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2-13 00:02:22

철원평강용암대지

한반도의 평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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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원평강용암대지[1]
鐵原平康熔岩臺地
Cheolwon-Pyeonggang Lava Plateau
파일:CPLP_LAND.png
<colbgcolor=#fff,#1f2023> 위치 강원특별자치도 철원군
경기도 포천시, 연천군
(북한) 강원도 철원군, 평강군, 세포군, 회양군 일대
규모 면적 650㎢[출처]
1. 개요2. 상세3. 관련 문서
파일:CPLP_VIEW.png
[clearfix]

1. 개요

파일:orisan.png
소이산에서 본 철원평야와 오리산 (흰색 화살표)

강원도 평강군 소재 휴화산오리산세포군 검불랑역 인근 분화구의 열하분출로 인해 생성된 현무암 용암 대지로, 강원특별자치도 철원군, 경기도 포천시, 연천군 일부와 북한강원도 평강군, 세포군, 회양군 일대에 분포한다. 흔히 철원평야(鐵原平野)라고 불린다. 6.25 당시 대한민국이 격전 끝에 부분적으로 수복한 지역이다. 실제로 종전 이후에 철원 노동당사 빼고는 철원에 멀쩡한 건물이 한 개도 남아있지 않았을 정도이다. 사진 아래쪽 논은 대한민국의 경작지이며, 사진 중앙 녹색지대 경계부터 멀리 보이는 산들까지는 비무장지대(DMZ)와 북한 지역이다. 오리산에서 분출한 용암은 비교적 점성이 낮기 때문에 화산체의 경사가 거의 평지에 가까울 정도로 완만하다. 우측 고지에 한국군 초소가 보이고 뒤쪽으로 군사분계선이 지난다.

2. 상세


서울원산을 잇는 추가령 구조곡한반도 중부의 신생대 화산 활동 지역으로, 열곡을 따라 휴화산이 다수 존재하는데 오리산도 그 중 하나이다. 오리산은 신생대 제4기 플라이스토세(약 200만~1만년 전)에 최종 분화하였는데, 철원평강용암대지도 이때 만들어졌다.

분출된 용암은 한탄강 유역과 임진강 유역 등 추가령 구조곡을 메워서 평야를 형성하였으며, 북쪽으로는 세포등판과 추가령까지, 남쪽으로는 포천군일대까지 평탄한 지형이 펼쳐져 있다.[3]

철원평강용암대지 내부에 중심을 둔 지역으로는 철원군, 평강군, 세포군이 있다. 평강읍내 시가지는 휴전선 이북 지역의 평야 중간 부분에 위치하며, 철원읍동송읍시가지는 평야의 남쪽 금학산 밑에 하나의 시가지로 형성되어 있다. 세포군 중심지는 평야의 북쪽으로 이어진 열곡 내부에 위치하며, 세포등판으로 이어진다.

대한민국에서 호남평야와 함께 지평선을 볼 수 있는 몇 안되는 곳이기도 하다.#

평야의 한가운데에 군사분계선비무장지대가 통과하면서 남북으로 나뉘어져 있다. 평야 지대의 면적으로 보면 북한 점유 지역이 약 70% 대한민국 점유 지역이 30% 가량이지만 농사에 적합한 지역은 대부분 대한민국령에 있다. 위성 사진을 자세히 보면, 같은 평야로 생각하기 힘들 만큼 이질적인 형태를 보이고 있다. 가운데 동·서로 가로지르는 녹색의 비무장지대, 남쪽 대한민국의 논, 북쪽 북한 지역의 경작지가 확연히 구분된다.

전근대 이전만 해도 수자원이 부족해서 농업생산력이 보잘 곳 없는 지역[4]으로 일제강점기에 봉래호 등 대규모 수리시설의 축조된 이후에 곡창지대화하였다. 또한 서울원산을 연결하는 축의 정확히 중간 지점에 있어 일제강점기까지는 철원역평강역을 중심으로 번성하였고 이런 이점을 이용해 6.25 전쟁 당시에는 공산군이 대규모 병력과 물자를 집결시켜놓고 남침을 준비하는 전략적 요충지인 일명 '철의 삼각지대'로 활용했다. 이후 1951년 6월 유엔군이 파일드라이버 작전(Operation Piledriver)으로 평야 남부 철원 일대를 장악한 이후 이곳을 놓고 백마고지 전투, 화살머리고지 전투 등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지금도 양측의 대군이 대치하고 있는 최전방 지역으로 군부대가 많다.

이런 연유로 6.25 전쟁 이후에는 남에서도 북에서도 모두 변방 지역으로 전락해버렸다. 현재 끊어진 경원선을 복원하고자 하는 노력이 이어지고 있으며, 향후 남북관계가 호전되고 남북연합이나 통일 단계까지 발전한다면, 이곳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될 것으로 보인다.

평야 내 비무장지대에는 태봉, 고려시대 도성인 철원성이 있다.

3. 관련 문서



[1] 흔히 사용하는 명칭은 철원평야, 철원용암대지 등이 있으나, 관련 연구문서와 평야의 절반이 평강군에도 분포한다는 점을 참고하여 철원평강용암대지로 서술하였다.[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철원평강용암대지 철원평야[3] 비슷한 시기 이 일대처럼 용암이 분출하여 용암대지가 만들어진 지역이 있는데, 바로 황해도 북동부의 신계군, 곡산군을 아우르는 신계곡산용암대지. 추가령 구조곡과 평행하는 예성강 단층대를 따라가며, 이곳의 경우 형성 과정에서 원래 예성강의 상류였던 곡산천이 남강을 통해 대동강으로 흐르도록 유로가 변경되는데 기여한 바 있다.[4] 당장 세종실록지리지만 봐도 철원과 평강을 가리켜 '땅이 메마르다'거나 '논이 별로 없다'고 기록해놓았는데 철원도호부에 대해서는 간전 4343결 중 논이 1/4도 안 된다고 하고, 평강현은 더 심해서 논이 58결 뿐이라고 했다. 물론 그 인근 동네들은 논이 1결인 곳들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