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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466991><colcolor=#ece5b6> 후한 추존 황제 후표 | 侯標 | |
시호 | 원황제(元皇帝) |
생몰 | ? ~ ? |
성 | 후(侯) |
휘 | 표(標) |
부친 | 후주(侯周) |
[clearfix]
1. 개요
중국 남북조시기 한(漢)을 세운 후경의 아버지다. 후표의 아버지는 후주(侯周)이며 사후 아들 후경이 한을 세우자 원황제(元皇帝)로 추존되었다.2. 상세
후한(後漢)의 건국공신인 후패(侯覇)의 후손이며 선비족의 갈족 또는 한족 출신이라고 한다. 또한 후표의 6대조는 후근(侯瑾)이며 후표는 삭주 땅[1]에서 사망했다.후표 본인의 기록은 후경이 위패를 세울때 삭주에서 사망했다고 언급한 것을 제외하면 전해지지 않으며, 551년 아들 후경이 원황제(元皇帝)로 추존하였다. 후표의 아버지이자 후경의 조부인 후주 역시 대승상(大丞相)으로 추존되었다.
3. 관련 일화
사후 아들 후경이 후경의 난을 일으켜 후한(侯漢)[2]의 황제로 등극해 자신도 황제로 추존되는 영광을 누렸지만 아들 후경은 일개 무부(武夫)였고 3년 전 수양에서 병사를 일으킬 때는 그저 원한을 풀겠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래서 그 자신도 갑작스럽게 황제의 자리에 오를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었고 예의법도를 전혀 몰라서 여러가지 우스개거리를 제공했다.한 번은 왕위가 후경에게 칠묘(七廟)[3]를 세워야 한다고 했다.
왕위: 천자가 되셨으니 마땅히 칠묘를 세워야 합니다. 후경: 칠묘가 무엇이냐? 왕위: 천자가 제사를 지내는 칠대 조상의 사당을 말합니다. 위패를 만들어야 되니 원컨대 감히 칠대 선조님들의 휘(諱)를 여쭙겠습니다. 후경: 할아버지 이전 조상들은 이름도 모르고 얼굴도 못 봤다. 오래전에 삭주 땅에서 돌아가신 아버지 이름은 후표(候票)인데 그 먼 삭주 땅에서 어떻게 이 먼 건강까지 와서 밥을 먹는단 말이냐? |
이에 모든 신하들은 후경을 한심하게 여겨 몰래 웃음을 참지 못했고 왕위는 어쩔 수 없이 후표와 부하들이 이름을 알고 있던 후주를 제외한 나머지 5개의 위패에 그냥 아무렇게나 이름을 적어 넣었다.
[1] 오늘날 산서성 숴저우시[2] 중화제국 후한(後漢)과는 별개의 왕조.[3] 당시 양의 칠묘는 태중부군(太中府君) 소예(蕭裔), 회음부군(淮陰府君) 소예(蕭整), 제음부군(濟陰府君) 소할(蕭轄), 중종사사부군(中從事史府君) 소부자(蕭副子), 특진부군(特進府君) 소도사(蕭道賜), 태조(太祖) 문황제(文皇帝) 소순지(蕭順之), 덕황후(德皇后) 치휘(郗徽)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