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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복/전통 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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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종류
2.1. 장신구
2.1.1. 가발 및 헤어스타일
2.2. 의류
2.2.1. 소매2.2.2. 옷깃
2.3. 건축2.4. 기타

1. 개요

조선 시대부터 그 이전 시대의, 전통적인 장신구들과 한복장식요소들을 정리한 문서.

2. 종류

2.1. 장신구

  • 노리개
  • 반지
  • 팔찌
  • 목걸이 - 조선시대에도 목걸이 유물이 있다. 조선 말기의 유물 조선시대의 유물 유물도 삼국시대에 만들어진 것이 가장 활발히 출토되고 있다. 가야 목걸이 천마총 목걸이
  • 귀고리 - 조선시대까지도 의복에 기본적으로 착용했다. [1]조선시대에 귀를 뚫지 않고 귓바퀴에 걸치는 귀걸이가 유행했다.[2] 귀고리 뿐만 아니라 목걸이, 가락지, 팔찌 등 온갖 장신구를 기본적으로 주렁주렁 매달고 다녔다. 삼국시대에는 귀걸이를 허리띠나 팔찌, 발찌, 목걸이, 띠드리개, 금관 등의 장식으로도 사용했다. 그 시대의 귀고리는 귀에 착용한 것이 맞다. 자세한 것은 귀고리 참조.
  • 띠돈
  • 장도- 매체에 의해 자결용으로 왜곡되었으나, 실제로는 장식성을 띤 맥가이버칼이었다. 유물 중에서는 젓가락이나 바늘, 귀이개 등이 함께 딸려있는 것도 있다.
  • 풍잠-망건 이마에 부착해 갓이 떨어지지 않게 고정하는 장신구이다.
  • 향낭-향기주머니, 얇은 천속에 꽃잎, 약재와 같은 향기나는 것들을 넣은 주머니를 허리춤에 매고 다녔다.
  • 빗치개
  • 동곳 - 상투가 내려앉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고정하는 짧은 비녀 형태의 장신구이다.
  • 옥로 - 갓 꼭대기에 얹는 장신구. 정자라고도 한다.
  • 상투관
  • 입영 - 갓끈. 구슬의 모양이나 크기, 색감이 다양했으며, 그 배치또한 본인 나름이었다. 특히 얼굴을 둘어싸는 일반적인 형태를 넘어 끈을 풀어 귀에 묶는다던지, 한 쪽에만 갓끈을 2~3개를 단다던지, 하는 다양성을 보여준다.
    • 어사화
  • 비녀(채/잠) - 채는 U자 모양인 비녀를, 잠은 일자인 비녀를 뜻한다.
  • 떨잠
  • 뒤꽂이
  • 댕기 - 삼국시대에도 사용된 예가 나타난다. 한자 표기로는 당계(唐紒), 당지(唐只), 단계(檀戒), 단기(檀祺), 단성(澶誠) 등이 있었고, 한글 표기로는 당게, 당귀, 단기, 당기, 대이, 댕기, 머리띠, 멀때 등 다양한 방언이 있었다. 주로 천으로 만들었으나, 상중에는 한지로 만들어 탈상 때까지 남녀노소 모두가 조심스레 사용했다. 현대에는 두 번 접어 고무줄로 묶는 경우가 많다. 사극에서조차 제대로 댕기머리를 드리지 않는다. 귀밑머리에 드릴 때에는 제대로 드리면 이런 모습이 된다 댕기 위치를 알아서 잘 조절하고 고를 만든 뒤 댕기와 머리를 합쳐 땋는 횟수를 줄이고 잘 묶어 늘어뜨리면 두 번 접어 묶은 그 모습과 유사하게 나온다. 위 사진은 이 방식에서 합쳐 땋은게 고 아래로 보일 정도로 많이 땋은 것이다. 새앙머리에 드릴 땐 당연히 방식이 다르다. 빠지지 않게 여러 번 둘둘 감아 묶는데, 묶었을 때 길이를 다르게 하여 긴 쪽을 위로 가도록 한 뒤 앞쪽에 고를 남기고 매듭 뒤쪽으로 넘겨서 아래로 빼낸다. 댕기를 드릴 때 길이를 조절하면 삼단으로 차곡차곡 늘어진 모습이 나오게 할 수 있다. 이렇게 하려면 뒤로 넘어가는 가닥을 확실히 길게 해야 한다. 유물을 보면, 제비부리댕기가 1m는 족히 된다. 저렇게 묶고도 길게 늘어뜨리려면 그 정도는 되어야 한다. 석주선기념박물관 소장 남아용 금박댕기
