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19 07:55:48

흰종이 수염

1. 설명2. 등장인물3. 줄거리

1. 설명

'수난이대'로 유명한 한국의 전후 소설가인 하근찬의 소설.

하근찬의 여느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한국전쟁 직후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전쟁 이후의 한국 사회의 비참한 면과 미성숙한 시민 의식에 대해 잘 묘사하고 있다. 다만 전쟁으로 황폐화된 세상 속에서도 사랑을 강조하며 인간 찬가를 나타내던 전작과 달리, 사회상을 묘사하는 것에서 그친 탓인지 작품에 대한 평가는 수난 이대보다 떨어진다. 그래도 최근엔 재조명되고 있다.

중학교 교육과정 1학년 국어 교과서에 수록되었으며[1] 역사적으로 중요한 소설은 아니지만 사람들 사이에서의 인지도 자체는 높은 편. 과거에는 사친회비가 교육부의 흑역사여서 그런지 동길이 사친회비 때문에 선생님한테 책보까지 털리는 장면이 잘려있었다. 현재에는 이 장면이 대체로 들어있다.

제목이자 제재인 흰 종이수염은 잠깐이나마 전쟁의 아픔을 숨길 순 있지만 그 수준이 어설프고[2] 그마저도 (작중 아버지의 팔처럼) 쉽게 떨어져나가고 마는 물건이므로 전쟁의 비극을 더더욱 강조하는 요소라 할 수 있다.

1980년에 KBS 문예극장으로 드라마화된바 있다.


2. 등장인물

  • 동길: 작품의 주인공으로 시골에 사는 초등학생이 되는 소년. 사친회비[3]를 내라는 선생의 등쌀에 학교를 때려쳐버리려고 하지만 때마침 징용에서 돌아온 아버지가 대노하며 이를 막는다. 아버지가 팔을 잃은 걸 처음 봤을 땐 크게 안타까워하지는 않았지만 창식을 비롯한 나쁜 친구들의 패드립과 웃음거리가 되는 걸 감수하고 극장 홍보원으로 일하는 아버지를 보고 분노와 눈물을 삼키게 된다. 창식이가 기어이 패드립과 모욕까지 주자 창식이를 무자비하게 팬다.
  • 아버지: 동길의 아버지로 과거 목수였으나, 전쟁 와노지에서 사고로 팔을 잃은 뒤 극장 직원으로 취직한다. 아들의 사친회비 얘기에 잠시 어두워지나 아들을 위해 열심히 노력한다. 이 작품 최고의 멘탈갑으로, 팔을 잃어버린 극한의 상황, 천시받는 샌드위치맨으로 푼돈이나 벌어살게 된 처지에서도 당당하게 살려는 모습이 보이는 인물이다. 실제로, 전쟁터에서 사지를 잃어버리는 일은 평생 동안 PTSD가 되고도 남을만한 일이다. 아무리 자신은 어른이고, 철부지없는 꼬맹이들의 장난이라 해도 전쟁에서의 PTSD를 직접적으로 건드리면서 조롱을 하는 모습에도 불구하고 멘탈이 멀쩡한 것이 더 이상할 지경이다.
  • 어머니: 동길의 어머니. 특별한 비중은 없지만 동길의 아버지가 팔을 잃게 된 경위를 어린 동길이 납득할 수 있도록 설명할 방도가 없어 한숨만 내쉰다. 이념 때문에 동족끼리 죽여야 했던 6.25 전쟁의 말 못할 참상을 상징한다.
  • 선생: 4개월치 사친회비를 내지 못한 동길한테 아버지를 모셔오라고 화를 내는데 아버지가 징용 나갔다고 대답하자 잠시 말을 못하고 태도가 누그러들긴 했지만, 그럼 어머니라도 모셔오라면서 동길의 책보를 압수한다. 이 사실을 안 동길의 아버지가 직접 학교에 가서 전쟁에서 잃은 팔을 보여주며 곧 사친회비를 내겠다고 하자 크게 미안해하고 책보를 돌려주었다. 그리고 학교에 돌아온 동길한테는 '결석하면 안 된다'고 말한다.[4]
  • 용돌: 학교에서 쫓겨난 동길과 함께 냇가에서 신나게 노는 친구. 동길보다 먼저 냇가에 있던 것과 작중 동길의 언급으로 보면 사친회비를 못 내고 아예 학교를 그만둔 듯하다. 흰 종이수염을 단 동길의 아버지를 알아보고는 동길한테 '느그 아버지 참 멋쟁이다!'라고 비꼰다. 당연히 슬픔에 휩싸인 동길의 귓전에는 아프게 들렸다.
  • 창식: 동길의 옆집에 사는 소년. 성격은 매우 못되먹은데다 완전 불여우로 동길과 같이 등교하려고 동길네 집에 왔다가 팔을 잃은 동길 아버지를 보고는 마치 먹잇감을 찾은 기레기처럼 눈을 번쩍 뜬다. "느그 아부지 팔 하나 없어져서 어떻게 목수질하노? 인제 못하제, 그제?"라며 동길을 약올리다가 도망가고, 반 친구들을 잔뜩 데려와서 동길한테 '외팔뚝이 새끼'라고 집단 패드립을 퍼붓도록 선동하고는 아이들 뒤로 숨는 인간 말종짓을 한다. 후반에는 극장 홍보원 일을 하고 있는 동길 아버지의 흰 종이수염을 나뭇막대기로 건드리면서 선을 넘는 짓을 하면서 '켈켈' 웃고, 결국 분노가 폭발한 동길이 창식을 사정없이 쥐어패며 이야기가 끝난다.

