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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교익/비판과 논란/혼밥 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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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발언
2.1. 수요미식회2.2. 김어준의 뉴스공장
2.2.1. 사회적 자폐 논란
2.3. 프레시안 대담 혼밥의 견해2.4. 페이스북2.5. EBS 질문있는 특강쇼
3. 반박
3.1. 식사 중 대화와 겸상은 한국의 전통이 아니다.3.2. 겸상문화는 그렇게까지 인류 사회에서 주류도 아니다.3.3. 동물도 혼밥만 하는 것은 아니다3.4. 타인의 취향 무시3.5. 한국문화에서 겸상에 대한 인식
4. 관련 문서

1. 개요

혼밥을 하지 말고 여럿이서 같이 먹어야 한다는 주장 자체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개인주의가 팽배한 것보다는 공동체 의식을 기르는 게 낫다는 주장으로 기성세대 사이에서 흔히 볼 수 있다. 그런데 황교익은 사회적 자폐라느니 동물만 혼밥을 한다느니 등의 이상한 예와 무례한 단어 선택을 일삼아 논란을 부추기고 있다.

이는 일본에서는 혼밥이 대중적인 식사방식의 하나라는 것을 무시하는 것이다. 일본 요리 문서에도 나와있듯이 현대 일본 요리는 에도 막부시절의 간편한 식사 - 패스트푸드 발달과 큰 관련이 있다.

2. 발언

2.1. 수요미식회

2016년 10월, 수요미식회에서 유재환이 음식에 집중할 수 있어서 혼밥을 좋아한다고 말했는데 이에 황교익이 혼밥하는 건 동물이나 하는 짓이라고 말해서 잠깐 욕을 먹었던 적이 있다. 사람은 여럿이 먹도록 진화했고 동물만 그렇다고 하다가 다른 참석자들이 '그럼 홀로 먹는 인구가 늘어나는 많은 선진국이나 요즘 한국이 동물화되는 건가요? 퇴화되는 건가요?'라고 웃으며 말하자 자기도 뭐라고 할 말이 없는지 웃기만 했다.

재미있는건, 놀라운 대회 스타킹 특별기획 명가의 비밀 4대천왕#에서 소개된 중화음식점에 방문했을 적에 모르는 사람과 합석하여 서로 눈 안마주치려고 고개를 푹 숙이며 이렇게까지 먹어야 하나?라고 평할 정도로 불편했었다고 밝혔다. 이 대목을 보면 자신이 피력한 혼밥에 대한 주장과 상당히 상충된 반응을 보여준 셈이 된다.

