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1-22 22:46:14

천관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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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color=#e51837> 투수 <colbgcolor=#FFFFFF,#191919><colcolor=#e51837,#61ABF6> 15 뤼옌칭 · 16 왕웨이중 · 17 천관위 · 21 리전창
29 덩카이웨이 · 32 천위쉰 · 43 쑹자하오 · 58 후즈웨이
59 천관웨이 · 60 쩡쥔웨 · 69 황쯔펑 · 71 장사오칭
81 천스펑 · 93 우저위안
포수 4 주리런 · 31 린다이안 · 65 가오위제
내야수 1 정쭝저 · 5 린쯔웨이 · 6 왕웨이천 · 18 장위청
39 우넨팅 · 46 판궈천 · 83 린리 · 90 장위청
외야수 2 궈톈신 · 9 왕보룽 · 12 천천웨이
24 천제셴 · 35 청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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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라쿠텐천관위.jpg
<colbgcolor=#900><colcolor=#ffcc00> 라쿠텐 몽키스 No.12
천관위
陳冠宇/ Kuan-Yu Chen
[1]
출생 1990년 12월 21일 ([age(1990-12-21)]세)
화롄현
국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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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 국립체육대학
포지션 투수
투타 좌투좌타
프로입단 2011년 자유계약 (요코하마)
2021년 신인드래프트 1라운드 2순위 (라쿠텐)
소속팀 요코하마 디엔에이 베이스타즈 (2011~2014)
치바 롯데 마린즈 (2015~2020)
안영선물 야구단 (2021)
라쿠텐 몽키스 (2021~)
등장곡 Time Capsule - CLUTCHO[2]
응원단 자작곡[3]
SNS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1. 개요2. 선수 경력
2.1. 요코하마 시절
2.1.1. 2011 ~ 2014 시즌
2.2. 치바 롯데 시절
2.2.1. 2015 시즌2.2.2. 2016 시즌2.2.3. 2017 시즌2.2.4. 2018 시즌2.2.5. 2019 시즌2.2.6. 2020 시즌
2.3. 대만 시절
2.3.1. 2021 시즌2.3.2. 2022 시즌2.3.3. 2023 시즌
2.4. 국가대표 경력
3. 플레이 스타일4. 역대 성적5. 기타

[clearfix]

1. 개요

대만 라쿠텐 몽키스 소속 야구선수. 2011년부터 2020년까지 일본프로야구에서 10년간 활약했다.

2. 선수 경력

중,고등학교 시절 부터 야구를 시작하였으며, 국립체육대 1학년때 광저우 아시안게임에 발탁되어 은메달을 받았다.[4] 당시에는 그다지 인상적이지 않았다. 2회 부터 추격조로 나와 3.1이닝 3실점으로 이대호, 강정호에게 각각 1점홈런, 2점홈런을 먹고 강판 당했다. 구위 커맨드 자체는 칭찬 받을만 했다.

2.1. 요코하마 시절

광저우 아시안 게임 활약으로 2학년 때 요코하마 스카웃으로 부터 제의를 받고 계약금 2,000만엔 + 인센티브 100만엔, 연봉 400만 엔의 계약을 체결했다.

2.1.1. 2011 ~ 2014 시즌

베이스타즈 시절 4년동안은 거의 2군에서 활약했으며, 1군 등판 기록은 2014년에 2.1이닝 4실점을 기록한 것이 전부다.

2014 시즌 중반에 아시안 게임에 발탁이 되어 한국과 예선전과 결승전에서 중간계투로 출격하여 박병호, 강정호, 오재원, 나성범 등을 삼진과 땅볼 등으로 잡는 호투를 보이며, 넷상에서 실시간 1위를 몇시간 동안 유지했었다, 하지만, 범상치 않은 약속의 8회 때 실책 + 주자를 연달아 쌓다가 뒤에 나온 투수들이 죄다 분식회계를 하는 바람에 팀이 역전패를 당하며 패전 투수가 되었다. 그리고 2번 연속 은메달을 받는거에 그쳤다. 그러나 천관위는 국내타자들을 뚜렷하게 분석을 하여서인지 긴장하지 않고 145~150km가 넘는 빠른 공을 계속 뿌렸다. 여튼 4년전 대회의 강정호에게 홈런을 맞았던 복수를 시원하게 했으나 정작 팀 승리와는 인연이 없었다.

