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5-22 12:09:07

태병렬

太炳烈
1916년 3월 3일 ~ 1997년 2월 4일

1. 개요2. 생애3. 여담4. 참고문헌

1. 개요

북한의 군인, 정치인. 항일 빨치산 1세대.

2. 생애

1916년 3월 3일, 함경남도 갑산군 평화리에서 태어나 일찍이 중화민국 길림성 연길도(延吉道) 화룡현(和龍縣)[1]으로 건너가 그곳에서 성장했다. 1931년 가을에 추수투쟁에 참여하는 등 젊어서 공산주의 운동을 했고 1936년 3월, 김일성 유격대에 입대하여 4월 미혼진에서 김일성을 직접 만나고 여러 전투에 참여하였다. 이때 다리에 중상을 입었으나 스스로 치료하는 등 부상투혼을 펼쳤다 카더라.

8.15 광복 이후 귀국, 1945년 11월에 보안국에서 복무하였으며 1946년 6월 중앙보안간부학교 교원이 되었다. 1950년 3월에 조선인민군 연대장에 임명, 6.25 전쟁에 참전하여 서울 전투, 대전 전투, 낙동강 전투에서 싸웠다. 인천상륙작전 이후 유엔군의 반격에 중상을 입고 낙오되었으나 부대를 수습해 강계까지 후퇴하였다.

1952년 2월부터는 김일성을 직접 수행하였으며 대연합부대 부대장에 임명되었다. 1956년, 당중앙위원회 부부장을 거쳐 1961년 4차 당대회에서 중앙위원회 후보위원에 선출되었다. 1962년 3기 최고인민회의에서 대의원에 선출되었다. 1965년 당중앙위원회 부장에 임명되었으며, 1970년 5차 당대회에서 중앙위원회 위원으로 승진했다. 1970년 3월 2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정령에 따라 공화국영웅 칭호, 국기훈장 1급, 금별메달을 받았다. 1974년 9월, 김경인 장의위원, 1977년 3월, 지병학 장의위원에 위촉되었다.

1980년 6차 당대회에서 중앙위원회 위원으로 재선되었으며, 당중앙군사위원회 위원으로도 선출되었다. 1982년 4월 2일, 중앙인민위원회 정령에 따라 김일성 칠순기념 김일성훈장을 수훈받았다. 1983년 9월부터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장을 맡으면서 사실상 은퇴했다. 1982년 3월, 전창철 장의위원, 1982년 4월, 최현 장의위원, 1984년 3월, 김일 장의위원, 1984년 4월, 오백룡 장의위원, 1986년 4월, 김좌혁 장의위원, 1987년 8월, 박영순 장의위원, 1988년 4월, 림춘추 장의위원을 지내는 등 빨치산 1세대들이 사망할 때마다 장의위원에 위촉되었다. 1992년 4월 23일, 조선인민군 창건 60주년을 기념한 중앙인민위원회 정령에 따라 오진우, 최광, 김철만, 전문섭, 백학림, 리을설, 주도일, 리두익, 최인덕, 황순희, 김룡연, 최용진, 리종산과 함께 공화국 2중영웅이 되었으며 최고사령관 명령 0024호에 따라 조명선, 김룡연, 리종산, 리하일, 리병욱, 리봉원, 리동춘, 장성우, 조명록, 김일철, 김영춘, 김봉을, 전재선, 박기서, 김리창과 함께 대장으로 진급하였다. 1992년 9월, 서철 장의위원을 지냈다.

1994년 김일성 장의위원, 1995년 오진우 장의위원을 지냈으며 1995년 10월 7일, 모범적 군인으로 선정되어 김정일로부터 표창을 받았다. 1997년 2월 4일, 12시 20분에 병환으로 사망하였다. 당중앙위원회와 당중앙군사위원회는 공동명의로 부고를 발표, 그의 빨치산 투쟁, 6.25 전쟁 참전, 군사로선 관철에 대한 공적을 언급하였으며 "동지는 생명의 마지막순간까지 당과 수령에게 무한히 충직하였다."라고 칭송했다. 다만 군사위원회 위원에서는 그 중간에 해임되었는지 중앙위원회 위원이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이라고만 직함을 보도하였다.

이후 시신은 대성산혁명렬사릉에 안장되었으며 반신상이 제작되었다.

3. 여담

  • 그의 아들은 사회과학원 원장, 김일성종합대학 총장,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부위원장을 거쳐 김정은 시대에 과학교육비서로 활동했던 태형철이다.
  • 태영호가 그의 아들이라는 소문이 있었으나 낭설로 밝혀졌다.

4. 참고문헌

  • 김광운, 북한 정치사 연구 1: 건당, 건국, 건군의 역사(서울: 선인, 2003).

[1]중화인민공화국 지린성 연변 조선족 자치주 화룡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