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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무라 켄신/작중 행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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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유년기2. 칼잡이 발도재 시절3. 역날검과 함께한 시기4. 성상편에서의 설정5. 홋카이도 편6. 영화판7. 관련 문서

1. 유년기

출생연도는 1849년 6월 20일.

본명은 신타(心太). 빈농의 자식으로 태어나 부모형제가 콜레라로 죽고 고아가 된다.[1] 그리고 인신매매범 집단에 잡혀가다가 매매범 일당이 도적단에게 전멸했을 때, 히코 세이쥬로에게 주워져 제자로 들여지고 비천어검류를 전승받게 된다.

이때 신타라는 이름은 유약해 검술가에겐 어울리지 않는다며 히코 세이쥬로는 켄신이라는 이름을 내려주었다. 자기를 습격한 도적단의 묘까지 만들어주며 죽으면 모두 똑같은 사람일 뿐이라고 말하는 켄신의 태도야말로, 검술(검술가)의 자세 혹은 마음가짐(劍心)이라고 히코는 생각해왔던 것 같다. 켄신을 제자로 거두며 히코는 "너에게 내가 가진 가장 소중한 것을 주마"라고 말한다. 무슨 이유로 히무라 라는 성을 붙이게 되었는지는 알 길이 없다.[2]

참고로 말하자면 11살 때까지는 이불에 오줌을 쌌으며 훈련을 받던 도중 굶주림에 지쳐 말똥버섯을 먹어 웃다가 죽을 뻔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 켄신 본인은 잊어버린 흑역사인 듯.

비천어검류에는 어울리지 않는 체격조건이지만 타고난 소질로 이를 커버,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경지에 이르게 된다.[3]

그러나 겐지 원년(1863년) 그의 나이 14살 때, 막부와 유신지사 간의 항쟁이 시작되자 세상 일에는 개입하지 않는다는 비천어검류의 원칙을 거부하며 스승과 대립한다. 결국 그는 혈기를 이기지 못하고 뛰쳐나가 유신지사가 된다. 이 때문에 비천어검류를 완벽히 계승하진 못했지만 원래 강한 검술이라 별 문제 없었던 거 같다. 참고로 코믹스에서는 히코가 "나를 쓰러뜨리고 가라!"라는 말을 하자 켄신은 진짜로 히코의 뒷통수에 장렬한 한 방을 먹여버린다. 물론 히코는 아퍼하며 "야! 그런다고 진짜로 때리냐!" 라며 버럭거렸지만 켄신은 스승님이 때리라고 했잖아요? 라고 대꾸, 그 뒤 밤새도록 서로 우격다짐을 벌인 끝에 헤어지게 된다. 반면 진지한 분위기 위주인 OVA판에선 켄신이 때리는 장면도 없고, 밤새도록 말다툼을 벌이는 일도 없다.

2. 칼잡이 발도재 시절

교토 쇼시다이(京都所司代) 시게쿠라 쥬베에님이 아니신지. 지금부터 천벌을 내리겠다.

쵸슈파 유신지사 타카스기 신사쿠가 기병대(奇兵隊)를 조직할 때 병사로 지원했으며, 그 자리에서 그의 검술 실력을 목격한 카츠라 코고로에게 발탁되어 칼잡이가 된다. 이때부터 유신지사로서 새 이름인 '발도재'를 사용하게 되었다.

가츠라 코고로와 함께 교토로 가서 교토 일대에서 막부파를 암살하는 칼잡이로 활동하게 된다. 이때부터 서서히 멘탈에서의 문제가 일어나기 시작했는데, 큰 뜻을 품고 검을 세웠으나 어둠의 세계 속에서 사람들을 잔혹하게 살해해야 하는 현실이 계속되자, 실력은 탁월하나 결국은 10대 초중반의 소년이었던 켄신(요새로 치면 딱 사춘기...)은 지나치게 예민해져 갔다. 지금의 켄신의 모습에서는 상상도 가지 않는 모습이지만, 곁에 있던 사람들이 "칼집 없는 칼"이라고까지 평했으니. 이 시기에 키요사토 아키라를 살해했으며, 유키시로 토모에와도 만났다.

이케다야 사건 이후 쵸슈파 유신지사의 세력이 위축되고 가츠라 코고로도 도피하며 대세가 어렵게 되자, 켄신도 토모에와 함께 농촌으로 피신하여 떠돌이 약사(藥士)로 위장하고 두 사람은 결혼해서 부부가 된다. 이때가 1864년 여름으로 켄신 15세, 토모에가 18세가 되던 시기. 그리고 토모에와의 생활을 통해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깨닫고 그동안 희미해져 가던 자신의 정체성을 새로이 다잡게 된다.

