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556B2F><colcolor=#fff> 레젠다리움의 지명 로바니온 Rhovanion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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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바니온의 지도 | |
이름 | Rhovanion 로바니온 |
이명 | Wilderland 야생지대 |
위치 | 안개산맥 동쪽 |
민족 | 요정 난쟁이 인간 독수리 오르크 용 등 |
유형 | 지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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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반지의 제왕의 지명. 안개산맥 동쪽으로 북으로는 회색산맥과 철산, 동쪽으로는 '룬 해'까지 뻗어있으며 남으로는 안두인 대하와 에뮌 무일까지 이르는 곳을 아우르는 거대한 평야지대이다. 즉 안개산맥 동쪽에서 로한의 북쪽지대로 보면 된다. 보통 야생지대라고도 불리운다.이곳에 사는 민족은 북부인이라고 불린다.
2. 이름
3. 역사
언제부터 사람이 이곳에 살았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곳에는 에다인 세 가문 중 하도르 가문의 후예들이 모여 살았다.[4] 그들은 로바니온 동쪽과 남쪽, 에레보르 남쪽 달리는 강을 따라 깊은 숲 서쪽, 그리고 깊은 숲 남쪽의 광활한 평원, 후에 야생지대로 불리게 될 갈색 지대에 드넓게 퍼져 살았었고 많은 족장들이 이끄는 자잘한 소왕국들을 이루어서 번성하였다. 제3시대가 이르렀을 때 그들은 고대의 동맹에 따라 곤도르 왕국과 동맹을 맺어 동부인들을 막아내는 방파제 역할을 했다. 그들은 고딕어, 혹은 독일어와 비슷한 언어를 사용했으며[5] 뛰어난 기마술을 자랑하였다.제3시대 1200년 경, 비두가비아라는 한 제후가 달리는 강과 깊은 숲 사이의 영지에서 칭왕하였고 로바니온 왕국의 건국을 선언하였다.[6] 곤도르는 비두가비아 왕과 깊게 교류하였고 곤도르의 왕 발라카르는 비두가비아의 딸 비두마비와 결혼하여 강력한 결혼 동맹을 맺었다.[7] 하지만 1635년 불어온 대역병으로 인하여 로바니온 왕국은 크게 약해져 이후 다시는 그 세력을 회복하지 못했다. 마찬가지로 큰 피해를 입었으나 200년 동안 완전히 세력을 회복한 전차몰이족들[8]이 쳐들어와 벌어진 1851년의 평원의 전투에서 곤도르의 나르마킬 2세와 로바니온의 마르하리 왕이 나란히 전사하는 참패를 겪으면서 로바니온 왕국은 멸망하였다. 이 전투에서 동북쪽 영토에 대한 통제권을 상실한 곤도르는 이실리엔 이북 지역을 완전히 포기하게 되었고 로바니온에 살던 북부인들은 그대로 대다수가 노예가 되었다. 일부는 강을 건너 북쪽으로 올라가 그들의 또 다른 동족이었던 너른골 왕국에 합류하였다. 그리고 일부는 곤도르로 도망치고 남은 소수는 마하리 왕의 아들인 마르휘니 왕자의 지휘하에 깊은 숲과 안두인 대하를 건너 안두인 계곡에 정착하였으니, 이들을 에오세오드 족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곤도르도, 북부인들도 이러한 참패와 치욕을 잊지 않았다. 나르마킬 2세의 아들 칼리메흐타르 왕은 전쟁을 준비하였고 이에 마르휘니 왕은 그들이 로바니온의 대규모 반란을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렸다. 곤도르는 에오세오드 족과 힘을 합쳐 다고르라드에서 전차몰이족을 격파함과 동시에, 로바니온에서의 대규모 반란으로 인하여 전차몰이족은 로바니온[9]을 포기하고 동쪽으로 물러났다. 하지만 북부인들은 불타 잿더미가 되어버린 로바니온의 고향 땅에서 자신들의 세력을 재건하기는 불가능했고 마르휘니 왕 역시 얼마 안되는 생존자들을 이끌고 서쪽의 자신의 본거지로 물러가면서 갈색 지대는 무인지대가 되었다.
