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606a87><colcolor=#ffffff> 레젠다리움의 등장인물 켈레브리안 Celebrían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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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Celebrían 켈레브리안 |
성별 | 여성 |
종족 | 요정 (신다르) |
거주지 | 에리아도르(에레기온) → 로바니온(로슬로리엔) → 에리아도르(깊은골) → 발리노르 |
출생 | S.A. 300 |
직책 | Lady of Rivendell 깊은골의 귀부인 |
가족관계 | |
부모 | 켈레보른 (아버지) 갈라드리엘 (어머니) |
배우자 | 엘론드 |
자녀 | 엘라단 (아들) 엘로히르 (아들) 아르웬 (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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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톨킨 세계관의 등장인물이다.켈레보른과 갈라드리엘 부부의 외동딸이자 엘론드의 아내로, 엘라단, 엘로히르 형제와 아르웬의 어머니이다.
2. 이름
3. 생애
분노의 전쟁이 종결된 이후 제2시대 초에 태어났다.2시대에는 부모님과 함께 에레기온에 살고 있었다. 그러나 사우론이 켈레브림보르와 요정들을 선동하여 켈레보른과 갈라드리엘의 세력을 밀어내는 바람에 갈라드리엘과 함께 로슬로리엔으로 떠났다. 이때 켈레보른은 아내와 딸과 함께 가지 않고 에레기온에 남았다가 이후 엘론드와 함께 깊은골로 갔다. 그래서 나중에 갈라드리엘과 켈레브리안 모녀는 이후 켈레보른을 만나러 깊은골을 방문했는데, 이때 켈레브리안은 엘론드를 처음 만났다. 이후 몇 번 소집된 백색회의 때에도 엘론드를 만났으며 이러면서 관계가 발전된 것으로 보인다.
마침내 3시대 초에 엘론드와 결혼하면서 깊은골의 안주인이 되었다. 이후 그와의 사이에서 쌍둥이 아들 엘라단과 엘로히르, 고명딸 아르웬을 낳고 행복하게 살았다. 요정들이 일반적으로 자녀를 적게 낳았던 점을 감안하면 엘론드와 켈레브리안은 상당히 다산한 셈인데 그만큼 부부 금슬이 돈독했던 듯하다.[4]
그러나 3시대 2509년에 친정인 로슬로리엔에 부모를 만나러 안개산맥을 지나가다가 오르크들에게 붙잡혀 고문을 받고 독으로 상처를 입고 말았다. 다행히 당대에 오크 사냥꾼으로 유명했던 용맹한 엘라단과 엘로히르가 군사들을 끌고 가 어머니를 곧바로 구출하고, 의술의 대가였던 엘론드가 아내의 상처를 직접 치료해 주었다. 덕분에 육체는 회복될 수 있었으나 고문을 당하며 입은 정신적인 트라우마가 회복하기 힘들 정도로 심각해서 가운데땅에서 더는 기쁨을 찾을 수 없는 처지에 놓이고 말았다. 영혼에 상처를 입은 그녀는 가운데땅에 더 이상 머물기를 원치 않았고, 결국 이듬해 남편과 자식들보다 먼저 회색항구에서 배를 타고 발리노르로 떠났다.
여담이지만 켈레브리안이 먼저 발리노르로 간 탓에 아르웬이 훗날 아라고른과 약혼하고 결혼할 때 외할머니인 갈라드리엘이 켈레브리안을 대신하여 친정어머니 노릇을 했다. 역시 여담이지만 켈레브리안은 갈라드리엘에게서 물려받은 보물 엘렛사르를 아르웬에게 물려주었는데, 모종의 이유로 갈라드리엘에게 돌아간다. 갈라드리엘은 이것을 아라고른 2세에게 아르웬과의 사랑의 징표로 주었다.
4. 기타
엘프가 오크의 고문을 받아 피폐해졌다는게 은근하게 불건전하면서도 묘한 상상력을 자극하는지 주로 일본이나 서양 음지의 2차 창작에서는 오르크에게 성고문을 당하는 동인작들이 제법 많다. 그러나 가운데땅의 역사서에 엘다르는 성관계를 사랑의 결합으로 매우 특별하게 생각하며, 강간을 피할 수 없다면 영혼을 바로 만도스의 궁전으로 풀어놓을 것이라고 언급되어 있다. 따라서 오크의 고문은 물리적인 폭력과 독으로 인한 상해를 의미할 것이다.[S] 신다린[2] Silver(은). 원시 요정어 어근 KYELEP에서 파생됐다.[3] Queen/Crowned Lady(여왕/왕관 쓴 여인). 'Crown/Garland(왕관/화관)'을 뜻하는 원시요정어 어근 RIG에서 파생된 단어인 rīgā에서 비롯된 단어 rî(화환)과 원시 요정어 어근 NA/ANA에서 파생된 단어 ann(선물)이 결합해 파생된 단어이다.[4] 요정의 임신과 출산은 부모의 영혼을 매우 많이 소진하기 때문에 보통 1, 2명 정도의 자식을 낳고 더 이상 낳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단 축복과 기쁨, 치유로 가득 찬 발리노르에서는 이런 영혼의 소진이 있더라도 그 영향이 덜했기 때문에 더욱 많은 자식을 낳을 수 있었다. 그래서 놀도르 왕가나 바냐르 왕가는 자손들을 매우 많이 보았으며, 특히 페아노르와 네르다넬은 7명이라는 다산 기록을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