3. 줄거리

한국전쟁 이후 아버지가 징용으로 끌려나간 소년 동길에게 선생님은 사친회비를 낼 것을 지시한다. 그러나 동길이는 현재 아버지가 노무자로 나간 상태였고, 나중에 사친회비를 드리겠다고 말씀드리지만 오히려 선생님은 어머니라도 데려오라면서 으름장을 놓고 동길을 쫓아냈고 동길의 책보까지 뺏어갔다. 심지어 사친회비를 내지 않은 사람들은 방학도 없다고 한다.

결국, 사친회비 때문에 마음이 무거워진 채로 집으로 돌아온 동길. 집에 아버지가 돌아와 계셨다. 그러나 아버지는 강제징용 중에 사고로 오른팔을 잃은 상태였고, 기존에 하던 목수 일을 더 이상 할 수 없게 되었다. 당연히 어린 동길은 전후맥락을 몰랐기에 빨래를 하던 엄마에게 "아빠가 팔이 없다. 어떻게 된 거냐?" 고 당황하며 물어봤지만, 동길의 엄마는 사정을 알아도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답답했는지 한숨만 쉬며 못 들은 척 빨래를 계속했다고 나온다.

동길의 학교 친구인 창식은 동길이와 같이 등교하러 갔다가 동길의 아버지가 한 쪽 팔을 잃은 것을 봤다. 등굣길에 창식이 그걸 언급하자 화가 난 동길은 학교를 째고 냇가로 가서 수영을 한다.[5] 그 때 반 아이들이 동길의 아버지를 외팔뚝이라고 놀린다. 창식이 외팔뚝이가 학교에 왔다고 하고 뒤로 숨자, 동길은 "요놈 새끼 죽여버릴끼다.." 하면서 혼잣말로 화를 냈다. 아버지는 학교에 가서 자기가 전쟁터에서 팔을 잃었다는 것을 선생님한테 증명했다. 직접 가서 팔 보여줬더니 선생이 오히려 미안해하면서 책보도 다시 돌려줬다고 한다. 오오 아버지

그 날 술을 마시고 집에 와서 "이건 네가 말을 못하니 욕을 먹는 거다." 라며 사람들 앞에서 당당하지 않았던 동길을 질타하며 "내가 팔이 없다고 너한테 필요한 것 제대로 못해줄것 같았냐? 사친회비 밀린 것도 다 준비해 줄 수 있다" 라며 호되게 야단친다. 이때 병신자식이라는 욕을 하는데 동길에게 하는 것도 있지만 본인을 자책하는 뜻이 더 크다. 그러면서도 며칠 후 아버지는 취직했다고 집에 돌아와서는 사람 구실 한다는 게 기쁜지 술을 마시고 춤을 춘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아버지는 극장의 영화 홍보원으로 취직하고, 이 소설의 제목이자 제재이기도 한 '흰 종이수염'을 붙이고 역시 얼굴에 분을 칠하고 걸어다니는 입간판이 되는 일을 한다. 그 와중에 하필 입간판의 영화 제목은 '쌍권총을 든 사나이'.학교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던 도중 동길은 아버지가 일하는 모습을 보고 쇼크를 받고 굳어버린다.[6]

하지만 하필 창식이가 아버지의 흰 종이 수염을 나뭇가지로 건드리는 걸로도 모자라 킬킬 웃어대면서 아버지를 심하게 놀리자 동길은 창식을 죽여버릴 각오로 복날 개패듯이 두들겨팬다.[7] 이것을 본 아이들은 어쩔 줄 몰라하고 역시 당황한 아버지가 급하게 달려가서 동길을 말리는 장면으로 끝난다.


[1] 구인환의 "숨쉬는 영정"이 바로 뒤에 같이 실려있다.[2] 털이 아닌 종이로 만들었으니 어설픈 게 뻔히 보일 수밖에 없다.[3] 1970년에 육성회비로 명칭을 변경했다가 1997년 폐지되었다.[4] 본성이 나쁜 건 아닌 듯한데 검정고무신에도 나오지만 사친회비를 안 내면 교장, 교감이 닦달하면서까지 선생을 쪼니까 성격이 변할 수는 있는 일이다. 실제로 기영이가 사친회비를 못 내자 담임선생이 눈물을 흘리면서 손바닥을 때리기도 했다.[5] 사실 사친회비 못 냈다고 선생님한테 책보까지 압수당하니까 너무 화가 난 나머지 부모님한테 학교 때려치겠다고 했었다. 물론 이걸 들은 아버지가 헛소리 집어치우고 당장 학교 가라고 혼내긴 했지만.[6] 당시에 샌드위치맨은 말 그대로 몸만 있으면 할 수 있는 직업인 만큼 최하층의 직업으로 여겨졌다. (야인시대광대(줄서맨)처럼) 피에로마냥 분장하는 것도 다반사이니 몰골부터가 썩 좋은 것도 아니었다.[7] 그래서 내용 묘사를 보면, 동길이가 창식이를 거의 기절을 하다못해 죽어갈 정도로 심하게 때리는 상황에서도 참지 못하고 계속 때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