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16 14:18:11

진형구

파일:검찰 CI (흰색).svg
대검찰청 공공수사부장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word-break: keep-all"
{{{#fff {{{#!folding [ 펼치기 · 접기 ]
{{{#373A3C,#DDD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대검찰청 공안부장 (1973~2019)
초대
설동훈
제2대
강우영
제3대
김태현
제4대
한옥신
제5대
김태현
제6대
박준양
제7대
정치근
제8대
이창우
제9대
최상엽
제10대
정경식
제11대
이건개
제12대
변재일
제13대
최환
제14대
안강민
제15대
최병국
제16대
주선회
제17대
진형구
제18대
김각영
제19대
이범관
제20대
박종열
제21대
이정수
제22대
이기배
제23대
홍경식
제24대
강충식
제25대
권재진
제26대
이귀남
제27대
이준보
제28대
박한철
제29대
노환균
제30대
신종대
제31대
임정혁
제32대
송찬엽
제33대
오세인
제34대
정점식
제35대
권익환
제36대
오인서
제37대
박찬호
대검찰청 공공수사부장 (2019~현재)
제37대
박찬호
제38대
배용원
제39대
이정현
제40대
김유철
제41대
박기동
제42대
김태은
}}}}}}}}}}}}}}}

秦炯九
1945년 9월 24일 ~ ([age(1945-09-24)]세)
1. 개요2. 약력3. 생애4. 논란 및 사건 사고5. 여담

1. 개요

대한민국검사 출신 법조인이다. 제17대 대검찰청 공안부장과 대전고등검찰청 검사장 등을 역임했다.

2. 약력

3. 생애

1967년 서울대학교 전기공학과를 졸업한 후 1970년 제11회 사법시험에 합격하였고 사법연수원을 1기로 수료했다. 검사에 임용된 이후에는 주로 기획통으로 활약했다.

1975년 2월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형사법 전공으로 법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1989년 서울지방검찰청 서부지청 형사2부장, 1990년에 서울고등검찰청 검사, 1991년 서울지방검찰청 총무부장, 1992년 서울지방검찰청 조사부장, 1993년 서울지방검찰청 제2차장검사, 1994년 서울지방검찰청 서부지청장이 되었다. 1995년에 검사장으로 승진하여 대검찰청 공판송무부장을 거쳐 1997년에 대검찰청 감찰부장이 되었고, 1998년 김대중 정부에서 대검찰청 공안부장으로 영전했다. 공안경력 없이 1998년에 대한민국 대검찰청 공안부장으로 발탁된 배경에 김태정 검찰총장이 주창한 "`新공안'을 뒷받침하려는 게 아니냐"는 관측도 있었다. 이때 "지하철 노조 파업을 깔끔하게 처리하여 신임을 얻었다"는 평가를 받았으며 검찰경복고등학교 인맥의 좌장격으로 탁월한 친화력을 지녀 언론계와 정계에 지인이 많다.

1999년 대전고등검찰청 검사장이 되었으나, 6월 7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했던 조폐공사 파업 유도 발언으로 김태정 법무부장관이 지휘 책임을 물어 해임되면서 진형구도 발언 당사자로서 대전고검장에서 직권 면직되었다.

진형구는 2002년 12월 27일에 "평생 법조인으로 쌓은 경험을 앞으로는 언론인으로서 사회에 보답하고 싶다"며 "중국은 우리와 가장 가까운 이웃이고 무역, 유학생 진출 등에서 최대 교류국가인데도 너무 모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인민일보와 제휴를 맺은 김에 중국을 제대로 알려야겠다고 판단했다"고 하면서‘차이나 라이프’라는 중국관련 종합전문지 발행인이 되었으나 실제로 발간된것은 확인되지 않는다.

4. 논란 및 사건 사고

조폐공사 노조 파업유도 의혹 사건을 수사했던 검찰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훈규)에 의해 1998년 9월 강희복 조폐공사 사장에게 옥천, 경산 조폐창의 조기 통폐합을 요구하며 "만일 노조파업이 일어나면 불법 파업인 만큼 강경대응하겠다"고 약속한 직권남용, 업무방해와 노동관계조정법 위반 혐의로 1999년 7월 28일 구속되었고, 한달정도 후 보석을 허가받았다.

조폐공사 파업유도 사건에 대해 국회에서 특별검사법이 통과되면서 1999년 11월 4일 검찰출신 변호사인 허용진 특별수사관에 의하여 1차 조사가 이뤄진데 이어 11월 8일 강원일 특별검사에 의해 직접 조사를 했다.

재판이 진행되어 대법원에서 노동관계조정법만 유죄, 직권남용죄와 업무방해죄에 대하여 최종 무죄를 선고받았다.

5. 여담

  •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그의 사위이다. 아들 진동균도 검사로 근무했지만 후배 검사를 성추행해 징역형이 확정되었다.
  • 법조인으로는 드물게 공대(서울대 전기전자학과) 출신이며 재직 당시 ‘검찰 3대 천재’로 불릴 정도로 두뇌 회전이 빨랐다고 한다. 1990년대 《조선일보》 사회부 법조 출입기자였던 최병묵 전 《월간조선》 편집장은 진 전 검사장에 대해 “지금까지 내가 만났던 사람 중 가장 기억력이 좋은 사람 중 하나”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