2.2. 김어준의 뉴스공장

2017년 4월 21일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게스트로 출연해서 혼밥을 하는 것은 "인간들 간의 소통 방법을 완전히 잃은 것이다.# 뇌에 큰 고장이 발생한 것이다"라며 혼밥러들을 자폐장애인[1]라고 말했는데, 당시엔 화제가 되지 않았으나 2017년 7월 24일에 디스패치에서 이 일을 기사화해 욕을 먹었다. 디스패치 측에서 이를 기사화할 때 '자폐'가 아닌 '자폐아'라고 써 혼밥 논란만이 아니라 자폐아 비하 논란까지 생겨 크게 화제가 된 탓.
김어준의 뉴스공장 2017년 4월 21일 방송분 내용[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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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교익(이하 황): 요즘 혼밥 이야기들이 많다. 혼자 밥 먹는 분들이 많다.
김어준(이하 김): 식당도 바뀌었다. 예전에는 혼자 고기 먹고 싶어도 안 줬는데, 혼자 먹는 고깃집도 있다.
황: “혼자 밥 먹는 게 어때” 하는 이런 사회적 분위기가 만들어져 있다.
김: 일본이 그렇다던데?
황: 음식을 즐기는 게 좋은 거 아니냐, 간섭하지 마라, 이렇게 얘기하는데 사실 혼밥이란 게 인간 동물의 전통으로 보자면 굉장히 위험한 일일 수 있다.
김: 혼밥이 혼나는 시간인가?
황: 여느 동물과 달리 인간은 음식을 쾌락으로 만든다. 입안에 음식물을 넣고 즐기는 동물. 다른 동물은 이런 게 없다. 왜 이렇게 음식을 쾌락으로 만들었냐 하면, 먹을 수 없는 음식도 먹어내기 위한 전략이다. 동물들은 입에 넣으면 먹을 만한 것들만 먹는다. 인간은 먹이 활동을 잘할 수 있는 동물이 아니기 때문에 먹지 못할 만한 것도, 그러니까 입에서는 거북한, 거부해야 되는 맛들도 먹어내야 하는 생존의 조건이 있었다.
김: 식량이 부족했기 때문에, 그 영양소가 꼭 부족해서.
황: 시고 쓰고 이상야릇한 맛, 발효, 음식물이 미생물에 의해 분해된 것 같은, 그런 음식도 먹어내야 했다.
김: 김치 잘 먹지만 외국의 다른 발효음식은 못 먹는다.
황: 극단적으로 맛없는 것이 거북한 것이 오히려 극단적으로 맛있는 것으로. 먹어내지 못하는 것까지 먹어내기 위한 전략으로 음식물에 쾌락을 붙인 것이다. 인간 동물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음식에 쾌락을 붙이는 일이 인간의 머릿속에, 뇌 속에 있는 신경세포에 의한 작용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머릿속에는 혼자서 이 음식물을 먹어서 이것이 맛있는 것이야, 하고 몸으로 만들어내진 못한다. 먹지 못할 이상야릇한 음식을 먹어내는 것은 본능이 아니라 문명이다. 이 문명의 맛을 제대로 즐기려면 혼자 이 맛을 쾌락으로 만들기 힘드니까 다른 사람의 쾌락을 머릿속에 복사하는 그런 능력을 만들었다. 인간의 머릿속에 거울신경이라는 것이 발달해 있다. 인간의 모든 문명의 시작은 거울신경에서 시작하는 것이라 봐야 한다. 거울신경이란 것은 상대방의 감정, 쾌락, 슬픔, 모든 것을 복사하는 신경조직. 우리 뇌 속에 있다.
김: 나 혼자가 아니라고 생각하면 안전하게 느껴지니까.
황: 거울신경이 크게 발달하니까 모든 인간이 사회적 동물로 만들어질 수 있었다. 인간만이 복잡한 문자로 소통하고 있는 것도, 이 거울신경을 발달시켰기 때문에. 맛없는 음식을 먹어내기 위해서. 이 과정을 거쳐서 우리가 고도의 문명을 만들어냈다. 소통을 잘하는 인간은 감정에 대한 교류도 잘한다.
김: 그래서 여성들이.
황: 얼굴 마주 보고, 눈빛을 교환하는 일들이 인간의 소통의 처음이라고 봐야 한다.
김: 그래서 혼밥 문화에 문제를.
황: 혼자서 밥을 먹는 일은 인간의 유구한 600만 년 전통에 벗어나는 일이다. 혼자서 밥을 먹는다는 것은 일단 소통을 하지 않겠다는 사인이라고 볼 수 있다. 소통하지 못하는 인간의 한 예를 본 적이 있다. 밥 먹을 때 소통을 거부하는, 적극적으로 소통을 거부하는 사람이다. 노숙자. 인간이 밥 먹는 양태를 모두 관찰하니까, 노숙자들 사이에 끼어서 무료급식을 먹어봤다.
김: 그런 분들은 특히 혼밥을 하시더라.
황: 줄을 서서 식판에 밥을 받았다. 우리는 밥을 받고 난 다음에 서로 모여 앉아서, 잘 모르는 사람이라도 서로 둥글둥글 앉아서 밥을 먹는다. 그렇게 앉아서 노숙자들 얘기를 들으려고 했다. 그런데 다들 밥을 받고 바로 벽 쪽에 가서 고개를 푹 숙이고 밥만 먹는다. 옆에 사람을 돌아보거나 이야기를 나누지 않는다. 인간들 간의 소통 방법을 완전히 잃은 것이다. 뇌에 큰 고장이 발생한 것이다. 노숙자는 경제적 능력이 없는 것에 발생하는 게 아니라 마음의 병이 굉장히 큰 것, 다른 사람과 소통하지 않겠다는 적극적인 자세 때문에. 밥을 혼자 먹는다는 것은 소통을 거부하겠다는 것. 인간 동물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특징인 소통의 방법을 거부하는 것이다.
김: 인간관계의 스트레스, 감정노동 때문에 단절되더라도 혼자 밥을 먹는 것일 수도 있다.
황: 그걸 극복해야 하는 것이다. 싫다고 해서 혼자서 어떤 일을 하겠다, 앞으로 숨어드는 것은 자폐장애인 것이다.
김: 사회적 자폐아.
황: 단절시키고, 나 혼자 밥 먹고 생각하고, 나 혼자만의 말을 할 거라고 하는 순간 박근혜 대통령에게서 보지 않았나. 나는 일본을 정상적으로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그런 나라라고 보지 않는다. 민주공화정의 국가로 제대로 넘어가지 못하고 질서가 제대로 안 잡혀 있다. 개인의 취향인 것처럼 하지만 파편화돼 있는 사회다. 개개인이 행복한 사회인가 하는 것은 의문을 가지고 있다.
김: 밥을 혼자 먹는 것, 1인 가정에 대해 이상한 게 아니라고 하는데.
황: 그러면 안 된다. 어쩔 수 없이 혼밥을 하는 경우가 많긴 하다. 그런데 그 상황은 어쩔 수 없는 경우라고 생각을 하고 적극적으로 친구나 좋아하는 사람들이나 가족과 함께 밥을 먹으려고 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식성을 바꾸어야 한다.

