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08-30 08:23:38

조간자

진(晉)의 정경(正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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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4169E1> 조(趙)씨 가문 11대 종주
간자
簡子
영(嬴)
조(趙)
앙(鞅)
아버지 조경자(趙景子) 조성(趙成)
생몰 기간 음력 기원전 ???년 ~ 기원전 476년
재위 기간 음력 기원전 517년 ~ 기원전 476년

1. 개요2. 생애3.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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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춘추시대 진(晉)나라의 경(卿)이자 조씨 가문 11대 종주. 이름은 '조앙(趙鞅)'. 전국칠웅 중 하나였던 조나라의 초석을 쌓은 인물로 진나라의 유력 씨족인 '육경' 의 하나인 조씨의 수장으로 정경으로 있을 때 제후들과 회합해 동생에 의해 쫓겨나 외지를 유랑하던 주 경왕을 호송해 복위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2. 생애

위(衛)나라제나라 편을 든 것을 보복하기 위해 위나라를 포위했다가 화의를 맺어 물러난 적이 있었는데, 화의 조건으로 위나라 백성 5백 호를 받았다. 그런데 그의 식읍인 진양이 좀 멀었던 관계로 이 5백 호를 한단에 주둔하던 같은 조씨 가문에 맡겼다. 3년 후 한단의 조오(趙午)에게 이 5백 호를 돌려달라고 요청하자 조오는 이를 승낙했다.

조오와 같이 있던 가족들이 "이 위나라 사람들 5백 호 때문에 위나라가 우리 영지인 한단을 옹호하는 것이니, 이들을 진양으로 보내면 위와의 관계가 끊기지 않겠냐"며 이를 반대했고, 결국 5백 호를 보내지 않았다. 그 대안으로 조오의 친족들은 제나라를 공격해서 제나라가 보복하러 오면 백성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그들을 진양으로 보내자고 했다. 조오가 약속을 지키지 않자 빡친 조앙은 조오를 진양으로 소환해 투옥했다. 이 때 조오를 수행한 섭빈이라는 사람이 명령을 거부하자 조앙은 조오의 영지인 한단에 "나 그냥 조오를 벌할 테니 너님들 알아서 후계자 세우던가ㅋ"이라는 일방적 통보를 주고 조오를 죽여버렸다.

결국 섭빈은 한단에서 반란을 일으켰고, 조오의 인척이었던 진나라의 다른 유력 가문인 중항씨(中行氏)[1]와 범씨(范氏)[2]도 조씨를 공격하자 조앙은 본거지인 진양으로 달아난다. 이로 인해 진나라에 내전이 일어났다. 초기에는 조씨가 불리했으나 방관하고 있던 지씨(智氏)[3], 한씨(韓氏)[4], 위씨(魏氏)[5]가 조씨를 도와 결국 조앙이 승리하고 중항씨와 범씨의 수장들이 국외로 도망간다. 이후 진나라의 상경이 되어 정권을 차지하니 조씨의 세력은 크게 강해졌다. 그의 뒤는 서자 무휼(조양자)이 잘 계승해 이어나가 결국 전국시대 조나라의 기반이 된다. 특히 이 진나라의 내전에서 제(齊)[6], 위[7], 정, 노나라가 조간자의 적인 범씨와 중항씨를 도왔으나 조씨, 지씨, 한씨, 위씨 네 가문의 연합을 이기지 못했다.

범씨와 중항씨와의 싸움에서 범씨의 가신인 공손방을 붙잡았는데, 부하들이 공손방을 죽이자고 하자 "그 주인을 위해 한 일인데 무슨 죄가 있겠느냐"며 용서하고 자기 휘하로 거둬들였다. 그래서 공손방은 조간자가 정나라와 싸우다가 위기를 맞고 깃발[8]을 정나라 군대에 빼앗기자 5백의 보병을 이끌고 그 깃발을 빼앗아서 보답했다고 한다.

중국 역사에서 유명한 명의인 진월인(편작)의 치료를 받은 적이 있다. 5일 동안 인사불성 상태가 된 적이 있었는데 이 때 편작이 조앙의 병을 진찰했다. 사기(역사책) 편작창공열전의 기록에 의하면 자신이 '상제가 있는 곳에 갔었다'며 대부들에게 임사체험 경험담을 길게 언급한 부분이 나온다. 옥황상제가 자신에게 잘해줬고 음악이 아름다웠다며 운을 떼더니 아래와 같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곰 한 마리가 나를 붙잡으려 하자 상제께서 내게 쏘라고 명하셔서 내가 곰을 쏘아 맞추어 곰을 죽였소. 또 큰 곰의 일격 큰 곰 한 마리가 오자 내가 또 쏴 맞추어 큰 곰을 죽이니 상제께서 기뻐하시며 대나무 상자 두 개를 내게 주셨는데 모두 보조 상자가 달려 있더군. 나는 한 어린아이가 상제 곁에 있는 것을 보았는데 상제께서 내게 적(翟) 땅의 한 마리를 주시면서 '네 아들이 장성한 후 이 개를 주라'고 하셨소.
이후 상제께서 '진이 장차 쇠락하다가 7대에 이르러 멸망하며, 영성(嬴姓)[9] 사람들이 범괴 서쪽에서 주나라 군을 격파하지만 그 땅을 차지하지 못한다. 때가 되면 내가 순의 후손인 맹요(孟姚)를 너의 7대손에게 시집 보내겠다'고 말씀하셨소." - <사기> 조세가