    • 제비부리댕기 - 끝을 제비부리처럼 뾰족하게 접어 만든 댕기. 일상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했다. 석주선기념박물관 소장 유물. (165cm) 석주선 기념 박물관 소장 덕온공주가 7세 때 공주 책봉될 때에 사용한 댕기(107cm)
    • 큰댕기 - 혼례시 뒤게 길게 늘이는 댕기. 도투락댕기, 뒷댕기, 주렴(朱簾)이라고도 한다. 석주선기념박물관 소장 유물
    • 고이댕기 - 서북 지방에서 혼례나 의식, 기녀들의 공연 때 사용된 댕기로, 큰댕기의 일종이다. 홍색이나 적색 비단 바탕의 두 가닥 댕기에 오른쪽 가닥은 모란꽃 세 송이, 왼쪽 가닥은 십장생을 수놓고 댕기 끝부분을 둥글게 말아 능형문양을 화려하게 수놓고 양 끝에 진주꾸러미를 꿰메 붙였다. 큰 비녀를 꽂은 오른편에 두 가닥을 한두 번 감아 앞으로 늘어뜨렸다. 석주선기념박물관 소장 유물
    • 도투락댕기 - 큰댕기와 형태가 같은 소형의 어린이용 댕기. 큰댕기를 이렇게 부르기도 한다. 석주선기념박물관 소장 유물
    • 말뚝댕기 - 어린이용 댕기. 도투락댕기를 맬 시기는 지났지만 제비부리댕기를 매기에는 이른 때에 사용했다.
    • 굴레댕기 - 여자아이가 사용한 댕기. 중앙에 둥근 굴레 장식을 얹고 양 옆으로 끈이 달려있다. 중앙 아래로 댕기를 늘어뜨린다.
    • 배씨댕기 - 머리띠. 아이가 태어나서 처음 사용하는 장신구라는 의미에 더해서 병마와 액운을 막는 주술적인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
    • 떠구지댕기 - 떠구지머리를 할 때 사용한 댕기.
    • 자적댕기 - 얹은머리를 할 때 사용한 댕기.
    • 매개댕기 - 자줏빛 명주에 솜을 넣어 길고 통통한 끈처럼 만든 댕기. 큰머리나 어여머리를 할 때 연결부분에 사용한 속댕기이다. 석주선기념박물관 소장 유물
    • 드림댕기 - 예장용 댕기. '앞댕기'라고도 한다. 혼례복에서는 큰댕기와 짝을 이루는 앞댕기이나, 다른 예복에서는 큰댕기 없이 사용하였다. 석주선기념박물관 소장 유물
    • 네가닥댕기·두가닥댕기 - 궁중 나인들이 무늬가 있는 자주색 사(紗)로 만들어 새앙머리에 드렸다. 석주선기념박물관 소장 유물
    • 새앙머리댕기 - 긴 봉잠(鳳簪)을 꽂은 후 그 좌우에 둘러 앞쪽으로 늘어뜨려 사용하는 예장용 댕기.
    • 팥잎댕기 - 팥잎처럼 가장자리가 말리는 댕기. 무수리나 세수간 나인들이 사용했다. 처소나인이 쪽머리에 홑댕기를 두 가닥으로 매는 것도 팥잎댕기라 불렀다. 석주선기념박물관 소장 유물
  • 관자 - 모자를 고정할때 쓰이는 일종의 거치대
  • 세조대 - 도포나 쾌자의 위에 두르는 가슴띠
  • 첩지 - 그 자체로도 장식이지만, 관자처럼 족두리화관을 고정하는 역할도 했다.
    • 두레첩지
  • 부채집
  • 선추
  • 주머니 - 복주머니, 귀주머니 등.
  • 떠구지 - 궁중에서 예장시 떠구지머리를 할 때 어여머리 위에 얹은 나비모양의 가체 대용 나무틀이다.
  • 족두리
  • 화관
