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07-31 19:31:11

할리카르나소스의 디오니시오스

파일:할리카르나소스의 디오니시오스.jpg
이름 할리카르나소스의 디오니시오스
(그리스어: Διονύσιος Ἀλεξάνδρου Ἁλικαρνασσεύς[1])
출생 기원전 53년 이전
사망 미상
직위 역사가

1. 개요2. 행적3. 고대 로마사(Ῥωμαϊκὴ Ἀρχαιολογία)4. 그 외의 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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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로마 제국 할리카르나소스 출신 로마 역사가.

2. 행적

디오니시오스는 <고대 로마사> 서문에서 마르쿠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파르티아 원정 이전에 할리카르나소스(오늘날 튀르키예 보드룸)에서 출생했다고 밝혔는데, 이에 따르면 기원전 53년 이전에 출생했을 것이다. 내전이 종식된 후(기원전30년) 로마로 이주하여 그곳에 거주하는 그리스 학자들과 교류하다가 자유민 신분의 로마인 그나이우스 폼페이우스와 친구가 되었고, 나중에는 루푸스 멜리티우스, 루키우스 아일리우스 투베로 등 로마 귀족들과 교제했고 여러 가정에서 그리스 문학을 가르쳤다고 한다. 그는 로마에 정착한 지 22년 후, 즉 기원전 8년에 <로마 고대사>를 집필했다고 밝혔다. 그 외의 행적은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3. 고대 로마사(Ῥωμαϊκὴ Ἀρχαιολογία)

디오니시오스의 저서 <고대 로마사>는 20권으로 구성되었으며, 로마 건국에 관한 전설부터 제1차 포에니 전쟁이 발발할 때까지의 역사를 다뤘다. 그는 이 책을 쓴 목적은 폴리비오스의 히스토리아(Ἱστορίαι Historíai)가 다루지 않는 고대 로마 역사를 독자들에게 알리는 데 있다고 밝혔다. 이 20권의 저서 중 처음 11권, 즉 기원전 443년까지의 이야기는 현존하며[2], 나머지 9권(기원전 443년부터 기원전 264년까지)은 콘스탄티노스 7세가 쓴 <외교의 미덕과 악덕에 대하여>에 인용된 단편들만 전해진다.

그는 서문에서 로마의 위업을 축하하고 자신이 로마에서 우수한 교육을 누리고 행복한 삶을 살게 해준 것에 감사를 표했다. 그러면서 대 카토, 퀸투스 파비우스 픽토르, 그나이우스 겔리우스, 루키우스 칼푸르니우스 피소 프루기, 발레리우스 안티아스, 가이우스 리키니우스 마케르 등 여러 역사가들의 저서를 참고했다고 밝혔다. 또한 그는 로마의 기원을 고대 그리스와 연결시키고, 이상적인 폴리스였던 로마 시가 어떻게 세계의 중심이 되었는지를 독자들에게 밝히고자 했다. 이렇듯 로마를 예찬하면서도, 로마의 관습과 법의 기원은 그리스에 있음을 분명히 밝히는 등 그리스인으로서 자존심을 지키고자 했다.

<고대 로마사>는 플루타르코스, 아피아노스, 디오 카시우스 등 후대 역사가들의 주요 참고 자료로 활용되었으며, 중세에도 로마 역사를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역사서로 각광받았다. 현대 학자들은 이 책에 꾸며낸 이야기가 많고 로마 미화가 많다며 신빙성이 높지 않다고 보지만, 고대 로마의 초기 역사와 국가 구조에 대한 귀중한 정보가 많이 포함되어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참고 자료로 활용하고 있다.

4. 그 외의 저서

  • 고대 웅변가에 대하여(Περὶ τῶν ἀρχαίων ῥητόρων ὑπομνηματισμοί): 리시아스, 이소크라테스, 이사이오스, 데모스테네스, 히페레이데스, 아이스키데스 등 6명의 고대 그리스 웅변가들을 다룬 저서. 총 2권으로 구성되었는데, 리시아스, 이소크라테스, 이사이오스를 다룬 첫 권만 보전되었다. 그는 각 웅변가들의 전기, 웅변술 정의, 연설 작성법을 설명한 뒤 해당 웅변가가 연설한 내용을 소개했다. 또한 그는 서문에서 고대 그리스어의 단어와 용법을 그대로 사용하여 웅변하는 것을 선호하는 아티키주의를 옹호했다.
  • 단어 배열에 관하여(Περὶ συνθέσεως ὀνομάτων): 제자 루푸스 멜리티우스에게 헌정된 글로, 그리스 작가들의 문체를 소개하면서 적절한 단어를 배열하여 글을 짓는 법을 가르쳤으며, 웅변과 성악(노래)를 명확히 구분했다. 이 책에는 아프로디테에 대한 사포의 송가 등 희소한 시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 데모스테네스 방식의 강점에 관하여(Περὶ τῆς λεκτικῆς Δημοσθένους δεινότητος): 데모스테네스의 산문 스타일이 투키디데스플라톤보다 뛰어나다는 것을 입증할 목적으로 출간된 작품.
  • 위대한 작가의 체계적인 모방의 필요성에 관한 논문: 헤로도토스, 투키디데스, 크세노폰, 필리스토스, 테오폼포스 등 저명한 고대 역사가들의 문체에 대한 일련의 평가를 내린 부분만 전해진다.
  • 서신: 그나이우스 폼페이우스에게 보낸 서신 한 통[3]과 암마이오스에게 보낸 서신 2통[4]이 남아 있다.


[1] 할리카르나소스의 알렉산드로스의 아들 디오니시오스[2] 다만 제 11권은 부분 소실되었다.[3] 플라톤과 여러 역사가들에 대한 문학적 판단이 담겼다.[4]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사학이 데모스테네스의 연설보다 나중에 등장했다는 것을 입증하는 내용과 투키데디스 문체의 특성에 관한 내용이 담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