시즌 말미에는 보류명단에서도 제외되어 방출되었다.

2.2. 치바 롯데 시절

2.2.1. 2015 시즌

시카고 컵스에서 뛰던 유망주 이대은과 함께 치바 롯데 마린즈에 같이 입단을 하였다. 2군에서 시즌을 출발했으나, 시즌 중반 이후 1군에 올라와 14경기(13선발) 5승 4패 평균자책점 3.23의 성적을 기록했다. 시즌 후 지바 롯데와 1년 연장 계약을 맺었다.

2.2.2. 2016 시즌

주로 2군에 머물렀으며, 1군에서는 7경기(4선발)에 등판해 24.2이닝을 투구, 1승 1패 ERA 4.01의 성적을 기록했다. 시즌 후 열린 치바 롯데의 팬 감사제에 외국인 선수로서는 최초로 참가했다.[5]

2.2.3. 2017 시즌

시즌 출발은 2군이다. 그래도 비슷한 상황에 있던 이대은이 아예 방출당한 것과 비교하면[6] 그나마 상황이 나은 셈. 현재 새로 들어온 외국인 타자 맷 더피, 지미 파레디스가 모두 부진하기 때문에 어쩌면 1군에 콜업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결국 콜업되어 4월 16일 경기에 크게 지고 있는 상황에서 패전처리로 등판, 첫 이닝을 3연속 삼진으로 돌려세우고 두번째 이닝에서도 삼자범퇴를 하면서 2이닝 4삼진 무실점으로 좋게 끝냈다.

4월 18일에 또 올라왔다. 두번째 경기는 1이닝 1실점을 기록했다.

그후로 소식이 없다가 5월 9일 라쿠텐전에 임시선발로 등판하여 6이닝 0탈삼진 5사사구 무실점으로 첫 승리를 거뒀다.

5월 16일 4.1이닝 3볼넷 5삼진 2실점으로 패전투수가 되었다.

현재 4경기 1승 1패 ERA 2.02 기록하고 있다..

5월 31일 6이닝 3실점으로 그럭저럭 던지면서 QS를 성공하였으나, 타선이 1점도 못 뽑는 바람에 패전투수가 되었다. 팀은 0:5로 패배했다.

6월 14일 이후로 등판기록이 없다. 2군 간 듯. 6월 14일까지의 등판 기록을 보면 8경기에서 1승 3패 ERA 3.78이다.

7월 30일 경기 이후 지미 파레디스[7]가 2군에 가자 그를 대신해서 1군에 올라왔다. 8월 3일 경기에서 0.2이닝 무실점 기록.

재 콜업 직전까지의 2군 성적은 9경기 5승 0패 ERA 2.80.

8월 5일 불펜으로 등판하여 2이닝 무실점을 기록했다. ERA는 3.63.

8월 19일 세번째 투수로 등판하여 0.2이닝 2실점으로 패전투수가 됐다. 내려갈 때 2사 1,2루였고 다음 투수가 분식회계를 저질렀다.

8월 30일 땜빵선발로 올라와서 5이닝 2실점 호투를 했다. 그러나 불펜진의 방화로 노디시전을 기록했다.

8월 30일까지의 기록은 1승 4패 3홀드 3.20으로 주로 무승부 상황이나[8] 1~2점차로 뒤지는 상황에서 추격조로 많이 뛰었고 땜빵선발로도 종종 올라오고 있다.

9월 14일 4:3으로 뒤진 상황에 올라와서 1이닝 무실점으로 막았다. 가토 쇼헤이의 역전 쓰리런 홈런 덕분에 구원승을 기록했다.

9월 15일 기준 23경기에서 2승 4패 3홀드 ERA 3.49를 기록했다.

9월 18일 구단 관계자가 인터뷰에서 재계약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본인도 롯데와 재계약을 하고 싶어했기 때문에 내년에도 볼 수 있을듯

시즌 최종 성적은 27경기 3승 4패 4홀드 ERA 3.29로 땜빵선발과 추격조를 오가면서 좋은 성적을 올렸다.