  • 어염족두리 - 어여머리를 할 때 사용하는 솜을 넣은 족두리. 양쪽에 끈이 달려있다.
  • 띠고리 - 한자로는 대구帶鉤. 교구라고도 한다. 허리띠에 달려있던 고정용 장식으로, 서양 벨트의 버클과 유사하다.
  • 관 장식 - 삼국시대에는 관모에 금속 장식을 하여 직위나 권위 등을 나타내었다.
  • 관 - 금관, 동관 등. 삼국시대에는 오로지 왕만 쓰는 것이 아니었다.
  • 띠드리개 - 요패라고도 한다. 과판을 대어 장식한 허리띠에 늘어뜨린 장식. 곡옥, 금판 등의 화려한 장식뿐만 아니라 손칼, 약통, 족집게같은 일상적인 물건도 달았다.
  • 귀이개 - 귀이개에 장식을 달기나 뒤꽂이 끝을 귀이개로 만들어 평상시에는 뒤꽂이처럼 머리를 장식하기도 했다. 위급한 상황이 발생하면 침처럼 사용했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나비 귀이개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귀이개
  • - 빗을 머리에 꽂아 장식했다.
  • 빗치개 - 머리를 정돈하거나 빗살에 낀 때를 제거하는 도구. 가르마를 타고 밀기름을 바르거나 거울 역할을 겸하기도 했다. 귀이개와 마찬가지로 뒤꽂이와 합쳐진 형태로 쓰이기도 했다. 동궁과 월지에서 통일신라시대 빗치개가 출토된 것을 보아 역사가 오래된 물건이다.
  • 흉배(胸背) - 왕족과 문무백관의 의복을 장식하는 표장(表章). 조선 이전에는 사용하지 않았던 것으로, 중국에서 넘어왔다. 옷과 같은 색의 비단에 다양한 문양을 수놓아 의상을 장식하고 상하 계급을 나타내는 역할을 했다. 왕족이 사용하는 것은 특별히 보(補)라 한다. 왕과 왕비, 세자, 세자빈, 세손, 세손빈의 옷에는 둥근 용 흉배를 가슴과 등, 양 어깨에 달았고, 문무백관은 네모난 흉배를 달았다. 용의 발톱 수에 따라 왕비는 오조룡보, 세자세자빈은 사조룡보, 세손과 세손빈은 삼조룡보를 달았다.[3] 품계를 나타내는 주 도안을 중심으로 구름, 파도, 해, 달, 바위, 여의주, 칠보, 불로초, 물결, 물방울, 꽃, 모란, 보전, 당초, 완자, 서각, 물고기, 불수, 장생, 지초, 산 등을 수놓았다. 세밀한 자수를 단시간에 완성할 수 없다는 실용적인 이유로 인해 주 도안을 따로 만든 뒤 동물만 바꿔 해당 품계를 나타내기도 했다. 세종 대에 영의정 황희의 강한 반대로[4] 흉배를 사용하지 않다가 단종 2년에 명나라의 홍무예제(洪武禮制)를 본떠 문무관 3품 이상의 상복(常服)에도 흉배를 달게 되었는데, 대군기린, (왕자)군은 백택, 도통사는 사자, 대사헌은 해치, 문관 1품은 공작, 2품은 운학, 3품은 백한, 무관 1, 2품은 호표, 3품은 웅비를 달도록 규정했다. 명나라 사신과 구별이 힘드니 개혁하자는 논의가 있었으나 개혁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후 연산군 대에 모든 품계의 관원들이 흉배를 달게 되었는데, 사용된 동물도 기러기, 돼지, 사슴, 거위 등 명나라와 다른 자주성을 보이게 된다. 임진왜란병자호란 이후 무신의 흉배에 비금을 달지 못하도록 했다가 영조 대에 이르러서는 간편하게 문관 당상관은 운학흉배를, 당하관은 백학흉배를 달도록 했다. 그러다 고종 대에 문관 당상관은 쌍학(학 두 마리), 당하관은 단학(학 한 마리)을 달고, 무관 당상관은 쌍호(호랑이 두 마리), 당하관은 단호(호랑이 한 마리)를 달도록 했다. 흉배와 유사한 무릎장식을 단 명나라 말기의 것으로 추정되는 치마가 조선시대의 무덤에서 출토되었다