이후 로바니온은 계속된 격전지였다. 동부의 전차몰이족은 계속하여 끈질기게 로바니온을 침범하였고 이러한 2차 침공에 곤도르는 온도헤르왕이 전사하는 치명적인 타격을 입는다. 하지만 이 때도 안두인 계곡에 살고있던 에오세오드 족은 곤도르를 구원하였다. 그럼에도 결국 로바니온과 갈색 지대는 전차몰이족의 지배 아래에 놓이게 되었다.
곤도르의 견실한 우방인 에오세오드 족은 서서히 북쪽으로 이주하기 시작하였다. 돌 굴두르가 그들의 거주지에서 너무 가까웠고 서서히 인구가 늘면서 안두인 계곡은 너무 좁았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북상하기 시작하면서 곤도르 역시 치열한 내전과 외침이라는 내후외환에 시달렸으며 결국 곤도르의 역사에서 그들은 사라지게 된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에오세오드 족은 아르노르가 멸망했지만 앙마르 역시 멸망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 곳의 땅을 얻기 위해 북상, 앙마르의 잔존세력을 걷어내고 회색 산맥 남쪽, 안두인 강 상류에서 다시 번성하였다. 시간이 지나 곤도르에는 왕이 없어지고 섭정이 다스리게 되었다. 그리고 섭정 키리온의 시대가 되었고 다시 나타난 전차몰이족이 동부를 침범하여 갈색지대를 지나 곤도르를 위협하게 되었다. 남부 로바니온, 즉 갈색지대는 광활한 평야지대이면서 동시에 무인지대였기 때문에 적군은 아무런 문제없이 이실리엔까지 침범하게 될 상황이었다. 이에 키리온은 주위의 지원세력을 닥치는 대로 모으던 도중, 고대의 동맹을 생각해냈다. 그는 필사적으로 여섯 명의 전령을 보내 북방의 에오세오드 족에게 보내기로 했다. 그 중 단 한명, '보론딜'은 마침내 돌 굴두르와 기타 다른 적들의 방해를 뚫고 에오세오드 족에게 도착하여 곤도르의 위기상황을 전달하는 임무에 성공한다. 그리고 마침내 그곳에서 청년왕 에오를과 그의 에오세오드 족은 곤도르를 구원하기로 결정한다.
이때 에오를이 이끌고 온 병력은 에오세오드족 역사상 최대규모의 대군이었는데 무려 7,000명의 창기병과 800여명의 궁기병으로서 총 8,000에 달하는 기마대군을 이끌고 왔다.[10][11] 그리고 벌어진 켈레브란트 전투에서 로한군은 카리온이 이끌던 곤도르군을 일방적으로 몰아붙이던 전차몰이 족을 기습했고, 동부인 대군은 대패를 당하고 곤도르 땅에서 처참하게 쫓겨가는 참패를 당한다. 이후 키리온이 칼레나르돈을 로한인들에게 보답으로 주면서, 새로운 땅에 정착한 에오세오드 족들에 의해 본격적인 로한의 역사가 시작된다.
로바니온 왕국의 멸망과 이후 전차몰이족의 전횡, 그리고 패퇴로 인하여 북쪽의 너른골 왕국, 에스가로스 등을 제외한 로바니온은 사실상 아무도 살지않는 무인지대나 다름 없었다. 베오른족과 숲속 인간들은 사우론의 종복들에게 저항하고 있었지만 제대로 된 방어선이 없었기에 안두인 동쪽은 사우론의 입김이 제법 심하게 부는 지역이었다.
