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02-05 17:30:35

플라비오 브리아토레

BWT 알핀 F1 팀
BWT Alpine F1 Team
파일:플라비오 브리아토레 2024.webp
<colbgcolor=#000> 이름 플라비오 브리아토레
Flavio Briatore
출생 1950년 4월 12일 ([age(1950-04-12)]세)
이탈리아 베르주올로
국적
[[이탈리아|]][[틀:국기|]][[틀:국기|]]
가족 슬하 2남
소속 베네통 포뮬러 (1989~1990)상업 디렉터
베네통 포뮬러 (1991~2001)팀장
르노 F1 팀[1] (2002~2009)팀장
BWT 알핀 F1 팀 (2024~)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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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생애 초기와 사업가 시절3. F1 스태프4. 팀장, 고문 시절 기록5.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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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탈리아 국적의 사업가이자 BWT 알핀 F1 팀의 고문.

2. 생애 초기와 사업가 시절

브리아토레는 1950년 4월에 이탈리아 베르주올로(Verzuolo)에서 초등교사 부부의 사이에서 태어났다. 고등학생 시절까지는 성적이 좋지 못했는데, 고등학생 시절에는 가장 낮은 등급의 졸업장을 받고 졸업할 정도였다. 학교를 졸업한 브리아토레는 스키 강사와 레스토랑 매니저로서 일을 하기 시작하였다.

이후 브리아토레는 트리뷸라(Tribüla)라는 식당을 오픈하였으나, 저조한 가게 운영으로 장사는 실패하였고, 결국 많은 부채로 인해 장사를 접어야 했다.

이후 그는 70년대 초에 파라마티 베르니치 페인트 회사에서 사업가인 아틸리오 두토(Attilio Dutto)[2]의 조수가 되어 일을 배웠고, 얼마 안 가 1974년에는 밀라노로 이사를 가 증권 거래소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이곳에서 당시 베네통의 설립자이자 회장인 루치아노 베네통을 만나며 베네통과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80년대에는 사기죄로 두 번의 징역형을 선고받아 망명 생활을 하게 된다. 첫 번째는 1984년에 사기죄로 1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가 항소하여 1년으로 감형받은 것이고, 형기가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은 1986년에 도박 사기팀에 가담한 혐의로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가 항소하여 1년 2개월로 감형받은 것이 두 번째이다. 브리아토레는 징역살이를 피하기 위해 미국령 버진아일랜드세인트 토마스 섬에서 사면될 때까지 망명 생활을 하였다. 그는 그 동안 베네통과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며 버진아일랜드에 몇 군데의 베네통 지점을 열었고,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베네통이 미국에 본격적으로 진출한 시기 미국 지부의 책임자를 맡았다. 베네통이 미국에서의 사업이 번창하자 브리아토레도 돈방석에 앉게 되었고, 새로운 사업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3. F1 스태프

3.1. 베네통 포뮬러 (1989~2001)

1988년 호주 그랑프리에 참석하면서 브리아토레의 포뮬러 1 커리어가 시작되었다.[3] 1989년 루치아노 베네통에 의해 베네통 포뮬러의 상업 디렉터로 임명된 그는 1991년 팀장으로 승진하였고, 이때부터 베네통을 경쟁력을 갖춘 팀으로 만들겠다는 야심을 품게 된다.

그는 우선 조던에서 싹수가 보이던 젊은 드라이버인 미하엘 슈마허를 영입하였다. 그 이후는 모두가 알다시피, 슈마허는 1994년과 95년 드라이버 챔피언에 올랐고, 베네통도 1995년 컨스트럭터 챔피언에 오르며 당시 F1 최강팀으로 군림하였다. 그러나 이듬해인 1996년 슈마허가 팀의 주요 인력들과 함께 페라리로 이적하자 베네통은 컨스트럭터 순위에서 중위권에 머무르게 되었고, 결국 1997년 브리아토레는 경질되었다.

이후 1998년부터 2000년까지 '슈퍼텍'이라는 회사를 이끌며 윌리엄스 등 여러 팀에게 르노 엔진을 공급해 주는 일을 하다가, 2000년 르노의 베네통 인수가 발표되자 베네통의 팀장으로 복귀하게 된다. 이 기간 동안 F1 유망주를 탐색하다가 페르난도 알론소를 만나고 그의 매니저가 된다.

3.2. 르노 F1 팀 (2002~2009)

2002년 알론소를 테스트 드라이버 자리에 앉힌 브리아토레는 이듬해인 2003년, 젠슨 버튼이 떠난 자리에 알론소를 앉히겠다는 결정을 발표한다. 당시 커다란 반발이 있었지만, 알론소는 그의 기대에 부응하며 2005 시즌, 슈마허의 독주를 끝내고 역대 최연소 드라이버 챔피언에 오른다.[4] 2006년에도 알론소는 챔피언에 올랐고, 두 시즌 동안 르노 역시 컨스트럭터 챔피언에 오른다.

그렇게 확고한 르노의 팀장으로서 경력을 보내던 중, 2009년 넬슨 피케 주니어에 의해 2008년 싱가포르 그랑프리에서 그가 피케에게 고의로 사고를 낼 것을 지시했다는 충격적인 사실이 폭로되었고, 이로 인해 브리아토레는 모터스포츠 업계에서 영구제명되었다. 자세한 내용은 2008년 르노 F1 승부조작 사건 문서 참조.

3.3. BWT 알핀 F1 팀 (2024~)

그러나 어처구니없게도 2024년, 르노의 CEO 루카 데 메오의 요청으로 브리아토레는 알핀의 고문 자격으로 F1에 돌아오게 된다. 사실상 팀의 실세로 활동하고 있으며, 부임하자마자 팀 수석 브루노 파망을 교체하고 올리버 오크스를 그 자리에 앉혔다. 또한 영국 엔스톤에 있는 공장 인원을 25% 감축하고, 르노 엔진 개발 중단 및 메르세데스 파워 유닛 커스터머 계약 체결을 이끌어 내었다.

2025년 들어서는 프랑코 콜라핀토에 꽂혔는지 알핀의 콜라핀토 영입설이 퍼지고 있다. 잭 두한이 시즌 초반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할 경우 콜라핀토로 교체될 수 있다는 루머가 계속해서 나오고 있다. 결국 한국 시간으로 1월 10일, 콜라핀토를 리저브 겸 테스트 드라이버로 영입하는 데 성공했다.

4. 팀장, 고문 시절 기록

5. 여담



[1] 르노의 베네통 인수 이후에도 팀을 그대로 이끌었다.[2] 1979년에 의문의 폭탄 공격을 받아 사망한다.[3] 훗날 회고하기를 이때는 포뮬러 1에 큰 관심이 없었다고 한다.[4] 이 기록은 이후 세바스티안 베텔에 의해 경신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