사실상 일본 진출 이후 최고 성적을 기록한 시즌으로 기록되었다. 구단에서도 재계약을 하기로 했고, 팬들의 반응도 필승조로 쓰지 왜 저 좋은 선수를 추격조로 쓰냐고 할 정도로 좋은 편.

시즌 이후 2017 아시아 프로야구 챔피언십 국대에 뽑혔다.

친정팀 치바 롯데 마린즈와의 연습경기에 선발투수로 등판했지만, 4.1이닝 6실점으로 난타당해 그날의 패전투수가 됐다.

아시아 프로야구 챔피언십 한국전 선발로 내정되었다. 천관위는 거의 한국전만 되면 표적등판 수준으로 나오는데 최근 두 경기에서는 좋지 못했다. 그러나 이날 경기에서는 5.2이닝동안 3피안타 3볼넷 6탈삼진 1실점을 기록하면서 좋은 피칭을 보여주었다. 6회 2사 1루상황에서 이정후에게 1타점 적시 3루타를 맞은뒤 내려오면서 퀄리티 스타트 달성에는 실패했다.

2.2.4. 2018 시즌

시즌 출발은 2군에서 했지만 카토 쇼헤이니시노 유지가 2군에 내려오면서 1군에 콜업되었다.[9]

그리고 4월 7일 선발로 등판하였다. 그러나 4이닝 6실점으로 부진했다. 그리고 다음날 바로 2군으로 강등되었다.

5월 초 다시 1군으로 올라와서 불펜으로 뛰는 중. 5월 5일 맷 도밍게스를 1군에 올리는 과정에서 다시 2군으로 갔으며, 5월 15일 에드가 올모스가 부진 끝에 2군으로 쫓겨나면서 다시 1군 콜업이 되었지만, 5일 만에 다시 2군으로 쫓겨났다.

현재 1군에서 4경기 0승 1패 ERA 8.68을 기록 중이다. 2군에서는 8경기 1승 1패 1세이브 ERA 1.57로 씹어먹는데 1군에선 부진 중이다.

6월 30일 호소야 케이 대신 1군에 올라왔다. 불펜으로 뛰는 중이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 게임에서는 이렇게 부진하고 있어서 그런 지, 엔트리에 들지 못 했는데, 들게 되었다면, 예선에서 한국을 상대로 승리투수가 되는 영광을 기록했을 것이다. 다만 요미우리에서 육성선수로 뛰기 때문에 2-3군을 왔다갔다하는 랴오런레이도 구단에서 국가대표 차출을 거부해서 못 나갔다는 것을 생각하면 일본프로야구가 아시안게임 도중에도 시즌을 멈추지 않아서 애초에 구단들이 내보내주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당장에 저번 WBC만 해도 일본 리거들 거의 다 총출동했다.

올라온 뒤에는 주로 패전처리로 뛰는 중. 7월 9일 5대5 무승부 상황에 올라와서 1이닝 무실점으로 뛰고 홀드를 챙겼다. 24일에는 5대 3으로 지는 상황에 올라와서 2이닝 무실점으로 호투했다.

8월 25일 오릭스전을 앞두고, 오랜만에 선발로 나와서, 5이닝 5피안타 1실점 1볼넷으로 호투했다. ERA도 3.86까지 내려왔다. 참고로, 상대 선발인 오릭스 버팔로즈의 선발이 kt wiz에서 뛰었던 돈 로치. 물론 팀 타선은 돈 로치를 사정없이 두들기며, 5-0을 만들어줬는데, 선발승을 따내지는 못 했다이기는가 싶었는데, 세 번째 투수로 올라온 이와시타 다이키[10]가 0.2이닝 4피안타 4자책으로 노 디시젼이 되고 만다.불 끄러온 타나카 야스히로의 분식질은 덤. 팀은 9회말 1사 1,2루 상황에서 4번타자인 이노우에 세이야의 끝내기 안타로 승리했다.