2.1.1. 가발 및 헤어스타일

가체, 댕기머리, 상투, 생머리 문서 참조.

2.2. 의류

2.2.1. 소매

한복 소매는 크게 좁은소매(직배래), 넓은소매(대수, 활수), 두리소매(콩태소매), 둥근소매(붕어배래)로 나뉜다. 좁은소매 또는 직배래는 말 그대로 현대 기성복 소매처럼 좁은 직선 형태 혹은 소매 부분으로 좁아지는 형태를 하고 있으며, 넓은소매는 사각형 혹은 겨드랑이 부분에서 소매 부분으로 사다리꼴을 그리는 사각형을 하고 있다. 두리소매는 넓은소매의 일종으로도 볼 수 있는데, 소매 아래로 늘어진 부분이 막혀있는 형태로 간단한 소지품을 담을 수 있다. 둥근소매 혹은 붕어배래는 소매가 붕어의 배처럼 아래로 처진 곡선을 하고 있는 것을 말한다.
고구려의 둥근소매 예시 고구려 둥근소매 예시 2
삼국시대 둥근소매 예시 삼국시대 둥근소매 예시 2
고려 둥근소매 예시 고려 둥근소매 예시 2 고려 둥근소매 예시 3
조선 둥근소매 예시

흔히 한복의 곡선미를 강조하면서 한복 특유의 둥근 소매를 한복만의 것이자 모든 한복의 특징으로 해석하려고 하는 경우가 잦으나 이는 심각한 오류이다. 조선 이전의 한복은 크게 직선 소매와 넓은 소매만이 나타나며, 붕어배래는 조선시대 17세기 철릭에 관한 연구에서는 임진왜란 전후로 나타났다고 설명하고 있으며,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복식 섹션에서는 붕어배래가 1910년대에 정립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그 밖에 붕어배래가 1900년대에 생겨났다고 주장하는 기사도 있다. 두 의견의 연대가 상당히 차이가 나는 편인데, 그렇다 해도 한국 복식사에서 붕어배래가 나온 시기가 조선시대 이후라는 것은 분명하다. 1900년대에 등장했다는 주장은 붕어배래가 널리 유행했던 시기를 칭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을 할 수도 있다. 실제로 1900년대 초부터 1980년대까지 붕어배래가 유행한 것은 사실이다. 이후 점차 활동성을 중시하게 되며 한복업계에서도 직선형의 배래로 한복을 제작하는 예가 많아졌다.
  • 소매 넓이에 따라
    • 착수(窄袖)/첨수(尖袖)/통수(筒袖): 좁은 소매. 북방계 호복에서 유래되었다. 한복은 호복의 영향을 받은 복식이므로 기본적으로 좁은 소매다.
    • 광수(廣袖)/활수(闊袖)/대수(大袖): 넓은 소매. 남방계 복식에서 유래되었으며, 한푸의 영향으로 도입되었다.
      • 넓은 소매의 차이
        • 대수(大袖): 소맷부리가 막힌 부분 없이 트여있다.
        • 두리소매: 위에서 18~22cm 가량만 터지고 나머지는 막혀있다.
      • 한삼(汗衫): 일종의 특이 케이스. 의례나 연회 등에서 윗사람에게 손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 예절이던 시절에 여성의 예복 소매에 달던 자락. 원삼활옷 등에 있는 넓고 하얀 부분이다. 궁중무용을 출 때 양손에 끼는 기다란 천도 한삼으로 부른다. 전통적으로는 통째로 하얀 백한삼과 오방색의 색동한삼만 있었지만 현재는 필요에 따라 여러 배색이 만들어진다.
  • 길이에 따라
    • 단수(短袖): 손이 보일 정도의 길이
    • 장수(長袖): 손 끝이 가려지는 길이로, 여러 종류가 있다.
  • 배래: 저고리 소매의 밑 부분.
    • 직배래: 직선인 배래. 가장 기본적인 배래다.
    • 사선배래: 직선인데, 소매 끝으로 갈수록 좁아진다.
    • 곡배래: 소매 근처에서 둥글게 좁아지는 배래. 조선 중기 이후에 만들어졌다.
    • 붕어배래: 둥근 배래. 조선 이후에 만들어졌다. 현대 한국에서는 20세기에 성행하다 80, 90년대 이후에 쇠퇴하였으나, 북한에서는 아직 붕어배래가 많다고 한다.
    • 칼배래: 곡선이 완만하게 올라간다. 조선 이후에 만들어졌다. 직배래보다는 곡선이 있고, 붕어배래보다는 완만하다.
  • 서서히 넓어지는 나팔형 소매는 존재하지 않는다.

