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8B0000><colcolor=#FECD21> 이름 | 퀸투스 아이밀리우스 라이투스 (Quintus Aemilius Laetus) |
출생 | 미상 |
사망 | 193년 |
직위 | 근위대장 |
[clearfix]
1. 개요
로마 제국 네르바-안토니누스 왕조의 근위대장. 이탈리아어로 에밀리오 레토로 불리며, 이 이름으로도 많이 알려져 있다.세야누스, 티겔리누스, 클레안데르, 가이우스 풀비우스 플라우티아누스와 함께, 프라이토리아니 근위대장 중 간신에 반드시 거론되는 인물이다. 아이밀리우스 라이투스의 등장을 전후로 하여 프라이토리아니의 정치개입 선명성이 공식화되었고, 이 부분이 공화정 후기의 내전에 버금가는 다섯 황제의 해로 시작된 제국의 혼란 서막이 되면서, 짧게나마 세베루스 왕조가 있었더라도, 라이투스가 벌인 그 해악은 상상 이상으로 최악이었다고 평가받고 있다.
브루티아 크리스피나 황후, 콤모두스 황제를 연달아 암살한 뒤 페르티낙스를 황위에 옹립하는 데 일조했으나, 페르티낙스가 약속을 지키지 않자 그 역시 암살한 뒤 경매를 통해 디디우스 율리아누스를 새 황제로 세웠다. 이 사건을 명분으로 페스켄니우스 니게르,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클로디우스 알비누스가 연달아 황제를 참칭하고, 세베루스가 이탈리아로 로마군을 이끌고 오면서 라이투스를 국가의 적으로 규정해 위기에 몰린다. 이런 상황에서 라이투스를 제거해 협상력을 높이고, 라이투스가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편을 들 걸 우려한 문제를 인식한 율리아누스의 명령으로 193년 콤모두스의 애첩이었던 애인 마르키아와 함께 처형되었다.
2. 생애
성씨인 아이밀리우스만 보면 알바롱가에서 기원한 오래된 로마 파트리키 가문인 아이밀리우스 가문 사람 같지만, 이탈리아인이 아닌 푸닉 사람이다. 조상이 2차 삼두정치의 한축 레피두스의 조치로 로마시민권을 받으면서 아이밀리우스를 노멘으로 받았다. 고향은 아프리카 속주의 도시 테네. 오늘날의 튀니지 남동부의 도시 스팍스 근교에 있는데, 테나이로도 불린다. 테네가 고대 페니키아 식민도시였다는 점과, 이곳 주민 중 공화정 말 이후의 로마시민권자가 레피두스에게 시민권을 받은 옛 카르타고 주민들이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옛 카르타고인 후손이다.언제 프라이토리아니 장교로 배속되었는지 불명확하나, 2세기 하드리아누스 시대부터 푸닉 출신들이 그리스, 아나톨리아, 레반트 출신들과 함께 원로원 내 핵심세력이 된 것을 볼 때, 프라이토리아니 정식 공채 출신은 아니다. 그 이유는 속주 출신 프라이토리아니 장교, 병사는 극소수 있더라도 로마군 퇴역촌으로 출발한 식민도시에서만 간혹 공개선발 공고와 선발이 진행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푸닉 출신 귀족들의 연줄로 장교로 임관한 것으로 추정된다.
190년 콤모두스가 근위대장 레길루스와 루키우스 율리우스 베힐리우스 그라투스 율리아누스를 처형한 뒤, 단독 근위대장에 선임되었다. 188년 클레안데르의 음모로 간통죄의 누명을 쓰고 카프리 섬으로 쫓겨난 브루티아 크리스피나 황후를 사람을 보내 191년 암살했다. 이후, 콤모두스 황제의 방탕한 생활과 기행을 조장하면서, 해방노예이자 침실 하인 에클렉투스, 콤모두스의 애첩 마르키아와 함께 권세를 누렸다. 아내를 카프리 섬으로 보냈어도 이혼하지 않았던 콤모두스는 이때부터 불면증, 환각, 환청 증세가 심해졌고, 결국 국정을 내팽개친 채 검투사질에 광적으로 몰두했다. 그는 콜로세움에서 정식으로 검투사로 데뷔했고, 이 모습에 민중은 그런 그를 증오해 곳곳에서 불온한 움직임이 일었다. 그러던 중 콤모두스가 아예 검투사 숙소에 살면서 본격적으로 검투사가 되겠다고 선언하자, 그는 마르키아 등과 함께 만류했다. 그러자 콤모두스는 두 사람을 처형하라는 명령서에 서명했다. 이 명령서는 누설되었고, 두 사람은 행동을 개시하기로 마음먹었다.
