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함(函)이란 대한민국에서 볼 수 있는 혼인 문화이다. 과거에는 혼인하기 전에 신랑 쪽에서 혼수예물을 함에 담아 신부 쪽으로 보내곤 했다.사주단자 등에 사용하는 상자인 함과는 용도, 의미가 다르므로 혼동에 주의 할 것.
2. 내용물
안에 들어가는 것은 다음과 같다.- 혼서지: 신랑 쪽에서 보내는 혼인 서약서로, 보통은 신랑의 부모가 "귀한 집 따님에게 우리집 부족한 아들을 장가 보낼 수 있게 해주시니 고맙습니다." 같은 내용을 장대하고 정성스럽게 작성한다. 그 외에는 신랑 쪽의 가족 관계를 글로 적어두기도 한다.
- 채단: 신랑 쪽에서 준비한 청색 비단과 홍색 비단으로, 결혼예복에 사용하기 위해 보낸다. 각각을 청실과 홍실로 묶어두는데, 한 번 잡아당겨서 풀 수 있는 매듭법을 사용한다. 이것은 결혼 이후의 생활이 술술 풀리면서 부부가 화합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 각종 예물
- 오방주머니
- 부부의 궁합을 적은 사주지
- (부잣집 신랑의 경우) 결혼을 하면서 같이 살 수 있는 집 문서, 신랑이 처가에 보내는 돈 봉투와 선물들.
혼서지는 가장 중요한 것으로 취급되어 함뚜껑 위에 올려둔 채로 보내기도 한다. 대부분 함을 전달하는 일은 하인을 시켰다.
3. 함진아비
신부 측 돈을 뜯어내려는 함진아비의 뻔뻔한 낯짝을 온 몸으로 가려주셨습니다.
출산드라
신랑의 친척이나 가까운 친구가 '함진아비'가 되어 함을 등에 지고 마른오징어를 얼굴에 쓰며[1] 신부 집으로 찾아가 "함 사시오!" 라고 세 번 외치는 전통으로 변했다. 오징어 가면이 아니면 숯을 칠할 수도 있는데, 이는 잡귀와 악신을 물리친다는 의미다. 함진아비는 청사초롱을 들고 함을 중간에 내려놓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출산드라
신부 집에서는 함값을 주겠다면서 신랑 집의 함진아비와 그 일행을 맞이한 다음 함값으로 음식과 술을 대접하는데, 종종 빨리 들여보내지 않거나, 반대로 빨리 들어가지 않으려고 실랑이를 벌이는 경우가 있다.[2] 연유가 신부 집에 들어가지를 못 하면 함진아비는 계속 "함 사시오!" 라고 외치는데, 이러는 동안 주변 이웃집에서 그 소리를 듣고 나와서 그 집안의 결혼 사실을 알게 된다. 즉, 주변 사람들에게 많이 알리고 싶으면 함진아비를 안 들여보내는 것이다.
그만큼 이웃주민들에게 충분한 대접을 해야 될 테니 신부네 집 입장에서는 쉽게 하지 못할 일이다. 그래서 신부 측이 함진아비에게 쩔쩔매는 경우는 대개 함 상자 안에다 신랑 측의 집 문서라든가 최고급 보석 같은 비싼 선물을 넣어놨을 때다.
4. 번외: 예비신랑 신고식
(도농분리 시절 무려 시 경찰서장이 예식장 게시판에 직접 붙인 경고문. 여기서는 뒷풀이로 나오는데, 그 시절엔 뒷풀이만큼 신고식도 가혹했다.)