2.2.1. 사회적 자폐 논란

얼마 지나지 않아 중앙일보도 이를 기사화했고(기사), 이에 황교익은 자폐증이 아닌 자폐란 단어의 본뜻인 '스스로를 가두다'라는 의미로 쓴 것이라며 디스패치의 악의적 왜곡이라고 지적했다. 디스패치 측이 그 기사를 삭제하자, 황교익은 자신에게 사과하지 않은 채 그 기사를 삭제했다며 이후 디스패치의 반응을 보고 법적 대응을 할지를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26일 저녁에 디스패치는 사과문을 올렸고, 그는 바로잡고 사과했으니 디스패치에 대한 법적 처분은 하지 않을 거고, 오해로 인한 것이니 자신을 욕한 네티즌에겐 사과를 요구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네티즌들 사이에선 이 문제로 여전히 그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디스패치가 자구(字句)를 왜곡한 것은 잘못이지만 자폐라는 단어는 자폐증을 칭할 때 쓰는 경우가 압도적인 점과 뇌가 고장난 것이라고 말한 점을 볼 때 사실 그가 자폐증을 말한 게 아니라고 해명한 것은 장애인을 비하했다는 비난을 사고싶지 않아서일 뿐, 부정적인 의도로 사용한 것은 맞다고 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를 비판하는 이들은 '혼밥은 사회적 자폐'라고 결론을 내리기까지의 논리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말하고, 그를 옹호하는 이들은 '사회적 자폐'와 '사회적 자폐아'는 분명히 다른 말이며 언론에게 왜곡당해 지나치게 욕을 먹은 거라고 말한다.