유키시로 토모에는 켄신이 살해한 키요사토 아키라의 약혼자로 그를 제거하려 하는 막부파의 암살 조직 야미노부의 하수인이었지만, 켄신과 사랑하게 되어버려 오히려 조직에 인질로 잡히게 된다. 토모에가 잡힌 것을 알게 된 켄신은 토모에를 구하기 위해 쳐들어가 결전을 벌인다. 하지만 결국 토모에는 죽게 되고 이 광경을 본 유키시로 에니시는 그에게 끝없는 원한을 품게 된다. (이 부분의 스토리 골자를 가져가 완성된 OVA가 추억편이다.)

참고로 그가 가지고 있는 십자 흉터는, 하나는 토모에의 약혼자였던 키요사토 아키라에게서 입은 거고 마지막은 토모에가 들고 있던 단검에 의해 생긴 상처.[4] 그로 인해, 이 상처는 그가 계속 짊어지고 갈 업보를 상징하게 된다.

토모에의 죽음 이후, 어둠의 칼잡이는 시시오 마코토에게 물려주고 본격적으로 유격지사가 되어 역사의 무대에 나타나, 보신전쟁의 초장인 토바 후시미 전투까지 칼잡이 발도재로서 활약했다. 후대 사람들이 기억하는 "칼잡이 발도재"[5]의 전설적인 활약상은 이 때를 가리킨다.

본래 그의 공적은 육군 장관 정도의 자리에도 오를 수 있을 정도였으나, 무수한 살인을 저지른 것에 회의를 느끼고 부와 권력을 버려 나그네가 되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더 이상 사람을 죽이지 않는 불살을 맹세하며 진검을 버리고, 아라이 샤쿠로부터 역날검을 받아 사용하게 된다.

3. 역날검과 함께한 시기

그 후 일본 방방곡곡을 여행하다가 메이지 11년(1878년), 도쿄에서 칼잡이 발도재의 이름을 사칭해 악행을 벌이고 있는 히루마 형제에 관한 소문을 듣고 이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카미야 활심류 도장의 사범 대리 카미야 카오루와 운명적인 만남을 갖게 된다. 곤란에 빠진 그녀를 도와주고 그대로 떠나려고 했지만, 도장을 혼자서 운영하는 건 힘드니 도와 달라는 카오루의 부탁에 카미야 도장의 식객으로 정착하게 된다.

그 뒤 우도 진에, 시노모리 아오시 등 대단한 실력의 강적들과 만나며 대결을 벌였으며, 유신지사 시절 최고의 라이벌로 불렸던 신선조의 3번대 조장 사이토 하지메와 10년 만에 싸우게 된다. 그리고 시시오 마코토의 반란 진압에 협력해 달라는 메이지 정부의 요청을 받아 교토로 떠나게 된다.

교토로 향하던 중 마키마치 미사오와 동행하게 된 켄신은 어느 온천 마을에서 시시오와 처음으로 만나게 되고, 그의 최측근인 세타 소지로와 발도술 대결을 벌이다 역날검이 두 동강 나는 피해를 입는다. 도쿄에 도착한 이후엔 역날검을 만들어준 장인 아라이 샤쿠가 남긴 새로운 역날검 진타를 손에 넣게 되고, 뒤이어 스승 히코 세이쥬로를 다시 찾아가 비천어검류의 오의 천상용섬을 전수 받음과 동시에 인간적인 성장을 이루게 된다.

이후 사이토&사노스케와 함께 시시오 마코토의 본거지로 찾아가며, 중간에 최강이란 이름에 사로잡힌 시노모리 아오시와 재대결을 벌여 승리를 거둔다. 또한 과거 발도술 대결 때 승부를 미뤘던 세타 소지로와도 싸워서 이긴다. 연이은 강적들과의 대결로 몸이 만신창이였지만, 최종보스인 시시오 마코토와 대결을 벌여 승리하게 된다.[6](이 부분이 교토편)

다시 카미야 도장으로 돌아온 후에는 복수를 노리는 유키시로 에니시 일당의 공격을 받게 된다. 이 과정에서 카오루를 잃게 되어 정신적으로 완전히 무너지게 되어, 역날검을 쇠사슬로 봉인한 채 걸인촌에 투신하게 된다. 그대로 먹지도 마시지도 않은 채 우두커니 앉아있을 뿐이었으나, 산죠 츠바메의 도와달라는 말에 마음이 움직이는 자신을 통해 속죄의 해답과 진실을 깨닫게 되어 부활하게 된다. 검과 마음을 걸고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은 사람들의 미소를 지키기 위한 투쟁의 인생을 완수하는 것이 그가 찾은 해답.

