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2-02-03 05:46:11

찰스 브랜던

Charles Brandon
The Duke of Suffol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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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른쪽의 남성. 왼쪽은 세번째 아내인 메리 튜더.
이름 찰스 브랜던 (Charles Brandon)
출생 1484년
사망 1545년 8월 22일 (60-61세)
잉글랜드 왕국 서리 길퍼드
배우자 마거릿 네빌 (1507년 결혼 / 1507년 무효화)
앤 브라운 (1508년 결혼 / 1511년 사망)
메리 튜더 (1515년 결혼 / 1533년 사망)
캐서린 윌로비 (1533년 결혼)
자녀 앤, 메리, 헨리, 프랜시스, 엘레노어, 헨리, 헨리, 찰스
아버지 윌리엄 브랜던 경 (Sir William Brandon)
어머니 엘리자베스 브로인
형제 윌리엄, 앤

1. 개요2. 생애3. 미디어 믹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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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헨리 8세의 오랜 친구이자 매부. 헨리 7세의 기수인 윌리엄 브랜던과 엘리자베스 브루인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다.

헨리 8세의 총애를 받아 제1대 서포크 공작(1st Duke of Suffolk)의 작위를 받고 이어서도 추밀원(Privy Council)의 최고위(Lord President)와 섭정(Lord Steward)도 맡았고 헨리 8세의 명령을 받아 전쟁에 나설 때는 장군으로서 군대를 이끄는 등 당대 잉글랜드에서 큰 영향력을 가졌던 사람이다.

2. 생애

윌리엄 브랜던이 헨리 7세가 왕위를 얻은 보즈워스 전투에서 전사했기 때문에 헨리 7세의 보호를 받았다. 공신의 자제라서 당시 왕자였던 헨리 8세와 같이 성장시켰으며 자연스럽게 어릴적부터 친구가 되었다. 외모는 키도 크고 매력적인 미남이었다고 한다. 헨리 8세보다 덜하지만 결혼을 많이 했는데, 첫째 부인인 마가렛 모티머와는 혼인 무효를 선언했고, 2번째 부인 앤 브라운은 결혼 3년만에 사망했다.

3번째 부인은 메리 1세의 고모이자 헨리 8세의 여동생인 메리 튜더 공주. 그녀가 프랑스루이 12세와 사별한 뒤 프랑스에서 비밀리에 결혼했다. 찰스 브랜던도 미남이었지만 메리 튜더는 상단의 초상화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당대 최고의 미녀이었기에 연애결혼으로 보인다. 헨리 8세는 자신의 허락을 받지 않은, 중죄 행위나 다름없는 이 행동에 길길이 날뛰었으나 토머스 울지 추기경의 중재와 여동생에 대한 애정으로 벌금을 내리는 것으로 그들을 용서했다. 1515년 5월 13일에 그리니치 궁전에서 공식적으로 결혼했다.

찰스 브랜던과 메리와의 사이에서는 아들 헨리, 딸 프랜시스와 엘리너 등 3명의 아이가 태어났다. 메리와 브랜던의 자식들은 헨리 8세의 조카로서 튜더 왕가의 혈통을 잇게 되었다. 브랜던의 후손들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사람은 바로 딸 프랜시스[1]가 도싯 후작 헨리 그레이와 결혼해서 낳은 장녀이자, 후대에는 9일 여왕으로도 잘 알려진 브랜던의 외손녀인 제인 그레이다.

아내 메리아라곤의 캐서린 문제로[2] 헨리 8세와 여러가지로 충돌을 빚고 궁을 나가 죽은 뒤에는, 캐서린 윌로비와 4번째로 결혼해 헨리와 찰스(3대 서포크 공)를 낳았다. 하지만 이 아들들은 찰스 브랜던이 죽고 난 뒤인 1551년 7월에 같이 장티푸스로 젊은 나이에 사망한다.

