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3-26 10:03:14

제7대 루칸 백작 존 빙엄

<colbgcolor=#000><colcolor=#fff> 존 빙엄
John Bingham
파일:GxTWX8q.jpg
본명 리처드 존 빙엄
Richard John Bingham
작위 제7대 루칸 백작
7th Earl of Lucan
출생 1934년 12월 18일
영국 잉글랜드 런던 매릴번
실종 1974년 11월 7일 (당시 39세)
영국 잉글랜드
직업 은행가, 도박사
배우자 베로니카 메리 던컨 (1963년 결혼)
자녀 3명

1. 개요2. 생애3. 살인 및 실종4. 비슷한 사람

1. 개요

영국의 인물.

2. 생애

원래 지체 높은 백작 가문의 자제로, 본명은 리차드 빙엄이다.

루칸은 작위에 따라 하사받은 영지이며 아일랜드 더블린 근교에 있다. 빙엄 가문은 아일랜드로 이주한 잉글랜드인의 후손이며, 영국으로부터 아일랜드 지방의 백작위를 받았다. 하지만 존 빙엄은 가문의 역사와는 무관하게 런던 토박이었고, 백작이 되었을 때 이미 아일랜드는 사실상 독립한 상태라서 백작위는 그냥 허울이었다.[1]

귀족답게 이튼 칼리지를 졸업한 후, 은행원, 도박사 등 직업을 전전하다가 결혼하여 세 아이를 두고 안정된 생활을 하는 듯했으나...

3. 살인 및 실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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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칸의 살인 사건 현장.

루칸 부부는 1973년에 이혼하고 말았다. 루칸은 아이들의 양육권을 놓고 전 부인 베로니카와 갈등을 겪었고, 보모를 넣어준다는 구실로 부인을 감시하기도 했다. 이듬해 11월 7일 밤에 루칸은 술에 취해 부인의 집으로 쳐들어가 준비한 쇠파이프를 마구 휘둘렀다. 하지만 죽은 사람은 부인이 아닌, 자신이 부인을 감시하도록 보낸 29살의 보모 샌드라 리벳이었다. 이후 루칸은 이스트 석세스의 뉴헤이븐에 있는 지인인 이언 맥스웰스콧의 집으로 가서 이언의 아내 수잔에게 아내가 살인청부업자를 고용했다면서, 범행을 부인한 뒤에 다시 나가서 소식이 끊어졌다. 사건 발생 3일 뒤에 경찰은 뉴헤이븐 항구에서 루칸의 차량을 찾아냈고, 차량 안에는 살인에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쇠파이프와 혈흔이 나왔지만 루칸의 행방은 오리무중이었다. 이후 루칸의 친구들에게 '모든 정황 증거가 나에게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루칸의 편지가 발송되었다. 한편 법원은 1975년 루칸이 리벳을 살해했다고 판결한다.

경찰은 루칸을 잡기 위해 노력했으나 허탕을 쳤다. 귀족들이 그를 숨겨주고 있다고 의심했지만 이를 증명할 증거는 없었다. 심지어 자살을 염두에 두고 해안까지 샅샅이 뒤졌으나 못 찾았다. 이후 1999년에 법원에서 사망한 것으로 간주하였다. 하지만 법원의 판단과는 상관없이 루칸은 실종되어 생존여부가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루칸의 아들 조지 찰스 빙엄은 백작이 되지 못하고 있다가, 2016년 2월 3일 42년 만에 법원이 승계를 인정했다.[2]

2015년 루칸의 지인인 제임스 윌슨은 텔레그래프와의 인터뷰에서 루칸이 리벳을 죽인 것에 대한 충격으로 뉴헤이븐 절벽에서 자살했다고 주장했다. 또한 루칸의 아내이자 살해될뻔한 베로니카는 2017년 영국 ITV와의 인터뷰에서 루칸이 영국 해협의 페리에서 투신 자살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심지어 루칸의 지인인 존 아스피널의 장모인 오스본 남작부인은 2017년 인디펜던트와의 인터뷰에서 루칸이 아스피널이 키우는 호랑이의 먹이가 되었다는 황당한 주장을 하였다. 한편 루칸의 아들 조지 찰스 빙엄은 아버지가 무죄라 생각한다고 말해 욕을 먹었다.