이후 카오루를 탈환하고 에니시와 결판을 내기 위해 동료들과 함께 에니시의 본거지로 찾아가며, 거기서 에니시를 격파한다.(이 부분이 인벌편)

결말에서는 카미야 카오루와 결혼하여 아들 히무라 켄지를 보게 된다. 이쯤에는 오랜 세월 동안 무리하게 비천어검류를 쓴 탓에 신체가 쇠약해져 비천어검류를 쓸 수 없는 몸이 되었으며, 역날검묘진 야히코에게 물려준다. 그러나 싸울 수 없게 된 건 아니라 하여 후일담에서도 목검을 차고 있는 모습이 나온다. 이후로도 불살의 신념으로 계속 싸울 것이라고.

결말에서 십자 상처가 옅어져 있다. 인벌편을 통해 토모에도 켄신에게 겨우 미소를 보여주고 당시의 한 모두 풀린 것이 이유인 듯. 메구미는 이 십자 상처에 가장 좋은 약은 '카오루의 미소' 라고 하며, 떠나기 전 카오루에게 당신이 계속 미소지은 얼굴로 켄신의 곁에 있는다면 점점 옅어질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완결 시점에서 카오루가 상처에 대해 언급하자 옅어졌지만 영원히 사라지진 않을 것이라고 대답했다. 그가 과거 저질렀던 업보의 상징과 동시에 '불살(不殺)'의 신념을 지켜야 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일 것이다.

새롭게 연재가 시작된 홋카이도편에선 카오루의 입으로 체력이 예전보다 더 떨어졌다고 한다. 그리고 몸 상태가 예전보다 안 좋은건 사실인지 야히코와 결투 후 온 몸에 기술을 쓴 반동이 몰려와서 격통을 느끼는 모습을 보였다. 이 후 야히코에게 다시 역날검을 돌려받고 홋카이도로 출발, 검술병기라 자처하는 인물들이 나타나면서 다시 전란의 움직임이 일어나자 현재의 평화를 위해서 싸우겠다고 검술병기들에게 선전포고를 한다.

사족을 하나 달자면, 발도재 모드와 불살모드의 켄신은 말투 자체가 완전히 다르다. 국내에 완전판을 번역하며 그 느낌이 제대로 살아나질 못했는데, 불살 모드의 켄신은 우리나라의 어체 중 하오체로 대화한다고 생각하면 편할 것이다. 불살 모드 때는 1인칭셋샤[7]이지만, 발도재 모드 때는 1인칭에 오레이며, 우리나라로 치자면 하오체에 해당하는 말투가 싹 사라지고 표준적인 현대 일본어의 대화체로 대화한다. 북미판 코믹스에서는 나그네 때는 1인칭이 This one이고 발도재 때는 I를 쓴다. 남들을 대할 때도 귀한 사람을 칭하는 높임말인 토노[8]를 붙여 대한다. 2인칭 또한 평소에는 おぬし(오누시)지만 응징할 적에게는 お前(오마에)를 쓰다가 발도재 모드에서는 貴様(키사마)까지 쓴다.

완전판에선 그나마 번역이 하오체로 잘 되어 주변인물과의 대화는 절친인물들을 빼면 전부 하오체로 대화하는 모습을 보여주지만 가까운 인물들과 대화 땐 일반적으로 친한친구들을 대하듯이 존칭을 쓰지 않고 대화하는 것으로 번역되었다. 아마 가까운 인물들에게까지 존칭을 사용하는 모습은 우리나라에서 보았을 때 어색해 보이기 때문에 이렇게 번역된 듯.

4. 성상편에서의 설정

성상편이라는 OVA는 원작이 아닌데다 작가의 홋카이도편[9]이 연재됨으로써 스토리라인이 맞지 않게 되었다.

원작의 완결로부터 약 10년 후의 이야기를 다룬 OVA인 성상편에 이르기까지, 원작에서 야히코에게 역날검을 물려준 뒤 바로 옆에서 어떻게든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도와주기 위해 매번 도장을 떠나 전국을 방랑하곤 했다.[10] 그리고 매번 돌아오긴 했지만 새로운 시대에 이르러서도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기억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었다. 이는 성상편의 켄신이 원작과는 달리 속죄의 해답을 얻었으면서도 정신적으로 계속 어둠을 안고 있었던 것의 연장으로 볼 수 있지만, 원작의 켄신에 대조해봐도 모든 이들이 평화롭게 사는 신세대로의 갈망과는 다른 어두운 현실 때문에 예전 자신의 칼잡이로서의 과거에 무의미함을 느껴 괴로워하게 되었을 거라 볼 수도 있다.