반지전쟁 후에 엘렛사르 텔콘타르로 즉위한 아라고른 2세에 의해 곤도르-아르노르 통합 왕국에 편입된다. 로바니온 왕가의 공주 비두가비아가 곤도르의 왕자 발라카르와 결혼했고 그들의 후손인 피리엘 공주와 아르세다인의 왕 아르베두이와 결혼해 태어난 아라나르스의 먼 후손이 아라고른이다. 즉, 아라고른은 곤도르, 아르노르, 로바니온, 세 왕가의 혈통을 모두 이어받은 인물이면서 자신의 혈통에 따라 세 영토를 통합한 것이다.
4. 지명
자세한 내용은 레젠다리움/지명 문서 참고하십시오.자세한 내용은 레젠다리움/지명 문서 참고하십시오.
5. 알려진 로바니온 왕국의 국왕과 왕족들
- 비두가비아(Vidugavia): 제3시대 1200년에 로바니온의 왕을 자처했으며, 곤도르와는 동맹 관계였다. 그는 곤도르 왕국의 왕자에게 자신의 딸을 시집보냈다.
- 마리하리(Marhari): 바두가비아 왕의 후손. 로바니온 왕국의 왕족으로 제3시대 1856년 평원의 전투에서 곤도르의 나르마실 2세와 함께 동부에서 온 전차몰이족과 싸우다가 전사하였다.
- 마르위니(Marhwini): 비두가비아 왕의 후손. 마리하리가 전사한 후, 마르위니는 로바니온 난민들을 이끌고 안두인 강의 동쪽과 어둠숲 사이의 땅에 정착하였다. 제3시대 1899년, 마르위니는 곤도르와 함께 전차몰이족(Wainriders)과 싸워서 승리해 그들을 동쪽으로 몰아냈다고 한다.
- 포스위니(Forthwini): 마르위니의 아들.
[S] 신다린[2] Wilderness/Wild Beast(야생/야생동물). 'Wild/Not Tamed(야생의/길들여지지 않은)'를 의미하는 원시 요정어 어근 SRAB에서 파생된 srāban, 또는 'wilderness(야생)'를 의미하는 원시 요정어 어근 DROB에서 파생된 roban에서 비롯됐다.[3] -Region/-Land(-의 지역/-의 땅). 'Wide/Extensive(넓은/광대한)'을 의미하는 원시 요정어 어근 YAN 또는 YON에서 파생된 yānā에서 비롯된 iaun의 접미사형이다.[4] 적어도 곤도르에서는 그렇게 생각했다.[5] 설정상 로한어는 고대 영어로 번역되는데, 로한어의 기반이 되는 로바니온어는 영어의 기원이 되는 독일어랑 비슷하다는 맥락이다.[6] 사실은 가장 강력한 제후인 수준이었지만.[7] 이 혼인으로 인하여 그의 아들 엘다카르는 순혈 두네다인이 아니란 이유로 6촌 동생 카스타미르와 친족분쟁을 겪는다.[8] 이들도 역병에 큰 피해를 입었다.[9] 여기서 로바니온이란 갈색지대를 말한다.[10] 참고로 세오덴이 미나스 티리스 구원을 위해 이끌었던 기병 수는 6,000으로서, 이 또한 로한 역사상 두 번째로 규모가 거대했던 출병이다. 당시 로한이 아이센가드와 국가의 운명을 건 전쟁으로 국력이 크게 소진된 것을 생각하면 미나스 티리스 구원을 위한 세오덴의 출병이야말로 로한의 모든 힘을 쥐어짠 것이었다.[11] 하지만 시간이 더 주어졌다면 세오덴의 출병 역시 에오를의 출병을 넘어서는 규모가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당시 세오덴은 미나스 티리스 전투까지의 시간이 너무나도 촉박했기에 동원 가능한 전군을 결집하면서 대기하고 있었다가 미나스 티리스가 폐허가 된 뒤에야 도착하게 될 지경이라 한계까지 기다린 상태에서 나머지는 후발대로 편성하도록 하고, 그 시점까지 집결된 군대만 끌고 달려갔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