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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크인의 왕 Childeric III | 킬데리크 3세 | ||
제호 | 한국어 | 킬데리크 3세 |
프랑스어 | Childeric III | |
생몰 년도 | 717년 ~ 754년 | |
재위 기간 | 프랑크인의 왕 | |
743년 ~ 751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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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프랑크 왕국 메로베우스 왕조의 마지막 왕.2. 행적
717년경 테우데리크 4세의 아들로 출생했다. 737년 테우데리크 4세가 사망한 후, 프랑크 왕국의 궁재 카롤루스 마르텔은 새 왕을 세우지 않고 왕좌를 공석으로 남겨뒀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는 기록이 미비해 분명하지 않으나, 왕으로 오르기 위해 사전 작업을 하려 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 후 마르텔은 왕이 없는 왕국의 궁재로서 전권을 행사하다가 741년 사망했고, 두 아들 카를로만과 피핀 3세가 궁재를 세습했다. 두 사람 역시 몇 년간 왕을 옹립하지 않다가 이복 동생 그리포와 처남인 바이에른 공작 오딜로의 반란에 직면하자, 그들의 통치에 합법성을 더하기 위해 743년 선왕의 아들인 그를 왕으로 옹립하기로 했다. 그래서 즉위했지만 킬데리크 3세는 모든 권력을 빼앗겨서 허수아비에 불과했으며 재산까지 통제당하는 신세였다.그 후 카롤로만과 피핀 3세는 최고 권력을 놓고 대립했다. 그러다가 경쟁에서 밀린 카롤로만이 747년 수도원에 들어가면서 피핀 3세가 유일한 궁재가 되었다. 751년, 피핀 3세는 모두가 자신을 추종하는데 왕이 되지 않을 이유는 없다고 판단했다. 그는 프랑크 대표단을 교황 자카리아에게 보내 다음과 같이 문의했다.
"실력은 있는데 왕이 되지 못한 자가 왕이 되어야 합니까? 아니면 왕이면서도 실력이 없는 자가 통치를 해야 합니까?"
자카리아는 피핀의 속내를 눈치채고 그를 왕으로 인정했다. 이에 피핀 3세는 751년 11월에 군대를 이끌고 가서 킬데리크 3세를 협박하면서 결국 킬테리크 3세는 폐위된다. 킬데리크 3세는 폐위되었을 뿐만 아니라 머리까지 강제로 삭발당하고 생오메르에 있는 생베르탱 수도원으로 보내어 유폐되었다. 이후 그곳에 갇혀 지내던 킬데리크 3세는 754년에 37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이리하여 메로베우스 왕조는 역사의 무대에서 퇴장했고 카롤루스 왕조가 등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