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장관급 특명전권대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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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49년 10월 11일, 최초의 대한민국 주미국대사관 외교관료들. 왼쪽부터 김세선 참사관, 장면 초대 주미대사, 한표욱 공사, 최운상 영사. |
주미대사관의 공관장으로, 직제상 차관급이다. 다만, 주요 6개국[1] 대사와 함께 장관급 예우를 받는다.[2] 정식 명칭은 주아메리카합중국 대한민국 특명전권대사[3]이다.
대한민국 외교관들 중 요직 중의 요직으로 최주요 동맹이자 세계 최강의 초강대국인 미국에 파견되기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장관급 이상의 의전[4]을 받는다. 정치인이나 경제인[5] 학자[6] 혹은 대통령 측근이 임명되어 가는 경우도 있을 거라 생각하지만 한미동맹과 대미외교의 중요성이 남다른만큼 그냥 전문 외교관 출신이 가는 경우가 더 많다.[7] 이렇게 중요한 자리이기에 정통 외교관들이나 실세 관료들의 커리어패스를 쌓는 주요 코스가 되기도 한다. 당시 몇몇 관계자 말로는 '꼭 그런 이유가 아니라도 주미대사 자체가 위상과 인기가 높은 자리이니 외교부장관과 주미대사 둘 중에 고르라면 주미대사를 택한다'는 말이 떠돌 정도였다. 사실 완전히 루머는 아닌 것이 외무부장관을 역임하고 이후에 주미대사를 한 사람이 한승주 등 매우 많으며 심지어 국무총리까지 올라갔음에도 나중에 미국으로 가는 사람도 이홍구, 한덕수 등 두 명[8]이나 됐다. 과거 권위주의에 물든 한국 사회에서 높은 지위에 있다가 낮은 지위로 가는 일이 없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주미대사 자리가 결코 장관보다 못하지 않았다는 뜻이 된다.
과거 주미대사관에 영어 할 줄 아는 사람은 대사밖에 없다는 말이 돌 정도로 대사관에 이런저런 배경으로 온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기본적으로 대사관에 근무하면 나랏돈으로 해외에서 생활하는 장점이 있고, 미국 내 인사나 실력자들과 접촉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기회를 누릴 수 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이런 사람들이 본국에서 정치인이 오면 자신을 주미대사관에 꽂아준 사람이 미국 상, 하원의원이나 국무장관 같은 주요 각료 등과 사진 찍을 기회를 마련하기 위해서만 움직이고, 정작 할 일은 소홀히 한다는 평가가 많았다.[9]
2. 명단
||<table align=center><rowcolor=#fff><table bgcolor=#fff,#1f2023><table bordercolor=#003764><rowbgcolor=#003764> 정부 || 대수 || 이름 || 임기 ||
이승만 정부 | 초대 | 장면 (張勉) | 1949년 2월 2일 ~ 1951년 2월 00일 |
2대 | 양유찬 (梁裕燦) | 1951년 4월 30일 ~ 1960년 4월 29일 | |
허정 권한대행 체제 | 3대 | 정일권 (丁一權) | 1960년 6월 8일 ~ 1960년 10월 00일 |
장면 내각 | 4대 | 장이욱 (張利郁) | 1960년 12월 5일 ~ 1961년 6월 00일 |
장도영 내각 | 5대 | 정일권 (丁一權) | 1961년 6월 30일 ~ 1963년 4월 00일 |
김현철 내각 | 6대 | 김정렬 (金貞烈) | 1963년 6월 14일 ~ 1964년 10월 00일 |
박정희 정부 | 7대 | 김현철 (金顯哲) | 1964년 12월 15일 ~ 1967년 10월 00일 |
8대 | 김동조 (金東祚) | 1967년 11월 9일 ~ 1973년 12월 00일 | |
9대 | 함병춘 (咸秉春) | 1974년 2월 1일 ~ 1977년 4월 00일 | |
