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 사건 사고 요약표 | |
<colcolor=#000,#dcdcdc> 발생일 | 1980년 2월 8일 |
유형 | 테일 스트라이크, 조종사 과실 |
발생위치 | [[영국령 홍콩| ]][[틀:국기| ]][[틀:국기| ]] 카이탁 국제공항 |
탑승인원 | 승객: ???명 |
승무원: ??명 | |
생존자 | 탑승객 전원 생존 |
기종 | 보잉 747-209B |
운영사 | 중화항공 |
기체 등록번호 | B-1866[1] |
출발지 | [[스웨덴| ]][[틀:국기| ]][[틀:국기| ]] 스톡홀름 알란다 국제공항 |
1 차 경유지 | [[사우디아라비아| ]][[틀:국기| ]][[틀:국기| ]] 킹 압둘아지즈 국제공항 |
2 차 경유지 | [[영국령 홍콩| ]][[틀:국기| ]][[틀:국기| ]] 카이탁 국제공항 |
도착지 | [[대만| ]][[틀:국기| ]][[틀:국기| ]] 타이베이 중정 국제공항 |
사고 8개월 전 찍힌 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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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80년 2월 8일에 일어난 항공사고이다.2. 사고 발생
1980년 2월 8일, 중화항공 009편은 카이탁 국제공항에 접근을 시도한다. 하지만 착륙을 할때 기수를 너무 드는 바람에 테일 스트라이크가 일어났다. 하지만 수리를 너무 부실하게 하는 바람에 결국 22년후 공중분해 되었고 결국 탑승자 225명은 전원 사망하는 비극을 겪는다.3. 테일 스트라이크 사고 이후
테일 스트라이크 수리 1개월 후, 로스앤젤레스 국제공항에서 찍힌 B-1866. |
이 당시 홍콩 카이탁 국제공항의 보잉 관계자는 홍콩에서 초기점검을 받을 것을 권했지만, 중화항공은 사고기에 승객을 전혀 탑승시키지 않은 채 여압이 필요없는 정도의 저고도를 유지하며 타이완 타오위안 국제공항으로 귀환시켜 단 하루만에 응급조치만 실시했다. 그로부터 3개월 뒤인 1980년 5월 23일부터 26일까지 중화항공 자체 기술진에 의해 최종 수리 작업을 받았다.
보잉사의 보잉 747-200 수리 매뉴얼(Structure Repair Manual)에 따르면 테일 스트라이크 정도에 따라 다르지만, 심하게 파손된 경우 파손된 부분을 제거해서 새 것으로 교환해야 했다. 그러나 파손된 부위가 너무 커서 어려움이 따르자 보잉의 현지 서비스 팀인 FSR에게 수리매뉴얼(SRM)에 제시한 방법 대신 파손된 부위를 제거하지 않고 그 위를 덮어 씌우는 방법을 사용하는 것에 대해 자문했다. 하지만 보잉 측에서 아무런 반응이 없자, 중화항공 측은 파손된 부위를 제거하지 않고 그 부분을 왁스로 비벼 평탄하게 만든 뒤 그 위를 덧붙이는 방법으로 수리해 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정비사는 보잉의 수리 매뉴얼에 따라 고쳤다고 사인했다. 그러나 보잉 측은 당시에 중화항공 측으로부터 그런 연락을 받은 적이 없다고 부인했다.
4. 관련 문서
- 중화항공 611편 공중분해 사고 - 이 사고의 불량수리가 원인이 된 사고
- 일본항공 115편 불시착 사고
- 일본항공 123편 추락 사고
[1] 번호는 1999년 1월에 변경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