4. 비슷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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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에 뉴질랜드에서 루칸과 용모가 비슷한 로저 우드게이트라는 사람이 발견되었다. 당사자는 강력히 부인했으나, 호사가들은 여전히 그를 루칸으로 지목하고 있다. 그가 루칸 백작이라고 지목된 계기는 다음과 같다.

1. 로저가 사용하는 영어는 전형적인 영국 상류 귀족들이 쓰는 언어이다. (이른바 Posh English를 구사했다는 뜻이다. 영국 영어 참조.)
2. 전문생존 방법으로 집 없이 차에서 생활하는 것으로 보아 영국의 명문학교인 이튼 스쿨을 졸업하고 영국군에서 복무한 루칸 백작일 가능성이 높다.
3. 루칸 백작의 빙엄 가문이[3] 우드게이트 가문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4. 로저는 영국아일랜드에 부동산을 소유했다고 했는데 빙엄 가문이 아일랜드에 큰 부동산을 가지고 있다.

이상 4가지를 근거로 로저 우드게이트의 이웃에 살았던 마가렛 헤이스라는 여자가 그를 루칸 백작이라 지목하고, 영국 경찰과 뉴질랜드 경찰에 루칸 백작을 찾았다고 제보한 것이다. 그러나 로저 우드게이트는 루칸 백작보다 10살이나 더 어리고 키도 5인치(12.7 cm)가 더 작다고 한다. 또 로저 우드게이트는 "내가 영국 출신인 것은 맞지만, 루칸 백작 사고가 발생하기 5개월 전에 이미 런던을 떠나 뉴질랜드에 정착했다." 하고 말했다. 그는 "엘비스 프레슬리가 살아있다거나 아돌프 히틀러가 살아있다는 소문처럼 루칸의 생존설도 떠도는 소문일 뿐"이라며, "루칸 백작이 사라진 해에 내가 뉴질랜드에 정착한 것은 어디까지나 우연의 일치"라고 주장했다.

그 이전부터 루칸 백작이라고 주장하거나 지목된 사람은 많았지만 모두 자작극이거나 다른 인물로 밝혀졌음을 생각하면, 우드게이트 역시 본인이 한 말처럼 그저 우연의 일치로 루칸 백작으로 지목받은 듯하다. 어쨌든 루칸 백작으로 지목된 로저 우드게이트씨는 사람들의 관심에 시달리다 못해 결국 어딘가로 떠나버렸고 현재에는 소재지를 알 수 없게 됐다고 한다.

그외에도 1974년 호주 경찰이 루칸과 닮은 사람을 체포했는데 알고보니 자신의 정체를 숨긴 영국 국회의원 존 스톤하우스였다. 또 2003년 인도 고아에 살고 있는 늙은 히피가 루칸이라는 주장이 나왔으나, 그는 영국 출신의 벤조 연주자였다. 2012년 루칸의 동생인 휴 빙엄은 형이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살고 있다고 주장했으나, 휴 빙엄이 실종되기 수년 전부터 형과 교류가 없었기 때문에 기각당했다. 심지어 살해당한 피해자 리벳의 아들 닐 베리먼은 루칸이 호주에서 불교 승려가 되었다고 주장했지만 이역시 사실무근으로 드러났다.


[1] 이 작위는 2번 만들어졌다. 첫 번째는 1691년 아일랜드에서 일어난 재커바이트 반란의 주도자인 패트릭 잘스필드(가톨릭 신자)를 위해 제임스 2세가 만들어준 작위다. 잘스필드는 윌리엄 3세에게 패한 이후 아내와 함께 프랑스로 갔고, 뤽상부르 휘하에서 종군하다가 란덴 전투에서 전사했다. (잘스필드의 아내는 제임스 2세의 사생아인 제임스 피츠제임스와 재혼했는데, 이 직계 후손이 스페인의 알바 공작이다.) 이후 윌리엄 3세가 작위를 몰수했지만, 1795년에 잘스필드의 조카손자가 2번째로 만들었다.[2] 기사 참조[3] 7대 루칸 백작의 본명도 리처드 존 빙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