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레트로 휴고상 시상식 | ||||
최우수 전문 아티스트 | ||||
1952년 | → | 1954년 (2004년 수상) | → | - |
- | → | 체슬리 본스텔 | → | - |
<colbgcolor=#dddddd,#000000><colcolor=#000000,#dddddd> 체슬리 나이트 본스텔 2세 Chesley Knight Bonestell Jr. | |
출생 | 1888년 1월 1일 |
미국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 | |
사망 | 1986년 6월 11일 (향년 98세) |
미국 캘리포니아 카멀 | |
국적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
학력 | 컬럼비아 대학교 (중퇴) |
직업 | 화가, 디자이너, 일러스트레이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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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의 아티스트. 우주를 배경으로 한 그림들로 유명하며 '현대 우주미술의 아버지'라고도 불린다.1907년부터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건축학을 배우다 중퇴하고, 건설회사에서 건축가로 일하며 크라이슬러 빌딩과 금문교 등의 설계에 참여했다. 1930년대부터는 할리우드로 가서 영화의 특수효과에 쓸 매트 페인팅을 그렸다. 체슬리가 참여한 영화로는 1939년작 《노틀담의 꼽추》, 《시민 케인》, 《우주전쟁》 등이 있다.
체슬리 본스텔의 대표작 〈타이탄에서 본 토성〉 (1944) |
체슬리가 우주미술로 명성을 얻기 시작한 것은 1940년대부터다. 건축과 영화 분야에서 일하며 쌓아온 기술과 자신의 관심 분야인 천문학을 접목시켜 그린 위성에서 본 토성의 모습이 1944년 잡지 《라이프》에 실렸는데,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정말로 토성의 위성에서 사진을 찍어온 것처럼 사실적인 그림들은 독자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이후 베르너 폰 브라운과 함께 미국의 우주개발 계획을 소개하는 잡지 《콜리어스》의 기사 시리즈 "Man Will Conquer Space Soon!"에 삽화를 그리거나, 《어스타운딩》과 《F&SF》 같은 SF 잡지의 표지를 그리는 등 많은 그림을 그려왔다.
체슬리의 우주미술은 오늘날 다시 보면 사실과 맞지 않는 내용이 많다. 예를 들어 대표작인 타이탄에서 본 토성의 모습은 타이탄의 두꺼운 대기 때문에 실제 풍경과는 많이 다르다. 또한 단단한 지표면에 화산까지 있는 목성이나 운하가 있는 화성처럼 당시의 천문지식 기준으로도 오류가 많은 그림도 있다. 이런 단점들이 있지만, 체슬리의 그림이 가져다주는 고요하고 광활한 분위기는 많은 사람들을 우주에 매료시켜왔다.
1986년 미완성된 그림과 함께 사망했다.
2. 수상
- 국제환상문학상
- 1951: The Conquest of Space (논픽션)
- 휴고상
- 1974: (특별상)[1]
- 2002: The Art of Chesley Bonestell (관련도서)
- 2004: (전문 아티스트) - 1954년 레트로 휴고상
- 클룸프케-로버츠상[2]
- 1976
3. 여담
체슬리의 첫 번째 우주미술은 1905년 산호세의 릭 천문대에서 관측한 토성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 하지만 이 그림은 이듬해 샌프란시스코 지진으로 인해 소실되었다.미국 SF & 판타지 아티스트 협회에서는 체슬리의 이름을 따온 체슬리상을 수여하고 있다.
한반도를 묘사한 그림도 있다. 1950년대 잡지 《룩》에 실린 그림으로, 한반도 북부와 만주 지역을 살피는 인공위성을 상상한 그림이다. 참조
2018년에는 체슬리에 대한 다큐멘터리 영화 Chesley Bonestell: A Brush with the Future가 개봉했다.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