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9-13 20:08:33

메로베우스

메로베우스 왕조 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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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리 프랑크인의 왕
Meroveus | 메로베우스
제호 한국어 메로베우스
라틴어 Meroveus
프랑스어 Mérovée, Merowig
출생 415년
사망 457년 (향년 42세)
재위 기간 448년 ~ 457년?

1. 개요2. 행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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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살리 프랑크족의 왕. 메로베우스 왕조의 시조이다. 근거는 없지만 예수마리아 막달레나가 조상이란 소문도 있고 댄 브라운 같은 일부 음모론자들이 이를 지지한다.

2. 행적

이름으로 쓰인 메로베(Mérovée)는 "전투에서 유명한", 또는 "유명한 전사"를 의미한다. 6세기의 프랑크 왕국 연대기 저자 투르의 그레고리우스에 따르면, 그는 클로디오의 후손일 수도 있으며[1] 클로비스 1세의 조부라고 한다. 7세기의 연대기 저자 프레데가르에 따르면, 클로디오의 아내는 임신한 채 바다에서 목욕하다가 물의 신 넵튠의 괴물 퀴노타우르에게 유혹을 받고 두 번째 임신을 통해 프랑크 왕과 신의 혈통이 혼합되었고, 이후 태어난 메로베우스는 막강한 힘과 마법, 초자연적인 기운을 발휘했다고 한다. 또한 그의 피를 이어간 왕들은 대대로 마법을 부리고 강력한 힘을 발휘했다고 한다. 프리스쿠스에 따르면, 그는 희고 긴 머리를 가졌다고 한다.

629년에서 639년 사이에 작성된 아우스트라시아 국왕 족보에는 다음과 같이 명시되어 있다.
클로디오는 프랑크의 첫번째 왕이다. 클로디오는 클로도베드의 아버지다. 클로도베두스는 메레베오를 낳았다. 메레베우스는 킬데리크의 아버지다. 힐데브리쿠스는 게니오도의 아버지다. 게니오두스는 힐데리코를 낳았다. 힐데리쿠스는 클로도베오를 낳았다...

계보학자 크리스티안 스테파니는 이 문구를 다음과 같이 해석했다.
클로디오는 클로도베드와 메로베를 낳았다. 메로베는 킬데리크를 낳았다...

그러나 역사가 장 피에르 폴리는 메로베우스가 435년에 결혼한 클로디오의 아들이라면 457년경에 왕이 된 킬데리크 1세를 낳을 수 없다고 추정하면서, 메로베우스는 클로디오의 아들 클로도베드의 별명이라고 추론했다. 하지만 이를 입증할 증거가 부족하기에, 그가 클로디오의 후손인지, 클로디오의 아들인지는 현재까지 불명확하다. 심지어 그가 실존인물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존재한다. 근거는 메로베우스의 이름이 고대 고지 독일어로 '바다의 아들'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는 것으로, 프랑크족이 기독교화 이전에 믿었던 신의 이름이라는 것이다. 또 에티엔 르나르는 9세기와 10세기의 프랑크 왕국 족보 자료를 해석해 9세기의 족보에는 들어가 있지만 10세기의 족보에는 없는 이름들이 메로빙거 왕조의 모계 조상들이라고 주장하며, 메로베우스는 메로빙거 왕조의 부계 조상이 아닌 클로디오의 아들 클로데바우데와 결혼해 킬데리크 1세를 낳은 여성의 가문의 신화적 조상이라고 주장했다. 본래 게르만 문화권에서 조상의 이름을 물려받는다는 것은 그 사람을 계승해 행보를 이어간다는 씨족적 의미가 있는데, 메로베우스는 메로빙거 왕조의 시조로 설정된 인물치고는 클로-(clo)계열 이름들이 유독 많은 메로빙거 왕조에서 유독 튀어보인다는 것이다.

프리스쿠스에 따르면, 메로빙거 시대의 프랑크 왕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는데, 장자는 아틸라와 손을 잡았고 차남은 로마로 가서 서로마 제국의 권신 플라비우스 아에티우스의 양자가 되었고 막대한 선물을 받고 로마의 동맹이 되었다고 한다. 메로베우스가 '아에티우스의 양자가 된 차남'이라는 설이 중세부터 제기되었지만, 역사가들은 이 주장의 신빙성에 대해 의견이 엇갈린다. 에리히 죌너 등 일부 학자들은 이 기록에 등장하는 '프랑크'는 살리 프랑크족이 아니라 아틸라의 편에 선 라인란트 프랑크족을 가리킨다고 주장했다. 에밀리엔 드무조 등은 메로베우스는 451년에 죽었고, 아들 킬데리크 1세가 아에티우스의 양자가 되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크리스티안 세타파니는 클로디오가 451년에 사망했고 메로베우스가 양자로 들어갔다고 주장했다.

451년 6월 20일, 플라비우스 아에티우스가 이끄는 로마군과 서고트족, 프랑크족 연합군이 아틸라훈족, 동고트족, 부르군트족, 게피드족 동맹군을 상대로 카탈라우눔 전투에서 맞붙었다. 이때 서고트 왕 테오도리크 1세가 격전을 치르던 중 전사했고 아들 토리스문드가 아버지를 대신해 고트족을 이끌어 승리로 이끈 사실은 확인되나, 프랑크족을 이끈 지도자에 대해서는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요르다네스에 따르면, 전투 전날 밤에 프랑크족과 게피드족이 충돌하여 15,000명의 사상자를 냈으며, 전투 후 본거지로 돌아갔다는 것만 전해진다. 일각에서는 메로베우스가 프랑크군을 이끌어 카탈라우눔 전투에 참여했으며, 전투가 끝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사망하고 켈데리쿠스 1세가 뒤를 이었다고 추론하지만 불확실하다.


[1] 후손이라고 명시하지는 않았고, 그렇다고 카더라 식으로 적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