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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ecd21><colcolor=#00386a> 청 추존황후 孝睿愍皇后 | 효예민황후 | |||
출생 | 1924년 9월 4일 중화민국 | ||
사망 | 1997년 6월 9일 중화인민공화국 (향년 72세) | ||
재위 | 청 황후 | ||
1962년 ~ 1997년 6월 9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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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군 | 청 공종 선통제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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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청나라 마지막 선통제의 마지막 부인. 그리고 중국 최후의 추존황후.[1]2. 생애
한족이며, 이름은 리수셴(李淑賢)으로 원래는 평범한 병원 내 노동자 출신이었다. 푸이가 1959년 형기를 채우고 석방된 이후 지인을 통해 교제하다 1962년 푸이와 결혼했고 자녀없이 살다가 1967년 푸이와 사별했다. 푸이 사후 조용히 살아가다가 1980년대에 푸이의 개인 자서전이었던 나의 전반생에 대한 소유권을 중국 정부로부터 인정받았고 남은 여생을 부유하게 살 수 있었다.[2]푸이의 묘역을 팔공산 혁명공묘에서 역대 청나라 황제의 릉이 있는 청서릉 인근으로 옮겼으며[3] 1997년 폐암으로 사망했다. 향년 72세. 그녀는 임종 직전 유언으로 푸이, 푸이의 만주국 시절 후궁이자 푸이가 가장 사랑했었던 탄위링과 함께 안장해달라고 부탁했으나 이루어지지는 못했다.
3. 사후
사후 7년 뒤인 2004년, 구 청나라 황실이 효예민황후(孝睿愍皇后)로 추존하였다.[1] 선통제의 후궁인 원슈, 탄위링이나 리위친의 경우는 정식 시호를 받은 적이 없고 첩지만 있다. 이에 반해 리수셴은 생전 청나라 황후인 적은 없었지만 청나라 황실에서 푸이의 정식 부인이었던 점과 이에 배려 차원에서 황후 시호를 받았다. 효예민황후라는 시호도 시법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2] 리수셴은 이후 자신의 회고록을 냈는데 푸이와의 5년의 결혼 생활에 관한 것이라고 한다.[3] 1995년 허베이성 청조 역대 황제 능묘 근처에 있는 민간 묘지 화룡황원(華龍皇園)의 경영자가 마지막 부인 리수셴에게 푸이의 묘를 조성하는 것을 제안했고, 리수셴이 동의해 푸이의 유골을 그곳으로 이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