그리고 이 거듭된 유랑 때문에 가족들에게 제대로 헌신해주지 못해 아들인 켄지와의 관계는 거의 파탄나있는 상태였고, 유랑 도중 불치병을 얻게 된다. 그래서 야마가타 아리모토로부터 청일전쟁에 참가해달라는 요청을 받았을 때엔 이게 마지막 속죄가 될 거라 말할 정도로 상태가 악화되어 있었다.

이 병이 에이즈 내지는 매독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그러나 이는 확인된 사실은 아니고 단지 돕고 있던 누군가로부터 옮았다는 느낌이 강하고, 카오루도 켄신과 동침 후에 전염되어 같은 병에 걸린 데다 병세를 피부발진으로 표현한 데서 나온 설이다. 한동안 정설에 가까웠고 성상편이 욕을 더 먹는 데 기여했다. 한편 그동안의 싸움으로 칼로 베이는 상처가 많이 생겼는데 그때 타인의 혈액이 묻은 칼로 베이는 경우도 허다했을 것이다. 그중 누군가의 피에 히무라 켄신의 병의 원인이 되는 세균이 증식했을 가능성이 크다. 아무래도 시시오 마코토와의 싸움의 영향으로 켄신에게 맞지 않았던 검술인 비천어검류를 무리하게 습득한 결과 켄신의 몸이 점차 쇠약해져갔고, 거기에다 더욱 더 무리가 가는 비천어검류의 오의 천상용섬까지 습득하게 된 이후로는 몸건강이 더 악화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본래 비천어검류는 히코 세이쥬우로 같은 근육질의 남성들에게 적합한 검술이지만 왜소한 체격의 히무라 켄신은 사용하는것만으로도 몸에 엄청난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시시오 마코토의 검에 묻은 인간의 피와 기름은 베인 곳에 닿는것 만으로도 세균감염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성상편에서 히무라가 앓고있던 병이 전염성이 있는 병이라는점과 히무라 켄신의 평소 행실을 짐작하면 매독 또는 에이즈 라는 주장은 얼토당치 않다. 그동안 칼잡이 발도재 시절이나 나그네 시절의 수많은 격전을 겪으면서 베인 상처에 원인불명의 세균 이나 혈액등으로 인해 몸이 썩어가는 병을 얻었을 수 있다. 게다가 시시오 마코토의 검은 인간의 피와 기름을 매개체로 불을 일으키는 검이다. 당연히 안좋은 세균이나 병균 등이 검에 섞여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리고 원작 만화책에서도 켄신이 메구미에게 자신이 언제까지 비천어검류를 사용할 수 있냐고 묻는 과정에서 뭔가 몸에 이물감이 느껴진다고 말한 적이 있다. 아마도 이때부터 히무라의 병이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당시의 의학으로는 세균감염이나 병균에 대한 지식이 부족했으므로 일반적인 흉터를 아물게 하는 치료 외의 것은 병행하지 않은 것으로 보이며 켄신은 카오루와 결혼한 이후부터 다시 유랑생활을 시작했고 병이 급속도로 진행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청일전쟁에 사람들을 구하는 의료병으로 참가해 배에 타고 있던 도중 누군가를 구하다가 물에 빠지고, 이후 기억을 상실한 채 중국 대륙 어딘가에 홀로 지내고 있었다. 다만 돌아가야 한다고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지만 그런 처지로 가능할 리가 없었다. 그러다 사노스케에게 발견되었을 때는 이미 병이 심각하게 악화된 뒤. 사노스케가 호랑이 간까지 먹여가며 상하이에서 요코하마로 가는 화물선과 돌봐줄 사람을 수배해 일본으로 되돌려보냈고, 그 과정에서 기억을 되찾는다.

그리고 배에서 내린 뒤 홀로 힘겹게 도쿄에 도착하고, 본능적으로 켄신이 돌아오고 있다는 걸 안 카오루의 마중을 받는다. 마지막 장면에서 켄신은 카오루 품에 안기며 지친 몸 때문에 잠시 자는 듯 했지만 카오루가 켄신의 길게 자란 머리카락을 치우며 뺨에 있었던 십자가 상처가 없어진 것을 보고는 '겨우 (드디어) 사라졌네'라는 말을 남기고는 켄신이 생을 마감했다는 것을 눈치채고 눈물을 흘린다. 그렇게 길고 길었던 켄신의 인생은 그가 예전에 저질렀던 수많은 죄를 상징한 십자가 상처가 완전히 없어진 채 카오루의 품 안에서 막을 내린다.[11]

단, 해당 결말은 OVA의 오리지널 결말이다.