2.2.2. 옷깃

  • 동정
    상고시대부터 선(襈)이라 하여 깃·도련·소맷부리, 또는 치맛단에 다른 색의 천을 대는 습속이 있었다. 선은 저고리의 회장(回裝)이나 치마의 스란단 등으로 이어졌다. 동정도 이러한 전통에서 유래된 것이라 추측된다. 조선시대에 들어와 직령은 물론 단령(團領)·원령(圓領)에도 모두 달게 되었다. 크기는 유행에 따라 다소의 차이가 있다. 17세기초까지는 깃너비가 10cm 정도 넓었기에 동정너비도 넓었는데, 현대에 와서는 깃너비가 좁아져서 동정너비도 1㎝가 안 되게 좁아졌다.[5] 영조 재현품 조선초기 1 조선초기 2 재현품 재현품 2
  • 운견(雲肩): 호복 유래 방한용 어깨 가리개. 조선 무산향 조선 망선문 고려1 고려2 발해 복식 일러스트
  • 직령(直領): 일자 옷깃. 전통적인 한복 저고리는 직령이며, 여밀 때는 양쪽 섶이 겹쳐지기 때문에 직령 교임이라고 부른다. 고려 시대에 들어 저고리가 짧아짐에 따라 본래 앞길 도련선까지 쭉 이어지는 형태였던 옷깃이 여밈이 깊어지고 가슴선에서 끊어져 자연히 목판깃이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6] 조선시대의 저고리는 크게 목판깃에서 칼깃으로 변화한다.
    • 목판깃: 깃 모양이 나무판처럼 사각형이며 직선인 깃.
    • 칼깃(반달깃): 깃 끝부분(깃 궁둥이)이 칼처럼 좁고 날카로운 깃. 반달깃과 따로 분류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 경우는 칼깃은 곡선이 없이 좁고 날카로워지는 반면 반달깃은 반달처럼 곡선을 그리며 좁아진다.
    • 당코깃: 깃 끝을 버선코가 올라간 것처럼 마무리한 깃.
    • 돌림깃: 둥글게 돌아가 깊이 여며지는 깃.
    • 이중깃: 깃을 이중으로 만든 것. 종류에 따라 이중 목판깃, 이중 칼깃 등으로 분류된다. 하얀 선을 덧댄 깃
    • 맞깃: 여며지지 않고 서로 맞닿는 깃. 예시
    • 동그래깃/둥그래깃: 깃 궁둥이 부분의 모양이 둥근 깃.
    • 칼깃, 목판깃, 당코깃은 서로 섞인 형태도 많다. 조선 중기에 흔했다.
    • 삽화를 볼 수 있는 곳. 칼깃과 반달깃이 따로 분류되어 있다.

2.3. 건축

2.4. 기타



[1] 선조 대에 남자에게는 금지되었다. 1차로 금지된 것은 선조 6년인데, 30여 년이 지난 임진왜란 때에 조선과 일본 양쪽에서 귀 뚫은 자국으로 조선인을 구별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금제가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2] 국어사전에서는 귀고리와 귀걸이를 같게 보지만, 사학계에서는 귀고리는 귀를 뚫고 착용하는 장신구라 하고, 귀걸이는 귓바퀴에 걸치는 장신구를 가리킨다.[3] 조선 말기와 대한제국 시기를 제외하면 적의 이외의 궁중여성복에 용보를 달았는지에 대한 정보는 확실하지는 않다.[4] "검소하고 소박한 것을 숭상하고 사치를 억제해야 하는 것이 정치의 급선무인데 국가가 문승(文勝)의 폐가 있는 듯 하여 항상 염려가 된다. 단자사라(緞子紗羅)는 우리 나라의 것이 아니며, 존비등위는 금은각대(金銀角帶)로 정하고 있으니 굳이 흉배를 하여야 할 이유가 없다"고 했다.[5]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167[6] 채금석 『전통한복과 한스타일』-p.200 '유물·문헌을 통해 본 고려시대 저고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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