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19 00:50:09

진백강

<colbgcolor=purple><colcolor=#fff> 진백강
陳百強[1]|Danny Chan
파일:a9c6f2f5cddcfad4900670be1aa3a560.jpg
본명 진백강 (陳百強, Danny Chan Pak-keung)
출생 1958년 9월 7일
영국령 홍콩 홍콩섬 포쿡람
사망 1993년 10월 25일 (향년 35세)
홍콩 홍콩섬 포쿡람 퀸 메리 병원
국적
[[영국|]][[틀:국기|]][[틀:국기|]](
[[틀:국기|]][[틀:국기|]][[영국령 홍콩|]])
원적지 광둥성 타이산시
신체 175cm | A형
언어 광동어, 만다린, 영어
학력 미국 샌프란시스코 음악원 제적
별명 Danny仔, 小妖, 情歌王子
가족 아버지 진붕비(陳鵬飛) 1923~2019
어머니 요옥매(姚玉梅)
직업 가수, 작사가, 작곡가, 배우
데뷔 1979년 앨범 'First Love'
활동기간 1979년 ~ 1992년
대표곡 일생하구(一生何求)[2]
심애저니(深愛著你)
편편희환니(偏偏喜欢你)
금소다진동(今宵多珍重)

1. 개요2. 생애3. 앨범4. 영화5. 여담

[clearfix]

1. 개요

홍콩의 가수이자 배우.

2. 생애

1980년대를 대표하는 중화권 남가수 중 한명이었다. 한국에는 장국영의 옛 절친이자 라이벌로, 그리고 영화 '가을날의 동화(1987)'에서 종초홍의 옛 남자친구 빈센트 역으로 알려져있다.

1980년대 가수 겸 배우로서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으나, 1980년대 후반부터 우울증에 시달리다가 알코올, 약물 중독으로 1992년 5월 18일, 자택에서 의식을 잃은 채 발견되었고 홍콩의 퀸 메리 병원에 입원했지만, 17개월 동안 혼수상태에 빠졌고 1993년 10월 25일 향년 35세의 나이로 일생을 마쳤다.

3. 앨범

  • 1979, First Love (Side A)/Tears for You (眼淚為你流) (Side B)
  • 1980, No More Tears (不再流淚)
  • 1980, Dating with Danny (陳百強與你幾分鐘的約會)
  • 1981, So Have You (有了你)/Sunflower (太陽花)
  • 1982, Danny Chan-Breakthrough Collections (陳百強突破精選)
  • 1982, Talk (傾訴)
  • 1983, Just Loving You (偏偏喜歡你)
  • 1984, Danny '84 (百強84)
  • 1985, Danny Chan-The Greatest Hits (陳百強精選)
  • 1985, Deeply in Love with You (深愛著你)
  • 1986, When I Think of You (當我想起你)
  • 1986, Gaze (凝望)
  • 1987, Chi Sam Ngaan Noi Tsong (痴心眼內藏)
  • 1987, One in My Dream (夢裡人)
  • 1988, San Sin Ya Yee Man (神仙也移民)[3]
  • 1988, Mo Sing Sing Yau Sing (無聲勝有聲)
  • 1988, Winter Warmth (冬暖)
  • 1989, Life Expectations (一生何求)
  • 1990, Wait for You (等待您)
  • 1991, Love in L.A.
  • 1991, Just Because I Love You (只因愛你)
  • 1992, Dearest You (親愛的您)

4. 영화

  • 1980, 갈채 (喝采)
  • 1981, 실업생 (失業生)
  • 1984, 성탄쾌락 (聖誕快樂)
  • 1986, 팔희임문 (八喜臨門)
  • 1987, 가을날의 동화 (秋天的童話)