2.3. 프레시안 대담 혼밥의 견해

https://news.v.daum.net/v/20170119080857567
https://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02&aid=0002023983

2.4. 페이스북

2018년 3월 5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다시금 혼밥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를 밝혔다. 자본주의에 대해 비판한 부분도 폐해 지적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자본주의가 공동체를 쪼개 1인 가구 까지 양산해 자본을 증식시키는 지는 검증된 사실이 아닌 황교익 개인의 의견이며, 무엇보다 자신이 비난하던 떡볶이라면 광고에 출연한 당사자가 자본주의를 비판할 자격이 있는 지는 의문이다.[3] 또한 여기서도 박근혜는 갑작스럽다.
인간은 함께 밥을 먹는 동물로 진화해왔다. 그래서 혼자 밥을 먹지 못한다. 누군가가 옆에 있어야 한다. 씩씩하게 혼밥 한다고? 자세히 관찰해보라. 그거, 혼밥 아니다. 가짜 인간과 먹는다. 텔레비전 속의 가짜 인간, 음악 속의 가짜 인간, 모바일 속의 가짜 인간, 책 속의 가짜 인간과 먹는다. 텔레비전 음악 모바일 책 신문 등 인간의 흔적을 완전히 제거한 상태에서 빈 방에 밥상 하나만 달랑 놓여 있다고 상상해보라. 먹을 수 있겠는가. 이를 먹어내려면 박근혜 정도의 멘탈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자본주의는 인간집단을 끝없이 파편화한다. 마을공동체에서 대가족으로 쪼개고 다시 핵가족으로 쪼개고 다시 1인가구로 쪼개고 있는 중이다. 이렇게 잘게 쪼개야 시장이 커져 자본이 증식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진다. 앞으로 점점 더 혼자 밥을 먹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늘어날 것이다. 가짜 인간을 더욱 정밀하게 제조하는 산업이 번창할 것이다. 여기에 점점 더 익숙해지는 사람들이 늘어날 것이다. 인간은 원래 그렇게 사는 것이 행복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늘어날 것이다. 인류의 미래는 그 행복해하는 사람들로 밝을 것이다, 매우매우.

2.5. EBS 질문있는 특강쇼

2018년 10월 18일에 방영된 EBS의 특강에서도 혼밥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를 다시 언급했다. 주장의 요지는, 사람이 같이 먹으며 대화하는 중에 쾌락의 확대 현상이 일어나 음식이 더 맛있어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혼자 밥을 먹을 경우에는 쾌락을 복사시켜줄 대상이 없기 때문에 대체자로 텔레비젼을 보면서 먹게되고 텔레비전 속의 사람에게는 쾌락을 만들어줄 필요가 없으니 뇌가 편하다라는 모호한 논리를 전개했다. 그리고 뇌가 편하면 뇌가 편한것만 찾으려는 관성 때문에 계속 혼밥만 하게 된다고 주장했다.

3. 반박

혼밥에 대한 황교익의 발언은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고 있다.

또한 자꾸 '혼밥하는 사람'과 '박근혜'를 등치하는 발언을 하는데, 이는 박근혜가 지닌 부정적인 이미지를 사용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박근혜의 경우, 대통령이나 여타의 고위급 정치인은 식사도 업무의 일부나 연장일 때가 많은데[4] 그걸 외면하고, 심지어 의무적으로 해야될 출근조차 타당한 이유도 없이 소홀히 하면서 혼자 식사할 때가 많기에 문제가 된 것이다. 하지만 일반 시민이라면 식사 정도에 대통령 만큼의 책임이 요구되지 않고, 업무에 큰 지장을 끼치거나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않는 이상 혼자 만의 시간을 가지며 식사를 하고 말고는 전적으로 본인의 자유이며 누릴 수 있는 권리이다. 단지 혼밥이라는 것으로 박근혜에 등치시키는 것 자체가 잘못이다.

게다가 황교익이 혼밥을 다루는 삼단논법 자체가 논리력이 부족한 사람들이 전형적으로 틀리는 방식으로 전개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황교익이 혼밥에 대해 보이는 태도를 삼단논증하면 아래와 같다.
1. 박근혜는 자폐아 같은 사람이다.
1. 박근혜는 혼자 밥을 먹는다.
1. 따라서 혼밥을 하면 자폐아 같은 사람이다.