9월 8일 볼싱어가 1.2이닝 4실점을 하고 2사만루 상황에서 강판당하자 교체되어 올라왔는데 야마카와 호타카에게 만루홈런을 맞아버리면서 화끈하게 불을 질러버렸다. 다행히도 그 후로는 1.1이닝을 무사히 막았고 다음 회에 또 만루만들고 무실점으로 막았다. 1.1이닝 1실점으로 끝냈다.

2.2.5. 2019 시즌

시즌 초반은 2군에서 했지만 개막 3연전 이후 바로 1군에 콜업되었다.

현재 패전처리와 롱 릴리프로 잘 던져주는 중이다.

5월 18일 1점차로 뒤지는 상황에 추격조로 올라와 쐐기점을 허용했다.

6월 23일 2점차로 뒤지는 상황에 추격조로 올라와 1이닝 2실점으로 털리면서 교류전 승률 5할의 꿈을 자기 손으로 없애버렸다. 겉으로 보이는 성적은 준수하지만 분식회계나 추격조로 올라와서 추격의 의지를 끊는 쐐기점을 허용한 경기가 하도 많아서 전혀 좋은 투수라고 할 수 없는 상황이다.

7월 10일 오프너로 등판한 카라카와 유키 다음으로 등판해 3이닝 무실점으로 막고 시즌 첫 승리를 거두었다.

전반기 성적 25경기 34.1이닝 1승 무패 3홀드 ERA 2.36.

8월 8일 3:1로 리드중인 상황에 올라와 이마미야 켄타에게 쓰리런 홈런을 맞고 블론세이브를 하면서 시즌 첫 패전을 기록했다. 평균자책점도 2.53에서 3.06으로 폭등했다.

8월 들어 퍼지게 되면서 나올 때마다 얻어맞는 바람에 결국 2군행. 그래도 결국 9월에 다시 올라와서 원 포인트 위주로 나오면서 결국 44경기에 등판해서 ERA 3.63이라는 나쁘지 않은 성적으로 2019년을 마무리했다.

2019 프리미어 12 대만 야구 국가대표팀에 발탁되었다. 보직은 불펜 필승조. 멕시코전 2:0 으로 뒤진 6회말 2사 위기상황에 등판해 익숙한 홈구장 덕분인지 멕시코의 강타선을 1.1이닝 2k 퍼펙트로 봉쇄했다. 이어 다음날 대한민국과의 경기에서도 1.1이닝 1볼넷 2k로 한국의 추격의지를 꺾으며 7:0 대승에 공헌했다.

2.2.6. 2020 시즌

올해도 2군에서 시작할 예정이다. 외국인 불펜투수로 이미 프랭크 허먼제이 잭슨이 있다보니 자리가 없다.

그런데 코로나 19로 단축 시즌이 되면서 2020년만 특별히 1군 용병쿼터가 5명으로 늘어난 덕분에 개막 엔트리에 들어갔다!

6월 21일 시즌 처음으로 등판하여 2이닝 무실점으로 막았다.

2경기에서 1홀드 ERA 0.00을 기록하고 1군에서 말소되었다가 7월 8일 다시 콜업.

7월 15일 1이닝 2실점으로 신나게 블론을 했다. 팀도 졌다. 이날 결승 득점주자도 브랜든 레어드의 실책으로 나간거라 외국인 둘이서 팀을 패배로 이끌었다.

7월 19일 롱릴리프로 나와 2이닝 무실점 기록.

7월 21일 2사만루에 등판해서 0.1이닝 무실점을 기록했다. 작년처럼 홀드 상황에서 올라오면 개처맞고 패전처리, 추격조 상황에 올리면 패동렬이 되는 모습을 보여주는 중.

8월 2일 8회초 시작과 동시에 등판해서 1이닝 1실점을 기록했다,

8월 7일 5점차인 9회말에 등판해서 무사만루를 만들고 내려왔다. 얼떨결에 생각지도 못하고 올라오게 된 마무리 마스다가 분식회계로 2명을 홈에 들여보내면서 ERA는 5.00까지 치솟았다.

이날 경기가 끝나고 바로 2군으로 쫓겨났다.

