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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color=#fff><colbgcolor=#0047a0> 창씨명 | 사이카와 쥰보(蔡川順奉)[1] |
초명 | 채순봉(蔡順鳳)[2] |
자 | 낙순(洛順) |
출생 | 1928년 2월 11일 |
경상북도 경주군 산내면 외칠리 912번지 (현 경상북도 경주시 산내면 외칠리) | |
사망 | 2013년 10월 11일 (향년 85세) |
경상북도 경주시 | |
묘소 |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1-1묘역-501호 |
본관 | 인천 채씨[3] |
가족 | 배우자 하순덕 |
상훈 | 2006년 대통령표창 수훈 |
1. 개요
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 2006년 대통령표창을 수훈하였다.2. 생애
1928년 2월 11일 경상북도 경주군(현 경주시) 산내면 외칠리 912번지에서 아버지 채수식(蔡銖植, 1892 ~ 1968.10.25.)[4]과 어머니 연안 이씨(? ~ 1965.5.10.)[5] 사이에서 4남 4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이후 경주공립중학교[6]에 입학하여 이곳에 주소지를 두었다.경주공립중학교 3학년 재학 중이던 1944년 9월, 1년 선배 신두수의 권유로 안동공립농림학교[7] 주도로 결성된 항일 학생운동단체 명성회(明星會)에 가입하였다. 이후 기관지 「새벽」 제작에 참여해 학생들의 항일의식을 고취시키려 노력했다. 그러나 1945년 3월 일본 제국 경찰에 체포되어 미결수 신분으로 5개월간 복역하였다. 1945년 8.15 광복 이튿날인 8월 16일 대구지방법원 안동지청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에 대해 기소유예로 불기소처분을 받아[8] 곧 석방되었다.
1963년 채순봉(蔡順鳳)에서 채주형(蔡周亨)으로 개명하였다.[9] 2006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독립운동 공적을 인정받아 대통령표창을 수훈하였다. 2013년 10월 11일 경상북도 경주시에서 사망했다. 유해는 2013년 10월 13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1-1묘역에 안장되었다.
[1] 1945년 8월 16일 대구지방법원 안동지청 형사사건부[2] 이 이름으로 독립유공자 포상을 받았다.채순봉 독립유공자 공적정보[3] 소감공파(少監公派)-유정공파(柳亭公派)-추월헌공파(秋月軒公派) 28세 병(炳) 항렬. 족보명은 채병창(蔡炳昌).[4] 자는 우홍(禹洪).[5] 이성기(李成基)의 딸이다.[6] 현 경주중학교·경주고등학교[7] 현 한국생명과학고등학교[8] 1945년 8월 16일 대구지방법원 안동지청 형사사건부[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