이것을 좀 알기 쉽게 풀어보자면, "A는 B다. A는 C다. 따라서, B는 C다" 라고 말하는 꼴[5]이기 때문에 제대로 된 삼단논법의 구조인 "A는 B다. B는 C다. 따라서 A는 C다"의 구조가 아니다.[6] 자폐아에 대한 모욕을 뒷전으로 하더라도 심각한 비약이 있음을 알 수 있다. '혼자 밥을 먹는다'는 행동만 다른걸로 바꿔보면 무엇이 문제인지 확연히 드러난다. 예를 들어 늦잠을 잔다, 성형수술을 받았다 등을 넣으면, 늦잠잔다고 박근혜가 되고 성형했다고 자폐아가 되는 건가?

추가로 본인 논리를 강화시키기 위해 명백한 인종차별에 해당하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황교익 "'인간은 함께 밥을 먹는 동물이다. 혼자서 밥을 먹는 것은 짐승이나 하는 일이다' 부시맨도 알고 학자들도 아는 일이다. 내 앎도 그 정도의 것이다. 학자연하기는 싫고 부시맨으로 분장을 해야 하나"

이는 과학적 근거 없이 특정 인종 전체를 희화화하는 전형적 형태의 인종차별에 해당한다.

3.1. 식사 중 대화와 겸상은 한국의 전통이 아니다.

여러 사람이 한 상에 음식을 깔아놓고 먹는 건 우리의 전통이 아니다.

혼밥이 한국에서 유독 부정적으로 인식되는 것은 식사 자리가 옛날부터 내려온 전통적인 커뮤니케이션의 장이자 사람들끼리 한 테이블에 뒤섞여 시간을 보내던 겸상문화라는 이유에서인데 오히려 이것은 해방 이후부터 생긴 비교적 최근의 인식이다. 20, 30여년전만 하더라도 당시 보수적인 어르신들은 밥알이 튀거나 점잖치 못하다는 이유로, 밥을 먹으면서 대화하는 것을 금기시 했으므로 식사 자리가 친교의 자리가 되기는 어려웠다. 실제로 1980년, 1990년대에 나온 책을 보면, 식사를 하면서 대화를 해야 소화도 잘된다면서 밥 먹을 때 침묵하는 전통 문화를 바꾸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다. 혼밥 문서 서두에 나온 예문에 등장한 김산의 발언을 보면 한국에서는 식사 자리에서 말 섞기를 매우 금기시했음을 알 수 있다. 간편식이 보급되지 않았던 시절이므로 누군가는 식사 준비 역할을 맡아야 했기에 저 당시에 지금처럼 철저히 혼자만의 공간에서 식사를 하는 상황은 드물었겠지만...[7]

파일:a0053134_58d2f78158853.jpg
선조조 기영회도 (宣祖朝 耆英會圖), 1585년

파일:선비모임.jpg
연지계회도 1550년

파일:고구려 무용총 접객도.jpg
고구려 무용총 접객도

위의 그림들을 보면 알다시피 기본적으로 근대 이전 한반도에서는 1인 1상, 즉 독상을 따로 배치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특히 맨 아래는 고구려 무용총 접객도에 기록된 독상을 차리는 그림인데 이를 통해 독상 문화가 조선시대보다 훨씬 이전인 고대의 삼국시대부터 수천년간 이어져 내려왔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완전히 혼자서 식사하는 현대의 혼밥과는 조금 다르지만 같이 둘러앉더라도 식사 도중에 대화는 삼가며 각자 상 차림에 집중하는 것이 보편적이었다. 이는 더 나아가 아예 독상(소반)을 받는 인물에 따라 지칭하는 용어도 있었는데 집안의 어르신들께 차리는 독상을 '각상'이라고 했으며 그 외에 집안 식구들의 1인 독상 혹은 2-3인 소규모 겸상차림을 '외상'이라 불렀다.[8] 풍속화를 보더라도 잔치 자리, 연회식에서도 서로 떨어져 앉았음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전통적인 1인 독상 문화가 붕괴되기 시작한건 아이러니 하게도 해방 이후 한국 전쟁을 겪으면서 일어나게 된 현상이다. 전쟁 통에 제대로 독상차림할 살림도 여유도 없어지면서 상 하나만을 펴놓고 찌개나 반찬 몇 개만을 올려놓은 후에 식구들 전부가 둘러앉아 끼니 때우는 두레겸상 문화가 독상 문화를 완전히 대체했으며 이런 현상들이 전쟁이 끝나고 나서도 수십년 이상 지속되어오면서 결국엔 사회적으로 주류가 되어버린 것이다. 한마디로 원래 전통이 아닌 것이 현재 시점에서 마치 오래된 문화인 것 마냥 둔갑해버린 것이다.