한달 이상 2군에 있다가 1군에 올라와서 추격조로 뛰고 있다.

10월 22일 두타자 연속 잡아놓고 두명을 연속출루시키는 바람에 강판. 후속투수 사사키 치하야가 무실점으로 막으면서 0.2이닝 무실점을 기록했다. 이날 기준 18경기 17.2이닝에서 1승 무패 2홀드 ERA 3.06을 기록하고 있다.

시즌 최종 19경기에 등판했고, 팀에서는 재계약을 제의했으나 가족 문제로 인하여 대만으로 돌아가겠다고 밝히면서 10년간의 일본 생활을 끝냈다. 2021년 CPBL 드래프트에 참여의사를 밝혔다.

2.3. 대만 시절

2.3.1. 2021 시즌

시즌 전반기는 대만 실업팀에서 뛰기로 했다. 보통 해외파는 프로팀과 육성선수 계약을 맺고[11] 2군에서 출장하다가 드래프트에 참여하는 경우가 많은데 특이케이스.

이후 드래프트에서는 라쿠텐 몽키스의 1라운드 지명을 받았다. 장사오칭에 이어 전체 2순위. 계약금은 약 2100만 타이완달러.[12] 또한 2023년까지는 계약이 보장된다.[13]

하지만 선발과 불펜을 오가며 6점대로 첫 해는 실패로 끝났다. 물론 여름에 드래프트를 하고 후반기에 입단하는 대만 특성상 첫 해에는 몸이 잘 안 만들어졌다고 어떻게든 쉴드를 칠 순 있겠다.

2.3.2. 2022 시즌

마찬가지로 선발과 불펜을 오가며 23경기(6선발) 55.2이닝 2승 1패 1홀드 ERA 3.07을 기록했다. 첫 해에 비해선 많이 좋아졌지만 일본 시절과 큰 차이가 없는 애매한 성적이다.

기록을 보면 시즌 초에 선발로 2번 나오고 4월 중순부터 6월 중순까지 2개월을 날렸다. 이후 6월 중순부터 7월 중순까지 선발 로테를 돌았으나 선발로 성적이 나빴고 7월 말부터 불펜으로 고정되었다.

여담으로 이 해는 선발과 불펜의 온도차가 극단적이었던 게 선발로는 6경기 31이닝 19자책 1승 1패 ERA 5.52였고 불펜으로는 17경기 24.2이닝 1승 무패 1홀드 ERA 0.00이었다. 즉 선발로는 사실상 안 통했으나 불펜으로는 철벽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 해 시즌 후반 불펜 전업 이후 페이스는 워낙 좋았어서 2023년 시즌 초까지 불펜으로 19경기 연속 무자책[14]을 기록하기도 했다.

2.3.3. 2023 시즌

완전히 불펜으로 전업하여 17경기 15.2이닝 1승 무패 6홀드 ERA 3.45로 그럭저럭 던졌으나 5월 하순부터 1달간 기록이 없다. 부상 문제로 보인다.

이후 기사에 따르면 5월 21일 어깨 염증 판단을 받고 한 달 정도 휴식한 후 6월 29일 2군에 복귀했다고 한다. 7월 중순 후기리그 개막 즈음 1군에 복귀할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돌아와서는 필승조로 뛰고 있으며 8월 9일 1점차로 리드중인 7회에 등판하여 1이닝 무실점을 기록하며 커리어 첫 두자릿수 홀드를 달성해냈다.

9월 7일 5실점으로 블론+패전투수가 되었다. ERA도 4점대로 폭등했다.

팀이 선발투수 외국인 3명을 1군에서 쓰기로 방침을 정해 9월 초부터 무기한 2군행을 통보받은 브레딘 헤겐스를 대신해 집단 마무리체제를 도입하기로 하였는데, 이 덕분에 9월 17일 1점차로 리드하던 9회말에 나와 세이브를 거두었다.

하지만 세이브는 딱 두개에 그쳤고 이후에는 접전 때 나오는 셋업보다는 동점 상황 등의 불펜 에이스를 쓰기에는 아쉽지만 그래도 불안하긴 한 상황에 나오는 추격조로 보직이 바뀌었다.