192년 12월 31일, 라이투스와 마르키아, 에클렉투스는 음식에 독을 탄 뒤 콤모두스를 독살하려고 했다. 하지만 콤모두스는 당시 로마 황실의 독살위험 방지법에 따라, 습관 그대로 해독제를 마시고 마르키아가 건넨 독주를 마셨다. 따라서 해독제 효과 덕에 콤모두스는 침실에서 자다가 욕실로 뛰어가서 먹고 마신 것을 토하면서 곧바로 회복했다. 이때 그는 독살 시도를 알고 명령을 내리려고 했는데, 해독 과정에서 구토를 했고, 이후 해독 효과 속에서 괴로워하면서 기운 빠진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동시대 황실비서, 관료인 헤로디아누스는 암살자들은 황제가 죽지 않자 몹시 놀라고 공포에 사로잡혔다고 밝혔다.
이때 라이투스는 본래부터 영악하고 항상 실패 가능성을 염두에 두어, 미리 콤모두스의 레슬링 교관이자 스파링 파트너인 귀족 청년 나르키수스에게 폭군 제거 후의 공로를 대가로 엄청난 돈과 지위를 제안해 포섭해 놓았다고 헤로디아누스는 전한다. 그래서 콤모두스가 거의 반쯤 뻗어서 정신을 못 차리는 틈을 노려, 나르키수스가 황제를 부축하는 척 접근해 그를 목 졸라 죽였다. 콤모두스의 시신은 집정관 당선자 중 한 사람인 파비우스 킬로에게 넘겨져 한밤중에 가매장되었다. 암살이 성공한 뒤, 라이투스는 에클렉투스와 함께 페르티낙스를 찾아가서 콤모두스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리고, 황제가 되어달라고 요청했다. 페르티낙스는 근위병 한 사람당 12,000 세스테르티우스를 주기로 하고 라이투스를 아이깁투스 장관에 임명하겠다고 약속했다.
협상이 끝난 직후, 콤모두스 암살 성공이 발표되는데, 라이투스는 그날 아침 로마 근교 병영으로 페르티낙스를 모시고 에클렉투스, 페르티낙스 지지 의원들과 무장한 무리를 끌고 도착했다. 이날은 로마인들이 새해를 맞아 바쁘고, 프라이토리아니 전 병력은 무기를 휴대할 수 없었다는 점에서 기회였다고 한다. 이날 라이투스는 전 병력을 연병장으로 불러 모은 뒤, 이렇게 말하면서 페르티낙스에 대한 충성을 요청했고, 원로원 의원들과 에클렉투스는 페르티낙스 만세를 계속 외쳤다.
"여러분의 황제이신 콤모두스께서 뇌졸중으로 쓰려지셔서 서거하셨다. 사람이 세상을 뜨는 것은 모두 다르고, 황제께선 불규칙한 폭음과 습관으로 허무하게 돌아가셨다. 그러니 너희들은 지금 나이 많고, 경험이 풍부한 아버지 같으신 페르티낙스를 맞이해라."
근위대 전체는 반신반의하다가, 원로원 의원과 에클렉투스를 위시한 관료들이 반박없이 계속 페르티낙스 만세를 외치고 그 주위에선 바람잡이로 모인 군중들까지 분위기를 유도하자 결국 지지하겠다고 맹세했다고 한다. 이렇게 라이투스는 프라이토리아니의 지지를 얻어낸 뒤, 원로원의 승인하에 페르티낙스를 황제로 선포되었다.
그런데 페르티낙스는 황제에 즉위한 뒤 약속했던 보너스의 절반만 줬다. 이에 근위대 장병들이 약속 이행을 요구하자, 그는 혹독하고 강압적인 훈련을 시키는 걸로 대응했다. 또한 라이투스를 아이깁투스 총독에 앉히겠다는 약속 역시 없던 일로 해버렸다. 이에 라이투스와 근위대는 분노했고, 3월 28일 정변을 일으켜 페르티낙스를 살해했다. 이 과정에서 라이투스는 페르티낙스가 오스티아를 방문한 틈을 노려 1차 암살 계획을 세웠다가 황제의 관용으로 용서를 받음에도, 다시 2차 계획을 세워 페르티낙스 황제를 죽였다.
그 후 라이투스는 부하들에게 명을 내려 페르티낙스의 수급을 장대에 높이 매단 채 진지로 돌아와 병영 문을 걸어 잠근 뒤, 새 황제를 뽑기 위한 경매를 공개적으로 벌였다. 그는 페르티낙스의 장인 티투스 플라비우스 술피키아누스가 노골적으로 경매 참여 의사를 밝혀 제위를 사들인 다음 자신을 손보려고 하자, 디디우스 율리아누스를 끌여 들여 경매 경쟁을 부추겼다. 이 경매에서 라이투스와 부하들은 바람잡이 역할을 하면서, 양측의 자존심 싸움을 유도했다. 따라서 율리아누스는 술피키아누스보다 더 높은 보너스를 약속하면서, 만약 술피키아누스를 뽑는다면 자기 손으로 페르티낙스 모살에 대한 복수를 하겠다고 경고했다. 라이투스와 근위대는 논의 끝에 율리아누스를 새 황제로 세우기로 결의했다.