비정상회담미국인 대표로 출연했던 마크 테토 역시 한국의 전통 상차림인 독상(소반) 문화가 사라져가는 것을 방송에서 안타까워 했으며 한국의 소반작가를 만나서 인터뷰를 진행하기도 했었다.*

즉 오히려 전통적인 한국의 식사 문화는 소반으로 대표되는 '혼밥'이었으며 황교익이 주장한 겸상과 밥상에서의 소통문화는 한국 전쟁 이후 변질된, 60년 밖에 되지 않은 역사가 일천한 식사문화라는 것을 알 수 있다.[9]

사실, 이것이 모두 거짓이더라도 황교익의 이 주장은 자연주의의 오류를 담고 있다.

종합해서 해당 발언은 한국의 전통을 트집잡아 하고 싶었던 이야기였지만 사실상 한국의 오랜 전통조차 모르고 한 속이 빈 소리라고 볼 수 있다.

3.2. 겸상문화는 그렇게까지 인류 사회에서 주류도 아니다.

사실 여러사람이 둘러앉아 함께 식사하고 시간을 보내는 행위를 사회적으로 당연시 여기는건 근현대 이후 한국을 비롯한 몇몇 국가에서만 보편적인 비주류 현상이다.[10][11]

유럽이나 미국 등지에선 약속을 따로 잡고 식사자리에 모인다거나 파티를 하지 않는 이상 카페테리아나 간소한 음식점에서의 혼밥이 기본이며 이는 꽤나 오래된 전통이다. 당장 샌드위치햄버거, 토스트가 어느 문화권에서 생겼는지 생각해보라.[12]

무엇보다도 본인이 그렇게 찬양하는 일본의 보편적인 식사문화조차도 '이치닌마에(いち-にんまえ, 一人前)'로 일컫는 1인분 한상차림과 도시락을 통한 혼밥이 기본이다.

3.3. 동물도 혼밥만 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을 제외한 동물만 홀로 먹는다고 주장하는 것 부터가 심각한 오류이다. 당장 동물의 왕국만 보더라도 알 수 있듯이 사자, 하이에나, 늑대를 비롯하여 제법 많은 동물들이 무리를 지어 사냥하고 먹이를 먹을 때도 다같이 와서 여럿이 먹는 경우가 상당히 많기 때문이다. 코끼리, 버팔로를 비롯한 초식동물들을 예로 들더라도 자신들이 먹을 식물을 찾으러 집단 전체가 이동을 하고, 함께 먹는다.

사람이 함께 밥을 먹는 동물로 진화해왔다는 명제부터가 사실인지 거짓인지 불분명하다. 리처드 도킨스가 주창한 밈 가설에 따르면 진화생물학적으로 인류가 함께 밥을 먹게 하는 문화인자가 지속적으로 발전해 온 것이라고 추정할 수는 있다. 문제는 이런 표현형이 실제로도 모든 문화에서 공통적으로 발생하지는 않았다는 것.

진화에 대한 황교익의 오해도 매우 깊다. 함께 밥을 먹는 동물로 진화해 왔다는 것은 결과일 뿐 과정이 아니다. 그렇게 따지면 혼밥문화가 확산되는 것 역시 자연스러운 인류 진화의 결과이며, 그걸 진화 방향에 거스른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혼밥은 그냥 문화이기 때문에 문화 자체는 진화와 조금이라도 관련이야 있겠지만 '겸상이라는 특정 문화를 갖도록 인류가 진화했다.' 이런 건 과학적, 역사적으로 증명도 안된 오류이다.