이렇게 함팔이가 끝나고 나면 첫날밤을 대비해 새신랑의 정신을 차리게 한다는 명목으로 신랑의 남자 지인들이 모여서 상당히 가혹한 신고식을 벌이곤 했다. 예전에 동해안 지역에서 자주 보였던 풍습인데, 포크레인 삽에 거꾸로 매달아 바다에 빠트리기, 자동차 밧데리로 발바닥 지지기, 야구빠따로 볼기 때리기, 달리는 자동차에 묶고 마라톤 시키기, 신랑을 자동차 본네트 위에 결박한 상태로 주행하기 등 고문에 가까운 것들이 많았다. 그런가하면 지금 같으면 성희롱으로 비난받을만한 일도 있었다. 신랑친구들이 남자 나체 모양의 조각상에 맥주를 뿌린 후 신부에게 조각상 성기 부분에 흐르는 맥주를 핥아먹으라고 강요해서, 신부는 수치심에 울고 열받은 신부가족들이 신랑친구들과 싸우다가 결국 결혼도 깨지고 신랑도 친구들끼리도 절교한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뉴스에도 나온 실화다.
원래는 그냥 재미로 하자는 것인데 당시의 마초 문화와 결합돼서 뇌절까지 치게 된 케이스다. 결국 너무 도가 지나치게 되어 버려서 신랑신부가 부상당하는 건 예사고 사망까지(!) 하는 사고가 적잖게 발생하기 시작하면서 점차 발바닥 매질 정도로 간소화되었다. 2000년대에는 신혼 부부 자동차에 깡통을 매달게 한다든지, 신부를 공주님 안기로 안고 앉았다 일어났다를 한다든지 하는 그런 뒤풀이가 종종 있었다.
5. 비판과 쇠락
1980~90년대까지만 해도 자주 볼 수 있는 풍경이었고, 2000년대에도 드물게나마 하는 경우가 있었지만, 2010년대 이후로는 거의 완전히 사장되었다.1차적인 문제는 소음이었다. 21세기에 이웃끼리 싸움나는 원인으로 층간소음이 있다면, 20세기에는 자주 벌어지는 일은 아닐지언정 이웃간의 다툼이 벌어지는 원인 중 하나로 함진아비가 꼽혔다. 서울이나 수도권, 일자리가 많은 도심에 인구가 집중되면서 함팔이가 어려워졌다. 대개 해가 지고 어두컴컴할 때에 가는데 그 시간에는 잠자리에 누운 사람이 많다. 그런데 함 사라고 소리를 질러대면 이웃이라도 생면부지인 사람이 결혼한다고 시끄럽게 굴면 좋을 리가 없었다. 과거 이웃끼리 다 알던 작은 농촌 공동체에서는 누구네 집 딸이 시집가나 보다 하고 넘어가거나 아예 그 집에 가서 밥도 얻어먹고 하던 것이 이제는 다 모르는 사람이 되면서 함 팔이가 소음공해가 되어버린 것이다. 실제로 아파트에서 함 사세요 몇번 외치다가 옆집 사람이 시끄럽다며 뛰쳐나오는 일도 많았다고 한다.
사실 소음문제는 애교에 불과하고, 함진아비 역할을 맡은 사람이 적당히 선을 알면 좋은데 끝간데 없이 까불고 대접이 마음에 안 든다며 신부 측 사람들에게 행패를 부리다가 아예 혼사 자체를 파토내버리고 마는 사건 때문에 안 좋은 인식이 퍼졌다. 정상이라면 분위기가 무르익을 동안 밀당하듯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적당히 즐겨야하는 것인데 함진아비가 딱 한 명이라면 몰라도 친구 여럿이 가는 것이다보니, 그 중 본인이 함진아비인 것도 아닌 주제에 눈치없이 행패를 부리는 찌질한 못난이가 한 명 끼어 있을 확률을 배제할 수 없었다.[3] 상당히 악질인 것이 원래 함팔이는 남의 집 잔치 도와주러 온 셈인데, 바로 그런 잔치분위기라 분위기 망칠까봐 함부로 내쫒거나 화낼 수도 없다는 점을 이용해서 오히려 상전노릇을 하려 드는 것이다.