3. 미디어 믹스

3.1.튜더스

배우는 DC 확장 유니버스슈퍼맨으로 유명한 헨리 카빌이며 일본판 성우는 이토 켄타로. 역사처럼 헨리 8세의 절친한 친구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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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 1 때의 경박했던 젊은 시절 모습

초기 시즌에서는 헨리 8세에게 격의 없는 행동도 자주 하지만 친분이 친분인지라 신뢰를 받고 있다. 잘생긴 외모에 대담한 성격을 가지고 있어서, 여기저기서 여자들과 검열삭제를 즐기다가 그 아버지에게 들키고도 "댁의 따님도 이게 첫경험은 아닌 것 같던데요"라는 말을 내뱉는 등, 왕의 친구라고 하기에도 민망할 정도로 경박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던 어느날 헨리의 누이인 마거릿 공주가 포르투갈의 왕과 결혼하게 되자 헨리 8세에게 서포크 공작 지위를 받고 그녀를 포르투갈로 데리고 가는 길에 동행하게 되는데 그 와중에 두 사람은 눈이 맞고 만다. 이후 마가렛은 어쩔 수 없이 포르투갈 왕과 결혼하게 되지만 워낙 노쇠했던 왕은 얼마 못 가 죽어버린다.[3] 사별한 마가렛은 잉글랜드로 돌아오자마자 브랜던과 몰래 결혼을 감행한다.[4][5]

하지만 헨리 8세는 이 일을 알자마자 격분해서 급기야 마가렛에게 "누님의 남편을 살려둘지에 대해서는 생각해 봐야겠다."라고 선고하지만 울지가 필사적으로 설득하고 헨리 8세도 누나와의 우애, 브랜던과의 우정 때문에 결국 화를 푼다.[6] 그러나 둘 다 한동안 궁 밖으로 쫒겨나 있는 신세가 된다. 이 와중에 마가렛의 바가지에 쩔쩔매지만 자업자득. 이후 헨리 8세의 분노가 풀리면서 다시 친구이자 신하로서 발돋움한다.

그러나 이후 마가렛에 대한 애정이 식어가면서 그녀의 건강이 악화되었다는 것도 눈치채치 못했고 그녀가 홀로 쓸쓸히 피를 토하며 죽어가는 날에도 바람을 피는 막장짓을 벌였다. 하지만 헨리 8세는 브랜던이 바람을 피운 것을 몰랐기에 누나의 병을 모른 것만을 크게 책망하고는 넘어갔다.[7] 이쯤 되면 이 인간의 운빨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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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2에서 헨리 8세와 함께. 한층 성숙해진 모습이다.

이후 캐서린 윌로비와 혼인하게 된 뒤로는 성격이 매우 점잖아지고 부인을 사랑하는 애처가로 돌변.[8]

아라곤의 캐서린에게는 무척 동정적이었고 때때로 그녀를 몰래 방문하는 한편, 캐서린의 딸 메리 공주를 돕기 위해서 움직이기도 한다. 헨리 8세가 다리의 종양이 심해져 의식불명 상태에 빠지자, 곧바로 군사를 일부 보내 메리 공주를 보호할 것을 명령했을 정도. 또한 앤 불린을 무척이나 싫어했기 때문에 그녀가 처형당할 때도 마지못해 자리에 앉았다.

헨리 8세의 수도원 해체 명령에 북부지방에서 폭동이 일어나고 이것을 진압하는 군대의 총사령관으로 임명되었다. 가톨릭 신자임을 숨기고 있던 아내 캐서린의 간곡한 부탁과, 잉글랜드에 큰 희생이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알고는 고심하면서도 그것을 막으려고 노력했다. 폭동을 일으킨 이들의 수장인 로버트 애스크와도 나름대로 대화를 하지만, 헨리는 애스크를 처형시킨 것은 물론 이들을 가차없이 죽일 것을 명령했기 때문에 결국 많은 이들을 사형시켰다.[9] 이후 가족의 곁으로 돌아와서도 이 일이 그의 발목을 계속 잡아 자신이 죽인 이의 환각을 보고 아들을 다그치는 등 불안해하지만 어느정도 회복한 듯. 하지만 이 일로 헨리의 방침에 회의감을 느껴 그렇게 친했던 사이가 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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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3 마지막에서. 숙적 토머스 크롬웰의 처형을 지켜보는 모습.