시즌 최종성적은 41경기 39이닝 1승 1패 2세이브 12홀드(2블론) ERA 3.69로 세컨더리 셋업맨 정도의 활약을 보여주었다.

플레이오프 엔트리에도 당연히 들었고 2차전에서 1점차로 리드하는 상황에 등판하여 1이닝 3K 퍼펙트로 막고 홀드를 기록했다.

2.4. 국가대표 경력

3. 플레이 스타일

스리쿼터 폼에서 평균 141km, 최고 150km/h의 패스트볼과 커브, 횡슬라이더, 투심 패스트볼, 포크볼, 체인지업을 구사할 줄 알지만 실질적으로 포심-슬라이더의 이지선다를 주 무기로 삼고 있고, 탈삼진 능력이 크게 좋지는 않다. 슬라이드 스텝이 상당히 빠르다. 전체적으로 기쿠치 유세이와 비슷한 느낌이라고 생각하면 되지만 슬라이더가 더 느리고 비교적 각이 크다.

장점이나 포텐은 분명 있는데 이상할 정도로 참 안 터지는 유망주. 공도 나쁘지 않고 현장에선 꾸준히 좋은 평가를 내리는데도 이렇다. 아예 2군급이면 대만으로 돌려보내겠는데, 1군에서도 또 그럭저럭 추격조 급은 된다.[15] 허나 외국인 투수를 추격조로 쓸 순 없으니 결국 보통 2군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1군 외국인 투수가 다치거나 로테이션이 꼬이면 땜빵부터 롱릴리프 등 닥치는 대로 다 하는 마당쇠 롤을 주로 맡고 있다. 고정 1군은 아니지만 2군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1군 외국인자리에 빈자리가 생기면 콜업 1순위인 식스맨 같은 역할이다. 왼손계투라서 좌완 원포인트로도 종종 쓰인다.

또 추격조로는 잘해서 매년 희망의 끈을 못 놓게 하는 선수였는데 그렇게 어느덧 나이가 서른이라, 올해나 내년에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면 위험하다.[16] 그나마 2019년은 처음으로 40경기를 돌파하는 등 벽을 하나 깰 듯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2020년에도 등판수는 19경기로 많지 않지만 시즌 평균자책점 3.20을 찍으며 약간 늦게 터지긴 했지만 슬슬 무난히 1군에서 풀타임 돌려도 될 만한 계투요원 정도로 자리를 잡았다 싶었는데 개인 사정으로 인해 일본 생활을 접고 돌아가게 되었다. 10년간의 일본 생활을 되돌아보면 선발부터 계투까지 못하는 게 없는 데다가 좌완이다 보니 원포인트로도 쓰이고, 말 그대로 밑바닥부터 닥치는 대로 구르며 조금씩 성적을 올려, 2군 육성형 외인으로 시작해 40경기 이상 출전하는 풀타임 계투 자리까지 노력으로 쟁취해낸,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한 것이라는 말이 어울렸던 선수. 비록 성적 자체는 특별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항상 열심히 노력하며 팀에 헌신했던 선수로 기억될 듯 하다.

야구 외적인 이야기이지만 운동선수로서는 드물게 선이 얄쌍한 미소년 스타일인데다가 대만출신 중에서는 성적이 좋은 편이라서 조국 대만에서도 인기가 있다 보니 팬이 꽤 있어서 성적 그저그런 외국인 중간계투로서는 드물게도 관련상품까지 나오는 등 상품성이 있어서 돈이 되는 선수였고, 이 점이 그저그런 성적에도 불구하고 첸이 일본에서 오래 살아남을 수 있는 데에 꽤 도움을 주기도 했다. 다만 이 얄쌍한 미소년상인 점이 선수로서는 단점이기도 했는데, 179cm/75kg으로 투수로서는 확실히 언더사이즈라 구위가 나오기가 힘든 체격을 지녔어서 좌완치고 괜찮은 구속에 비해 떨어지는 구위는 일본 선수생활 내내 그의 약점이었다. 공도 빠르고 변화구도 각이 큰데, 공에 힘이 없던 것.

