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인물정보
이름 | 혜량(惠亮) |
나라 | 고구려 → 신라[1] |
직업 | 국통[2] |
2. 개요
고구려 출신으로 신라에 귀화한 승려.3. 생애
신라의 장군 거칠부가 고구려를 염탐하다가 위기에 빠졌을 때 목숨을 구해준 적이 있었다. 이후 진흥왕의 북진 정책으로 신라가 고구려를 공격했을 때 거칠부가 신라군을 이끌고 북진에 참가하였고, 옛 은혜를 갚기 위해 진흥왕에게 혜량을 천거해 이 일로 신라로 넘어왔다. 그는 신라 불교 교단을 책임지는 국통이 되어 밑으로 주통, 군통 등의 불교 교단을 정비 하였고 팔관회를 최초로 개최하는 등의 활약을 했다.[3]이때 신라는 법흥왕 때 이차돈의 순교로 불교가 공인되고 불과 몇십 년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신라는 혜량을 중용, 진흥왕 시대부터 불교색이 굉장히 강해지는데[4] 시기상 승통 혜량의 영향력이 적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신라에 기존에 들어와있었던 불교는 백제를 매개로 한 중국 남조 불교였고 그것을 바탕으로 이 때 고구려승 혜량을 통해 북조 불교까지 신라에 유입되어 백제나 고구려와 달리 신라는 초기부터 남북조 두 계통의 불교가 융합할 수 있었다고, 그리고 신라 불교가 역사가 짧으면서도 급속히 발전한 만한 요인이 여기에 있었다고 보는 설도 있다.
한편 혜량이 거칠부를 통해 신라로 넘어오는 과정에서 정치적 혼란을 언급하는 단락이 있는데[5], 이로 인해 일본서기에 나온 안원왕 말엽의 왕위 계승 분쟁과 결부되어 이 시기에 고구려가 귀족 간의 대립으로 국력이 쇠약해졌다는 학계의 추측이 유력시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