5. 여담

  • 둘도 없는 절친이었던 장국영과는 데뷔 이후 서로 사이가 틀어져 한 영화에 출연하면서도 촬영 당시 한 컷도 서로 같이 찍지 않는 웃지 못할 해프닝도 있었다고 한다. 이 일화는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서 소개된 적이 있다.
    진백강과 장국영은 서로 다양한 작품에서 같이 캐스팅되어 여러가지 이야기를 서로 나누면서 친해졌는데, 문제는 장국영이 뭔 팩폭 할지 항상 두려운 토크쇼(...). 진백강과 장국영이 같이 토크쇼에 나갔을 때, 진백강이 자신의 피부는 타고났기에 관리하지 않고, 화장품도 거의 안쓴다고 언급한다. 그러자 장국영이 아니라고, 진백강을 가까이서 보면 화장도 잘하고, 매일 피부를 위해 케어를 받는다고 하자 진백강은 굉장히 부끄럽기도 하고, 화가 났다고 한다. 장국영도 별거 아닌데 화를 내는 건 너무하는 거 아니냐. 라고 하면서 서로 절교했다고 한다. 심지어 진백강 주연, 장국영 조연으로 캐스팅되었던 《성탄쾌락》 때는 진백강이 여러가지 조건을 내달았다고 한다. 그 중에서는 "절대 두 사람의 모습을 동시에 잡지 말 것", "같이 찍는 것은 근거리든 원거리든 무조건 안 됨", "설정상 두 캐릭터가 만나야 하는 장면엔 대역을 쓸 것" 등등이 있었다고 한다. 여튼 《성탄쾌락》은 당해 가장 관객이 많이 든 히트작인데 이런 비하인드가 있었다.[4]
  • 홍콩 콜로세움(홍함체육관)에서 첫 단독 콘서트를 가졌으며 [5], 1980년대에 공연을 가진 최연소 남자 가수(25세)의 기록도 세웠다.
  • 1987년 8월 3일 환락금소(歡樂今宵)에 출연해 관정걸과 미창적가(未唱的歌)를 불렀다. 진백강은 노래 앞부분 가사인 '每一點勝利成為方向(늘 조금씩 승리로 향하고 있어)'를 부를 때 'V(Victory)'를 표현하기 위해 엄지와 검지를 교차한 것으로 추정된다.

  • 1988년 9월 16일에 열린 서울올림픽 경축전야대축전(1988. 9. 16.)에 참가했다.
서울올림픽 경축전야대축전 1부 영상
서울올림픽 경축전야대축전 2부 영상
  • 2005년 11월 8일에 홍콩 우정국에서 5명의 가수(황가구, 진백강, 나문, 장국영, 매염방)를 기리는 특별우표인 홍콩유행가성(香港流行歌星, Hong Kong Pop Singers)을 발매했다.


파일:CC-white.sv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문서의 r739에서 가져왔습니다. 이전 역사 보러 가기
파일:CC-white.sv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다른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 펼치기 · 접기 ]
문서의 r739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1] 광동어:찬빡컹, 보통화:천바이창[2] 원곡: 왕걸의 점기저일사(惦記這一些)[3] 동명의 타이틀곡이 제목 그대로 신선이 발을 헛디뎌 홍콩에 떨어졌는데, 맛있는 것도 많고, 예쁜 여자도 많고 그래서 홍콩으로 이민을 가기로 결단했다는 내용으로, 이 노래가 나온 현실은 정반대로 중영연합성명에 의해 홍콩이 1997년에 반환된다고 하자 홍콩에서 이민 붐이 일어난 시기였다. 이민하기로 결단했다는 부분의 가사에서 決斷(kyut3 dyun6, 큇뒨)이 16번 나오는 후크송이다. 리믹스로 6분짜리 버전도 있다.[4] 그러다 보니 마지막 크리스마스 파티 장면에서는 감독이 여기만큼은 둘이 같이 나와달라 간곡히 부탁했음에도 둘은 철저히 벽을 세우며 거절했는데 결국 촬영 장소는 비슷하나 둘이 있는 장면은 찍지 않아 서로 만나는 모습 없이 다른 장면에 나왔고, 심지어 마지막 단체 사진을 찍는 장면에서는 장국영 혼자만 카메라 뒤에서 술에 취에 자는 모습으로 등장하도록 설정하게 된다.[5] 홍콩 가수들한테는 꿈의 무대라고도 볼 수 있을만큼 상징성이 큰 공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