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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69년 ~ 1815년 | ||
성립 이전 | 멸망 이후 | |
시타와카 왕국 | 영국령 실론 | |
수도 | 캔디 | |
정치 체제 | 군주제 | |
국가원수 | 국왕 | |
공용어 | 싱할라어, 타밀어, 팔리어 | |
종교 | 상좌부 불교, 힌두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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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5세기부터 19세기까지 스리랑카에 있었던 왕국.2. 역사
1521년, 코테 왕국의 세 왕자가 반란을 일으키면서 왕국이 코테 왕국, 시타와카 왕국, 라이가마 왕국으로 분열되었다. 1522년, 시타와카 왕국의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포르투갈 제국과 연합했으나 1546년에 포르투갈이 코테 왕국과 연합해 섬을 공격하자 자프나 왕국과 동맹을 맺어 방어를 했다. 1590년대에는 대영제국과의 교류도 소규모 있었다.1602년, 네덜란드 식민제국의 탐험가 요리스 판 스필베르겐이 스리랑카 동부에 상륙하면서 네덜란드와의 교류가 시작되었다.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는 캔디 왕국과의 조약을 협상하려 했으나 실패로 끝나면서 협상을 하러 간 세발드 드 베이르트가 처형되었다. 그래도 1612년에는 네덜란드와의 조약이 체결되었다. 1619년에는 자프나 왕국이 포르투갈에 점령되었다. 1620년에는 덴마크 동인도 회사의 함대가 네덜란드와의 조약에 의해 도움을 주러 왔으나 포르투갈군을 물리치는 데 실패했었다.
1620년대에는 포르투갈의 지속적인 세력 확장을 했다. 포르투갈의 세력을 억제하기 위해 캔디 왕국은 네덜란드와의 동맹을 몇 차례 맺었고 포르투갈과의 전투에서 승리도 하면서 저항했으나 네덜란드와의 동맹은 오래 가지 못했다.
1656년, 네덜란드가 포르투갈을 물리치고 콜롬보를 점령했다. 캔디 왕국은 콜롬보의 요새들을 넘겨줄 것을 요구했으나 네덜란드는 이를 거절했다. 이에 캔디 왕국 내에서는 반란이 일어났고 그 사이에 네덜란드는 캔디 왕국의 여러 도시들을 차례대로 점령했다. 이후, 캔디 왕국은 프랑스 식민제국과의 연합을 꾀했으나 실패했다.
미국 독립 전쟁으로 인해 적대 관계였던 네덜란드와 영국은 영국의 트링코말리를 점령하면서 본격적으로 분쟁이 시작되었다. 곧바로 네덜란드가 탈환했으나 1795년 프랑스 혁명으로 인해 네덜란드령 실론이 바타비아 공화국의 편에 서면서 분열되자 네덜란드의 세력은 쇠퇴해갔고 그 사이에 영국이 주요 도시들을 점령해 나갔다. 1796년에는 콜롬보가 영국에 함락되면서 네덜란드령 실론이 멸망하고 영국령 실론이 세워졌다.
영국은 점령지들을 기반으로 군대를 보내 캔디 전쟁을 벌였고 캔디 왕국 내에서는 여러 차례 반란이 생기면서 분열되었다. 결국 1815년에 캔디 조약을 맺으면서 스리 비크라마 라자싱하 왕이 퇴위되었고 캔디 왕국의 땅은 영국령에 속하게 되면서 멸망했다. 멸망 이후 몇 차례 반란이 더 생겼으나 영국군을 물리치기에는 역부족이었고 빠르게 진압되었다.
[1] Mahanuwara Rajadhaniy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