위에 써 있는 안 터지는 유망주라는 서술은 일본 기준. 대만 기준으로 보면 많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당장 대만 최고의 토종 선발투수/마무리 투수가 가능한 기량이다. 예상대로 당연히 1라운드 지명. 다만 전체 1순위는 장사오칭에게 빼앗겼다. 당장 CPBL 최고 토종 선발 왕이쩡이나 CPBL 최고 마무리 중 한 명인 리첸창이 NPB에서 기록한 성적을 보면 천관위보다도 한 수 아래.[17] 하지만 리첸창 등과는 다르게 커리어에 비해서 대만에서의 성적은 영 좋지 않다. 물론 나이가 있는 선수다 보니 이제 하락세를 탈 나이에 온 셈이라 어쩔 수 없다곤 해도 지금 보여주는 모습은 대만 이대은이다.

4. 역대 성적

역대기록
년도 소속팀 등판 세이브 홀드 승률 이닝 피안타 피홈런 볼넷 사구 탈삼진 ERA
2011 요코하마 DeNA 1군 기록 없음
2012
2013
2014 1 0 0 0 0 .000 2.1 5 2 2 0 3 11.43
년도 소속팀 등판 세이브 홀드 승률 이닝 피안타 피홈런 볼넷 사구 탈삼진 ERA
2015 치바 롯데 마린즈 14 5 4 0 0 .556 61.1 61 4 23 2 47 3.23
2016 7 1 1 0 0 .500 24.2 25 3 10 0 23 4.01
2017 27 3 4 0 4 .429 63 56 5 32 0 59 3.29
2018 24 0 1 0 1 .000 41.1 40 6 20 0 27 3.92
2019 44 1 1 0 5 .500 57 54 2 27 2 45 3.63
2020
년도 소속팀 등판 세이브 홀드 승률 이닝 피안타 피홈런 볼넷 사구 탈삼진 ERA
2021 라쿠텐 몽키스 21 1 5 0 1 .167 48.1 58 8 24 4 42 6.52
2022 23 2 1 0 1 .667 55.2 53 1 16 3 57 3.07
2023
NPB 통산(7시즌) 117 28 10 11 10 .476 249.2 241 22 114 4 204 3.60
CPBL 통산(2시즌) 44 3 6 0 2 .333 104 111 9 40 7 99 4.67

5. 기타

  • 2016년 1월. 6년째 만나던 여자친구와 결혼했다. 여자친구는 대만에 사는 은행원이다.
  • 일본어 공부를 위해 원피스를 챙겨봤다고 한다. 그래서 원피스에 경어가 나오지 않다 보니 경어를 공부하는 것이 가장 어려웠다고 한다.[18] 실제 경기를 보면 선수들하고 일본어로 무난하게 대화하는 등 일본에서 보낸 마지막 시즌인 2020년 기준으로는 일본어에 매우 능통하다. 일본에서는 젠젠 다이죠부[19]의 발음이 그의 이름과 비슷한 것을 이용하여 첸첸 다이죠부라고 말장난을 치곤 했다.[20] 이 유행어는 천관위 하면 첸첸 다이죠부가 따라올 정도로 나름 유명하다.
  • 평균 구속은 141~144 정도 유지를 하고, 긁히면 150 까지 무난히 찍는 패스트볼러 구위로 찍다 보니 주로 슬라이더를 무기로 삼는다.
  • 강정호가 2014년 일본 요코하마 스프링 캠프 때 같이 합숙[21]해서 한국에서는 강정호의 일본 팀 동료로 인식되어있다. 또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에서 강정호가 천관위에게 홈런을 치고 한국이 우승해서 병역면제 혜택까지 받아서 여러모로 천관위와는 인연이 있는 셈이다. 아시안게임 예선전 후 천관위가 인터뷰 하는 도중 강정호가 머리를 쓰다듬고 가는 장면이 국경을 초월한 우정이라며 훈훈함을 자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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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본 시절에는 가장 많이 받을 때도 연봉 20만 달러 정도의 보험용 외국인이었다. 그래서 순수 연봉만 보면 오히려 대만에 복귀한 후에 더 많이 받는다.[22]