토머스 크롬웰과는 출신이나 성격 등의 차이로 크게 대립했고 에드워드 시모어와 결탁해 크롬웰을 죽이는데 성공하나, 이 일로 정치적인 술수를 무척이나 싫어했던 아내 캐서린과 별거하며 완전히 갈라서고 말았다. 아내의 일에 대해 어느정도 돌이키려고 노력은 했지만 수년 후에는 거의 체념에 가까운 태도가 되었고 본인도 모략이 판치는 정치판에 환멸을 느꼈는지 점점 궁의 일과 거리를 둔다. 그러나 헨리와 잉글랜드를 생각하는 마음은 그대로이기에 지나치게 나서려는 시모어를 제지하거나 잉글랜드와 프랑스가 전쟁을 벌이게 되자 나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의 없이 출전했다.

이 와중에 프랑스에서 포로로 잡힌 한 프랑스 여성인 브리짓을 만나게 되고 그녀의 당돌한 태도 등이 마음에 들었는지 같이 잡혔던 그녀의 부친을 풀어주는 등 호의를 베풀었다. 그러다 브리짓도 찰스에게 반해 잉글랜드군 진영에서 도망칠 수 있었음에도 찰스의 곁으로 돌아오고, 찰스가 애인으로 정식으로 인정해 잉글랜드까지 함께 오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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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 4 막바지에서. 헨리 8세와 함께 프랑스와의 전쟁에 참전한 모습.

이후엔 평온하게 지내다가 심한 병이 들고, 자신의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눈치챘는지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와병 중에 일어나 헨리의 부름에 응해 헨리를 직접 만났다. 그간 쌓인 앙금과 서먹했던 사이를 토로하며 헨리와 드디어 화해하고, 헨리는 찰스에게 "내가 허락하지 않으니 죽지 말고 어서 나으라"고 했으나, 얼마 뒤에 브리짓의 곁에서 죽음을 맞았다.[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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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 1 때는 난봉꾼이더니 이후로는 동일인물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점차 점잖은 귀족이자 노련한 정치가가 되어간다. 또한 쾌락과 유희만을 쫓던 청년이 점차 잉글랜드의 미래를 위해 생각하며 헨리의 곁에서 신하로서 노력한다는 점에서 튜더스의 등장인물들 중에서도 많은 변화와 성장을 보인 인물.

튜더스에서 주인공 헨리 8세를 연기한 조나단 리스 마이어스를 제외하고 시즌 4 마지막회까지 모두 출연한 유일한 캐릭터이다. 맨 오브 스틸 이전에 헨리 카빌을 대중에게 각인시킨 작품이 튜더스였던 것도 이 때문이다. 출연한 남자 배우들 중에서 미모가 가장 돋보여 여성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시즌 1이 방영된 해에 '가장 멋진 귀족남'으로 뽑히기도 했다.

3.2.울프 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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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는 리처드 딜레인.

헨리 8세의 오랜 친구이자 왕의 여동생 메리 튜더의 남편. 왕에게 허물없이 대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다. 왕을 해리라고 부르면서 친근하게 어깨를 툭툭치고 어린시절 난봉질 했던 일화까지 킥킥 거리며 공유하는 사이.

그런데 덩치가 크고 호탕하지만 눈치가 없다. 원작 소설 <울프 홀>에서조차 머리가 나쁘다("limited intellect")라고 못박아 놓았을 정도. 하긴 왕의 허락도 구하지 않고 과부가 된 왕의 여동생과 덥석 결혼해 버릴 수 있는 행동력이 있다는 건 눈치가 없다는 뜻이기도 하겠다.


