가의 이름이었기에, 꼭 이 두 글자로 나라 이름을 짓지 않았을 수도 있다.
기원전 204년, 구강왕 영포가 항우를 배신하자 항전은 항적의 명령을 받고 구강으로 가서 영포의 처자를 모두 죽였다. 이후 광무 대치 때 유방의 패드립[3]에 격분한 항적이 유태공을 정말로 솥에 삶으려고 하자 말려서 유태공을 구했다. 이유는 어차피 유방은 집안을 살피지 않으니 유태공을 죽여봤자 이득이 없다는 것이었으나 시체가 삶겨진 왕릉의 어머니의 처분 등을 생각하면 뒷북이랄지, 의도가 영 수상쩍은 면이 있다.[4]

항우가 멸망하자 사양후(射陽侯)에 봉해졌으며, "항씨를 자칭하고서는 유씨의 세상에서 살 수 없다"는 이유로 유방에게 허락을 받고 유씨 성을 하사받아 유전(劉纏)으로 개명한다.[5] 192년에 사망하고 그 아들 유수(劉睢)가 뒤를 이었지만 기원전 186년(여후 2년)에 죄를 지어 봉국이 몰수되었다.

3. 평가

유방 입장에서 보자면 정말 둘도 없는 은인으로 항백이 유방의 목숨을 구해준 것은 물론 노다지 땅인 한중까지 넘겨준 덕에 항우의 대항마 유방은 죽지 않고 살아남아 한중을 바탕으로 세력을 키워나갔고 본인의 아버지를 삶아죽이려는 걸 막아주기까지 했으니 큰 은인이다. 게다가 장량에 대한 우정과 의리를 위해 본인 입장에서는 최선을 다했으니 사적인 면으로만 보면 참 의리 넘치는 좋은 사람이다.

이 때문에 오랫동안 항백은 사적인 친밀 때문에 자신의 가문과 초나라의 장래를 망친 내부의 적, 초나라의 X맨 취급을 받아왔다. 한 나라의 원로급 왕족씩이나 돼서 범증의 계획에 사사건건 트집 잡고 스파이 노릇이나 하다가 마지막에 투항하는 것이 후대 사람들 입장에선 참 얄미워 보이기 좋은 위치였던 것이 컸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서 항백에게 이런 평가를 내리기에는 억울하다는 평가 역시 많아졌다.

이러한 평가 반전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소설로 알려진 『초한지』에서 언급되는 범증의 주장처럼 "유방만 죽이면 다 해결된다"처럼 말하는 전제부터가 틀렸다는 것. 초나라의 군주인 항우야말로 실책만 반복하며 항백의 도움으로 목숨만 겨우 건진 유방에게 천하의 주도권을 넘겨준 진정한 원흉이기 때문이다. 신안대학살 등으로 이미 민심은 항우 곁을 떠나 있었던 데다 공신 대접을 워낙 박하게 해 항우에게 불만을 품은 인물들이 워낙 많았기에 유방 하나만 어찌저찌 죽인다고 모든 게 해결될 일도 아니었다. 결과적으로 항우는 항백의 행동과는 상관없이 어찌 됐건 파멸할 위인이었으니 역사에 따른 결과만 보자면 우정과 의리를 지켜서 살아남은 셈이다.

또 다른 이유로, 항백이 트집을 계속 잡아온 것은 사실이지만 곰곰이 따지고 보면 항백의 발언들이 명분론적으로 딱히 틀린 말들도 아니었으며, 항백은 오히려 항우에게 대놓고 불충하지도 않았으며 항우의 몰락에 이르러서야 겨우 투항할 정도로 항우를 따랐다. 오히려 항우가 너무 명분을 무시하는 행동을 많이 시도해서 결과론적으로 항백의 행동이 X맨 짓이 되어버린 경우가 많다. 홍문연부터 18봉분까지 항백이 장량에게 사주받아 제안한 "관중에 들어와 진나라를 격파한 공신을 기습하거나 & 트집잡아 술자리에서 사적으로 죽이거나 & 아예 관중에서 내쫓아버리는 것은 도의에 어긋난다"는 딱히 틀린 말도 아닐 뿐더러, 광무 대치에서 유태공을 죽이는 것을 말린 것 또한 화자가 항백이라 수상해보이는 것이지 거기서 진짜 유태공을 죽였으면 전략적 우세가 명확한 유방이 공격을 머뭇거릴 족쇄가 풀려버리는 꼴이라 말리는 것이 맞았다.

결론적으로 당대의 상황으로 보나 역사적으로 보나 항우가 삽질만 골라 한 탓에 설령 일부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항백이 항우에게 맹목적으로 충성했다 쳐도 어차피 항우의 파멸은 예정된 것이고 와중에 항백은 의리와 신의를 중요시한 덕에 침몰하는 배에서 살아남아 승자의 편이 돼서 잘 먹고 잘 살다 죽은 인생의 승리자이므로 오히려 최고의 선택을 한 인물이다.