게다가 이건 과학자가 아닌 음식평론가인 황교익이 단정지을 수 있는 성격의 명제가 절대 아니다. 식욕수면욕, 배설욕과 더불어 인간의 3대 기본적인 욕구이며, 주변 인간의 흔적 여부와 관계없이 발동된다. 일체의 인간 흔적이 없는 감옥 독방에서도 인간은 밥을 목구멍으로 넘기는 게 가능하다. 당장 옆에 아무도 없다고 생체 매커니즘 적으로 밥이 넘어가지 않거나 식사 후에 정신적, 신체적 장애가 생기는 사람이 있던가? 이는 학계에 보고받거나 연구된 기록조차도 없다.

3.4. 타인의 취향 무시

혼밥은 개인의 성격과 취향이 많이 반영되는 행위이다. 세상사람 중 꽤 많은 비율이 혼밥을 편안해 하는 내성적인 사람이며 그 타고난 성격은 잘못도 아니고 고치라고 강요할 수도 없는 것이다. 왁자지껄하게 떠들며 함께 밥을 먹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 만큼, 혼자 조용히 밥을 즐기는 걸 선호하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그저 성격과 취향의 차이로 모두가 존중받을 필요가 있다.

황교익의 혼밥 자폐 논란은 본질적으로 상대방에 대한 존중과 예의가 결여된 주장이다. 그리고 그는 혼밥이 마치 문명을 역행하는 것처럼 주장했지만, 오히려 문명이 발달하면서 개인의 권리와 특성도 소중하게 존중되기에 혼밥도 자연스러운 권리로 인정되는 것이다.

게다가 '뇌가 고장났다'는 식의 극단적인 논리는 너무나 일방적인 해석이다. 그 주장의 기저엔 "혼밥을 하는 사람은 식사중에 아무 생산적인 행위도 못하고 그저 음식만 쑤셔 넣는다"는 잘못된 전제를 깔고있다. 반드시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밥을 먹어야만 긍정적이고 생산적인 행위가 되는 것이 결코 아니며, 혼밥을 하는 사람들이 그저 아무 생각 없이 소통을 차단하거나, 마음의 문을 닫거나, 사회성이 결여된 게 아니다. 각자의 합리적 판단하에 행동하는 것이다. 현실 속의 단체식사는 황교익이 출연하는 알쓸신잡 같은 낭만이 항상 있지 않다.

3.5. 한국문화에서 겸상에 대한 인식

위에서 상기된대로 겸상을 한다는 것은 한국의 전통 식사 예절에서 원래는 어긋나는 일이었다. 겸상은 드문 경우에 해당했고, 제사상도 같이 나눠서 먹는 것이 아니라 따로 독상으로 나누어서 먹었다. 그렇기에 겸상을 할 수 있는 상대는 그 집안의 가장 큰 웃어른과 장자나 장손이나 가능한 일이었다. 가끔 외부인도 겸상이 가능했는데, 그것은 나와 동격의 존재라는 표시였다. 이처럼 겸상은 그야말로 상대방에 대한 최고의 대우로 쓰였다.

겸상에 대한 이러한 인식은 어휘에도 남아 있는데, "겸상"이라는 단어의 사용이다. 먼저 숙어로 "버르장머리 없게 겸상을 하려고 한다"가 있다. 이 숙어의 의미는 너는 나와 급이 같지 않다이다. 실제 용례를 찾아보면, 박지윤은 임성민이 들어오자 과거에는 겸상도 할 수 없었던 대선배였다고 말했고, 김원희, 박소현 한 살 언니지만 데뷔 선배 “어디 겸상을 해”라고 말했다., 이러한 용례는 드라마에도 있다. '무법변호사' 이혜영, 최민수 얼굴에 소주 뿌렸다 "네가 나랑 겸상을 해?" 분노
이처럼 겸상이라는 용례를 본다면 겸상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상대와 같은 급이 아니거나 상대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겸상이 보편적이고 일상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기도 하다. 겸상이 보편적인 것이라면 겸상의 의미를 이렇게 쓰이지 않았을 것이고 다른 어휘로 사용되었을 것이다. 즉, 겸상이라는 것이 상대와 내가 동급일 때만 가능하다는 것이 특정되었기에 이러한 겸상의 용례가 사용되는 것이다.