[1] 제인 그레이 항목 참조. 자기 딸을 학대하며 이용하다가 끝내 저버린 무정한 어머니다.[2] 프랑스에서 만난 적 있는 앤 불린을 매우 싫어했다. 메리 공주가 프랑스로 시집갈 때 앤의 언니인 메리 불린시녀로서 따라갔고, 앤 불린도 시녀로 프랑스 궁정에 갔다. 메리 공주는 과부가 된 후 친정인 잉글랜드로 돌아왔지만 불린 자매는 메리 공주를 바로 따라가지 않고, 프랑스 궁정에 남아 프랑수아 1세의 왕비인 클로드를 모시다가 잉글랜드로 돌아왔다. 당시 유행과 사교의 최첨단이었던 프랑스 궁정에서 생활한 불린 자매는 양질의 교육을 받았고, 그중에서 특히 앤 불린은 매우 매력적이고 세련된 사람이 되었다고 한다.[3] 결혼식 당시에도 거동도 못할 지경이었으며 나이 탓에 정신도 오락가락하고 있었다. 경악한 마가렛은 참다 못해 밤에 남편과 단둘이 침실에 남겨져 있을 때 그를 베개로 짓눌러 질식사시켰다. 그러나 포르투갈 왕실에서는 왕의 죽음에 대해 별다른 의혹을 품지 않고 바로 새로운 왕을 즉위시켰고, 마가렛이 원만하게 재혼할 수 있게 다시 잉글랜드로 보내주기까지 한다.[4] 사실 찰스 브랜던과 실제로 결혼한건 헨리의 누나 마거릿이 아니라 헨리의 여동생 메리 공주이다. 프랑스 왕비로 시잡갔다가 과부가 돼서 돌아온 것.실제 역사에서 마거릿 튜더는 스코틀랜드 국왕 제임스 4세에게 시집갔고 제임스 5세를 낳는다. 제임스 4세가 죽자 재혼해서 메리 스튜어트의 남편 단리 경의 어머니인 마가렛 더글라스를 낳아, 그녀의 아들이 사촌인 메리 스튜어트와 결혼했다. 이 혈연을 근거로 제임스 6세가 잉글랜드 왕위를 획득하게 된다. 헨리 8세의 후손이 끊겼기에 헨리 7세의 후손중에서 마가렛이 가장 연장자이며 계승권이 높았기 때문.[5] 역사적 순서도 많이 꼬여있다. 메리 튜더는 루이 12세와 결혼했는데 튜더스 시즌1 2회에서의 칼레에서의 조약에 나오는 프랑수아는 루이 12세 다음 왕이다. 그러니까 이미 사별한 관계를 되살려낸걸 자매도 바꾸고 국가도 바꾸고 시점도 바꿔버린것..[6] 누나를 노인에게 시집보낸 것에 대해 미안한 마음을 품고 있었다. 마가렛도 약혼이 성사된 당시에 '사별해서 돌아오면 내가 원하는 남자랑 결혼하게 해 달라.'고 부탁하기도 했고.[7] 헨리 8세가 이 사실을 알았지만 넘어갔을 가능성도 높다. 아내를 내버려두고 다른 여자를 만나서 아내를 슬픔에 빠뜨린 것은 헨리 본인도 저지른 일이었기 때문에 넘어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8] 하지만 바람을 한 번 폈다가 들켜서 캐서린에게 이것저것 빈다(...).[9] 자신의 명예를 걸었다며 반란 주동자의 처벌에 반대를 하기도 하고, 처음에는 주모자 처벌을 최소화 하기도 했지만, 결국 왕의 총애를 잃을까 두려워 명령대로 가혹한 처벌을 하고 만다.[10] 다만 찰스가 죽은 이후 애인으로 들였던 브리짓은 캐서린에게 완전히 무시당하는 등 불쌍한 상황이 되어버렸다. 그래도 찰스의 아들이 인정했으니 어느 정도 대우는 받았을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