193년 4월 19일, 셉티미우스 세베루스가 다뉴브 전선 군단의 지지를 받으며 황제를 자칭한 뒤 로마로 쳐들어갔다. 율리아누스는 근위대를 시켜 로마 주변의 땅을 파서 요새를 세우게 했지만, 장병들은 온갖 핑계를 대며 그 일을 하지 않았다. 이에 율리아누스는 근위대장 라이투스가 자신을 세베루스에게 팔아넘기려 한다고 여기고, 기습적으로 라이투스와 그의 애인인 콤모두스의 애첩 출신 마르키아를 체포한 뒤 이들을 처형했다. 그러나 근위대는 끝내 그의 통제에 따르지 않았고, 세베루스 역시 라이투스를 제거했더라도 권력을 나눌 생각이 없어 로마 근교에 군영을 갖추고 결전을 준비했다.
결국 193년 6월 1일 세베루스가 로마에 입성하기 직전, 디디우스 율리아누스는 원로원에게 사형을 선고받고 참수형에 처해졌다. 세베루스는 모계쪽 먼 친인척이었던 디디우스 율리아누스에게 악감정이 없고, 율리아누스가 즉위 전까지 충신, 맹장이라는 점을 존경해온 터라, 유족들에게 시신을 수습해 장례를 치르게 했다. 동시에 그는 라이투스가 벌인 페르티낙스 암살, 황제 자리를 경매로 판 일 등을 처벌하겠다고 선포 후, 근위대 전원을 로마에서 멀리 추방하고, 본인 휘하의 판노니아 출신 로마군 병사들을 새 근위대원으로 임명했다.
3. 창작물
영화《글래디에이터》에서는 배우 토마스 아라나가 연기했다. 작중에서는 퀸투스라고만 불리며, 막시무스의 동료 장군으로 게르만족과 싸울때 막시무스의 기병대가 게르만족의 뒤를 덮칠때까지 보병대를 지휘하여 적을 붙들어놓는 임무를 맡았다. 기회주의자로 콤모두스가 아우렐리우스를 시해하고 황위를 찬탈했음을 눈치챘음에도 묵인하고 막시무스를 배신하여 근위대장 자리에 앉는다. 심지어 막시무스가 자신의 가족들을 지켜달라고 부탁하자 오히려 저승에서 만나라라며 순식간에 등을 돌린다. 그러나 막시무스 때문에 콜로세움에서 망신을 당한 콤모두스가 그를 처리 못한 죄를 물어 당시 현장을 발견했음에도 제대로 보고 하지 않은 친위대원 2명을 퀸투스에게 직접 사형명령을 내리게 한다. 퀸투스는 여러가지 상황이 겹쳐서 혼선이 있었고 저들은 당신에게 충성을 바친 훌륭한 부하들이니 제발 죽이지 말아달라고 해명하지만 콤모두스는 무미건조한 얼굴로 그럼 너도 한패냐 라며 그를 몰아세워 어쩔수 없이 사형을 내리게 된다. 아마 이때를 기점으로 그는 황제에게 깊은 앙금을 품게 된것으로 보인다. 감독판에서는 막시무스가 콤모두스에게 잡힌뒤 찾아와서 "나는 군인이야. 명령을 따를 수 밖에 없어."라고 변명을 한다. 막시무스는 "자네같은 사람한테는 아무 일도 안 일어나는 법이지."라고 일침을 놓고, 그 뒤로 복잡한 심경이 드러나는 얼굴로 막시무스와 콤모두스의 대결을 지켜본다. 결국 막시무스와 황제의 마지막 대결에서 양심의 소리를 따르기로 결심. 막시무스의 일격에 칼을 놓치고 근위병들에게 칼을 달라는 콤모두스의 명령을 듣자 "칼을 넣어라!"[1]는 명령을 내려 막시무스가 승리할 수 있도록 해준다. 그 후 근위병들을 지휘해 숨진 막시무스의 유해를 모시고 콜로세움을 떠난다. 원래 역사대로라면 기회주의자지만 여기서는 신념은 있는 인물.웹툰《무사만리행》에서는《라에투스》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신들린 아부 실력과 처세술로 콤모두스 황제의 눈에 들어서 벼락출세후 승승장구하지만 언제까지 폭군 콤모두스의 비위를 맞추면서 사는게 가능할지 불안해하며 반란을 일으킬 계획을 세운다.
[1] "Sheath your sword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