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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6 RMA | 1967 CEL | 1968 MUN | 1969 ACM | 1970 FEY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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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러피언컵 결승전 | ||||
1973-74 브뤼셀 | → | 1974-75 파리 | → | 1975-76 글래스고 |
|
European Cup Final Paris 1975 |
[clearfix]
1. 개요
1974-75 유러피언컵 결승전 FC 바이에른 뮌헨와 리즈 유나이티드 FC 간의 경기이며, 20번째 유럽 최상위 클럽 대항전의 결승 경기이다.우승 팀은 1974-75 시즌 유러피언컵위너스컵의 우승 팀인 디나모 키예프와 1975 UEFA 슈퍼컵 경기를 갖게 될 예정이었다.
결승전 장소는 프랑스 파리에 위치한 파르크 데 프랭스이다.
이 경기의 주심은 프랑스 국적의 미셸 키타브지안(Michel Kitabdjian)[1]이 담당한다.
2. 진출 팀
바이에른 뮌헨 | 리즈 |
2.1. FC 바이에른 뮌헨
1974-75 시즌초의 바이에른 뮌헨은 팀 사기가 가히 하늘을 찌르는 듯 했다. 당시 디펜딩 챔피언인데다가 핵심 멤버들이 1974 FIFA 월드컵 서독에서 우승에 성공한 것. 다만 핵심 수비수였던 파울 브라이트너가 레알 마드리드 CF로 이적하고, 선수단 대부분은 연이은 성공에 심취하여 동기부여가 상당히 떨어져 처참한 경기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때문에 바이에른 뮌헨은 해당 시즌 리그에서 10위, 포칼컵 3라운드 탈락, UEFA 슈퍼컵은 1. FC 마그데부르크와의 스케줄 협상에 의견이 갈려 결국 미개최, 인터컨티넨탈컵도 바이에른 뮌헨이 참가를 거부하면서 결국 무관위기라는 충격적인 성과를 거두게 되었다. 그래도 유러피언컵에서는 동독을 휩쓸던 1. FC 마그데부르크, 소련에서 깜짝 우승으로 돌풍을 일으키던 FC 아라라트 예레반, 1960년대 당시 리그 1의 지배자였던 AS 생테티엔을 모두 꺾고 결승전에 도달한 상태였다.2.2. 리즈 유나이티드 FC
리즈 유나이티드 FC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리버풀 FC와 함께 1960년대부터 3강 체제를 구성하고 있던 강팀이었다. 국내 축구 팬들은 1990년대와 2000년대 당시의 리즈만을 리즈 시절이라 부르며 추억하지만, 이 시기를 언급하는 축구 역사를 잘 아는 축구팬들도 많다. 이때의 리즈 유나이티드에는 당시 팀의 핵심인 잭 찰튼을 중심으로 앨런 클라크, 빌리 브렘너, 피터 로리머, 고든 맥퀸등의 선수들이 활약을 하였다. 1963-64 시즌 풋볼 리그 디비전 2에서 우승하며 1부 리그에 오자마자 1964-65 시즌 풋볼 리그 디비전 1과 FA컵에서 둘 다 졌지만, 어쨌든 동시에 우승을 할 뻔하기도 하였고, 1965-66 시즌에는 리그 2연속 준우승, 1966-67 시즌에는 인터-시티 페어스컵 준우승, 그리고 마침내 1967-68 시즌에 리그컵 우승과 인터-시티 페어스컵 우승을 동시에 거머쥐었다. 그리고 그 다음 시즌인 1968-69 풋볼 리그 디비전 1에서 리즈는 그토록 염원하던 리그 우승을 드디어 이루어내었고, 1969-70 시즌에도 5년전과 마찬가지로 풋볼 리그 디비전 1 FA컵에서 동시에 준우승을 달성하였을 뿐만 아니라 처음으로 참가한 유러피언컵에서도 셀틱 FC을 만나 준결승에서 탈락하기전까지 24 득점 0 실점이라는 성적으로 전승을 기록하기도 하였다. 1971년에도 인터-시티 페어스컵 우승에 성공하였고, 잭 찰튼이 1973년에 은퇴할 때 까지도 리즈는 리그에서 항상 우승 경쟁을 하는 강팀이었다.1973-74 풋볼 리그 디비전 1에서 리즈는 승점 62점으로 2위 리버풀 FC를 승점 5점 차이로 따돌려 최종 우승을 차지, 1부 리그 통산 2회 우승을 달성하였지만, 돈 레비가 잉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으로 직책을 옮기고 감독이 3번이나 바뀌는 등 새로운 불안 요소를 갖고 있었다. 다만 그렇게 참가한 구단 역사상 2번째 유러피언컵에서 리즈는 5년전과 마찬가지로 돌풍을 일으키고 있었다. 1라운드에서 한창 전성기였던 FC 취리히를 맞이하여 홈에서 4-1로 이기며 기분 좋게 시작하긴 했으나, 원정에서 1-2로 패하며 조금 힘들게 취리히를 탈락시켰다. 다만 2라운드에서부터는 리즈가 절치부심을 했는지, 6년 연속 리그에서 우승하고 리그 7연패를 노리고 있는데다가 전 시즌에 유러피언컵 준결승까지 진출했던 헝가리의 강호 우이페슈트 FC와 벨기에와 안데를레흐트의 레전드 폴 반 힘스트가 버티고 있던 벨기에의 명문 RSC 안데를레흐트를 상대로 연달아 4골 차 대승을 거두고 준결승에 진출, 이후 준결승 상대로는 발롱도르 위너 요한 크루이프를 비롯하여 요한 네스켄스, 미겔리, 카를레스 렉사흐가 뛰고 있던 카탈루냐의 거함 FC 바르셀로나였다. 리즈는 바르샤를 상대로도 홈에서 2-1로 승리를 거뒀고, 원정에서 1-1로 비기며 바르셀로나마저 집으로 돌려보냈다. 이처럼 리즈는 유럽의 강팀들을 연달아 물리치고 본선 참가 2회차만에 구단 역사상 첫 유러피언컵 결승전에 도달한 상태였다.