즉, 어느 순간부터 이게 신부측으로부터 돈을 뜯어낼 수 있는 이상한 갈취 문화로 변질되는 바람에 돈독이 오른 신랑측 친구인 함진아비들이 한 걸음 나갈 때마다 돈을 내놓으라고 행패 부리다가 신부측 친구들이나 신부 가족과 시비가 붙어 싸우거나[4], 급기야 함진아비 핑계로 나타나서 도둑질까지 하는 만행이 사회문제로 비화되기도 했다. 1976년 11월 15일자 경향신문에서는 함진아비가 자기가 가는 길에 돈을 깔라고 막무가내로 나와서 돈을 깔아줬더니 돈을 발로 짓이겨서 찢은 후에 더 깔라고 요구해서 싸움이 벌어진 사례를 소개했고, 1994년에는 함진아비가 함값으로 무려 200만원을 갈취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해서[5] 함진아비가 혼수급의 부담으로 인식될 정도였다. 1996년 3월 4일에는 결혼한 새신랑이 함값 50만원을 요구했는데 장모가 10만원 밖에 주지 않았다고 새색시를 구박하는 바람에 신부가 호텔 7층에서 뛰어내려서 투신자살하는 실로 기가 막히는 사건도 벌어졌다. 불과 6개월 후인 1996년 9월에는 150만원의 함값을 뜯어내고도 함값이 적어서 망신당했다고 신부를 구타해서 파혼당하고 6,400만원의 손해배상 소송이 걸린 사건이 발생했다. 결혼식 뒤풀이 이래야만 하나?(1995년 KBS뉴스)
이 때문에 이규태도 칼럼으로 정작 예전엔 없던 정체불명의 풍습이라고 비판했고, 1999년 10월 16일자 조선일보는 함진아비 풍습에 대해 "이미 전통을 벗어난 행패에 불과하다"고 비판할 정도였다. 결혼정보회사에서 "10~30만원 이상은 주지 말라"고 조언하는 등, 지금으로서는 참으로 이해하기 힘든 일이 벌어지곤 했다. 이후 아파트 같은 공동주택이 보편화된 21세기에는 이런 시끄러운 풍습이 민폐라는 인식이 퍼져 멸종에 이른다. 한때 이게 익숙했던 기성세대들도 대체로 '추억이긴 하지만 그립진 않다, 없어질 만했다'라고 할 뿐, 추억 보정으로 미화되는 일조차 찾아보기 어렵다.
그나마 2000년대 중 후반에는 주택가 등에서 적당히 자중해서 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고, 이런 경우 요즘에도 함진아비를 한다며 동네 주민들이나 지나가던 행인들이 구경하는 경우도 있었다. 물론 소음 문제 등으로 인해 주변에 양해를 구해놓거나 음식을 돌렸고, 구경하는 사람들에게도 음식을 대접해야[6] 큰 말 안나온다. 당연 시대가 시대인지라 보통이라면 신랑 신고식이나 함진아비 밀당 등도 과하지 않은 선에서 끝낸다. 사실 이 시점에서 이미 보기 힘들어진 함을 파는 것은 대체로 예전 방식대로 결혼식 분위기를 띄우고 혼인문화를 즐겨보자며 주변인들이 맞춰 준비했을 테니 찌질한 진상이 있기가 힘들 것이다.
6. 미디어에서
함은 2000년대에 이미 사라지기 시작한 문화였지만 통속극은 대체로 시청자 연령대가 높기 때문에 21세기 작품에서도 종종 함진아비가 등장했다. 분위기가 밝은 시트콤 계열 작품이라면 함 팔이 과정에서 돌발사건이 일어나는 게 필수요소급 전개였다.[7] 하지만 이런 매체에서의 등장도 2010년대부터는 보기 드물어졌다.- 중학교 1학년 국어교과서에 실렸던 오정희의 소설 <소음공해>에서 화자가 이웃간의 '교양없고 몰상식한 짓'의 하나로 함진아비를 들고 있다.