4. 초한지

대체로 각 매체에선 항우의 숙부이긴 하지만 역사에 따라 스파이 노릇을 해야하는지라 대부분 항량의 동생으로 설정되어 항량보다 격이 떨어진 대우를 받는다. 그래도 의리를 중시해 장량과의 둘도 없는 미담을 남긴 덕에 자기 살자고 나라를 배신한 인간말종 매국노로 묘사되는 작품은 거의 없고 대부분 우직하고 선량한 인물로 나오는 게 나름 위안이다.

고우영 초한지문정후 초한지에서는 해하 전투의 사면초가 때 항씨의 핏줄을 이어야 한다며 떠났지만 실제 역사의 항전은 성 갈았다. 실제로 초한전쟁 이후 항씨 유명인은 정말 가뭄에 콩 나듯이 찾기가 어렵다. 유씨 유명인은 세상에 차고 넘치는데 말이다...

요코야마 미쓰테루 항우와 유방에선 숙부 대접은 받지만, 서초 건국 이후 그냥 신하나 다름없게 된다. 게다가 정상적인 간언[6]을 해도 항상 폭언만 당한다. 물론 여기까진 여러 중신들과 세트로 욕을 먹은 것이지만 결국 마지막 해하결전에서 큰일이 터진다. 결전 전 이좌거가 귀순해오자 의혹이 들어 망설여도 일단 항적에게 추천했는데 항적은 기뻐하며 중용하지만 이좌거는 초군을 유인할 목적으로 온 첩자였다. 이에 항적은 이좌거 말이라면 무조건 믿던 것은 생각 않고 항전을 처벌하려고 든다. 처벌은 면했지만 항전은 자괴감에 빠지고 결국 이탈로 이어진다.[7]

영화 초한지: 영웅의 부활에서는 유방이 약속한 자식들과의 결혼을 통해 어떻게든 살아남으려 애를 쓰지만 여치의 주도하에 이루어진 토사구팽 작업으로 고향으로 돌아가던 중 암살 당한다. 물론 영화의 주제의식을 드러내기 위한 각색일 뿐이고 원래 역사에서는 잘먹고 잘살았다.

5. 삼국지평화

삼국지평화에서는 항우를 배반한 죄를 물어 안량으로 환생하게 된다. 그 후 관우로 환생한 항우에게 끔살.. 원래 삼국지평화가 그냥 14세기에 구전되던 민담 모음집이라 고증이고 나발이고 지켜지는 게 하나도 없어 그냥 후삼국지 같은 2차 창작계 소설로 보는 게 좋다. 초한전쟁기 중국인들은 전혀 동의하지 않을 유방 쫌팽이 인식이 이때부터 생겼던 것으로 보인다.


[1] 그런데 伯이라는 한자는 형제 중에서 첫째가 쓰게 되는데, 항우의 숙부라면 이미 항우의 친부이자 항백의 형이 있어서 문제가 된다.[2] 정확히는 한중에 흐르는 한수(漢水)에서 따왔다.[3] 유태공을 높이 내걸고 협박하자 '너랑 내가 의형제인 것도 잊었나 본데, 네놈 애비를 삶든 말든 알바 아니니 다 끓거든 한 사발 담아서 보내면 잘 먹어주마!'라고 일갈했다.[4] 항백이라 수상하단 소리를 듣는 거지 말리는 게 맞긴 했다. 그때 유태공을 죽였다면 가뜩이나 좋지않은 항우의 민심을 더욱 떨어뜨림은 물론이고, 초군 내에서도 반발이 심했을 것이다. 인질극의 의미가 없어지는 건 물론 손해만 볼테니 조카를 위해서라도 말리는 게 최선이다.[5] 이외에도 공신후자연표에는 없는 도후, 평고후, 현무후는 항씨였었으나 유씨 성을 하사받고 후가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본인 외에도 항씨 집안의 인물들을 꽤 포섭했던 듯. 그야말로 유방에겐 충신이 아닐 수 없다. 실제로 유방 최대의 적대세력 소속, 그것도 그 수장의 혈족이었고 꽤 늦게 합류했음에도 매우 후한 대우를 받았고 황제와 같은 성을 하사받아서 유씨에 합류했을 정도인데, 유방은 항백 덕분에 목숨도 구했고 아버지도 살릴 수 있었다. 심지어 딱히 뭔가 받을 목적으로 구해준 것도 아니다. 그저 있다면 장량에게 받은 은혜를 되갚는다는 것뿐? 어찌 되었든 유방 입장에선 항백은 분명히 은인 중의 은인이며 정말 각별히 여겼을 가능성이 높다.[6] 학살하지 말아라, 팽월보단 유방을 중시해라 등[7] 물론 역사적인 사실과는 매우 거리가 멀다. 실제 항우는 항씨성 가진 이들이라면 편애에 가깝게 중용했다. 항전은 유방의 목숨을 구해주고도 항우의 친족이라 처벌은 커녕 계속 우대를 받은 케이스다. 그리고 했다는 간언도 역사적 근거가 없다. 미쓰테루의 만화는 그 베이스가 정사가 아니라 소설이라 역사와 거리가 멀지만, 이런걸로 초한전쟁기를 배운 사람이 많아서 종종 역사적 사실이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