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고뉴 공작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rowcolor=#fff> 보손 왕조 | |||
정의공 리샤르 | 라울 | 흑색공 위그 1세 | 질베르 | |
<rowcolor=#fff> 로베르 왕조 | 카페 왕조 | |||
오토 | 앙리 1세 | 오토 빌헬름 | 현명공 로베르 1세 | |
<rowcolor=#fff> 카페 왕조 | 카페-부르고뉴 왕조 | |||
앙리 2세 | 노인공 로베르 2세 | 위그 2세 | 적색공 외드 1세 | |
<rowcolor=#fff> 카페-부르고뉴 왕조 | ||||
위그 3세 | 외드 2세 | 위그 4세 | 외드 3세 | |
<rowcolor=#fff> 카페-부르고뉴 왕조 | ||||
위그 5세 | 로베르 3세 | 위그 6세 | 외드 4세 | |
<rowcolor=#fff> 카페-부르고뉴 왕조 | 발루아-부르고뉴 왕조 | |||
필리프 1세 | 호담공 필리프 2세 | 용맹공 장 | 선량공 필리프 3세 | |
<rowcolor=#fff> 발루아-부르고뉴 왕조 | 합스부르크 왕조 | |||
용담공 샤를 1세 | 부귀공 마리 1세 | 미남공 필리프 4세 | 샤를 2세 | |
<rowcolor=#fff> 합스부르크 왕조 | ||||
막시밀리앙 | ||||
<rowcolor=#fff> 합스부르크 왕조 | ||||
필리프 5세 | 이자벨 | 필리프 6세 | 바보공 샤를 3세 | |
알베르 | ||||
<rowcolor=#fff> 부르봉 왕조 | 합스부르크 왕조 | |||
루이 1세 | 루이 2세 | 샤를 4세 | 마리 2세 | |
<rowcolor=#fff> 로렌/로트링겐 왕조 | ||||
프랑수아 1세 | ||||
<rowcolor=#fff> 합스부르크-로트링겐 왕조 | ||||
조제프 | 레오폴드 | 프랑수아 2세 | }}}}}}}}} |
<colbgcolor=#0701a0><colcolor=#ffffff> 부르고뉴의 공작 필리프 1세 Philippe Ier de Bourgogne | |
출생 | 1346년경 프랑스 왕국 루브르앙플렌 성 |
사망 | 1361년 11월 21일 프랑스 왕국 루브르앙플렌 성 |
재위 | 부르고뉴 공국의 공작 |
1349년 4월 3일 ~ 1361년 11월 21일 | |
배우자 | 플란데런의 마르그리트 (1355년 결혼) |
아버지 | 오베르뉴와 불로뉴 백작 필리프 |
어머니 | 오베르뉴 여백작 잔 1세 |
형제 | 잔 |
[clearfix]
1. 개요
부르고뉴 공국의 공작. 3살에 부르고뉴 공작이 된 뒤 프랑스 국왕 장 2세의 섭정을 받았으나 승마 사고로 사망했다.2. 생애
1346년경 프랑스 왕국 루브르앙플렌 성에서 출생했다. 아버지는 오베르뉴와 불로뉴 백작 필리프이고, 어머니는 오베르뉴 백작 기욤 12세의 딸이자 오베르뉴 여백작 잔 1세였다. 아버지는 부르고뉴 공작 외드 4세의 유년기에서 죽지 않은 유일한 아들이었기에 부르고뉴 공작에 계승하는 것이 보장되었지만, 1346년 에기용 공방전에 참여했다가 도랑을 건너던 중 낙마해 전사했다. 이후 할머니인 부르고뉴의 잔 3세가 사망하면서, 할머니의 영지였던 부르고뉴 백국과 아르투아 백국을 상속받았고, 3살 때 할아버지 외드 4세가 사망하면서 부르고뉴 공작이 되었다.1350년, 어머니 잔 1세가 프랑스 국왕 장 2세의 새 왕비가 되었다. 이후 그는 장 2세의 후견을 받았으며, 어머니의 섭정을 받았다. 1355년 플란데런 백작 루이 2세의 딸인 플란데런의 마르그리트와 결혼했다. 루이 2세에겐 아들이 따로 없었기 때문에, 플란데런 백국, 네베르, 레텔, 앤트워프 백국 및 브라반트 공국, 림부르크 공국의 상속을 보장받았는데, 이 땅의 대부분은 저지대 국가에 위치했다. 1360년 9월 어머니 잔이 중세 흑사병으로 사망했고, 같은 해 10월 20일에 성년이 되었다. 그러나 1361년 11월 승마 사고로 크게 다쳤고, 그해 11월 21일 자신이 태어났던 성인 루브르앙플렌 성에서 사망했다.
장 2세는 그가 자녀를 낳지 못한 채 죽으면서 카페부르고뉴 가문이 단절되자 부르고뉴 영지를 자신의 소유로 삼고, 막내아들 필리프를 차기 부르고뉴 공작 계승자로 지명했다. 나바라 국왕이자 에브뢰 백작 카를로스 2세는 자신이 부르고뉴 공작 로베르 2세의 딸 마르그리트[1]의 손자인 점을 이용해 자신이 부르고뉴 공국을 물려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며 반기를 들었고, 1364년 나바라-잉글랜드 연합군을 부르고뉴로 파견해 무력으로 쟁취하려 했다. 그러나 1364년 5월 16일 코르슈렐 전투에서 베르트랑 뒤 게클랭이 이끄는 프랑스군에게 참패했고, 부르고뉴 공작위는 장 2세의 막내아들 필리프로 굳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