5. 홋카이도 편

2부작 외전인 아시타로 전과있음에서 이어지는 전개로 카오루의 아버지가 홋카이도에서 있는것으로 보이는 사진때문에 홋카이도로 가게된다. 그 와중에 생긴 몇몇 트러블로 분명 싸움이 생길것을 감안해서 야히코가 다시 역날검을 돌려준다.

건강상태는 본편 마지막과 비교하면 좀 나은듯 하지만 야히코도 성장했다고 하지만 구두룡섬의 절반 가량이 막힌데다가 사용 직후 전신에 격통이 온 것을 보면 완치는 되지 않은 상태인듯 하다. 카오루도 전성기의 켄신에 비하면 체력이 많이 딸리는것 같다고 야히코에게 언급할 정도였는데 정작 켄신은 이러한 야히코의 지적에 자기는 카오루와 대련한 적도 없는데 어떻게 체력이 떨어진 걸 알고 있냐고 반문하며 사정을 모르는야히코와 같이 고개를 갸웃하는데 작중 뉘앙스를 봐서는 아무래도 카오루는 켄신과의 다른 대련(...)을 통해서 눈치를 챈 듯.

다만 체력의 저하는 확실한 사실이라서 검객병기의 등장과 새로운 전란의 기미가 보이기 때문에 심하게 무리하는 모습[12]을 보여서 불안한 상황이기도 하다.

6. 영화판

6.1. 바람의 검심 실사영화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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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관련 문서



[1] 실제로 이 즈음의 에도 시대는 19세기 최악의 전염병 창궐로 악명이 높은 3차 콜레라 대유행 시기였다. 즉, 역사적 고증이 맞은 셈.[2] 아마도 유신지사가 되고 나서 붙은 성 같긴 하다.[3] 하지만 바꿔 말하면 켄신이 사용하는 비천어검류는 결코 100% 완전체가 아니라는 것이다. 초식은 제대로 터득했지만, 비천어검을 제대로 사용하기 위한 몸을 만들지 못한 채 하산한 탓도 있다. 이것이 그의 스승과의 결정적인 차이이며, 이는 결국 켄신 본인의 몸을 좀먹게 되는 독이 되어버린다.[4] 원작에서는 토모에가 단검을 놓쳐서 이것이 떨어지다가 켄신의 뺨을 그었고, OVA에서는 토모에가 일부러 켄신의 뺨을 긋는데 상처에 담긴 한을 풀어주려는 듯하다.[5] 일본어 원판에서는 히토키리 밧토사이(人斬り抜刀斎, 사람 베는 발도재)[6] 다만 승리했다고 하기는 애매한데, 켄신이 마지막 힘을 모두 쥐어 짜내어 시전한 천상용섬에 당해 절대로 일어나지 못할 것 처럼 보였던 시시오가 기적과도 같은 각성의 경지에 이르며 켄신 일행이 패배 직전까지 상황에 갔었다. 그런데 체온이 너무 오른 영향으로 인체 발화가 일어난 시시오가 죽어버리며 켄신 일행이 석연치 않게 이긴 셈이 되었고, 켄신도 승리를 기뻐하는 사노의 말에 아니라고 대답했다. 결정적으로 원작자가 이 싸움은 시시오가 이기고 도망친 싸움이라고 인증했다.[7] 옛 시대극에서나 볼 수 있는 자신을 낮춰 칭하는 호칭, 바람의 검심도 시대극에 속하므로 딱 들어맞는다.[8] 대충 우리나라 식으로 풀면 여자에겐 낭자, 소저, 양 정도, 남자에게는 ~공 정도의 표현이다.[9] 작가에 따르면 바람의 검심의 진정한 결말이 될 것이라 한다[10] 목검까지 들면서 투쟁의 인생을 완수하고자 했던 원작의 설정과 어긋나는 모습.[11] 전쟁에서 돌아오면 켄신이 아닌 자기 원래 이름인 신타로 불러달라고 카오루에게 요청에서 마지막 장면에서는 카오루가 켄신을 신타라고 부른다.[12] 정보를 얻기 위해서였다고 하지만 구두룡섬을 3연속으로 날리기까지 한다.정보는 얻었지만 직후 호흡 곤란으로 쓰러질뻔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