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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01b><colcolor=white> 본명 | 찰스 존 피더슨 (Charles John Pedersen) | |
출생 | 1904년 10월 3일 | |
경상남도 동래군(現 부산광역시) | ||
사망 | 1989년 10월 26일 (향년 85세) | |
미국 뉴저지 주 살렘 | ||
국적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 |
학력 | 데이턴 대학교 (화학공학 / B.S.) 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 (유기화학 / M.S.) | |
직업 | 유기화학자 |
[clearfix]
1. 개요
미국의 유기화학자이다. 1987년에 크라운 에테르의 발견 공로로 노벨화학상을 수상하였다.2. 생애
1904년 대한제국 경상남도 동래군에서 노르웨이인 아버지 브레데 피더슨과 일본인 어머니 야스이 타키노 사이에서 태어났다.[1]노벨위원회는 후보자의 국적을 고려하지 말고 상을 주라는 알프레드 노벨의 유지를 따라 노벨위원회 홈페이지에 수상자의 국적이 아닌 출생지와 소속기관 등을 명시하고 있다. 이에 따라 피더슨 역시 한국에서 출생한 이유로 한국 출신으로 분류됐다. #
본인이 직접 작성한 일대기에 따르면 미국인 소유의 운산 금광[2] 근처에서 자랐으며 영어를 구어로 사용하며 자랐다. 8살 때 일본으로 건너가 초등과 중등 교육을 받으면서 처음으로 화학 과목을 수강하였다. 18세까지 일본에서 지내다가 대학에 들어갈 나이가 되자 아버지의 권유로 1922년에 미국 오하이오주 데이턴 대학교에 진학 후 화학공학 학사를 취득하였고, 이후 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 (MIT)에서 유기화학 석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찰스 피더슨은 그동안 "아버지가 부쳐준 돈으로 석사 과정까지 다녔다"며, "이제는 내가 직접 돈을 벌어야겠다"라고 생각해 듀폰이라는 화학회사의 연구원으로 취직한다.3. 공적
피더슨이 듀폰의 잭슨 연구소 재직 시절인 1967년, 크라운 에테르라는 유기화합물을 발견하였고 그 공로로 발견 20년 후인 1987년에 노벨화학상을 도널드 크램, 장마리 렌[3]과 함께 공동 수상하였다.4. 노벨상 수상 관련
위에서 언급했듯 석사 학위를 취득 후 연구소에 들어가 일을 하였기 때문에 박사학위가 없는 최초의 노벨 과학상 수상자였다. 또한 그가 현재의 부산에서 출생하였기 때문에 노벨위원회의 공식 기록에는 한국(Korea) 출생의 최초의 노벨상 수상자로 기록되어 있다. 이후의 한국 출생 노벨상 수상자는 김대중(2000년, 평화상), 한강(2024년, 문학상)이 있다. 노벨상은 알프레드 노벨이 직접 수상자의 국적을 고려하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기 때문에 수상자의 국적을 일절 기록하지 않고 오직 출생지, 사망자의 사망지만을 기록한다.자신이 직접 작성한 일대기에 한국에서의 어린 시절을 상세히 기술한 점을 보았을 때 피더슨은 비록 한국에 돌아온 적은 없었지만 한국에서의 유년기를 소중한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은 편이다.[4] 다만 본인 일대기의 한국 부분 대다수를 운산 금광에서의 추억으로 채워넣고 부산은 출생지로만 언급한 점을 보았을 때 본인의 고향을 부산이 아닌 평안북도 운산군으로 여겼을 확률이 커 보인다.[5] 8살에 일본으로 이사를 가기 전까지 미국 소유였던 운산 광산촌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당시 운산광산촌은 한국인 노역자들을 제외하면 거의 외국인들만 살았다. 그래서 이 시절에는 영어를 모국어로 습득 및 사용하며 지냈다고 한다.
5. 여담
- 피더슨의 아버지 브레데 피더슨은 해양 기술자 출신으로 극동에 파견되어 대한제국의 운산 금광에서 기계공으로 일하던 와중에 가족과 같이 한국에 온 야스이 타키노와 만나 결혼했다. 그녀는 무역업을 하던 가족이 콩과 누에 무역을 위해 한국으로 이주할 때 같이 온 것이다.
- 피더슨에게는 누나와 피더슨이 태어나기 전에 병으로 사망한 형이 하나 있다고 한다.
- 피더슨은 노벨상 수상 소감에서 "상업성이 없는 연구를 9년 동안 할 수 있게 해 준 듀폰社의 경영진에게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 듀폰은 그의 업적을 기려 우수한 과학자에게 수여하는 '피더슨 상'을 설립했다.
[1] 노벨위원회 공식 홈페이지 찰스 피더슨 일대기. 주어가 'I'로 되어있다는 것을 통해 피더슨 본인이 직접 작성해 노벨위원회에 제출한 일대기임을 알 수 있다.[2] 학교 한국사 과목에서도 조선-대한제국이 열강에 이권을 넘긴 곳 중 하나로 자주 언급되는 곳이다.[3] 이들은 찰스 피더슨이 크라운 에테르를 발견한 후 이에 기반하여 후속 연구를 한 학자들이다.[4] 자신의 일대기에 부산과 운산이라는 지명을 정확히 언급하고 운산 금광이 지금의 북한 북서부에 위치한다는 사실까지 언급하고 넘어간 것이 그러한 가능성을 더욱 뒷받침한다.[5] 태어난 부산은 유아기에만 있었으니 기억이 있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물론 아동기에 거주해 자신의 고향으로 여겼을 가능성이 높은 운산 또한 북한령이니 가고 싶어도 갈 수 없었다.[6] 연도로 보아 일제 시대였던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