10대 | 김용식 (金溶植) | 1977년 5월 13일 ~ 1981년 6월 00일 | |
전두환 정부 | 11대 | 류병현 (柳炳賢) | 1981년 9월 21일 ~ 1985년 11월 00일 |
12대 | 김경원 (金瓊元) | 1985년 11월 9일 ~ 1988년 4월 00일 | |
노태우 정부 | 13대 | 박동진 (朴東鎭) | 1988년 7월 5일 ~ 1991년 3월 00일 |
14대 | 현홍주 (玄鴻柱) | 1991년 4월 11일 ~ 1993년 4월 00일 | |
문민정부 | 15대 | 한승수 (韓昇洙) | 1993년 6월 23일 ~ 1994년 12월 23일 |
16대 | 박건우 (朴健雨) | 1995년 1월 17일 ~ 1998년 4월 27일 | |
국민의 정부 | 17대 | 이홍구 (李洪九) | 1998년 4월 28일 ~ 2000년 8월 1일 |
18대 | 양성철 (梁性喆) | 2000년 9월 5일 ~ 2003년 4월 16일 | |
참여정부 | 19대 | 한승주 (韓昇洲) | 2003년 4월 20일 ~ 2005년 2월 15일 |
20대 | 홍석현 (洪錫炫) | 2005년 2월 22일 ~ 2005년 9월 23일 | |
21대 | 이태식 (李泰植) | 2005년 10월 14일 ~ 2009년 2월 27일 | |
이명박 정부 | 22대 | 한덕수 (韓悳洙) | 2009년 3월 9일 ~ 2012년 2월 17일 |
23대 | 최영진 (崔英鎭) | 2012년 3월 8일 ~ 2013년 5월 28일 | |
박근혜 정부 | 24대 | 안호영 (安豪榮) | 2013년 6월 5일 ~ 2017년 10월 20일 |
문재인 정부 | 25대 | 조윤제 (趙潤濟) | 2017년 11월 14일 ~ 2019년 10월 20일 |
26대 | 이수혁 (李秀赫) | 2019년 10월 25일 ~ 2022년 5월 26일 | |
윤석열 정부 | 27대 | 조태용 (趙太庸) | 2022년 6월 11일 ~ 2023년 3월 29일 |
28대 | 조현동 (趙賢東) | 2023년 4월 12일 ~ 현재 |
[1]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유엔, OECD[2] 반면에 주한미국대사는 인사에 따라 다르다. 우리나라처럼 대상 및 급수를 획일화하기는 힘들지만, 도널드 트럼프 정권기의 해리 해리스 대사는 1급국가인 호주대사에서 한국대사로 변경된 것으로 볼 때 최상위 대사급이라고 할 수 있다.[3] 직인에 새겨진 직책을 따른다.[4] 이는 주변 3강국과 UN 대사들도 마찬가지지만, 미국의 위상이 다를 수밖에 없기에 스포트라이트를 더 받는다.[5] 참여정부 당시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이 짧은 기간이나마 주미대사로 발령된 바 있다.[6] 문재인 정부 초대 주미대사를 지낸 조윤제 현 한국은행 금통위원이 이러한 경우다. 또한 한승주 전 외무부 장관도 교수 출신으로 김영삼 정부의 외부무장관과 노무현 정부의 주미 대사를 역임했다.[7] 전임 이수혁 대사 역시 정통 외무관료 출신으로, 재직 당시 외교부 최고참급(외무고시 9회)이었는데, 당시 차관들보다 10기수 가까이 선배이며, 외교부 내에서 이수혁 대사보다 선배인 사람은 정의용 장관(외무고시 5회)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미국 외교는 시스템에 의해 굴러가고 그 정점에 미국 국무부가 있는지라 국무부 외무관료들과 합을 맞춘 경험이 많은 외교관들이 유리할 수밖에 없기 때문.[8] 물론 대사를 거쳐 장관, 총리나 유력 정치인의 테크를 밟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대표적으로 초대 주미대사인 장면, 국회의장과 국무총리를 모두 역임한 정일권, 기타 김정렬, 한승수 등.[9] 심지어 이런 약속을 잡기 위해 겨우 5분 만나 사진 한 장 찍을 일정을 만들려고 무리수를 두다가 국익에 해가 될 약속도 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 정도로 주미대사관 근무는 매력적인 자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