이 말을 한 얼마 후 어떤 사람이 조앙의 이야기를 하나하나 풀어주었는데 다음과 같다.
"곰 두 마리를 죽인 것은 앞으로 진나라에 대란이 있을 것인데 주군이 먼저 피해를 당할 것이므로 상제께서 주군에게 두 상경을 주살하도록 한 것입니다. 두 마리의 곰은 그들의 선조입니다."[10]
조앙이 보조 상자가 달린 대나무 상자에 대해 묻자 그는 "주군의 아들이 장차 적 땅에서 두 나라를 쳐서 이길 것입니다. 그 두 나라는 모두 동성(同姓)의 나라입니다"라고 대답했으며, 이어 어린아이와 적 땅의 개는 무엇을 의미하냐는 조앙의 질문에 "그 어린아이는 주군의 아들이고, 적 땅의 개는 대(代)나라의 선조입니다. 주군의 아들이 틀림없이 대나라를 차지할 것입니다. 주군의 후예는 정치를 개혁하고 오랑캐 복장을 입을 것이며 적 땅에서 두 나라를 합병할 것입니다."라고 대답했다.

이윽고 조앙이 그 사람의 정체를 묻자 그 사람은 일개 야인으로 상제의 명을 전한 것뿐이라며 사라졌다고 한다.

결국 이 예언대로 적(翟)나라 출신 첩 소생의 서자 조양자 무휼이 대나라와 지백을 멸망시키고 조씨의 땅으로 삼았으며 '정치를 개혁하고 오랑캐 복장을 입을 것'이라 예언된 조앙의 7대손이 바로 '호복기사'로 유명한 조나라 무령왕. 그리고 무령왕의 부인이 맹요이다.[11][12] 이 이야기는 아무리 봐도 각색된 이야기일 가능성이 높지만 일단은 엄연히 사기에 기록된 이야기다. 조나라의 초석을 쌓은 인물이 조간자 조앙이라서 그가 이후 그 후손들이 만들어가는 조나라의 미래를 듣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13]

공자는 그가 어질다는 말을 듣고 이 사람을 섬기려고 했지만 황하를 건너려 할 때 조간자가 휘하의 선비인 두명독과 순화를 죽였다는 소식을 듣고 발길을 돌렸으며, 제자 자공이 그 까닭을 묻자 전에는 어진 선비인 두명독과 순화의 말을 듣고 정치를 했던 사람이 자신의 권세가 강해지자 그들을 죽이고 정사를 펼치니 이는 의롭지 못한 행동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3. 기타

사실 조간자는 공자의 이상과는 거리가 먼 인물로 춘추시대보다는 전국시대의 인간형에 더 가까우며, 공자의 일대기를 다룬 애니메이션 <공자전>에서 조간자가 두명독과 순화를 직접 처단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 소식을 들은 공자는 비가 와서 넘치는 황하 건너편을 바라보며 조간자를 비난한다.

중산의 사람 잡아먹는 이리를 만난 <동곽 선생 이야기>[14]에 동곽 선생의 제자로 출연하신다. 모기조차도 안 잡을 정도로 살생을 싫어하는 동곽 선생은 자기 제자인 조간자가 중산국을 이미 토벌해놓고도 함부로 살인을 하고 다닌다는 얘기에 격분해 노구를 이끌고 직접 중산국을 방문했는데, 사실 조간자는 중산국의 사람 잡아먹는 이리를 사냥하러 다니고 있는 것뿐이었다. 그래도 제자가 이리를 죽이는 것조차 못마땅했던 동곽 선생은 이리를 조간자로부터 숨겨주었고, 뒤는 우리나라의 <나그네와 호랑이>에 나오는 그대로.

훗날 5호16국 시대 석호가 물에 잠겨 있는 그의 무덤을 도굴하려했으나, 특수 시설 때문에 아무리 물을 빼도 계속 잠겨서 포기했다고 한다.


[1] 당시 수장은 중항문자.[2] 당시 수장은 범소자.[3] 당시 수장은 지문자.[4] 당시 수장은 한간자.[5] 당시 수장은 위양자.[6] 당시 제나라 군주는 안영의 보좌를 받았던 경공. 다만 이 무렵은 안영이 죽은 뒤다.[7] 이 당시 위나라 군주는 논어의 한 편에도 이름을 올린 영공. '위영공' 편 도입부에서 공자에게 진법에 대해 물은 그 사람이다.[8] 조간자는 특이하게도 깃발에 말벌을 그려넣었다. 그래서 그 깃발을 '봉기(蜂旗)'라고 불렀다.[9] 조씨는 성이 영(嬴)이다.[10] 위에 나왔듯 중항씨와 범씨가 조간자를 공격했고 조간자는 다른 가문들과 힘을 합쳐 막아냈다.[11] 그리고 이 맹요와 무령왕 사이에서 태어난 이가 조혜문왕이다.[12] 또한 여기선 언급되지 않았지만 진나라가 7대에 이르러 멸망한다고 하였는데 조간자 재위기에 진나라 군주는 진경공과 진정공이었다. 그리고 진나라 마지막 군주인 진정공(40대 군주)는 이들과 6~7세대 정도의 차이가 있다.[13] 참고로 조양자 시절의 대나라 왕은 조양자의 누이와 부부관계였다고 한다. 그것 외의 얘기가 없어서 조간자 생전에 시집간 것인지 조양자가 시집보낸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조양자의 누이의 비참한 최후[15]를 결부해보면 이 시대상을 짐작해볼 수 있다.[14] 우리나라의 토끼의 재판과 거의 같은 이야기다. 구해줬더니 은혜를 원수로 갚는 이리의 이야기. 여기서도 제3자의 명쾌한 판결에 의해 동곽 선생은 목숨을 건지고 이리에게 복수한다. 이 경우는 제3자가 토끼가 아닌 인간 노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