4. 관련 문서



[1] 이때 옆에서 김어준이 '사회적 자폐'라고 교정하였다.[2] 일부 축약 및 생략되어 있으므로 방송분을 참고할 것[3] 특히 라면은 자주 먹는 고객층이 '1인 가구'에서 간단하게 '혼밥'을 하며 사는 사람이 많으므로, 황교익은 '공동체를 잘게 쪼개서 자본을 증식하는 자본가'에게 협조한 것이나 다름 없다.[4] 당장 ‘오찬 회동’으로 뉴스 검색을 하면 대통령이나 대선 후보, 당대표 같은 고위 정치인들에 대한 기사가 줄줄이 나온다.[5] 정확히는 소개념 부당 주연의 오류이다.[6] 제시된 명제들 만으로 성립 가능한 삼단논법을 만들면 1. 혼밥하는 사람들은 자폐아다. 2. 박근혜는 혼밥한다. 3. 따라서 박근혜는 자폐아다. 가 된다. 물론 이렇게 해도 대전제인 1번이 증명되어야 한다. 애초 모든 3단 논법은 두 대전제 중 반드시 하나 이상이 분석적이건 종합적이건 별도의 증명이 필요함이 논리적으로 증명되었다. 단지 여기까지 들어가려면 메타논리를 이해해야 하기 때문에 고등학교 교육에서는 삼단논법의 논리구조만 충족하면 맞는 것으로 간주하는 것일 뿐이다. 간단히 말해 황교익은 고등학교 수준의 논리력도 없는 모습을 보인 것.[7] 중요한것은 80, 90년대 기준으로 어르신 세대였다는 점이다. 아무리 낮게 잡아도 그 시대 기준 70, 80대 이상의 어르신 세대를 일컬으며 이분들이 나고 자란 시기와 청소년, 청년기의 대부분을 보낸 시점 역시 겸상 문화가 보편화되기 시작한 해방 이후와는 거리가 멀다. 이분들의 식사 시간때 행동에서 알 수 있듯이 겸상과 식사 커뮤니케이션은 한국의 오랜 전통이 아니었음을 쉬이 알 수 있다.[8] 외상은 상황마다 달랐으나 기본적으론 독상을 추구했으며 사정상 여의치 않았을 경우에 겸상이었다.[9] 조선시대에 촬영된것은 아니지만 전통을 잘 유지하고 있던 가문들의 옛 식사 사진을 통해서도 전통적인 독상 형태를 알 수 있다. 파일:조선시대 독상.jpg[10] 의외로 동아시아 문화권에서는 겸상문화가 그렇게까지 주류는 아니다. 혼밥문화로 유명한 일본은 제쳐두더라도 중화권 조차 날을 잡아서 외식이나 코스요리를 할때를 제외하곤 혼자서 국수나 볶음밥으로 끼니를 해결하는 것이 일상이다. 한국 전쟁 이전의 한국에서도 독상차림 형식의 혼밥이 보편적이었으니 추측이지만 혼밥문화가 본래 동아시아권의 주류였을 가능성이 비교적 높다.[11] 전통적으로 겸상 문화를 추구하는 국가들은 수식 문화권이이나 남유럽계 라틴 국가들이 있다. 다만 이들 조차도 최근들어 비중이 덜해지는 추세다.[12] 굳이 예외가 있다면 이탈리아, 스페인으로 대표되는 남유럽 문화권이다. 이들은 한국만큼은 아니더라도 타인과 같이 식사하는 것을 상대적으로 중히 여기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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