- KBS2에서는 1987년 10월부터 1988년 2월까지 아예 제목부터 "함사세요"인 드라마를 제작, 방영한 바 있다. 세 자매의 결혼 이야기가 주된 줄거리였다.
- 1995년 4월 26일 방영된 경찰청 사람들 93회 첫번째 에피소드인 '결혼 피로연'에서는 함값을 두고 결국 폭력사건으로 번진 내용을 다뤘는데 말미에 함을 비롯한 일부 결혼식 문화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여론에 대해 말하면서 에피소드가 종료된다.
- 시트콤 세 친구에서 다훈이 웅인의 친구 함진아비를 하는 과정에서 꼬장을 피워 처가에서 함을 안 받겠다고 해버리는 사고를 친다.
- 만화 식객 25권 124화 이바지편에서는 성찬의 지인인 보광레스토랑 맴버인 이호성이 함진아비 역을 맡고 고재훈과 김경민이 동행했다. 다들 개념인이라 함 사라고 소리지르는 장면은 딱 두 컷 나오고 돈으로 실랑이만 벌였다. 연재 시점에서 믿기 어려운 풍경이지만 아파트 이웃들도 함사세요~ 라고 외치면서 호응까지 해준다.[8]
- 드라마 똑바로 살아라에서도 관련 에피소드가 있다. 마부인 김흥수(똑바로 살아라)가 신랑, 신부 그리고 동네주민 사이에서 눈치를 보다가 끝내 울어버린다. #
- 드라마 어느 날 우리 집 현관으로 멸망이 들어왔다에서도 함 문화가 사라지고 있다고 전한다. #
[1] 말의 얼굴을 흉내낸 것이다.[2] 결혼식의 행사 특성상 젊은 남녀도 많이 참석하는거라 서로 얼굴도 확인하는 목적도 겸하는 것이다. 물론 밀당을 제대로 못 하거나 눈치없는 인간이 하나둘 끼어있으면 신랑 친구들과 신부 친구들 사이에 싸움이 나는 문제도 생기곤 했다.[3] 이 때문에 함진아비 혼자가기 운동, 혹은 동네 어르신들이 대신 가주기 운동 등이 함진아비 문화의 개선책으로 제시되기도 했다.[4] 보통 함진아비 및 그 일행 역할은 신랑친구들이 맡고, 신부친구들은 신랑친구들을 맞아 요란하게 환영하며 신부네 집으로 끌어들이는 역할을 맡는다. 신부친구들이 장기자랑으로 노래도 한 곡 뽑고 아양도 떨면서 신부 부모님이 준비한 돈봉투를 주거나 바닥에 깐 돈의 액수를 보면서 신랑친구들이 몇 번 튕기다가 못이기는 척하고 집안으로 들어와야 하는데, 이 단락에 적혀 있듯이 적당히를 모르고 막무가내로 버티면서 거액을 요구하고 행패를 부리면 그때부터 분위기가 험악해진다.[5] 사립 대학교 문과 계열의 한 학기 등록금이 200만원을 넘게 된 게 1990년대 후반의 일이다. 즉, 함값으로 등록금보다 더 큰 액수를 갈취한 것이다.[6] 사실 이건 전통적인 잔치자리에서 당연한 일이다.[7] 대표적인 예가 순풍산부인과. 오태란이 결혼하기 전 신랑 측에서 함 팔이를 오는데, 박영규가 꼼수를 써서 오지명의 환심을 사려고 했다가 민폐만 끼쳤다.[8] 자세하게는 처음에는 무슨 소란이냐고 인상을 구겼지만 함파는 것을 보고 요즘에도 함을 파네 라면서 어차피 집에 있던 참에 구경들했다. 물론 함파는 친구들이 지나가다 시끄럽게 굴어 죄송하다고 사과도 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