[1] 한국식 독음은 진관우[2] 롯데 시절 등장곡으로 메이저: OVA 월드시리즈의 주제곡이다.[3] 라쿠텐 몽키스에서 쓰는 등장곡으로 일본 시절 유행어인 첸 첸 다이죠부를 가사로 사용한다.[4] 병역은 이 은메달로 해결한 것으로 추정된다.[5] 원래 일본프로야구 팬 감사제는 시즌 끝나고 한 달 이상 지나서 열린다. 그래서 외국인 선수가 참여하는 것은 심히 이례적인 것. 천관위도 2016년에 참가한 것이지 매년 참가한 것은 아녔다.[6] 이대은의 방출은 군 문제가 컸다.[7] 두산 베어스에서 뛰던 외국인 선수 맞다.[8] 일본야구는 무승부 상황을 유지하기만 해도 홀드를 인정하기 때문에 무승부 상황에서도 자주 필승조를 올린다.[9] 애초에 롯데는 외인 쿼터 4명을 다 안 채우고 투수 2명만 1군에 올려놓은 상태라서 외인 쿼터는 상관이 없었다.[10] 이 선수는 2018년에 1군에 데뷔한 선수인데 데뷔전부터 블론세이브를 했고, 이날까지 11경기에 등판해서 3블론을 저질렀다.[11] 드래프트 직전까지만 맺는 임시계약이다. 1군경기엔 나갈 수 없다. 왕웨이중도 이런 식으로 드래프트 전에 대만프로야구 2군에서 반년간 뛰었다.[12] 대만에서는 해외 복귀파도 계약금을 받을 수 있다. 또한 이 돈은 한화로 8억 5000만원 안팎이다.[13] 여담으로 이 해 드래프트는 1라운더 5인이 모두 해외파였다. 이 중 메이저리그 출신은 전체 3순위 후치웨이 1명이 유일하고 마이너리그 출신이 1순위 장샤오칭과 5순위 지리지라오공관(주리런), 일본 출신이 2순위 천관위와 4순위 뤼옌칭이었다.[14] 비자책 실점은 있긴 했다.[15] 비슷한 시기 일본 도전을 했던 궈쥔린, 양야오쉰, 랴오렌레이, 왕이정, 청카이원, 리첸창 등이 결국 1군 레귤러가 된 시즌은 전혀 없으며, 짧으면 1년, 길어야 4-5년을 못 버티고 대만으로 돌아간 걸 생각하면 그래도 천웨이인 이후로 대만프로야구를 거치지 않고 일본으로 직행한 투수 중에서는 쑹자하오 다음으로 성공한 선수라는 것을 알 수 있다.[16] 거기다가 대학을 대만에서 졸업하고 입단한 케이스라 외국인 쿼터 제약을 받는다는 것도 문제.[17] 저 둘은 1군 기록 자체는 있지만 그냥 배팅볼 투수 수준으로 얻어맞았다. 1군에서 40경기를 불펜으로 출장하며 ERA 3점대까지 찍어본 천관위랑은 비교 불가. 굳이 비교하자면 왕웨이중 정도가 비슷한 커리어일 것이다.[18] 어느정도는 웃자고 한 말로 보이지만 실제로 외국인에게는 어느 매체로 일본어를 공부하냐에 따라서 빠르게 익히는 부분과 익히기 어려운 부분이 사람마다 다르다.[19] 전혀 문제없다, 괜찮다. 라는 의미다.[20] 일본에서는 천관위를 첸관유라고 부른다.[21] 당시, 강정호는 일본 요코하마 디엔에이 베이스타즈 구단 아래 하에서 배려를 받아 합숙하였다. 감독인 나카하타 키요시에게 눈도장을 찍은 상태였다. 감독 曰: 해외리그에서도 통할 것 같습니다 라고 말한적이 있다.[22] 천관위의 2020년 연봉은 2160만엔(당시 환율로 20만 달러 정도다.), 2022년 연봉은 약 27만 달러였다. 엔화가 싸져서 천관위의 2022년 연봉을 엔화로 환산하면 3360만엔이라 사실상 1.5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