2.3. Road to the Final
'''''' | ||||||||||
바이에른 뮌헨 | 팀 | 리즈 | ||||||||
대진 | 합계 | 1차전 | 2차전 | 녹아웃 | 대진 | 합계 | 1차전 | 2차전 | ||
- | 1라운드 | 취리히 | 5:3 승 | 4:1 승 (홈) | 1:2 패 (원정) | |||||
마그데부르크 | 5:3 승 | 3:2 승 (홈) | 2:1 승 (원정) | 2라운드 | 우이페슈트 도저 | 5:1 승 | 2:1 승 (원정) | 3:0 승 (홈) | ||
아라라트 예레반 | 2:1 승 | 2:0 승 (홈) | 0:1 패 (원정) | 준준결승 | 안데를레흐트 | 4:0 승 | 3:0 승 (홈) | 1:0 승 (원정) | ||
생테티엔 | 2:0 승 | 0:0 무 (원정) | 2:0 승 (홈) | 준결승 | 바르셀로나 | 3:2 승 | 2:1 승 (홈) | 1:1 무 (원정) | ||
4승 1무 1패 (9득점 4실점) | 합계 성적 | 6승 1무 1패 (17득점 6실점) | ||||||||
◀ 1973-74 | 결승 | ▶ 1975-76 |
3. 경기 내용
'''''' | ||
파르크 데 프랭스 (파리) | ||
주심: 미셸 키타브지안 (프랑스) | ||
관중: 48,374명 | ||
바이에른 뮌헨 | 리즈 | |
2 | 0 | |
<rowcolor=#000,#fff> 71' 프란츠 로트 81' 게르트 뮐러 | | - |
- | ||
◀ 1974 유러피언컵 결승전 | 경기 하이라이트 | 매치 리포트 | ▶ 1976 유러피언컵 결승전 |
3.1. 전반전
디펜딩 챔피언이던 바이에른 뮌헨은 이렇다할 기회를 만들지 못하고 있었으며, 오히려 리즈 유나이티드가 경기를 주도하고 있었다. 경기 시작 3분만에 뮌헨의 수비수 비요른 안데르손이 리즈의 미드필더 테리 요라스에게 심한 태클을 당하여 다리가 부러지고 마는 부상을 입었다.[2] 이후 제프 바이스가 안데르손과 교체되어 경기장에 들어왔지만, 그는 주전 선수가 아니었기에 뮌헨의 경기력에 큰 지장을 주게 되었다.전반 23분, 바이에른의 주장 프란츠 베켄바워가 페널티박스 안쪽 바닥에 누워 왼팔을 짚고 있었는데, 하필 그 팔이 공과 접촉했다. 이걸 본 리즈 선수들은 페널티킥을 요구했으나, 프랑스인 주심이던 미셸 키타브지안[3]은 이를 거부했다.
또한 전반 34분, 앨런 클라크는 왼쪽에서 쇄도해 들어오면서 바이에른의 골키퍼 제프 마이어를 제칠 준비를 하고 있던 도중, 베켄바워가 클라크의 다리를 걸어 넘어뜨렸다. 하지만 심판은 이 상황에서도 리즈에게 페널티킥을 주지 않았다.
전반 37분, 울리 회네스가 부상을 입었는데, 이를 참고 뛰다가 5분이 채 지나지 않아 교체되고 말았다.[4] 양 팀은 전반전이 끝나갈 때까지 득점이 없었고 0-0으로 전반을 마무리했다.
3.2. 후반전
후반 62분, 빌리 브렘너가 회심의 슈팅을 날렸으나 제프 마이어가 신들린 선방으로 이를 막아냈다. 그러나 1분 후 피터 로리머가 득점에 성공하였다. 다만 간발의 차로 오프사이드에 걸려있었으나 미셸 키타브지안이 득점을 인정했다. 그러나 부심이 깃발을 들었었고 베켄바워가 이를 어필하자 주심이 판정을 번복하였다. 로리머의 득점이 취소되자, 리즈의 서포터들은 폭동을 일으켰다.이후 잠깐 중단되었던 경기가 다시 재개되고, 후반 71분 프란츠 로트에게 선제골을 기록하였고, 후반 81분에 게르트 뮐러에게 쐐기골을 박으며 바이에른 뮌헨이 리즈를 상대로 2-0으로 승리하였다.
4. 경기 총평
두 팀 모두 직전 시즌에 우승을 차지했던 것에 비해 각각 리그에서 10위와 9위라는 처참한 성적표를 받아내고 있었다. 유러피언컵 결승전에 오른 유럽 최고의 팀이라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리그에서는 중위권 수준에 머무르고 만 것이다.다만 바이에른 뮌헨은 이 우승 덕분에 구사일생으로 살아났고, 리즈는 준우승한 것도 서러운 상황에 유럽 대항전 출전 금지 4년이라는 중징계를 받고 말았다.[5]